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27)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26화(127/412)
#126. 걱정 마시고 음료수나…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거실 소파에 앉아 TV로, 혹은 커다란 모니터로 야구 중계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출근, 등교, 혹은 또 다른 각자의 사정으로 집 밖으로 나온 야구팬들이 인터넷 포털의 문자 중계를 보며 WBC 결승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적으로 만났을 때는 좆같… 정말 끔찍하지만, 같은 팀으로 삼기에는 이보다 든든할 수 없는 한수혁의 선발 등판.
거기에 잭 로저스, 루크 벨, 애런 데커로 대표되는 빅리그 올스타급 타선의 미국.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문자 중계를 지켜보던 팬들이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2027 WBC 파이널 라운드 한국 대 미국
한국 선발 투수 한수혁
1회초 미국 공격
1번 타자 중견수 잭 로저스 0.350 / 0.469 / 0.505 / 25홈런 / 29도루
1구 스트라이크
2구 스트라이크
3구 스트라이크
아웃
2번 타자 3루수 루크 벨 0.305 / 0.421 / 0.553 / 30홈런
1구 스트라이크
2구 파울
3구 스트라이크
아웃
3번 타자 1루수 애런 데커 0.371 / 0.499 / 0.587 / 32홈런
1구 스트라이크
2구 볼
3구 스트라이크
4구 헛스윙
아웃
쓰리 아웃, 공수 교대
└이거 머임? 버그임? 왜 셋 다 삼진?
└아 영상 안 나오니까 개답답하네. 중계권 좀 따오지 개넘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세 타자 연속 삼진이라고? 잭, 루크, 애런? 쟤들 셋 다?
└지금이 무슨 2000년대도 아니고 설마 문자 버그일까……?
└그럼 진짜 한수혁이 저 괴물들 다 삼진으로 잡았다는 거?
└기다려봐. 트위터에 짤방 뜰 테니까
└옛다. 여기 가져왔다
└커헉… 진짜네. 진짜 세 타자 연속 삼진이네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괴물들 세 마리 상대하면서 공 10개밖에 안 던짐
└악ㅋㄱㄱㅋㅋㄱ 진짜 내 눈이 의심스럽네 씨발
└존나 뽕 차오른다. 미국팀 1, 2, 3번 쟤들 지난 주까지 리그에서 날아다니던 놈들이잖아?
└ㅇㅇ 경기 감각 같은 드립도 못 침. 저쪽 지금 컨디션 최상임
└결승전 투구수 제한 몇 개냐? 100개?
└95개
└씨발 삼진 27개에 투구수 90개로 완봉 페이스네
└ㅋㅋㅋㅋㅋㅋㅋ 미친놈들
└…야, 근데 나만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드는 거냐
└무슨 생각
└저 새끼…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투수한다며. 메이저리거들도 못 치는 공을 우리 팀 병신들이 어떻게 침
└하아… 그건 나중에 생각… 은 씨발! 진짜 좆같네. 저런 놈이 왜 크보에서 뛰냐고!
* * *
“수혁…….”
“쉿.”
1회를 완벽하게 막아낸 한수혁이 벤치 가장 구석 자리에 앉은 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 한수혁을 격려하기 위해 다가가려던 임준영의 시도가 정대한에 의해 막혔다.
지금 한수혁이 눈을 감고 있는 건 그저 오랜만에 찾아온 투구의 기쁨, 빅리그 레벨의 타자들을 상대로 삼진을 잡아낸 희열을 진정시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런 속마음을 다른 사람들이 알 턱이 없다.
가뜩이나 예민한 투수들, 심지어 WBC 결승전에서 미국을 상대하는 선발투수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결국 한수혁의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고, 감독과 코치 역시 그에게 별다른 말을 건네지 않았다.
오늘 한국팀의 선발 라인업은 이렇게 짜여 있었다.
1번 타자 중견수 이찬호(서울 파이터즈)
2번 타자 2루수 이태웅(대구 버팔로스)
3번 타자 1루수 이수영(대구 버팔로스)
4번 타자 좌익수 김성수(서울 매지션스)
5번 타자 투수 한수혁(서울 워리어스)
6번 타자 우익수 강우찬(인천 레인저스)
7번 타자 유격수 안태규(수원 커맨더스)
8번 타자 포수 정대한(수원 커맨더스)
9번 타자 3루수 민주현(인천 레인저스)
항상 2번 아니면 3번에 위치하던 한수혁이 5번 타자로 자리를 옮겼다. 조금이라도 타석에서 부담을 줄여주려는 감독의 의중이 담긴 배치였다.
한수혁이 빠진 유격수 자리에는 수원의 안태규가 대신 들어갔다.
그리고 투수 한수혁이 타석에 서게 됨에 따라 지명타자로 출전하던 매지션스의 고철환이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다.
공격력이 조금 약해진 느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애초에 한수혁 정도 되는 공격력을 가진 유격수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렇게 한국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미국 대표팀 마운드에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에이스이자 올 시즌 아메리칸 리그 사이영상의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라이언 티보우가 서 있었다.
195㎝에 달하는 장신, 그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100마일의 광속구와 다양한 변화구로 무장한 올해 스물일곱 살의 우완 정통파 투수.
시애틀이 한수혁에게 350만 달러라는 나름 큰돈을 제안했던 이유, 길었던 탱킹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돈을 풀기 시작한 이유가 바로 이 투수의 존재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등장한 진짜배기 에이스와 10년 장기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한 시애틀은 라이언이 36살이 되기 전까지 어떻게든 월드 시리즈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라이언 역시 한수혁이라는 루키의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처음 그를 빅리그로 이끈 시애틀의 스카우터 다니엘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애송이.
오늘 경기 선발 등판을 위해 이번 대회에서 녀석이 뛴 경기 영상을 꼼꼼히 분석했다.
수비의 중심인 유격수로 뛰면서 말도 안 되는 성적을 내고 있는 타자.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뛰고 있는 빅리그에는 한수혁 같은 괴물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고작해야 호주, 쿠바, 일본 같은 팀들과 상대해서 나온 기록들이다.
그간 라이언이 상대해온 빅리그 팀에는 배트가 부러지면서도 타구를 담장 밖으로 보내는 괴물들이 즐비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한 손으로 홈런을 친 미친놈도 있었다.
그런 선수 하나가 약팀 사이에 끼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차피 나머지 한국 타자들은 잘해야 트리플A, 아주 후하게 쳐줘야 빅리그 백업 멤버 수준도 못 된다.
‘음.’
그런데 방금 전 진행된 1회초 미국팀의 공격에서 라이언은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조차 인정하는 미국 최고의 타자들 셋이 차례로 삼진을 당했다. 그것도 공 10개 만에.
투수인 자신은 알고 있다.
한수혁이 던진 공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최고 구속 105마일에 달하는 공으로 타자의 얼을 빼놓고, 이어지는 변형 패스트볼로 선구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93마일과 59마일 커브, 두 가지 커브로 타자를 갖고 논다.
미친놈이다. 진정으로 미친놈이다.
저런 새끼가 대체 왜 타자 같은 걸 하고 있는 걸까?
심지어 오늘 경기 선발로 나온 주제에 5번 타자에 떡하니 이름을 박아 놓았다.
다니엘에게 한 번 들은 기억이 있다.
저 녀석이 미국 진출의 조건으로 투타 겸업을 걸었다는 걸.
미친 소리라 생각했다. 자신 역시 대학 시절, 팀의 에이스이자 4번 타자로 군림하던 선수다.
주변에서 누군가 그런 권유를 한 적이 있다. 투타 겸업을 해보지 않겠냐는 말도 안 되는 권유.
헛소리하지 말라고 단번에 일축해 버렸다.
필드 플레이어로는 거의 나서지 못했던, 지명타자와 투수 사이를 오가던 오타니조차도 결국 부상을 피하지 못하고 쓸쓸히 선수 생활을 접었다.
뭐 하러 그 위험한 짓을 한다는 말인가?
팀을 위해서?
개소리다. 선수가 야구를 하는 건 일단 본인을 위해서다. 팀은 그 다음이다.
그런데 지금 저기 상대팀 덕아웃에 그런 말도 안 되는 바보 짓을 하는 놈이 하나 앉아 있다.
유격수와 타자, 투수를 오가며 세 선수의 몫을 하려는 바보 같은 놈이 말이다.
‘내가 그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막아주지.’
어쩌면 시애틀에 입단해 자신의 동료가 되었을지도 모를 저 애송이를 위해서라도 라이언은 오늘 그를 철저히 박살 내 주기로 마음먹었다.
“플레이!”
주심의 입에서 경기 개시가 선언되었다.
그리고 라이언이 한국 대표팀의 리드오프 이찬호를 향해 힘차게 초구를 던졌다.
* * *
1회말 한국팀 공격
미국 투수 라이언 티보우
1번 타자 중견수 이찬호
1구 스트라이크
2구 볼
3구 스트라이크
4구 스윙 아웃
원 아웃
2번 타자 2루수 이태웅
1구 스트라이크
2구 스트라이크
3구 볼
4구 볼
5구 스윙
1루수 땅볼 아웃
투 아웃
3번 타자 1루수 이수영
1구 스윙
2구 스윙
3구 볼
4구 볼
5구 스윙 아웃
쓰리 아웃, 공수교대
└ㅋㅋㅋㅋ 저쪽에도 한수혁이 하나 더 있었네
└야 이 무식한 새끼야. 라이언 티보우도 모르냐. 올해 아메리칸 리그 사이영 1순위
└몰라 씨발 크보 챙겨 보기도 바쁜데 양키들 야구까지 봐야 함?
└아무리 그래도 세계 최고 투수 이름 정도는 알아둬야지
└저리 꺼져 매뽕 새끼들아. 한수혁은 미국 타자 상대로 10구 3삼진이다
└하아… 오늘 경기 좆같다 진짜. 미국 4, 5, 6번 타자 이름 좀 봐라 ㅋㅋ 산 넘어 산이다
└ㄹㅇ 이름만 봐도 숨이 턱턱 막히네
└저런 놈들 상대로 공 던질 때 무슨 생각이 들려나
└오늘은 한수혁 무너지면 그대로 게임 끝일 듯. 라이언 저 새끼 상대로 점수 내는 상상 자체가 안 듦
* * *
1회초와 1회말, 양팀의 공격이 모두 삼자 범퇴로 끝난 가운데 다시 2회초 미국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누군가의 말대로였다.
세계 최고 수준의 1, 2, 3번 타자를 상대하고 나니, 또 그 이상의 타자들이 줄줄이 뒤에 대기하고 있었다.
뉴욕 양키스의 캡틴이자 미국 대표팀의 4번 타자인 루카스 앤더슨, 휴스턴의 주전포수 프레드 에이버리, 디트로이트의 돌격대장 패트릭 메이슨.
2회초 등장할 미국 타자들의 이름을 보니 숨이 턱 막혀온다.
정윤석 감독은 순간 자신이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고작 스무 살에 불과한, 프로 1년 차에 불과한 신인에게 너무 큰 짐을 지게 한 것 아닌가?
만에 하나 여기서 한수혁이 난타라도 당하게 된다면?
앞으로 한국야구의 중심이 될 선수가 자칫 망가지기라도 하면?
차라리 경험 많은 양지호를 선발로 내보낼 걸 그랬나?
하지만 그래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
미국 대표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메이저리그 올스타라 불러야 좋을 저 라인업을 상대로 양지호, 아니, 오늘 등판이 불가능한 류한결, 임준영, 구철중, 그 누구를 올린다 해도 어차피 답이 없는 문제다.
‘대준아…….’
정윤석 감독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야구장 위로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해가 지고 석양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 위로 흘러가는 구름이 자신의 제자인 이대준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정말 이러면 되는 걸까? 응?’
구름 속 이대준의 얼굴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시고 음료수나 하나 드시면서 수혁이만 믿어보세요, 선생님.’
정윤석은 생각했다.
앞으로 한수혁이 대한민국 대표팀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다면 대표팀 지휘봉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감독은 이대준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