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10)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09화(110/412)
#109. 웰컴 투 뉴욕
스포츠 전 분야에 걸쳐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중국의 야심 찬 계획.
하지만 다른 스포츠와 달리 축구와 야구, 그중에서도 특히 자본주의 스포츠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야구에서만큼은 중국의 차이나머니가 잘 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중국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2024년 본격적인 프로리그를 시작한 중국 야구계는 이후 빅리그에서 뛰는 중국계 선수들, 나아가 은퇴 직전의 빅리거들을 자국 리그로 불러들이며 야구 수준을 높이기 위한 시도를 거듭했다.
야구팬들이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선수들이 중국 리그에서 말년을 보내곤 했다.
미국에서 받던 것보다 오히려 더 많은 연봉과 엄청난 혜택, 누군가는 그것이 중국의 바보 같은 짓이라고 비웃었지만, 어쨌든 리그 경기력 향상 측면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메이저리그와 중국 리그 사이에 물꼬가 트이면서 많은 선수들이 중국으로 들어왔고, 또 그만큼의 선수들이 미국 진출을 시도하며 큰 무대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이번 중국 대표팀에 포함된 선수들 중에는 그런 혜택을 받은 선수들이 몇몇 있었다.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더블A에서 뛰고 있다는 에이스 왕 레이라든지, 더블A에서 쓴맛을 보고 중국으로 돌아온 궁 하이청, 거기에 중국으로 귀화를 선택한 전직 빅리거 리암 콜린스, 헨리 포스터.
이런 선수들을 주축으로 한 중국 대표팀은 한국과의 경기에서 반드시 1승을 거둘 것이라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과 함께 2조에 배정된 한국과 일본, 호주, 대만 중 그나마 만만한 것이 한국과 대만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 대회에서 나란히 1라운드 탈락한 두 국가.
만만하게 보여도 할 말이 없다. 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니까.
“자, 오늘 라인업 다시 한번 확인하고, 4년 전 중국 애들이 아니야. 혹시나 방심하는 녀석들은 내가 바로 빼 버릴 테니까 긴장하고. 내 말 이해했나?”
“네! 감독님!”
“좋아, 자, 그럼 시작해보자.”
오늘 정윤석 감독이 내놓은 라인업은 이랬다.
1번 타자 중견수 이찬호(서울 파이터즈)
2번 타자 유격수 한수혁(서울 워리어스)
3번 타자 1루수 이수영(대구 버팔로스)
4번 타자 지명타자 고철환(서울 매지션스)
5번 타자 좌익수 김성수(서울 매지션스)
6번 타자 우익수 강우찬(인천 레인저스)
7번 타자 3루수 김세준(대전 팔콘스)
8번 타자 포수 정대한(수원 커맨더스)
9번 타자 2루수 이태웅(대구 버팔로스)
선발투수 구철중(대전 팔콘스)
정윤석 감독은 이번 WBC 기간 4선발을 운영할 생각인 듯하다.
대회 규정상 1라운드 경기에서는 한 명의 투수가 최대 65개, 2라운드에서는 80개, 준결승과 결승에서는 95개까지의 공만을 던질 수 있다.
그렇게 50개 이상의 공을 던진 투수는 최소 4일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
중간계투에도 제약이 걸려 있다. 한번 등판한 투수는 최소 3명 이상의 타자를 상대해야 하며, 30개 이상의 공을 던지면 강제로 하루 휴식을 취해야 한다. 또한 이틀 연속 등판할 경우에도 하루 휴식 규정이 적용된다.
이런 이유로 최대한 많은 투수들이 골고루 돌아가며 이닝을 먹어줘야 한다.
이에 대표팀에 선발된 15명의 투수 중 대전의 류한결과 인천의 임준영, 수원의 최경재, 대전의 구철중 등 4명이 선발로 내정되었고, 나머지 투수들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중간에 투입될 예정이다.
오늘 선발로 나선 대전의 구철중은 선발과 마무리 양쪽에서 많은 경험을 가진, 특히 국가대표 경기에서는 더욱 위력을 발휘하는 좌완 투수다.
야수진은 일단 베스트 멤버들이 총출동했다.
원래대로라면 중국전에는 백업 멤버들이 나서야 하지만 지난 대회에서 호주에게 일격을 당한 기억 때문인지 코칭스태프들은 조금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 야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결전의 날이 밝았습니다. 2027 WBC 본선 1라운드 첫 경기, 대한민국과 중국과의 경기 중계를 맡은 아나운서 박철민 인사드립니다. 제 옆에는 고동식 해설위원님 나와 계십니다.
– 반갑습니다. 고동식입니다. 가문의 영광입니다. 최선을 다해 해설에 임하겠습니다.
이상한 쪽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기를 빌며 아나운서가 말을 이었다.
– 지난 2023년 대회 때도 같은 조에 속해 있던 두 나라입니다. 그때는 대한민국이 22 대 2, 콜드게임승을 거뒀죠?
– 맞습니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중국 야구 역시 적지 않은 발전을 이뤘습니다. 정식 프로리그가 출범했고,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좋은 선수들을 데려오고, 또 많은 선수들을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절대 얕봐서는 안 됩니다.
어쩐 일인지 아주 정상적인 멘트를 하는 고동식이었다. 약간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 아나운서가 오늘 대한민국 대표팀의 라인업을 읽어 내려갔다.
– …여기까지가 오늘 선발 출장할 우리 대표팀 선수들의 명단입니다. 베스트 라인업이죠?
– 맞습니다.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한 구철중 선수가 마운드를 지키고, 나머지 야수들도 모두 주전 멤버들로 채워졌습니다. 정윤석 감독으로서는 오늘 경기를 반드시 승리하고, 일본과 대만, 호주, 이 중 2경기를 이겨 2라운드에 진출하겠다는 각오입니다.
– 중국 대표팀에서 대해서도 설명을 좀 해주시죠.
– 물론이죠. 일단 중국 프로리그는 베이징 타이거스를 비롯해 톈진, 상하이, 장쑤, 광둥, 허난, 쓰촨, 광둥 등 8개 팀으로 운영되고 있고요. 국가 주도의 엘리트 체육 정책으로 인해 50개에 불과하던 고교야구팀이 최근 500개로 급격히 늘어난 상태입니다.
– 대단하네요.
– 엄청나죠. 그렇게 고등학교에서 길러낸 선수들 중 상당수가 미국으로 진출하기도 했고, 반대로 미국에서 뛰다가 많은 돈을 받고 중국으로 온 빅리거들, 아예 귀화까지 한 베테랑들이 합류하면서 중국 리그의 수준도 점차 높아지는 중입니다.
– 예전 우리가 콜드승을 거뒀던 그 팀을 생각하면 안 된다는 뜻이겠군요.
– 맞습니다. 오늘 선발로 나선 왕 레이 선수가 현재 보스턴 산하 더블A 팀에서 뛰고 있고, 그 외 3번과 4번에 배치된 리암 콜린스, 헨리 포스터 같은 귀화 선수들은 얼마 전까지 빅리그에서 뛰던 선수들입니다.
– 알겠습니다. 설명을 들으니 저도 정신이 번쩍 드는군요. 부디 우리 선수들이 방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길 기대하겠습니다.
– 네, 하지만 야구팬 여러분,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 역시 그렇겠죠? 전체적인 프로리그의 수준에서 우리나라가…….
– 한수혁 선수가 뛰는 이상 대한민국이 중국에 패배할 일 따위는…….
– 광고 보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여기는 2027 WBC 본선 1라운드 대한민국과 중국과의 경기가 열리는 양키 스타디움입니다.
* * *
중국팀의 선발로 나서게 된, 사실상 이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는 21세의 젊은 투수 왕 레이는 오늘 이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국가 주도의 엘리트 체육 정책에 따라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 영재로 자라온 그다.
왕 레이가 중국 고교 야구계를 폭격하고 프로 팀 입단을 추진하던 그때, 차이나머니의 달달함에 취한 보스턴 레드삭스가 그의 손을 잡았다.
중국계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곳 중 하나가 바로 보스턴이다. 만에 하나 왕 레이가 마이너리그를 돌파해 빅리그까지 올라온다면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잘 안 되면? 어차피 그에게 지불한 계약금이라 봐야 10만 불에 불과했다. 그 정도는 왕 레이를 입단시키며 얻은 홍보 효과만으로도 충분히 상쇄 가능하다.
다행히도 루키 리그에서 시작한 왕 레이는 2년 만에 더블A까지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보스턴 산하 마이너 구단들의 투수풀이 워낙 박살 난 탓도 있지만, 중국인이라는 프리미엄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다.
이유야 어쨌든 더블A까지 올라온 왕 레이는 자꾸만 자신의 신경을 거스르는 누군가의 이름을 듣게 되었다.
한수혁,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무려 350만 불의 계약금을 제안받은 아시아의 슈퍼루키.
그럼에도 건방지게 그 제안을 걷어차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한국에 남은 졸장부.
평생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한수혁을 향해 라이벌 의식과 적대감을 쌓아가던 왕 레이는 마침내 오늘 처음 그와 상대하게 되었다.
녀석이 한국리그에서 가장 잘 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본이 아마추어를 출전시키기에 사실상 대만과 한국, 두 나라 중 하나가 금메달을 나눠 가지는 아시안 게임을 제외하면 올림픽과 WBC 같은 굵직한 대회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지 상당히 오래되었다.
올림픽의 경우 2008년 기적 같은 우승을 제외하면 2020년 4강에 한 번 든 게 전부였고, WBC는 2006년 4강, 2009년 준우승을 차지한 후 단 한 번도 1라운드를 돌파한 적이 없다.
세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 그것이 한국 야구대표팀의 현주소다.
프로 리그라고 다르지 않았다. 중국 내 언론을 통해 얼마나 많이 다뤄졌던가.
실력 있는 선수들은 점점 줄어들고, 급도 안 되는 선수들이 말도 안 되는 돈을 쓸어 담는 왜곡된 시장.
돈 많고 배부른 돼지들의 놀이터.
그것이 왕 레이가 한국야구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이었다.
그렇기에 왕 레이는 오늘 한국과의 경기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잘해 봐야 자신이 뛰고 있는 더블A에 수준에 불과한 한국 대표팀 타자들을 꽁꽁 묶어버리고, 내년에는 좀 더 큰 무대로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플레이볼!”
오늘 주심을 맡은 미국인 심판이 경기 시작을 알렸다.
한국 대표팀의 리드오프를 맡은 중견수, 이찬호라는 좌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올 시즌 초반을 부상으로 날려 먹었지만 3할에 20홈런, 20도루가 가능한 호타준족형의 타자.
이번 시즌을 마치고 난 후 빅리그 진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몸쪽 빠른 공에 대한 약점 때문에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선수.
호리호리한 몸매에 빠른 발을 가진, 체격보다는 빠른 배트 스피드로 큰 것을 종종 날리는 전형적인 아시아 선수다.
비웃음을 한 번 날려준 왕 레이가 그를 향해 자신있게 초구를 던졌다.
따악!
몸쪽으로 들어가는 왕 레이의 147㎞/h 포심을 이찬호가 받아쳤다.
계획대로 되었다. 살짝 먹힌 타구가 2루수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자신이 이겼음을 직감한 왕 레이가 주먹을 불끈 쥐려던 그 순간.
‘샤삐(멍청한 놈)!’
중국 리그에 비해 훨씬 빠른 이찬호의 타구를 2루수가 제대로 포구하지 못하며 타자가 1루에 진출하고 말았다.
마음 속으로 실책을 저지른 2루수의 10대 조상에게까지 욕을 퍼부어준 왕 레이가 벌개진 얼굴로 다음 타자를 바라보았다.
한수혁, 드디어 저놈과 만났다.
192㎝에 달하는 거대하면서도 균형 잡힌, 아시아인치고는 보기 드문 피지컬.
분명 생애 첫 성인 국가대표 출전이라고 들었건만 얼굴에서 긴장감 같은 건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미국에서 야구를 하는 게 분명 처음이건만 너무나 평온한 얼굴이었다.
‘과연… 그 정도니 350만 달러 제안을 받았다는 건가.’
마음 속으로 한수혁에 대해 아주 손톱만큼 평가를 상향 조절한 왕 레이가 신중한 표정으로 1루를 바라보았다.
매년 20개 이상의 도루를 해온 주자이지만 올 시즌에는 부상의 여파 때문인지 극도로 도루 시도를 자제하고 있다는 게 기록에 나와 있었다.
낯선 나라, 낯선 그라운드 환경에서 굳이 1회부터 모험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왕 레이가 가볍게 몇 차례 1루 견제를 했다. 예상대로 리드폭이 상당히 좁았다.
그제야 타자와의 승부를 결심한 왕 레이가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았다.
‘바깥쪽 낮은 포심, 좋아!’
메이저리그 20-80 스케일 기준 50점을 받은, 그럭저럭 빠르고, 그럭저럭 제구도 되는 그 공이 초구로 선택되었다.
왕 레이의 육중한 몸이 천천히 움직였다. 한수혁이라는 건방진 한국인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그는 이번 승부에서 이길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수비가 실책만 하지 않으면 무조건 잡아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왕 레이는 몰랐다.
1루 주자 이찬호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그가 베이스에 딱 붙은 채 도루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가 사실은 굳이 도루 같은 걸 할 이유가 없어서라는 걸.
슈웅
따아아아아아악!
어마어마한 타격음이 양키 스타디움에 울려 퍼졌다.
맞는 순간 혼백이 날아가버린 왕 레이가 그대로 마운드 위에서 굳어버렸다.
45도 각도로 치솟은 엄청난 궤적의 타구가 뉴욕 상공을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와아아!”
“한수혁!”
“수혁 오빠!”
“대한민국!”
5만 명 규모의 경기장 규모에 비하면 한 줌밖에 안 되는 한국팀 응원단석에서 비명이 섞인 함성이 튀어나왔다.
반면 그 네 배 이상은 되어 보이는 중국팀 응원단석에서는 핫도그와 피자 같은 것들이 경기장 안으로 날라 들어왔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간 타구가 양키 스타디움 좌측 3층 관중석 최상단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배트를 든 채 타석에서 자신의 타구를 감상하던 한수혁이 마치 투수를 놀리듯 덕아웃 쪽을 향해 배트를 데굴데굴 굴려버리고는 1루를 향해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1루 측에 자리 잡고 있던 중국인들이 그런 한수혁을 향해 미친 듯이 야유를 퍼부어댔다.
하지만 한수혁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그라운드를 돌기 시작했다.
중국팀의 유격수가 한수혁을 향해 뭐라고 한마디를 했다가 되려 얼굴이 파래져서는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렇게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아 홈으로 들어온 한수혁이 중국 포수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말도 안 되는 타구에 너무 놀란 것인지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린 한수혁이 포수를 향해 말했다.
“뉴욕에 온 걸 환영해, 촌뜨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