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2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28화(129/412)
#128. 피 말리는 접전
– 위에서 승인 났어. 10억에 하용대 얹어서, 그럼 우리가 최진철 보내주는 걸로. 됐지?
“잠시만, 김 단장. 잠시만.”
– 왜 또? 빨리 끝내고 결승전 중계나 제대로 보자며? 나도 같은 생각이야. 야! 박 단장아? 박재철!
현역 시절부터 친분을 쌓았던 오래된 친구이자 창원 랩터스의 단장인 김규영과 통화 중이던 박재철이 잠시 대화를 끊고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한국과 미국 간의 2027 WBC 결승전.
5회초까지 이어진 엄청난 투수전이 끝나고, 한국팀의 선발투수이자 5번 타자인 한수혁이 타석에 들어섰다.
박재철도 익히 잘 알고 있는, 현 시점 미국 최고의 투수 중 하나인 라이언 티보우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 박 단장! 박재철? 대체 뭐 하는데? 급하다며? 야, 이거 네가 요청한 거잖아?
“아, 좀 잠깐만, 이 인간아.”
논의 중이던 트레이드 건을 마무리 지으려는 김규영,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 씹어버린 박재철이 한수혁의 타석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오늘 마운드에서 한수혁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단순히 대단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의, 그야말로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빅리그 출신인 박재철은 지금 그 누구보다 놀란 상태였다.
오늘 한수혁이 보여준 퍼포먼스라면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던져놔도 에이스급이었다.
물론 변수는 있었다. 아직 보여준 게 한 경기밖에 없다는 것, 162경기에 달하는 시즌을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 내구성, 멘탈 등등.
하지만 지금 한수혁이 던지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그런 우려 따위는 떠오르지도 않을 것이다.
미국 최고의 타자들을 상대로 5이닝 동안 단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은 완벽한 투구.
이게 대체 말이 되는 걸까? 왜 저런 녀석이…….
그렇게 미국 타자들을 학살하던 한수혁이 이번에는 타석에 섰다.
미친 듯이 땀을 흘리던 라이언 티보우의 손 끝에서 초구가 발사되었다.
그가 던진 101마일 포심이 한수혁의 몸쪽 깊은 곳을 향해 쏜살같이 파고들었다.
순간 한수혁의 배트가 매섭게 회전했다.
따아아아악!
– 아아아! 쳤습니다. 한수혁 선수가 친 타구가 좌익수와 중견수 사이,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으로 떨어집니다! 한수혁 선수, 1루를 돌아, 2루, 2루, 2루에서 여유 있게 세이프! 무사 주자 2루, 한수혁 선수가 드디어 천금 같은 득점 찬수를 만들어냅니다!
– 엄청나네요! 진짜 야구 혼자 한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듭니다! 아, 라이언 티보우의 표정 좀 보세요. 지금까지 투구수가 80개, 한계투구수까지 15개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한수혁에게 2루타를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 허어, 위원님.
– 네?
– 한수혁 선수는 5회초까지 투구수가… 61개밖에 안 되네요?
– 흐흐흐, 진짜 그 인간들 얼굴 한번 보고 싶네요.
– 누굴 말씀하시는 거죠?
– 그 왜 있잖습니까? WBC 대표팀 출국 날 전까지 한수혁 선수 경험이 부족하다고 이상한 소리를 해대던…….
– 흠흠, 그 사이 미국 팀에서 타임을 요청했습니다.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가네요. 아, 이러면 투수가 교체되려나요? 그럴 것 같군요. 그럼 저희도 잠시 광고 보고 찾아뵙겠습니다.
한수혁의 2루타에 혼이 반쯤 달아나버린 라이언 티보우를 진정시키기 위해 미국팀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갔다.
TV를 통해 그 모습을 담담히 바라보던 박재철이 전화기 너머 창원 단장에게 말했다.
“김 단장.”
– 이런 젠장, 이제야 대답하는 거야? 그래, 방금 한수혁 안타 친 거 보느라 내 말 씹은 거지? 그러니까 빨리 통화 끝내고 속 편하게 좀 보자고. 자, 결정해. 지금 바로 계약서 보낸다?
“아니, 조건을 좀 바꾸고 싶은데?”
– 뭔 소리야? 우리 진철이 보내주면 외야수 하용대에 10억 원 얹어준다며?
“용대 말고 대신 2군에 윤철이 어때?”
– 누구? 윤철이가 누구야? 조윤철? 너희 팀 2025년 3라운더? 야, 시발, 그걸 지금 말이라고.
“대신 현금 10억에 5억 더 얹어줄게.”
– …그래?
“어, 대신 지금 바로 결정해야 돼. 네가 거절하면 바로 재규어스에 전화해야 하니까.”
– 자, 잠깐만, 뭐가 그렇게 급해? 조윤철에 15억, 15억…….
“5, 4, 3, 2…….”
– 스톱! 알았어, 알았다고! 더 이상 말 바꾸지 마. 지금 바로 계약서 보낼 테니까.
“오케이, 고마워, 친구. 좋은 거래였어.”
– 야, 말로만 친구라고 하지 말고 다음에 만나면 술이라도 한 잔…….
딸깍
통화를 끝낸 박재철이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현재 워리어스에서 진행 중인 트레이드 안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방금 전 박재철은 2군 외야 유망주 하나와 15억 원을 창원에 주고, 대신 타격은 조금 떨어지지만 2루수와 유격수, 3루수까지, 내야 전 포지션을 백업할 수 있는 최진철이라는 쓸 만한 선수 하나를 받아오는 데 합의했다.
그는 하반기, 한수혁과 안치욱, 이창모의 뒤를 받치는 든든한 백업이 되어줄 것이다.
‘음.’
원래는 1군 외야 백업 하용대와 10억 원 제안했고, 창원도 받아들였다.
최민석과 서형주, 월터 스미스, 김수학, 강진석, 하용대까지, 그나마 외야진에는 조금 여유가 있었다. 그렇기에 하용대가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보강이 시급한 내야 요원을 위해 그를 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판에 박재철이 생각을 바꿨다.
하용대 대신 2군에 처박혀 있는 유망주를 보내고, 대신 트레이드 머니 5억 원을 더 얹었다.
사실 박재철은 올 시즌 워리어스의 최대 목표치를 한국시리즈 진출로 잡고 있었다.
정규 시즌 3위, 아주 운이 좋으면 2위.
그렇게 한국시리즈에 올라가 경험을 쌓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난 5년간 9-8-8-10-10을 찍은 팀이다.
비밀 번호 같은 게 아니다. 이 팀이 기록한 순위다.
그런 팀이 한국시리즈에 오르는 것만으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선수들의 경험이 쌓이고, 점점 더 팀의 뎁스를 보충하면 몇 년 안에 정상에 도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멍청했군…….’
하지만 아니었다.
한수혁이 세계 최강 미국팀의 타자들을 쥐 잡듯이 잡는 걸 본 순간, 그리고 타석에서 미국 에이스의 공을 후려 갈겨 2루타를 만들어내는 걸 본 순간.
박재철은 기존에 갖고 있던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올 시즌 워리어스의 최종 목표를 상향 조정하기로 마음먹었다.
1위 인천과의 게임 차를 생각하면 정규 시즌 1위는 힘들지도 모른다. 아니, 힘들 거다.
하지만 단판승부인 한국시리즈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한수혁이 있다.
괴물 같은 빅리거들을 쥐 잡듯이 잡아 대는 최고의 에이스가 방금 엔트리에 추가되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박재철은 즉전감인 하용대를 협상 테이블에서 내리고, 대신 2군 유망주를 보내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구단으로부터 책정 받은 트레이드 머니가 또 빠져나갔지만,
괜찮다.
지금은 돈 몇억 원을 아까워할 때가 아니다.
– 시청자 여러분, 다시 경기가 시작됩니다. 5회말 한국의 공격, 한수혁 선수가 2루타를 치고 나간 가운데 타석에 6번 강우찬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 아, 안타도 좋지만, 라이언 티보우의 구위를 생각하면 지금 필요한 건 진루타입니다. 2땅, 혹은 깊숙한 외야 플라이, 강우찬 선수, 집중해야 합니다, 삼진은 절대 안 돼요!
광고가 끝나고 다시 중계가 시작되었다.
투수는 여전히 라이언 티보우, 그리고 타석에는 인천 레인저스의 강우찬이 들어서고 있었다.
담담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재철이 스마트폰을 들어 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이구, 오 단장님. 나예요. 잠깐! 끊지 마시고 일단 제 얘기부터…….”
트레이드 마감일까지 3일, 아직 그에게는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 * *
부웅
“스윙! 아웃!”
“3루, 3루!”
슈웅
“세이프!
“Fuck!”
1위팀 인천 레인저스의 강우찬이 7구 승부 끝에 결국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에게 진루타를 기대했던 한국 관중들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오던 그 순간.
한수혁이 냅다 다음 베이스를 향해 뛰어 버렸다. 그리고 아주 여유 있게 3루에 도착했다.
삼진을 당하고 허옇게 질려버렸던 강우찬의 얼굴에 조금이나 혈색이 돌아왔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던 1사 3루의 득점 찬스가 만들어졌다.
삼진을 당하기는 했지만 강우찬은 라이언에게 7개의 공을 던지게 만들었다.
95개의 한계투구 수까지 남은 공의 숫자는 단 8개.
한 타자, 혹은 잘해야 두 타자.
잘만 하면 선취점도 내고, 미국 팀의 에이스를 마운드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기회다.
“제발, 제발…….”
“아, 태규야…….”
“안태규, 힘내라!”
“안태규! 안태규! 안태규!”
그리고 타석에 유격수 안태규가 들어섰다.
유격수이기는 하지만 번트보다는 강공에 익숙한 타자다. 1년에 번트를 대는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타자다.
대타를 내서 스퀴즈를 시도해야 할까?
하지만 여기서 안태규를 빼면 내야 수비가 엉망이 되어버린다. 한수혁까지 빠진 상황에서 2루와 유격수 자리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
결국 대타 카드를 머리에서 지워버린 정윤석 감독이 타자에게 정면 승부를 지시했다.
‘신이시여…….’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득점 찬스, 정윤석 감독이 타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마음 속으로 기도를 올리던 그 순간.
따악!
볼카운트 원 볼 투 스트라이크에서 한가운데로 들어온 100마일짜리 포심을 안태규가 멋지게 받아쳤다.
유격수와 3루수 사이로 향하는 총알 같은 직선 타구.
“와아아!”
타구를 보자마자 안타임을 직감한 한국 관중들이 함성을 쏟아내던 그 순간.
터억
“아웃!”
“저게 뭐야, 시발!”
“말이 돼? 저게 대체 말이 돼?”
“진짜 개 미친… 진짜…….”
허탈감에 휩싸인 관중들의 탄식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외야로 빠져나가려는 총알 같은 타구를 미국 팀의 유격수 제너드 에반스가 몸을 날리며 잡아냈다.
└별 거 아니네. 한수혁도 맨날 하는 거잖아
└맞음. 크보에서 하도 당해서 그런지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네
└나도 ㅋㅋㅋ 보자마자 유격수 직선타라고 생각했음
└지금 욕하는 건 그 좆 같은 꼴을 안 당해본 워리어스 놈들일 듯
└워) ㅠㅠ
└개소리는 이쯤 하고… 저걸 잡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괴물은 괴물이구나. 한 놈 한 놈이 전부 다.
└아… 이러면 2사 3루네. 안타 하나만 제발…
* * *
“태규야, 아까웠다. 잘했어.”
“와, 뭐 저런 인간이. 난 저런 미친놈은 수혁이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쟤 작년 아메리칸 리그 골든글러버야.”
“됐고, 일단 아웃된 건 잊어버리고 대한이나 응원하자. 정대한 파이팅!”
안타 하나를 도둑 맞고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온 안태규를 최고참 김성수가 맞이했다.
1사 주자 3루의 황금찬스가 2사 주자 3루로 바뀌었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아직 득점 찬스는 끝나지 않았다.
덕아웃의 한국 선수들이 8번 타자 정대한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응원을 보냈다.
미국 선발 라이언 티보우에게 허락된 투구수는 이제 4개.
마지막임을 직감한 라이언은 혼신의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
3루에서는 한수혁이 홈스틸이라도 할 것처럼 바쁘게 움직였다. 실제 한수혁은 덕아웃을 향해 도루를 하겠다는 사인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정윤석 감독이 그를 말렸다.
지금 한국팀 마운드에는 한수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여기서 그가 내려가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홈스틸의 성공 가능성을 떠나 그 과정에서 작은 부상이라도 입는다면?
모든 것이 끝이다.
결국 한수혁은 아쉬움을 삼킨 채 홈스틸을 포기해야 했고, 라이언 티보우는 한국팀의 8번 타자 정대한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마지막 투구를 마쳤다.
5이닝 무실점, 투구수 96개, 미국 최고의 투수 중 하나인 라이언 티보우의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