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26)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25화(126/412)
#125. 말도 안 되는 괴물
‘저게 대체…….’
그냥 아무렇게나 한 말이 아니었다.
미국팀의 감독인 로버트 윌슨이 자신의 선수들에게 한 말.
너희들이 최고다. 누구도 너희를 막아설 수 없다.
진실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단일 국가의 리그에 불과하면서도 감히 월드시리즈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하지만 그 누구도 그 권위를 부정할 수 없는 세계 최고의 리그.
그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한 최고의 선수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물론 빅리거가 미국팀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이미 탈락한 베네수엘라, 도미니카,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일본, 호주, 하다 못해 중국 대표팀에도 빅리거는 존재했다.
하지만 그 모든 팀들이 이미 탈락해서 짐을 싼 상태다.
미국 팀 앞에 남은 적은 단 하나, 현직 메이저리거가 단 한 명도 없는 한국뿐이다.
그렇기에 승리를 자신했다.
그나마 빅리거에 가장 근접한 수준이라 평가받은 류한결이나 임준영 같은 특급 투수들이 오늘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
이건 솔직히 경기를 해보나 마나 한 수준이었다.
104마일을 던지는 루키? 일본전에서 던지는 걸 보고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공 빠르기? 104마일을 던지는 투수는 마이너리그만 뒤져봐도 꽤 여럿 존재한다.
루키치고는 담대한 배짱?
말 그대로 루키일 뿐이다. 미국 대표팀에는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최고의 베테랑들이 즐비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수혁에 대한 조사를 소홀히 한 건 절대 아니었다.
104마일에 달하는 포심과 투심, 체인지업, 커브.
한국 소식통에 따르면 그 외에도 몇 가지 변화구를 던질 수 있다고 했는데 일단 확인된 건 이정도다.
녀석이 등판한 일본전 영상을 선수들에게 보여주었다.
다소 놀랍다는 듯 휘파람을 불어대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 영상을 보고도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공만 빠른 얼간이, 혹은 제구력만 좋은 멍청이, 변화구만 기가 막히게 던지는 모질이.
그런 투수들을 모두 박살 내고, 정말 진짜 중의 진짜만 남은 빅리그 투수들을 상대로 올스타급 성적을 기록한 타자들이 한데 모여 있다.
저 정도에 겁을 내서는 빅리그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그렇기에 잭 로저스는 확신했다.
겁 없는 애송이를 처음으로 박살 내는 건 바로 자신이 될 거라고.
하지만.
부웅
“스트라이크!”
“Fuck!”
슈우웅
“스트라이크! 아웃!”
“…….”
3구 삼진.
105마일에 달하는 바깥쪽 포심에 넋이 나가 버린 미국 팀의 톱타자는 다음에 들어온 59마일의 초슬로우 커브에 되도 않는 헛스윙을 했고, 다시 바깥쪽으로 들어온 투심을 멍청히 바라보며 삼진을 당해버렸다.
“잭.”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다음 타자인 루크 벨, 올 시즌 전반기 3할의 타율에 30개의 홈런을 날린 그가 잭을 불러 세우려 했지만 흥분한 타자는 그대로 덕아웃으로 들어와 배트를 집어 던졌다.
“뭐 저런 빌어먹을… 저딴 게 루키라고, 하하, 빌어먹을, 젠장, 젠장!”
그러고는 혼자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주먹으로 벽을 쳐댔다.
그 순간 로버트 윌슨 감독은 깨달았다.
오늘 경기가 그의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걸.
어쩌면 자신들은 지금부터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괴물과 상대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 * *
따악!
“파울!”
슈웅
부웅
“스트라이크! 아웃!”
– 아아, 정말 엄청납니다! 미국 팀의 1번 잭 로저스를 3구 삼진으로 돌려세운 한수혁 선수가 2번 루크 벨 선수를 또다시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 쩔…….
– 네?
– 아, 아닙니다. 제가 경기 전에 말씀드렸죠? 한수혁 선수만 믿고 기도만 올리면 된다고요?
– 정말이네요! 정말이었습니다! 한수혁 선수가 세계 최강 미국팀의 1, 2번 테이블 세터를 연속 삼진으로 처리했습니다!
– 자… 지금 스마트폰으로 이 경기를 시청 중인 야구팬분들, 지금 당장 대형 TV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십쇼. 한수혁 선수가 세계 최고 타자들을 쥐 잡듯이 잡는 이 장면,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지 모를 이 모습을 고작 스마트폰 화면으로 봐서야 되겠습니까?
– 저기, 위원님. 지금 한국은 오전입니다. 이 시간에 TV를 본다는 게…….
– 알게 뭡니까? 회사 다니시는 분들은 빨리 사장님에게 가서 말하세요. 지금 도저히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야근을 해도 좋으니 일단 경기부터 보자고.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은 조금 늦게 문을 여세요. 지금 매출이 문제입니까? 뭐라고요? 백수라고요? 축하드립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부러워하게 될 겁니다.
* * *
“헤이, 루크. 어때? 영상으로 보던 것과 좀 다른 것 같지?”
“끔찍하군. 진짜 끔찍해.”
“그 정도야?”
“일본전 영상은 저 괴물의 절반도 담아내지 못했어. 젠장, 우리 전력분석팀에는 다 눈뜬 장님만 있는 건가. 이봐, 애런, 절대 저 녀석을 동양인 루키라고 생각해서는 안 돼. 알렉스, 그래, 알렉스 데이비스를 상대한다고 생각하고 타석에 들어서란 말이야.”
삼진을 당한 2번 루크 벨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대기타석에 있던 다음 타자 애런 데커, LA다저스의 간판 타자이자 올 시즌 내셔널리그 MVP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그에게 강력한 경고를 남겨준 채.
애런이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몇 차례 흔들었다.
알렉스 데이비스라고? 지난 시즌 사이영 위너?
저 한국팀의 애송이 투수가 그 알렉스와 비교될 만한 선수라고?
비록 팀은 다르지만 루크 벨이라는 타자의 커리어에 존경심을 갖고 있는 애런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타석에 들어섰다.
그래, 알렉스와 비교한 건 조금 과장되었을지 몰라도 현 시점 빅 리그 최고의 리드오프인 잭 로저스와 10년 이상 최고 레벨에 군림해온 2번 루크 벨을 연속 삼진으로 잡아낸 투수다.
그런 투수를 얕볼 정도로 자신은 멍청하지 않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
아주 약간 남아 있던 방심, 동양인 루키를 깔보는 마음, 그리고 세계 최강팀에 속해 있으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권태로움.
그 모든 감정을 깨끗이 털어낸 애런 데커, LA 다저스의 중심 타자이자 올 시즌 내셔널리그 MVP 후보 1순위로 꼽히는 그가 진심을 담아 한수혁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초구가 날아왔다.
슈웅
“커헉!”
“스트라이크!”
머리 가까이 날아오던 빠른 공이 갑자기 휙 꺾이며 존 안으로 파고 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엉덩방아를 찧은 애런이 멍한 표정으로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93마일? 커브가 93마일이라고?’
* * *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린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149㎞/h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파워 커브가 타자뿐만이 아니라 포수까지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으…….’
투수에게 공을 다시 돌려준 정대한이 포수 미트를 낀 왼손을 주물럭거리며 옅은 신음을 토해냈다.
최고 구속 168㎞/h에 달하는 포심과 162㎞/h 투심, 컷패스트볼, 체인지업, 커브.
앞선 두 타자를 잡아내며 한수혁이 던진 공들이다.
진짜 미쳤다. 이건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하다.
녀석이 올스타전에서도 168을 던진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때와는 또 느낌이 달랐다.
나중에 영상과 계측 데이터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해야겠지만 회전수와 궤적에 있어서 올스타전에 던진 그 공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공이 미국 타자들을 향해 날아왔다.
이제야 최경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괴물과 적으로 상대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정말 같은 편이 되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일지도 모르겠다.
‘음…….’
하지만 아직 1년 반이나 남은 두 번째 FA 따위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당장 녀석의 공을 받아내는 것 자체가 문제다.
벌써 다섯 가지 구종이 튀어나왔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매지션스전에서 선보였던 무시무시한 고속 슬라이더가 아직 안 나왔다.
거기에 아직 공개하지 않은 무기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허허…….’
정대한이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타자 한수혁이 괴물이라면 투수 한수혁은 그보다 더한, 신화 속에나 등장하는 전설 속의 괴수처럼 느껴졌다.
제구를 위해 약간 힘을 빼고 던진 공이 165㎞/h다. 한수혁은 그 말도 안 되는 공을 9분할된 존에 집어넣을 수 있는 제구력을 갖고 있었다.
160㎞/h를 훌쩍 넘기는 투심과 컷패스트볼은 정말 끔찍한 수준이다. 포심이라 생각하고 배트를 내민 타자들을 절망에 빠트릴 지옥의 무기다.
포심과 구속 차이가 70㎞/h 가까이 차이 나는 초슬로우 커브, 웬만한 투수의 포크볼처럼 느껴지는 빠른 체인지업, 그리고 방금 전 던진 150㎞/h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파워 커브.
“하하하, 아하하, 아하하하하!”
“뭐가 그리 웃기지?”
자기도 모르게 소리내어 웃고 말았다.
애런 데커가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정대한에게 물었다.
용병 투수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꾸준히 영어를 공부해온 정대한이다. 이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말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해, 친구.”
* * *
부웅
“스트라이크! 아웃!”
– 또 삼진, 삼진입니다! 한수혁 선수가 세계 최강 미국 대표팀의 1, 2, 3번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 으아아! 진짜 개미… 미쳤네요, 미쳤습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지난 일본전부터 치면 11타자 연속 삼진입니다. 지금까지 WBC에 참가한 그 어떤 타자도 한수혁 선수의 공을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 위원님, 흥분을 잠깐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생각해보죠. 제가 알기로 구속 혁명이 일어나면서 미국에서는 대학이나 마이너리그에도 103마일, 그러니까 165㎞/h 이상을 던지는 투수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 선수들과 한수혁 선수의 차이는 뭘까요?
– 일단 제구력이 넘사, 아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지난 몇 년간 빅리그의 선택을 받은 대학 선수들 중에 104마일을 던질 수 있는 투수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빅리그에 올라오는 선수는 아주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 그게 제구력 때문이다?
– 맞습니다. 그 선수들이 던진 빠른 공은 그야말로 제구고 뭐고 다 무시하고 빠르기에만 올인한 공들입니다. 하지만 한수혁 선수가 던진 공은 다릅니다. 최소 4분할, 그러니까 바깥쪽 높은 코스와 낮은 코스, 몸쪽 높은 코스와 낮은 코스로 제구되는 공이 169㎞/h인 겁니다.
– 엄청나네요.
– 대단하죠. 거기에 속도를 아주 약간 낮추기만 하면 존을 9분할해서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차이가 있죠.
– 그게 뭔가요?
– 그런 강력한 포심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구종들입니다. 투심과 컷패스트볼 같은 변형 패스트볼, 타자의 머리로 날아오다 존 안으로 파고 드는 파워커브, 고속 체인지업, 포심과 70㎞/h 이상 차이 나는 초슬로우커브 등등 강속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공들이 한가득입니다. 저런 공들 사이에서 갑자기 169㎞/h짜리 공이 날아오는데 그걸 어떻게 칩니까?
– 위원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요.
– 어떤 생각이죠?
– 지금 TV로 경기를 지켜보시는 야구팬들 중 90%, 그러니까 워리어스 팬을 제외한 나머지 9개 구단 팬들의 심정 말이죠.
– 음…….
– 하반기에 워리어스 투수 한수혁을 만나야 하는 그분들은 지금 과연 환호하고 계실까요, 아니면 절망하고 있을까요?
– …지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