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11)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10화(111/412)
#110. 자신이 없다. 질 자신이
굳이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상대의 얼굴이나 몸짓만으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보통 그런 걸 바디랭귀지라고 부른다.
평생 영어 하나만을 사용해온, 중국으로 귀화한 후에도 굳이 아시아의 언어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중국 대표팀의 4번 타자 리암 콜린스는 지금 바디랭귀지의 위대함을 몸소 체감하는 중이었다.
“헛짓거리 하지 말어. 실투여. 야구 하러 왔으면 야구만 혀.”
“끄으으윽……!”
“그, 그만, 내려놔! 그 친구 놔주라고!”
“알았슈. 놨어유.”
“허억, 허억, 허억, 허억…….”
“자, 다들 봤지? 흥분하지 말고 자리로 다들 돌아가!”
대한민국 대표팀이 25 대 0으로 앞서고 있는 가운데 진행된 5회말 중국의 마지막 공격.
4회말까지 불과 45개의 공만을 던지며 혼자 중국 타선을 완전 봉쇄한 구철중은 5회말에도 중국의 2번과 3번 타자를 공 4개로 간단히 처리한 상태였다.
그리고 타석에 리암 콜린스가 들어섰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네 번째 외야수로 뛰다가 차이나머니의 달달함에 귀화를 결심한 전직 빅리거.
구철중이 던진 초구가 손에서 미끄러지며 하마터면 등짝에 맞을 뻔했다.
오늘 구철중에게 철저히 봉쇄당하며 심기가 뒤틀릴 대로 뒤틀린 리암이 배트를 집어 던지고 마운드로 달려 올라가려던 그때.
터억
“커헉!”
뭔가 기중기 같은 거대한 압력이 자신의 뒷목을 잡아챘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벤치 클리어링을 예감하고 그라운드로 뛰어올라오려던 동료 중국인들이 퍼렇게 질린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 자신의 목을 잡아챈 거대한 힘의 정체를.
“어딜 가려고?”
“끄으윽…….”
“헛짓거리 하지 말어. 실투여. 야구 하러 왔으면 야구만 혀.”
“꺼어억…….”
오늘 3회에 교체되어 들어온 한국 대표팀의 포수였다.
장덕수라고 했던가?
덩치가 어마어마하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놈에게 뒷목을 잡히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이놈이 말도 안 되는 괴물이라는 걸.
주심이 거의 사정하듯 놓아주라고 말한 후에야 자신의 목을 쥐어 오던 거대한 힘이 사라졌다.
너무 놀라서 항의할 기운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마운드에 뛰어올라가려던 건 자신이었고, 이놈은 그런 자신을 잡아챘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주심 역시 괴물에게 경고 같은 걸 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괜히 여기서 경고나 퇴장 같은 게 내려졌다가 저 괴물이 화나기라도 하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그리고 지금 저 괴물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건 바로 자신이다.
꿀꺽
마른 침을 한 번 삼킨 리암이 주심을 향해 말했다.
“별 일 아니니까 빨리 야구나 하죠.”
“음, 역시 그렇지?”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경기는 다시 재개되었다.
* * *
[대한민국 야구대표팀, 중국에 5회 25 대 0 콜드게임 승] [두 타석 만에 홈런 2방, 6타점 기록한 한수혁, 공 55개로 중국타선 잠재운 구철중, 공동MVP] [중국팀 에이스 왕 레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5회말 중국의 소림야구 시도를 단숨에 제압한 장덕수 “별 것 아닌 놈이었다”]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는 안 된다고 떠들던 중국 언론들, 이번 경기 결과에 침묵] [대표팀 응원 주도한 민예린 “양키 스타디움 안전망 탄력 최고, 국내 도입 서둘러야” 무슨 뜻?] [1라운드 첫 번째 경기에서 대승 거둔 대한민국 대표팀, 내일은 호주와 일전]첫 타석과 두 번째 타석에서 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나를 포함, 대부분의 야수들이 3회에 교체되었다. 이미 승부가 결정 난 상황에서 굳이 체력 소모를 시킬 필요는 없다는 이유였다.
내 자리에는 수원의 안태규가 대신 들어왔고, 정대한 대신 장덕수 선배가 포수 마스크를 썼다.
나이를 조금 먹기는 했지만 구철중은 정말 좋은 투수였다.
본선 1라운드 한계투구수인 65개를 채 던지지 않고 중국 타선을 완봉으로 잠재웠다.
5회말 마지막 수비에서 장덕수 선배가 또 고구마를 심을 기미를 보였을 때는 조금 아찔했지만 다행히 중국 타자 놈이 빠르게 현실 파악을 하면서 유혈사태 없이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 스타디움을 빠져나오는데 중국 기자들이 귀찮게 따라붙었다.
어디서 울기라도 했는지 두 눈이 벌개진 채, 정말 분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마이크를 내밀었다.
“조상 중에 중국인이 있다, 중국으로 귀화할 수도 있다, 그런 설이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정말 중국인이 되고 싶으신 건가요?”
“저 억만금을 줘도 중국에서는 못 삽니다. 기관지가 약해서요.”
“…….”
뭔 개소리야. 다음.
“중국 프로리그가 많은 발전을 거뒀지만 아직 조금 부족하다는 건 인정합니다. 상대해본 소감, 말씀해 주시죠!”
“아, 방금 상대한 선수들이 프로 선수들이었나요? 전 실업 리그라고 들었는데.”
“…….”
중국하고 경기가 한 번뿐이라서 다행이다. 보통 극성스러운 게 아니다.
설마 쟤들이 본선 1라운드 통과해서 또 우리랑 붙을 일은 없겠지.
그렇게 중국과의 첫 경기를 잡아낸 우리는 바로 다음 날 호주와의 2차 전에 나섰다.
중국을 이기며 1승을 올린 대한민국, 그리고 같은 날 대만을 잡아내며 기세를 올린 호주.
한때 야구계의 변방이라 불리던 호주였지만 프로리그에 열심히 투자를 하며 전체적인 수준이 많이 올라간 상태다.
거기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선수들이 점점 늘어나며 국가대표팀의 전력만 치면 우리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다는 평가를 받는 팀이기도 하다.
실제 이번 한국 대표팀에 현직 메이저리거가 단 한 명도 없는 데 반해, 호주 대표팀에는 4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2023년 대회에서도 바로 저 호주에게 발목을 잡히며 1라운드 탈락을 했었다.
그렇기에 야구팬들뿐만 아니라 선수들 역시 호주전에 대한 필승의 의지를 다졌다.
“오늘도 다들 힘내고, 경기 중에 불편한 거 있으면 바로 얘기하고, 적당한 긴장은 좋지만 절대 무리는 안 된다. 다들 알겠나?”
“네! 감독님!”
“좋아, 오늘 라인업이다.”
정윤석 감독과 며칠 지내보니 확실히 알겠다. 이대준 감독이 갖고 있는 야구관이 바로 스승인 그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걸.
어쩌면 이대준 감독이 이대로 나이를 먹으면 저런 모습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오늘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발 라인업은 어제와 거의 대동소이했다.
1번 타자 중견수 이찬호(서울 파이터즈)
2번 타자 유격수 한수혁(서울 워리어스)
3번 타자 1루수 이수영(대구 버팔로스)
4번 타자 지명타자 고철환(서울 매지션스)
5번 타자 좌익수 김성수(서울 매지션스)
6번 타자 우익수 강우찬(인천 레인저스)
7번 타자 2루수 이태웅(대구 버팔로스)
8번 타자 포수 정대한(수원 커맨더스)
9번 타자 3루수 김세준(대전 팔콘스)
선발투수 임준영(인천 레인저스)
팀 타선이 폭발하는 가운데 혼자 무안타에 그쳤던 대전의 3루수 김세준이 9번으로 가고, 대신 2루수 이태웅이 7번으로 올라왔다.
솔직히 김세준의 컨디션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경기 중 충돌한 후 별다른 화해조차 없었던 내 옆에서 수비를 하는 게 좀 불편했던 걸까.
어제 경기에서도 미묘하게 3루수와 호흡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굳이 입에 담지는 않았다. 이미 정윤석 감독도 알고 있는 눈치였으니까.
그보다 원래 포지션인 유격수 대신 2루수로 뛰고 있는 이태웅 쪽이 좀 더 신경이 쓰인다.
유난히 2루수 포지션에 눈에 띄는 선수가 없다 보니 데뷔 초기 2루수로 뛰던 이태웅이 대표팀 주전 2루수로 낙점된 상태다.
전문 2루수가 아니어서 그런지, 아니면 아직 손발을 맞춘 지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이창모 선배와 호흡을 맞출 때와 비교하면 여러 모로 아쉽다.
“수혁아, 오늘은 홈런 몇 개 쳐줄 거냐.”
“음… 오늘은 좀 쉬엄쉬엄 하려고 했는데.”
“흐흐, 내가 서울 가면 성오 형님, 만식이 형님 불러서 한우 쏠게.”
“네, 그러면 저도 한번 노력해볼게요, 선배님.”
“좋아. 너만 믿는다.”
오늘 호주전 선발은 임준영 선배다.
정윤석 감독은 임준영과 류한결, 두 명의 투수를 놓고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국 호주전 임준영, 일본전 류한결로 결정을 내린 듯하다.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 대만전에서는 최경재가 선발로 등판할 것 같다.
빅리그 출신 투수 1명, 그리고 타자 3명을 보유한 호주 대표팀이다.
선발로 나서는 임준영 선배뿐만 아니라 선수단 전체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하다.
지난 중국전처럼 쉽게 풀리지는 않겠지.
그래도 뭐, 저쪽에 빅리거 4명이 포함되어 있다면…….
우리 팀에는 류한결, 임준영 같은 예비 빅리거 두 명에 구철중, 김성수, 두 명의 전직 빅리거.
그리고 한때 메이저리그 최정상의 자리에 올랐던 내가 있다.
오늘 경기, 꽤나 재미있을 거 같은데.
* * *
– 지난번 중국과의 경기는 정말 대단했죠?
– 대단했죠. 특히 마지막 이닝 중국 놈의 소림야구 시도를 장덕수 선수가 완벽하게 제압…….
– …위원님.
– 아앗! 죄송합니다. 중국 놈이 아니라 중국으로 귀화한 미국 놈이었죠. 하하.
– 됐습니다.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닌 것 같군요. 첫 번째 경기에서 기분 좋은 콜드게임승을 거둔 한국 대표팀이 이제 호주와 2차전을 치르게 됩니다.
– 네, 오늘은 메츠의 홈구장인 시티필드에서 경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양키 스타디움과 마찬가지로 2009년에 지어진 곳으로 가장 큰 특징은 홈런이 잘 안 나오는 구장이라는 겁니다.
– 그렇군요. 그런 구장 특성이 호주 팀과 우리 팀, 어느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지 보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위원님, 종합적으로 볼 때 오늘 호주와의 경기, 어떻게 예측하십니까?
– 일단 중국전 해설 때 한 번 말씀드린 바 있지만 예전 호주 하면 약팀의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호주 프로리그의 경우에는 아직 KBO에 비해 수준이 조금 떨어지는 게 사실이고요.
– 아, 네. 계속 말씀해주시죠.
– 하지만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호주 출신 선수들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인 데다가 WBC의 경우에는 국적 외에도 혈통으로 팀을 선택할 수 있거든요? 오늘 호주 팀 선발로 나선 제이미 와트 선수와 3루수로 출전한 오스카 워커 선수가 바로 그런 케이스입니다.
– 네, 올 시즌에도 빅리그에 등록되어 있는 선수들이죠. 정말 만만히 볼 수 없는 팀인 것 같습니다.
– 맞습니다. 지난 2023년 WBC에서 한국 대표팀이 광탈, 음… 1라운드에서 탈락한 게 바로 호주전 패배 때문이었거든요. 드디어 설욕할 순간이 온 셈입니다.
– 만약 오늘 경기에서 지게 되면… 남아 있는 일본과 대만전을 모두 승리해야 2라운드 진출이 가능해지겠네요. 위원님 말씀대로 꼭 이겨야 하는 경기입니다.
– 물론이죠. 하지만 국민 여러분,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경기 전에 한수혁 선수를 만나서 인터뷰를 해봤거든요.
– 오,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 뭐,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갔지만 제일 중요한 건 이거였습니다. 오늘 경기에 대해 물었습니다. 자신 있냐고 말이죠.
– 한수혁 선수가 뭐라고 하던가요?
– 자신 없다고 하던데요?
– 네에?
– 도저히 질 자신이 없다고요. 하하, 자, 국민 여러분. 안심하시고 치킨이라도 한 마리 시키… 아, 지금 한국은 아침이겠군요. 뭐, 어떻습니까? 모닝 치킨 주문하시고 느긋한 마음으로 경기 지켜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