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14)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13화(114/412)
#113. 팔꿈치 각도를 좁혀야…
이제 와서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일본과 한국 야구의 인프라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일단 프로야구의 근간이 되는 뿌리, 말하자면 선수 수급을 담당하는 고교야구팀의 숫자만 해도 우리나라는 고작 80개에 불과한 데 비해 일본은 3,600개에 달한다.
그렇게 많은 고교팀에서 키워낸 선수들이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실업야구, 사회인 야구 등으로 흩어져 계속 선수생활을 이어 나간다. 언젠가는 프로에 진출하겠다는 희망을 품고 말이다.
프로야구 판의 시장 규모 역시 차원이 다르다. 산출 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최소 3배에서 최대 10배까지 차이가 난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대표팀에 일본전 필승을 요구하는 건 조금 잔인한 일일 수도 있다.
문제는 국민들의 기대치와 눈 높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그러니까 한국 야구의 경쟁력이 최고점에 달했던 그 시기, WBC나 올림픽 같은 메이저 대회에서 일본을 꺾었던 그 강렬한 기억.
그 기억들이 아직도 국민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객관적인 데이터만 놓고 살펴보자.
두 나라 간 성인 국가대표팀만의 전적을 살펴보면 68승 2무 40패로 일본이 명백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범위를 조금 좁혀 양 국가의 프로선수들이 참가한 경기의 전적만 살펴보자. 일본이 11승 10패로 근소한 우위를 보이고 있다. 의외로 해볼 만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문제는 한국이 기록한 10승이 대부분 2000년대에 기록된 승리라는 거다.
쉽게 말해 2010년 이후 지금까지 17년간 한국은 올림픽과 WBC에서 단 한 번도 일본을 이겨본 적이 없다.
인정해야 한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명백하게 약팀이라는 것.
비정상적으로 FA몸값이 높아지며 한국야구의 수준이 높아진 것 같은 착각 속에 살았지만 사실 일본은 한국이 감히 넘어서기 힘든 그런 존재라는 것.
따아아아악!
물론 그 모든 건 나라는 존재를 배제한 상태에서의 이야기다.
– 아아앗! 한수혁 선수가 친 타구가 까마득하게 솟구칩니다!
– 일본 선수들이 지금 현실 파악을 못 하네요. 설마 저게 넘어갈까 그런 표정이잖아요? 보세요. 저기 좌익수가 계속 타구를 보면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죠?
– 네, 네, 정말 그렇군요. 저희도 처음 한수혁 선수의 홈런을 봤을 때 저랬으니까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계속 날아간 타구가 시티필드 관중석 최상단에 떨어졌습니다! 홈런! 홈런! 국민 여러분, 한수혁 선수의 홈런으로 대한민국이 1 대 0 한 점 차로 앞서 나갑니다!
* * *
‘혼또? 저게, 저렇게 넘어간다고?’
한수혁에게 처음 홈런을 맞은 투수들이 대부분 그렇듯, 말도 안 되는 타구를 얻어맞고 선취점을 내준 일본팀의 에이스 다나카 야마토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올 시즌 시카고 컵스의 2선발로 활약하며 전반기 동안 9승 4패를 기록한, 현 시점 일본 최고의 투수 중 하나인 그다.
158㎞/h에 달하는 포심과 150㎞/h 투심, 거기에 땅바닥에 처박힐 정도로 각도가 큰 포크볼로 무장한 다나카는 오늘 경기에 대해 절대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한때 한국야구가 일본을 턱밑까지 위협하던 시절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때 한국 대표팀에는 메이저리그를 폭격 중이던 선발 투수와 마무리 투수, 그리고 일본에 진출해 에이스 소리를 듣던 투수와 타자들이 즐비했다.
즉, 대표팀 전력만 놓고 보면 충분히 일본과 해볼 만한 전력이었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가 2년 만에 퇴출당한 서른아홉의 퇴물 타자, 그리고 마흔을 훌쩍 넘긴 투수 하나 정도가 전부다.
물론 오늘 선발로 나온 류한결이 꽤 좋은 투수라고는 하지만 빅리그에서 검증을 받기 전에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
한수혁?
시애틀이 녀석에게 350만 달러를 제안했다가 차인 것, 그리고 165㎞/h가 넘는 공을 던진 것 때문에 한국에서는 수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소리를 듣고 있지만…….
글쎄, 일본에서는 매년 서너 명의 아마추어 선수들이 빅리그 구단의 수백만 달러짜리 오퍼를 받고 있으며, 160㎞/h를 던지면서도 결국 프로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투수들도 한둘이 아니다.
즉, 한국에서 아무리 호들갑을 떨어봐야 그냥 검증받지 못한 풋내기라는 소리다.
그런 놈에게, 그런 풋내기 놈에게.
말도 안 되는 홈런을 얻어 맞았다.
몸쪽 낮은 곳으로 말려 들어가는 완벽한 투심, 올 시즌 다나카를 컵스의 2선발로 군림하게 해준 그 공이 완벽하게 공략당했다.
맞는 순간 느낌은 외야 플라이, 엄청난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타구 각이 너무 컸다.
하지만 그렇게 엄청나게 솟아오른 공은 떨어질 줄 몰랐고, 결국 이 거대한 구장의 외야 최상단에 떨어지고 말았다.
“우와와와!”
그런데 더욱 무서운 것은 저 한수혁이라는 놈의 태도다.
3루를 돌아 홈으로 향하던 놈과 눈이 마주쳤다.
이제 데뷔 1년 차, 심지어 처음으로 경험하는 국가대표팀 경기다.
그런 경기에서 홈런을 쳤으면 조금이라도 들뜨는 게 정상이건만, 녀석은 마치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아침에 일어나 집 앞마당을 쓰는 것 같은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한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녀석이 홈을 밟았다.
1루쪽 원정석에 앉아 있던 한국 관중들 한가운데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돌려보니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하나가 안전망에 등을 대고 거꾸로 타고 오르는 묘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저건 대체 뭐 하는 짓일까?
다카나 야마토의 머릿속이 점점 더 엉망진창이 되어 가고 있었다.
* * *
“스트라이크! 아웃!”
└잠깐 착각했다
└뭘
└시작하자마자 홈런 처맞길래 일본 투수 개좆밥인 줄 알았음 ㅋㅋㅋ
└미친 쟤 작년에 17승 했고 올해도 15승 페이스임
└알아 안다니까. 그냥 한수혁한테 홈런 맞은 거 보고 잠깐 착각함
└이제 3회말인데 삼진이 벌써 6개… 저게 저렇게 치기 어렵나?
└어렵지 157㎞/h짜리 포심하고 150㎞/h 투심, 145㎞/h 포크가 휙휙 들어오는데
└쟤 한국에서 던졌으면 방어율 0점대 찍었을 듯
└하;;; 진짜 존나 답답하네 출루라도 좀 하지. 또 2아웃에 주자 없이 한수혁이네
└이럴 거면 그냥 1번에 두는 게 나았을지도, 타석이라도 한번 더 서게
1회말 내게 홈런을 허용한 다나카 야마토는 3회말 2아웃까지 볼넷 하나를 준 걸 제외하면 완벽하게 한국 타선을 틀어막았다.
KBO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완벽하게 제구된 155㎞/h의 포심과 엄청난 각도의 포크볼에 한국 타자들의 방망이가 춤을 췄다.
물론 KBO에도 155를 던지는 투수는 몇 있다.
문제는 그 투수들이 던지는 155㎞/h가 그야말로 온몸을 쥐어짜 간신히 만들어낸 공이라면, 지금 다나카가 던지는 155는 최소한 4분할 제구가 가능한 공이라는 거다.
꽤 괜찮은 투수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어깨 부상 이후 구속 욕심을 포기하고 제구력 위주로 던지던 당시의 60, 아니, 70% 정도는 되는 투수다.
나보다 못한 놈에게는 별 관심이 없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예전 삶에서도 그 정도 성적은 기록했던 거 같고 말이다.
“시발… 수혁아, 미안하다. 공이라도 좀 오래 보려고 했는데 면목이 없네.”
“괜찮습니다, 선배님.”
“하아… 4년 전보다 공이 더 좋아진 거 같아. 일본 놈들 뭘 먹고 저렇게 야구가 늘었지?”
솔직히 말하자면 일본의 야구 실력이 는 게 아니라 KBO의 수준이 제자리걸음한 게 문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굳이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3회초 일본 팀의 간판타자 에토 이오리의 2루타로 1 대 1 동점이 된 가운데 3회말 한국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9번 김세준에 이어 1번 이찬호가 연속 삼진으로 물러났다.
올 시즌이 끝난 후 내심 빅리그 진출을 노리고 있는 서울 파이터즈의 간판타자 이찬호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그의 입장에서는 빅리그에 진출할 경우 저런 투수들과 매일 상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가 질린 모양이다.
가끔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KBO에서 뛰던 타자들이 빅리그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근본적인 운동 능력의 차이다.
KBO에 비해 평균 10㎞/h 이상 빠른 투수의 공을 판별해낼 수 있는 동체시력부터 시작해서 반응 속도, 근력, 민첩성, 밸런스, 그 모든 부분에서 요구되는 능력치가 확 올라가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찬호가 정말 빅리그에 진출하고 싶다면 오늘 같은 경기에서 저런 모습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을 최대한 끝까지 보고 치는 저 타격 매커니즘도 수정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흠.
“이봐.”
흠칫
“뭘 그렇게 놀라?”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건가?”
“조금은. 것보다 저 녀석이지? 내가 약점이 뚜렷하다고 지껄인 게?”
“나니?”
“흠, 표정을 보니 맞나 보네. 좋아. 나중에 저 투수한테 꼭 전해줘.”
“뭘 전해달라는 거지?”
“팔꿈치 각도를 좁히지 못하면 앞으로 힘들 거라고.”
“뭔 소리야, 그게 대체…….”
“내 할 말은 다 했으니 이제 닥치고 야구나 해.”
“이런… 별 거지 같은…….”
스무 살짜리 한국인 애송이의 입에서 일본어가 튀어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지, 포수 놈이 더듬거리며 내 말에 대답했다.
그냥 한번 찔러본 거다. 포수 놈이 내 말에 흔들리면 좋고, 투수에게 가서 내가 한 말을 전해주면 더더욱 좋고.
팔꿈치 각도를 좁히라는 것도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그런 이야기다. 저놈 팔꿈치가 붙었는지 떨어졌는지 내가 알게 뭐람.
그냥 저놈이 공을 던질 때마다 팔꿈치에 신경을 쓰게 만들고 싶을 뿐이다.
“볼.”
“볼.”
학습 능력이 있는 놈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직감이 좋은 타입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리 첫 타석에서 홈런을 허용했다고 해도 이후 다른 타자들을 상대로 그렇게 삼진을 뽑아냈으면 자신감이 차오를 법도 하건만.
입술을 굳게 다문 다나카 야마토는 존 끝에서 공 반 개 정도 빠지는 코스로 계속 공을 넣었다 뺐다 하며 나를 유혹하려 했다.
“볼.”
존을 거의 스치듯 들어오는 공이 계속 나를 유혹한다.
KBO에서 그동안 상대해온 에이스급 투수들, 그러니까 류한결이나 임준영, 혹은 용병 투수들에 비해서도 명백하게 반 수 이상 앞서는 공이다.
특히나 제구력 면에서는 더더욱.
오랜만에 빅리그 수준에 어울리는 공을 상대하려 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조금만, 조금만 더 존 안으로 들어와라. 박살을 내버릴 테니까.
“볼.”
하지만 다나카 야마토는 결국 나를 상대로 단 하나의 스트라이크도 던지지 않았다.
내 뒤타자인 이수영이 오늘 첫 타석에서 어이없는 헛스윙 세 번으로 삼진을 당한 걸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수혁아, 잘했다.”
“감사합니다, 코치님.”
1루 주루 코치에게 장갑과 보호대를 넘기며 도루 사인을 전달했다.
코치가 순간 멈칫하는 것을 보니 조금 무모한 시도라고 여기는 것 같다.
하긴 일본 투수들의 주자 견제 능력과 포수의 어깨 등을 종합한 도루 억제 능력은 KBO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아무리 첫 타석에 삼진을 당했다 해도 이수영에게 한 방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그냥 타자에게 맡겨 두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 뜻을 담은 코치의 사인이 덕아웃으로 전달되었다. 하지만 정윤석 감독은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승낙 사인을 내렸다.
아무래도 정윤석 감독이 내 뜻을 알아차린 것 같다.
앞으로 최소 2이닝, 그리고 일본과 한국이 2라운드에 진출한다고 가정할 때 또다시 만나게 될 확률이 높은 일본팀의 에이스 다나카.
지금 여기서 저놈의 페이스를 흔들어 놓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어려울 거라는 걸 말이다.
평소보다 조금 넓게, 반 보, 아니, 반의반 보.
내 리드폭이 신경을 건드렸는지 다카나의 안색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조금만 더, 반의반 보 전진.
야구라는 게 웃기다. 눈에 계측기 같은 게 달려 있는 것도 아닌데 상대 선수의 작은 움직임, 사소한 변화 같은 게 직감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 다나카와 나 사이의 신경전이 바로 그랬다.
나는 저놈의 투구폼에서 빈틈을 찾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다나카는 내 리드폭과 하체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견제 타이밍을 만들어낸다.
“세이프!”
그렇게 몇 번의 견제와 신경전이 끝났다.
내 리드폭은 이미 정상 수준으로 돌아와 있는 상태.
지금 홈플레이트 뒤에 앉아 있는 일본 포수의 시즌 도루 저지율이 43%에 달하는 걸 감안하면 놈은 초구에 내가 뛸 확률을 그리 높게 잡고 있지 않을 것이다.
설사 뛰더라도 런앤히트 같은 작전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이 바로 뛰어야 할 타이밍이다.
투수가 세트 포지션을 취하는 바로 그 순간, 주자의 움직임을 눈치챘음에도 움직일 수 없는, 보크를 유도할 수 있는 바로 그 타이밍.
타닷
“칙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