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18)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17화(118/412)
#117. 8강전
“오늘 이런 경기 전개를 예상했냐고 물으셨죠? 오프더레코드를 약속하신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그래요. 고맙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 정도일 거라고는 예상 못 했습니다. 그 녀석이 엄청나게 빠른 공을 던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야구판에 있던 사람이라면 다들 알잖습니까? 빠른 공을 던지는 것과 경기에서 잘 던진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말이죠.”
정윤석 감독의 요청에 녹음기를 끈 중년의 기자가 되물었다.
“그럼 어떻게 그런 위기 상황에 한수혁을 올릴 생각을 하신 건가요, 감독님?”
“제자 놈의 말이 떠올라서였습니다.”
“제자라면…….”
“대준이 말입니다.”
“아, 이대준 감독이 뭐라고 했었나요?”
“팀에 위기가 왔을 때 그 키를 쥐고 있는 게 한수혁이라면 그냥 음료수나 마시면서 느긋하게 지켜보라고 하더군요. 녀석이 다 알아서 해줄 거라고요. 허허.”
“네에?”
“사실 그 상황에서는 누구를 올려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도율이나 하영이가 등판 가능했다고 해도 최소 동점, 높은 확률로 역전을 당할 거라는 게 제 판단이었거든요.”
“음…….”
“그래서 그냥 수혁이를 올렸습니다. 정상적인 경기 진행으로는 어차피 수습이 불가능한 상황이니만큼 기적을 바랐던 거죠. 그런데 그 기적이 정말로 일어나더군요.”
“…대단하군요.”
“기사로는 내지 말아줘요. 아무리 그래도 국가대표팀 감독이 기적을 바라고 선수 기용을 했다고 하면, 허허……”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기사 작성용으로 마지막 질문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남은 경기에서 한수혁 선수가 또 투수로 등판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기자의 질문에 정윤석이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하지만 절대 무리는 시키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한국 야구를 위해 해줘야 할 게 많은 녀석이거든요. 아마도 제가 이번 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된 건 그놈을 보호하기 위한, 맞아요. 운명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 * *
[한국대표팀, 일본을 2:1로 제압하며 3연승, 8강 진출 사실상 확정] [한국팀에 불의의 일격 당한 일본, 남은 호주전과 중국전 모두 이겨야 2라운드 진출 가능] [7회초 무사 주자 1, 3루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등판한 한수혁, 팀을 수렁에서 건져내다] [3이닝 8K 압도적인 피칭, 일본을 힘으로 눌러버리다] [결정적 찬스에서 삼진 당한 일본 간판타자 에토 이오리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악몽”] [최고 구속 168㎞/h 포심, 투심, 체인지업, 그리고 95㎞/h 초 슬로 커브, 말도 안 되는 조합] [일본 대표팀 호시노 감독 “경기 전 했던 이야기에 대해 사과한다. 그는 내가 평가할 수 없는 선수다”] [뉴욕 연고 팀 스카우터 “저 선수에게 시애틀이 얼마를 제안했다고? 3,500만? 뭐? 350만이라고? 그놈들 미친 건가?”] [ESPN을 통해 미 전역으로 중계된 한일전, 한수혁의 투구를 처음 본 미국 팬들 큰 충격]└이봐, 혹시 누가 샷건 한 자루만 빌려줄 친구 없을까?
└워워, 무슨 일인지 몰라도 진정해. 샷건은 뭐 하게?
└시애틀 단장 놈의 몸통 위에 붙어 있는 쓸모 없는 걸 없애 버려야 할 것 같아서
└흠, 그건 나도 솔깃하군. 좋아, 내게 샷건 한 자루가 있어. 날짜를 잡아보자고
└젠장, 저런 녀석한테 겨우 350만 달러를 제안했다가 차였다고? 전반기에 겨우 2경기밖에 못 던진 퇴물에게 연간 2천만 달러짜리 계약을 안겨줘 놓고서?
└팀에 드글거리는 식충이들 다 내보내고 저 친구에게 그 돈을 주란 말이야! 당장 데려오라고!
└너희들이 뭔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저 친구 이제 1년 차야. 해외 진출하려면 최소 7시즌은 KBO에서 뛰어야 한다고
└KBO에서 일본하고 비슷한 포스팅 시스템 도입을 검토 중이라던데? 그럼 희망이 있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다들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뭔데?
└양키스 놈들하고 다저스 놈들이 냄새를 맡았어. 우리가 돈 싸움에서 그놈들을 이길 수 있을까?
└제길… 멍청한 시애틀 놈들!
한수혁이 일본 팀의 타자들을 연거푸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모습이 ESPN을 통해 미국 전역으로 생중계되었다.
중단된 리그, 휴식일을 맞은 미국 대표팀.
야구에 목 말라 있던 미국 국민들 수백만 명이 TV를 통해 한일전을 시청했다.
그리고 보았다.
무사 주자 1, 3루 상황에 등판해 순식간에 위기를 해결한 어떤 투수를.
자신에게 주어진 3이닝을 완벽하게 삭제시켜버린 괴물을.
가장 난리가 난 건 그런 한수혁을 놓친 시애틀 매리너스였다.
“네, 시애틀 매리너스 홍보팀 제이슨…….”
– 멍청한 자식들 죽어버려!
“뭐라고요? 당신 누구입니까?”
– 연봉의 절반을 야구 티켓 값으로 날리는 멍청이다. 이 새끼야! 죽어! 돈 몇 푼 아끼겠다고 저런 선수를 데려올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며? 그냥 뒈지라고!
한수혁의 충격적인 투수 데뷔로 인해 온 사방에서 난리가 난 가운데 WBC 1라운드는 계속되었다.
2조에 속한 다섯 개 국가의 대회 3일 차까지의 성적을 살펴보면 대한민국이 3승, 호주가 2승 1패, 일본 1승 1패, 중국과 대만이 각각 2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중국과 대만의 탈락은 확정적이고, 호주와 일본이 2위 자리를 놓고 경합하게 되었다.
일본이 중국을 이긴다고 가정하면 두 팀이 나란히 2승 1패인 상태에서 마지막 날 격돌하게 된다.
반면 이미 3승을 거둔 한국은 남은 대만전에서 져 3승 1패가 되더라도 2라운드 진출이 확정적이다. 승자승 원칙이 적용되는 상황에서 일본과 호주를 이미 꺾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4일 차 경기가 시작되었다.
1라운드 진출을 확정 지은 한국은 예정대로 대만전에 최경재를 선발로 올렸고, 몇몇 선수들에게 휴식을 부여했다.
1번 중견수 양선우(서울 매지션스)
2번 유격수 안태규(수원 커맨더스)
3번 1루수 강태용(수원 커맨더스)
4번 지명타자 고철환(서울 매지션스)
5번 3루수 민주현(인천 레인저스)
6번 좌익수 최연우(수원 커맨더스)
7번 포수 장덕수(서울 워리어스)
8번 2루수 김세준(대전 팔콘스)
9번 우익수 강우찬(인천 레인저스)
주전 선수 중에서 이찬호와 한수혁, 이수영, 김성수, 이태웅, 정대한 등 6명이 빠졌다.
대회 시작 전만 해도 8강 진출을 자신하던 대만은 호주와 일본에 연패를 당하며 완전히 기가 죽어 있는 상태였다.
반면 한수혁의 기적 같은 피칭으로 일본을 꺾은 한국 대표팀의 사기는 끝도 없이 올라간 상태였다.
그런 두 팀의 분위기는 경기 결과에 그대로 나타났다.
[한국 대표팀, 대만을 13 대 1로 대파하고 4전 전승으로 8강전 진출] [5이닝 무실점 호투한 최경재 “수혁이와 조금 더 친해지고 싶다” 무슨 뜻?] [선발 라인업에서 빠진 한수혁, 3:1로 앞서던 5회 대타로 나와 만루 홈런 쾅!] [4경기 6홈런, 거기에 3이닝 무실점, 한수혁의 대활약에 국내 야구팬들도 활짝]└존나 개시원하더라;;;
└한수혁이 우리 편이니까 이렇게 마음이 편할 줄이야
└상대팀으로 만날 때는 진짜 개좆같더니 ㅋㅋㅋ
└한수혁한테 만루홈런 맞은 놈, 저거 경기 전에 입 털던 그놈이지?
└ㅇㅇ 다른 팀에는 다 져도 한국에는 자신 있다던 그놈임
└그놈 터뜨리려고 일부러 대타로 나간 건가?
└에이, 설마… 굳이?
└한수혁, 쟤 은근히 누가 자기 상대로 입 터는 거 못 봐주는 성격임
└ㅋㅋㅋ 그건 인정
└하아… 그나저나 니들 지금 좋아할 때가 아니다. 워리어스 지금도 좆같은데 하반기에는 거기에 한수혁까지 투수 등판한다는 거임
└WBC 끝날 때까지는 그냥 그 생각은 하지 말자. 생각만 해도 짜증 나니까
* * *
“어때요, 제이콥. 괜찮죠?”
“흠… 일단 오늘 내일까지 휴식을 취한다고 생각하면… 그래, 일단은 괜찮을 거 같군.”
“거 보라니까요. 너무 걱정이 많다니까. 아무튼 더 이상은 제이콥 없어도 될 것 같으니 한국으로 돌아가요. 애니가 기다릴 거예요.”
“아니, 괜찮아. 미세스 킴하고 한 시간 간격으로 전화해서 체크하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실전 투구 후에 신체 변화를 체크하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는데 가긴 어디를 가.”
일본전 세이브로 인해 일부 언론에서 나를 대표팀 주전 마무리로 활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50개 이상의 공만 던지지 않으면 이틀 간격으로 계속 등판이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그런 여론을 접한 것일까.
제이콥의 얼굴에는 내 기용 방식에 대한 불안감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젠장, 한국 감독이 너를 막 굴리는 건 아닐지 걱정이 드는군.”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한 거겠지.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일본전이 끝난 후 정윤석 감독이 내게 이렇게 얘기했으니까.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오지 않는 이상 자네가 또 그런 식으로 등판하는 일은 없을 거야.’
모르겠다. 이대준도 그렇고, 내게 감독 복이 있는 걸까.
4일 차 대만전 승리를 끝으로 1라운드 일정을 모두 마친 한국 대표팀은 경기가 없는 5일 차에는 아예 훈련조차 생략한 채 숙소에 머물며 휴식을 취했다.
본선 1라운드 마지막 날 경기에서 대만은 숙적 중국을 5 대 3으로 제압하며 최종 성적 1승 3패를 기록했다.
반면 빅리거들을 귀화시키면서까지 이번 대회 총력을 다했던 중국은 한국과 일본에 콜드게임을 당한 데 이어 대만에까지 패하며 4전 전패로 쓸쓸한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8강전 마지막 자리를 놓고 펼쳐진 일본과 호주의 경기는 예상대로 팽팽하게 흘러 갔다.
양팀 합계 10명의 투수가 투입된 그야말로 총력전, 최후의 승자는 일본이었다.
[사무라이 재팬, 호주에 7 대 6 역전승 거두며 조 2위로 2라운드 진출] [호시노 감독 “8강전에서 반드시 이겨 전 대회 우승팀의 자존심 지킬 것”] [1조 네덜란드, 쿠바, 2조 대한민국, 일본, 3조 미국, 멕시코, 4조 베네수엘라, 푸에르토리코 8강 진출]8강 대진표가 확정되었다.
1조 1위 네덜란드와 2조 2위 일본.
1조 2위 쿠바와 2조 1위 대한민국.
3조 1위 미국과 4조 2위 푸에르토리코.
3조 2위 멕시코와 4조 1위 베네수엘라.
오랜만에 국제대회에서 쿠바와 맞붙게 되었다.
아마추어 야구에서는 최강자라 불리지만 그 선수들 중 상당수가 미국으로 망명을 택하며 프로선수들이 출전하는 대회에서는 크게 힘을 쓰지 못했던 쿠바다.
하지만 2023년부터 망명한 선수들의 대표팀 합류를 허용하면서 다시 4강권에 이름을 오르내리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쿠바 망명 선수라면 대표팀 소집에 불응했을 것 같다.
기껏 망명했는데 대표팀 캠프에 들어갔다가 체포라도 당하면…….
음, 일단 쿠바 선수들에 대해 하나는 인정해 줘야겠다.
보통 배짱들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네덜란드가 좀 더 쉬웠을 거 같은데…….”
“저놈들 상대하다 보면 이상하게 힘에서 밀린단 말이지.”
김성수를 비롯해 대표팀 경력이 오래된 선수들이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 대표팀의 역대 쿠바전 성적은 4승 9패.
2008년 올림픽 결승전에서의 승리가 너무 강렬해서 그렇지, 사실 쿠바와 만나서 좋은 꼴을 본 적이 별로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쿠바라는 팀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빠르고 강하다.
타고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약간은 거칠게 느껴지는 그런 야구를 구사한다. 어쩌면 아시아권에서는 우리와 약간 비슷한 스타일, 그렇기에 한국이 상대하기에는 조금 벅찼을지도 모른다.
“수혁아, 오늘은 다시 3번 유격수다. 괜찮겠지?”
“네, 코치님.”
“좋아.”
일본전 마무리 투수로 등판한 이후 대만전 대타로 한 타석, 그리고 다음 날과 그 다음 날 이틀 연속으로 휴식을 취한 나는 쿠바와의 8강전에 유격수 겸 3번 타자로 나서게 되었다.
1번 타자 중견수 이찬호(서울 파이터즈)
2번 타자 우익수 강우찬(인천 레인저스)
3번 타자 유격수 한수혁(서울 워리어스)
4번 타자 1루수 이수영(대구 버팔로스)
5번 타자 지명타자 고철환(서울 매지션스)
6번 타자 좌익수 김성수(서울 매지션스)
7번 타자 2루수 이태웅(대구 버팔로스)
8번 타자 포수 정대한(수원 커맨더스)
9번 타자 3루수 김세준(대전 팔콘스)
선발투수 임준영(대전 팔콘스)
쿠바전 선발투수로 구철중과 임준영을 놓고 고민하던 정윤석 감독은 결국 임준영 카드를 선택했다. 구철중의 경우 중간계투나 마무리로도 활용이 가능하기에 내려진 판단이었다.
한편 쿠바의 선발 투수는 에밀리오 카스트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에이스로 활약 중인 명실상부한 빅리그 정상급 투수 중 하나.
미국 언론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7 대 3 정도로 쿠바의 우세를 점쳤다.
그런 분위기가 전염된 것일까. 한국 대표팀 선수들, 그리고 코치들 중 일부의 표정에도 반쯤은 마음을 비운 듯한 그런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고작 이 정도 성적에 만족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투구 봉인을 풀고 마운드에 서기까지 했는데 고작 8강에 만족하라고?
화이트삭스의 에이스?
겨우 그 정도 이름에 겁을 먹기에 나는 너무 오랜 시간 야구를 해왔다.
“선배님, 오늘은 제가 다 막아드리겠습니다.”
“말만 들어도 든든하네. 그래, 수혁아. 부탁한다. 서울 가면 내가 근사한 걸로 한 턱 쏠게.”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늘 선발로 등판하게 된 임준영 선배의 얼굴에 승리에 대한 강한 욕구가 떠올라 있었다는 점이다.
8강전 경기가 준비 중인 양키 스타디움에 어둠이 내리고, 조명이 하나둘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도전이 또 한 번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