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1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18화(119/412)
#118. 누가 그를 깨웠는가
보통의 야구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경기는 어떤 경기일까?
사람마다 차이는 다소 있겠지만 호쾌한 타격전이 펼쳐지며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혹은 양팀 투수들의 호투 속에 살얼음판 같은 리드가 유지되는 그런 익사이팅한 경기를 꼽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경기를 뛰는 선수들, 그리고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경기는 심심하고 지루하게까지 느껴지는 그런 경기다.
상대팀을 일방적으로 두드려 패고, 거기에 수비에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경기. 지켜보는 관중들이 하품을 할 정도로 지루한 경기.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양키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한국과 쿠바 간의 8강전은 양팀 감독과 선수들의 심장 건강에 엄청나게 악영향을 미치는 그런 경기였다.
빠악!
“악!”
“시발! 저건 빈볼이잖아!”
“노! 뒤로 물러나, 안 그러면 퇴장이야!”
“이런 빌어먹을!”
양팀이 5 대 5로 팽팽하게 맞선 7회말 한국팀의 공격.
8번 타자로 나선 정대한의 팔꿈치 보호대 위에 155㎞/h에 달하는 강속구가 날아와 박혔다.
통증을 호소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한국팀의 주전포수.
양팀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대치했지만 감독과 코치, 심판들의 빠른 제지 덕분에 사태는 간신히 정리되었다.
“대한아, 괜찮겠어?”
“으…….”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계속 경기를 뛰는 건 무리였다.
명백한 빈볼을 던진 쿠바 투수는 퇴장당했고, 부상당한 정대한 대신 대주자가 1루에 나갔다.
“오늘 개판이네, 정말.”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했드만.”
한국팀 선발 임준영과 쿠바팀의 에이스 에밀리오 카스트로 간의 팽팽한 투수전으로 전개되던 오늘 경기는 두 투수가 나란히 마운드에서 물러난 6회부터 타격전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한국 타자들이 6회와 7회, 한수혁의 홈런을 포함한 8안타를 몰아치며 다섯 점을 내는 동안 쿠바 타자들은 한국 중간 계투진을 상대로 홈런 2방을 때려내며 순식간에 5 대 5를 만들었다.
문제는 쿠바의 7회초 공격 때 발생했다.
홈런을 맞고 패닉에 빠진 박도율이 다음 타자의 엉덩이에 커브 볼을 꽂아 넣고 말았다.
명백한 실투였다. WBC 8강전 경기에서 일부러 빈볼을 던질 만큼 박도율은 멍청하지 않았다.
박도율이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사과했지만 흥분한 타자는 1루로 걸어 나가면서 계속 욕설을 퍼부어댔다.
다행히 추가적인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다음 이닝 때, 또 한 번의 불씨가 타올랐다.
박도율에게서 마운드를 물려받은 이하영의 고속 슬라이더가 쿠바 타자의 몸쪽 가까이 붙었다.
깜짝 놀란 타자가 뒤로 물러섰지만 그 공이 휙 꺾이며 존 안으로 파고들어 스트라이크 선언이 내려졌다.
쿠바 타자가 주심에게 항의했고, 급기야 포수인 정대한과의 언쟁으로 번졌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공수가 교대되자마자 쿠바 팀 투수가 정대한을 향해 빈볼을 던졌고, 결국 한국팀은 주전포수를 잃고 말았다.
“아웃!’
“아웃!”
주전포수를 잃으며 만들어진 7회말 한국팀의 득점 기회는 다음 타자인 김세준의 병살타로 인해 아무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
덕아웃에서 장덕수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포수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덕수야, 사인은 벤치에서 나갈 테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야.”
“저놈들이 또 도발해도 넘어가면 안 돼. 포수가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알겠슈. 걱정 말아유.”
“좋아.”
배터리가 한꺼번에 교체되었다.
거듭되는 빈볼 사태로 흥분한 기색이 다분한 이하영이 물러나고 백전노장 구철중이 마운드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부상당한 정대한을 대신해 장덕수가 포수 마스크를 끼게 되었다.
“아웃!”
“아웃!”
“아웃!”
타자 쪽에서 가장 국제대회 경험이 많은 게 김성수라면 투수 중에서는 단연 구철중이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오랜 시간 한국 대표팀의 마운드를 지켰던 구철중은 쿠바 타자들의 거친 행동과 도발적인 몸짓, 그리고 난생 처음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게 된 백업 포수의 부족함을 모두 커버하며 8회초를 무사히 막아냈다.
그리고 이어진 8회말, 한국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여전히 스코어는 5 대 5로 변함없는 상황. 쿠바 마운드에는 마티아스 로페즈라는 새로운 얼굴이 올라왔다.
따악!
오늘 안타가 없었던 1번 타자 이찬호가 깨끗한 우전 안타를 치며 1루에 나갔다.
그 한 방에 투수의 안색이 벌겋게 달아오르자 홈플레이트 뒤에 앉아 있던 포수가 타임을 요청한 후 마운드로 올라갔다.
“이봐, 마티아스.”
“젠장, 왜 올라온 건데? 그래 봐야 안타 하나 맞은 게 다잖아.”
“내 말이 바로 그거야. 고작 안타 하나 맞은 게 전부인데 왜 표정이 그런데?”
뉴욕 메츠의 주전포수로서 벌써 10년 넘게 포수 미트를 끼고 있는 호르헤는 눈앞에 있는 애송이 투수의 속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미국으로 망명해 큰돈을 벌고 있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마티아스 로페즈라는 이름을 가진 이 덩치 큰 애송이는 아직 쿠바 리그에서 뛰고 있다.
오늘 그의 목적은 단 하나, 멋진 모습을 보여 빅리그 스카우터들의 눈에 드는 것. 그래서 다른 선수들처럼 화려하게 빅리그에 입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등판하자마자 첫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으니 속이 타들어갈 것이다.
일단은 진정시켜야 한다. 호르헤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투수에게 말했다.
“천천히 해, 천천히. 급할 것 없다고. 겨우 주자가 한 명 나갔을 뿐이야. 야구를 하다 보면…….”
“젠장, 알았다고. 잔소리는 너희 집에 가서나 하라고.”
마티아스의 성급한 태도에 울컥한 호르헤가 대화를 중단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저 따위 멘탈로는 아무리 좋은 공을 던져도 빅리그는 힘들 거라는 저주 섞인 말을 중얼거리며.
“플레이!”
그렇게 경기가 다시 재개되었다.
무사 주자 1루 상황. 타석에 들어선 2번 강우찬이 보내기 번트 자세를 취했다.
‘그냥 대줘. 번트 대게 해주라고.’
‘싫은데.’
‘더 이상 내 말을 무시하면 투수 교체를 요청할 거야. 내 말에 따라.’
‘젠장, 빌어먹을.’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를 보내기 싫은 투수가 계속 고개를 흔들었지만 결국 포수가 이겼다. 그의 말처럼 덕아웃에 앉은 감독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보내기 번트를 대주기로 한 마티아스가 타자의 바깥쪽을 향해 공을 던졌다.
바로 그때, 한국팀의 벤치가 움직였다.
탓
투수가 공을 던지는 동시에 1루 주자가 스타트를 끊었다. 당황한 마티아스의 제구력이 흔들렸고, 바깥쪽으로 빼려던 공이 가운데로 몰렸다.
따악!
번트 자세를 취하던 강우찬이 빠르게 타격 자세로 돌아와 그 공을 때려냈다.
쿠바의 허를 찌르는 런 앤 히트 작전.
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너무 잘 맞아 유격수 정면으로 가는 타구. 그리고 그 곳을 지키고 있는 건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주전 유격수인 하비에르 카스티요.
모두의 머릿속에 병살타라는 단어가 떠오르던 그때.
툭
“어어!”
올 시즌 전반기 정규 시즌에서 실책이 단 한 개에 불과했던 A급 유격수가 그만 그 타구를 놓치고 말았다.
투 아웃에 주자가 모두 사라졌어야 할 상황이 무사 주자 1, 2루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마티아스의 얼굴색이 이제 벌겋다 못해 검붉게 변해버렸다.
그리고 타석에는 한수혁이 등장했다.
앞선 타석에서 석 점짜리 홈런을 때려낸 상대 팀의 3번 타자.
타석에 선 녀석이 거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본다.
너무나도 자신감 넘치는, 거기에 마치 자신을 깔보는 듯한 그 표정에 마티아스의 머리가 홱 돌아버리고 말았다.
‘이런 미친 옐로 몽키 놈들이…….’
이런 상황을 만든 팀 동료들의 멍청함, 그리고 한국팀 타자들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빅리그 진출에 대한 꿈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타오르는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더 이상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진 마티아스는 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그가 던질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공, 160㎞/h에 달하는 포심이 한수혁을 향해 날아갔다.
“어!”
“안 돼!”
“야 이 씨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한국 덕아웃, 그리고 관중석 곳곳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탁
다행이었다.
160㎞/h에 달하는 빈볼을 한수혁이 기적처럼 피해냈다.
주저앉듯 공을 피해낸 한수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헬멧을 집어던졌다.
그 광경을 본 마티아스가 코웃음을 치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시발, 이렇게 된 거 다 죽여버릴 거다.’
197㎝, 100㎏이 넘는, 거기에 인종적 특성으로 인해 탄력이 넘치는 마티아스의 육체가 닥쳐올 싸움에 대비했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밥 먹듯이 주먹질을 해온 그다. 덩치가 좀 크다고 해도 동양인 따위 한 트럭이 몰려와도 이길 자신이 있다.
“안 돼!”
“수혁이 말려!”
벤치 클리어링을 예감한 양팀 선수들이 덕아웃에서 달려 나와 타자와 투수를 향해 달려갔다.
그새 완전히 자세를 회복한 한수혁은 투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모두의 머릿속에 난투극, 그리고 한수혁의 퇴장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 * *
“어어어!”
“저런 미친!”
오랜 시간 야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이라는 게 발달하게 된다.
그라운드 위 선수들이 상대 팀을 향해 쏟아내는 감정, 양팀 덕아웃 감독과 코치들의 머리 돌아가는 소리 같은 게 자연스럽게 피부로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서로 간에 감정이 쌓이고, 100마일을 던지는 덩치 크고 성질 급한 애송이가 마운드를 물려 받는 순간부터 나는 이런 사태를 예감했다.
단지 저 미친놈이 주자가 두 명이나 있는 상황에서 내 머리를 노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뿐이다.
“안 돼! 수혁이 말려!”
“젠장, 잡아!”
상식적으로 말하자면 100마일에 달하는 강속구를 눈으로 보고 피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그 공을 피할 수 있었던 건 주자가 두 명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수 놈이 와인드업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수가 와인드업을 하는 목적은 단 하나뿐이다.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을 던지겠다는 의지.
과연 저놈이 나를 삼진으로 잡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투수가 공을 던지려는 그 순간 내 뒤에 앉아 있던 포수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러면 아주 뻔하다.
저놈은 지금 나를 맞추려 하고 있는 것이다.
손끝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곧바로 자세를 숙이며 공을 피해냈다.
그리고 곧바로 마운드로 달려 나갔다.
국제 경기에서 펀치를 날려 퇴장을 당하고 출장정지를 먹은 선례가 있던가?
글쎄, 내 기억에는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야구 역사상 첫 번째 국제대회 출장정지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될 것 같다.
이 일로 내가 퇴장을 당하고 나면 남은 이닝에서 우리 팀이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놈과 싸우다가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꼰대스러운 국내 언론에서는 오히려 나를 공격할 것이다. 국제대회에서 품격을 지켰어야 했다느니, 거기서 주먹을 휘두른 건 나라 망신이라느니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럴 때는 참으면 안 된다.
설사 내가 저놈의 턱에 펀치를 날리는 걸 참고, 그 대가로 4강전 티켓을 가져올 수 있게 된다 해도 절대 참아서는 안 된다.
한번 얕보이면 끝까지 얕보이게 되는 게 바로 이 그라운드 위 야구라는 게임의 본질이다.
특히나 미국과 중남미, 이 거친 녀석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앞으로도 계속 이놈들과 국제무대에서 만날 걸 생각하면 여기서 참는 건 병신 같은 짓이다.
건드리면 좆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한국 팀 선수에게 빈볼을 던지면 턱주가리가 박살 날 수도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안 돼! 수혁이 말려!”
누군지 모를 우리 팀 동료의 고함 소리를 들으며 마운드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갔다.
이미 싸움을 예감한 거구의 투수 놈이 주먹을 들어 올린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
“Fucking Asian!”
저 쓰레기 같은 놈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릴 정도로 놈과 나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내 머릿속에 녀석의 턱으로 향하는 최적의 펀치 루트가 그려졌다.
퇴장, 부상, 징계, 4강 진출 실패.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애써 그것을 밀어내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뻐어어어어억!
* * *
“꾸에엑!”
에…….
그러니까 그게… 내가 회귀하기 바로 직전, 스토브리그에 있었던 일이다.
구단주의 초청으로 캐나다로 향했다. 말로는 함께 순록 사냥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결국은 연장계약에 대한 운을 띄우려는 목적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내키지 않는 걸음을 하게 됐고, 난생 처음 사냥이라는 것을 떠나게 되었다.
그래, 확실히 기억 난다.
사냥터로 향하는 길, 가이드가 몰던 트럭이 지나가던 순록 한 마리를 들이받았다.
나이가 들어 무리에서 떨어져 있던 놈 같았는데 어찌나 덩치가 큰지 적어도 200㎏은 넘어 보이는 놈이었다.
하지만 사슴이 아무리 커봐야 사슴이다.
무게만 3톤에 달하는 대형 트럭에 치인 그놈은 그 자리에서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즉사하고 말았다.
뻐어억!
그러니까 지금 내 눈앞에서 장덕수 선배에게 얻어터지고 있는 저 마티아스인지 뭔지 하는 쿠바 투수처럼 말이다.
“안 돼! 덕수 말려! 저러다 사람 죽인다!”
“으아! 왜 이렇게 힘이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