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15)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14화(115/412)
#114. 금방 끝내겠습니다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 그리고 한국프로야구, 이 세 리그 간의 수준 차이는 어느 정도 될까?
일단 KBO의 평균 선수 수준은 더블A 상급 정도, 최고 레벨 선수인 경우 트리플A를 넘어 빅리그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일본 리그의 경우 평균 선수 수준은 대략 트리플A 상급 정도이며, 최고 레벨 선수들의 수준은 빅리그 하급을 넘어서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쉽게 말해서 일본 리그에서 최상급 레벨에 있는 선수들은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해도 최소 자기 몫은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건 야수와 투수 모두를 종합한 결과물이다.
지표를 좀 더 자세히 뜯어 보면 타자보다는 투수 쪽이 좀 더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특히나 일본 투수들이 높은 점수를 받는 부분이 바로 제구력과 주자 견제 능력, 그리고 수비 능력이다. 반면 구속과 구위, 내구성과 같은 부분에서는 조금 낮은 평가를 받고 말이다.
“2루!”
그런 일본 투수들 중에서도 특출난, 어쩌면 빅리그에서도 최상급일지도 모를 다나카 야마토의 견제 능력과 지금 당장 빅리그에서 뛰어도 부족함이 없는 일본 포수의 어깨를 감안하면 한수혁의 도루 시도는 조금 무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이프!”
“이게 세이프라고요?”
“세이프 맞아.”
“제길!”
간발의 차로 주자를 잡아내는 데 실패한 일본의 2루수가 글러브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사실 현대 야구에서 도루의 가치는 점점 더 떨어지는 중이다.
세이버매트리션들은 도루 성공에 따른 기대 득점은 +0.156에 불과한 반면, 실패 시에는 -0.501에 달한다며 이를 근거로 도루 무용론을 주장하고 있다.
산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다. 거기에 도루를 시도하다 부상을 입을 수도 있기에 사실 손익만 놓고 보면 피해야 할 플레이가 맞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도루를 시도한 이유는 단 하나.
나를 제외한 한국타자들을 쥐 잡듯이 잡고 있는 다나카의 멘탈을 흔들기 위해서다.
오늘 경기에서 단 한 점도 주지 않겠다고 입을 털었던 다나카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가뿐히 이기리라 생각했던 한국팀, 이제 고작 데뷔 1년 차에 불과한 신인에게 홈런을 맞고, 이번에는 도루까지 허용하다니.
이번 시즌이 끝난 후 컵스와 장기 계약을 노리고 있는, 혹은 우승을 노리는 팀으로 이적을 희망하고 있는 저놈 입장에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전개일 것이다.
“침착하게 해, 다나카. 내 말 들려? 아직 1점밖에 안 줬다고.”
“젠장… 알아. 미안해.”
이제는 조금 퇴색되었지만 흔히 일본의 기술자들, 운동선수들을 표현할 때 정밀기계라는 표현을 자주 쓰곤 한다.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는 저놈들의 장점이자 약점이 바로 그 정밀함이다.
한번 오류를 일으키면 그 원인을 찾기 힘들어지는 정밀기계.
내 홈런과 도루에 프로그램 오류가 발생한 다나카의 손끝에서 평소보다 조금 구위가 떨어지는 포심이 발사되었다.
브레이킹 볼에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빠른 공에는 나름 장점이 있는 이수영이 그 공을 놓치지 않고 받아쳤다.
따악!
배트 중심에 제대로 맞지는 않았지만 이수영의 강한 손목 힘 덕에 타구가 내야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꺄아아악!”
“와아아아!”
타격음과 함께 곧바로 스타트를 끊었다.
2루수 키를 넘은 타구가 우익수 바로 앞에 원바운드로 떨어진다.
일본에서 가장 어깨가 좋다고 알려진 우익수가 공을 잡자마자 홈으로 송구하는 모션을 취했다.
“멈춰!”
3루 베이스 코치에게서 멈추라는 사인이 떨어졌다.
하지만 내 직감은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다시 이런 기회가 올까? 글쎄,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오늘 한국 대표팀의 뒷문 사정을 생각하면 6회가 오기 전 한 점이라도 더 뽑아 둬야 한다.
“한수혁!”
“으아아! 안 돼!”
내가 정지 사인을 무시하고 3루를 돌아 홈으로 뛰어들자 우리 덕아웃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시티필드에 모인 한국과 일본 관객들, 그리고 스카우터들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터억
3루 코치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내가 홈플레이트에 도착하기 전 이미 송구를 받은 포수가 허리를 숙인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했던 바다. 허리를 깊게 숙이고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자세를 취하려 하자 포수의 자세가 더욱 낮아진다.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었다.
타악
“헉!”
“뭐야! 저게 뭐야”
포수의 낮은 자세를 유도한 나는 곧바로 그 자리에서 점프하며 마치 덤블링을 하듯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아 홈플레이트 위에 내려섰다.
순간 시티필드가 정적에 휩싸였다.
“세이프!”
그 침묵은 심판의 세이프 콜이 나온 후에야 비로소 해소되었다.
“우아아아!”
“미친! 진짜 미친!”
“수혁아! 이 미친놈아!”
“이리 와! 이리 오라고!”
오랜만에 해보는 플레이다. 내 신체적 능력과 자신감이 극에 달했던 때나 가능했던 그런 플레이.
성공보다는 실패 확률이 높은 그 플레이를 나는 과감히 시도했고, 다행히 행운의 여신은 내 편을 들어주었다.
재미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빅리그 레벨의 선수들과 경기를 하는 긴장감이 내 몸 속 아드레날린을 마구 뿜어내게 만든다.
물론 당하는 쪽 입장에서는 지옥 같겠지만 말이다.
“다나카! 정신 차리라니까! 괜찮아? 이봐! 이거 안 되겠는데?”
* * *
“이봐, 다니엘. 자네 팀에서 저 친구에게 350만 달러를 제안했다고?”
“그랬지…….”
“흐흐, 나중에 저 친구를 데려오려면 거기에 0 하나를 더 붙여야 할 수도 있겠군.”
“…….”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이번 WBC에서 한수혁이 주목을 받을 거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이건 그의 예상을 훌쩍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상대 투수가 컵스의 2선발이다. 우승을 노리는 팀에 가도 최소 3선발 안에는 들어갈 빅리그 정상급 투수다.
그런 선수를 상대로 2타석에서 홈런과 도루, 거기에 묘기 같은 홈 덤블링까지.
공격뿐만이 아니다. 지난 중국전과 호주전, 그리고 일본전에서 한수혁이 보여준 완벽한 유격수 수비가 빅리거 스카우터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야구 플레이 분석을 위해 군사용 위성에나 적용되던 각종 첨단기술이 사용되는 시대다.
올 시즌 한수혁이 KBO에서 뛴 모든 기록들이 철저히 수치화 되어 빅리그 각 구단에 전달되었다.
하지만 하위리그의 기록일 뿐이라 쉽게 단정지었다. 유격수 수비 지표는 특히 그랬다.
빅리그에 비해 KBO의 수준이 가장 떨어진다 평가받는 게 바로 수비력이다.
그 속에서 아무리 좋은 수치를 기록해봤자 리그 수준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생각했다. 설사 나중에 빅리그에 진출하더라도 유격수는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잘해야 3루수, 높은 확률로 외야수.
공격력이 같다고 가정할 때 유격수와 외야수 간의 몸값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
그런데 오늘 빅리그의 스카우터들은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편견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한 한수혁은 동양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피지컬에 신인이라고 볼 수 없는 판단력, 거기에 그라운드를 지배하는 포스까지 갖춘, 그야말로 야구를 하기 위해 태어난 생명체 같은 존재였다.
다니엘이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계약금으로 최소 500만 달러는 준비해야 한다던 자신을 가당찮은 눈빛으로 쏘아보던 단장 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젠장… 그러니까 내가 쓸 때는 확실히 쓰자고 그렇게 얘기를 했건만, 망할 놈 같으니.”
* * *
한수혁의 홈런, 그리고 다음 타석 도루와 이수영의 적시타로 2 대 1 한 점 차 리드를 하게 된 대한민국 대표팀.
일본에게는 질 수 없다는 의지, 그리고 오늘 경기를 빅리그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겠다는 각오로 버티던 류한결이 4회말까지 단 한 점만 내준 후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아직 던질 여력은 충분했지만 1라운드 최대 65개라는 투구 수 제한이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류한결이 물러난 대한민국 마운드에 광주의 양지호가 올라왔다.
한때 류한결과 임준영, 최경재와 함께 대한민국 대표팀 마운드의 BIG4로 꼽혔던 선수.
하지만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이제는 선발이 아닌 중간계투로 투입된 베테랑 투수.
다행히도 오늘은 양지호가 긁히는 날이었다. 매 이닝 안타와 볼넷을 허용하면서도 양지호는 끝까지 버텼다.
5회 세 타자, 그리고 6회 두 타자, 1과 3분의 2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양지호가 마운드를 내려왔다. 짧은 시간 전력을 다해 55개의 공을 던진 양지호의 눈에는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여전히 스코어는 2 대 1, 한국의 한 점 차 리드. 6회초 투 아웃 상황에 마운드에 오른 건 인천 레인저스의 젊은 중간계투 김용재였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인 임준영의 격려를 받으며 마운드에 오른 김용재는 그야말로 젖 먹던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
현재로서는 남아 있는 투수 중 가장 구위가 좋은 김용재였다. 하지만 막판 반격에 나선 일본 타자들의 힘은 그 이상이었다.
6회초 마지막 타자를 간신히 잡아내기는 했지만, 7회초가 시작되자마자 문제에 봉착했다.
따악!
따아악!
KBO에서는 쉽게 쳐내기 힘든 강속구라 평가받았던 152㎞/h 포심은 일본 타자들에게는 딱 치기 좋은 먹이 감이었다.
일본이 자랑하는 1, 2번 테이블 세터가 연속 안타로 출루했다.
순식간에 무사 1, 3루가 만들어졌다. 누가 봐도 더 이상 김용재를 고집하는 건 무리인 상황.
“어떻게 해…….”
“아… 우리 이제 던질 투수가…….”
이번 대표팀의 투수 넘버 포인 류한결과 임준영, 구철중, 최경재가 선발로 빠지고, 최강의 셋업과 마무리인 박도율과 이하영이 투구 수 제한에 걸려 등판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국제 경기 경험이 풍부한 양지호가 2이닝을 막아 내기는 했지만, 그 다음으로 올라온 김용재는 결국 자신의 몫을 해내지 못했다.
물론 투수 자체는 남아 있었다. 하지만 7회초 한 점 차 리드 상황, 그것도 무사 주자 1, 3루 상황을 틀어막을 카드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김 코치, 이번에는 내가 직접 마운드에 올라가야겠어.”
“아, 네, 감독님. 그럼 불펜에는 뭐라고 전화를…….”
“됐어. 내가 알아서 하지. 일단 기다리게.”
“네?”
그라운드 안에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 덕아웃에 스며들고 있는 불길한 예감.
그 모든 기운들을 느끼면서도 담담한 표정으로 중심을 잡고 있던 정윤석 감독이 마침내 몸을 일으켜 마운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타임!”
감독이 직접 마운드로 올라오자 벌겋게 달아올라 있던 투수 김용재의 표정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더욱 검붉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투수를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기 위해 마운드로 몰려온 야수들이 그런 김용재를 격려한다.
“괜찮아, 인마. 아직 우리가 이기고 있어.”
“형들이 뒷일은 알아서 할 테니까 아무 생각 말고 들어가서 머리나 식혀.”
“그래, 다음 경기에도 던져야 할 거 아냐, 김용재! 정신 안 차릴래?”
“…….”
어떤 위로도, 격려도, 그리고 호통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기가 모든 걸 망쳐버렸다는 좌절감이 김용재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윤석 감독이 마운드에 도착했다.
“용재야, 수고했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괜찮아. 원래 투수는 맞으면서 크는 거야. 오늘 일은 이제 잊어버리고 다음 경기 준비하고.”
“죄송합니다. 정말…….”
들고 있던 공을 감독에게 넘긴 김용재가 터덜터덜 덕아웃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상 첫 국제대회, 그것도 한일전에서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강판당하는 젊은 투수의 어깨는 마치 사형장에 끌려가는 죄수의 그것처럼 축 쳐져 있었다.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정윤석이 시선을 한수혁에게로 돌렸다.
“수혁아.”
“네, 감독님.”
“웬만하면 이런 순간이 오지 않았으면 했는데 미안하구나. 완벽하게 준비가 된 상태에서 올리고 싶었는데.”
“괜찮습니다. 전 이닝에 공격 끝내고 충분히 몸은 풀어 뒀습니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마워.”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던 선수들이 하나둘 입을 쩍 벌리며 물었다.
“수혁아, 아니, 감독님. 그럼 설마…….”
“그래, 수혁아. 남은 이닝 부탁한다.”
“문제없습니다. 금방 끝내고 들어가겠습니다.”
* * *
– 아… 위원님, 정말 안타깝습니다. 7회 마운드에 올라오자마자 연속 안타를 허용한 김용재 선수가 결국 눈물을 터뜨리며 마운드에서 내려옵니다.
– 젊은 투수들 중에서 특히 구위가 좋은, 인천에서 임준영 선수의 뒤를 이을 차세대 에이스로 키우고 있는 선수인데 일본의 벽이 너무 높았습니다. 괜찮습니다. 울 것 없어요!
– 위원님, 이렇게 되면 한 점 차 무사 주자 1, 3루 상황에서 구원투수가 올라와야 하네요. 누가 올라오게 될까요?
– 지금 던질 수 있는 투수가… 일단은 인천 레인저스의 마무리 권길용 선수가 올라올 것 같습니다. 구위는 조금 떨어지지만 아무래도 경험면에서…….
– 네, 권길용 투수 올 시즌 성적이… 어, 저게 뭔가요? 위원님, 급하게 달려온 코치가 한수혁 선수에게 새 글러브를 내밉니다. 글러브가 손상된 걸까요, 위원님?
– 맙소사!
– 왜요? 저도 좀 알려주십쇼! 혼자서만 놀라지 마시고요!
– 투수 글러브네요!
– 네에?
– 이런 젠장, 아니, 맙소사, 한수혁 선수가 투수용 글러브로 갈아끼고 마운드에 오르고 있습니다
– 그게 무슨… 오마이갓! 정말이군요. 유격수를 보던 한수혁 선수가 투수로, 그리고 비어 버린 유격수 자리에는 안태규 선수가 투입됩니다!
– 아… 잊고 있었네요. 정말 잊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한수혁 선수가 있었다는 걸!
– 그렇군요! 올스타전에서의 등판이 결국 오늘을 위해서였군요, 위원님!
– 네, 사실 한수혁 선수의 투수 등판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나오더라도 최대한 부담 없는 상황에서 제한적인 등판이 이루어질 거라 예상되었는데… 맙소사, 이런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서 첫 등판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 아, 보고 있는 제 가슴이 다 떨립니다. 위원님,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까요?
– 글쎄요, 제가 신이 아닌 이상 결과까지 어떻게 예측하겠습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기억하지 않습니까? 지난 매지션스전, 그리고 올스타 전에서 한수혁 선수가 보여준 투구를 말이죠.
– 네, 그렇군요. 국민 여러분, 그 어느 때보다 여러분들의 응원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무사 1, 3루 상황에서 등판한 한수혁 선수가 드디어 연습 투구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