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2화(13/412)
#12. 이 팀은 대체
2026년 기준 한국에서 고교야구선수로 뛰는 학생의 숫자는 대략 3,500명. 그 중 프로에 도전하는 3학년의 숫자가 대충 1,000명.
1,000명의 프로지망생 중 실제 신인 드래프트를 거쳐 프로구단의 선택을 받는 선수는 일년에 고작 100명 남짓이다.
10%를 제외한 나머지 90%는 프로 무대에 발조차 걸쳐보지 못하고 쓸쓸히 다른 길을 찾아야만 한다.
그런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국프로야구위원회에 등록되어 프로야구로 밥벌이를 하는 선수의 총합이 겨우 600명이다.
문제는 그 600이라는 숫자가 십수 년 넘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매년 100명의 신인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존 선수 중 100명이 유니폼을 강제로 벗어야 한다는 뜻이다.
1군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은 선수 외 나머지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은 날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정도 경쟁은 경쟁도 아니다.
프로야구팀 감독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고작 10명.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명이다.
이 나라의 전체 야구인들 중 프로야구팀의 감독이 될 수 있는 영광은 오직 10명에게만 돌아간다.
진짜 빌어먹을 경쟁률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평생을 바친 워리어스에 감독으로 돌아온 이대준은 선택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마음 속으로 자신을 불러준 워리어스의 구단주와 단장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한 이대준 감독이 자신이 지휘하게 될 선수단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음.”
자신이 현역으로 뛰던 시절만 해도 워리어스는 꽤나 강팀이었다.
비록 그때나 지금이나 모기업 지원 부족으로 선수들을 팔아먹는 건 마찬가지지만, 1차 지명제도의 혜택을 받으며 서울 연고지의 좋은 신인들을 뽑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곤 했다.
이대준 역시 그런 루트를 따라 워리어스에 입단한, 소위 천재라 불리는 선수 중 하나였다.
다른 천재들이 그런 것처럼 투수와 타자를 겸하며 고교야구를 박살내고 프로에 입단했다.
그리고 이후 15년 간의 현역 생활 동안 통산 타율 3할에 출루율 4할, 315개의 홈런을 날리며 최고의 1루수 중 하나로 군림했다.
모두가 그를 천재라 칭송했다.
‘천재는 무슨’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천재라 불렸던 자신의 과거가 부끄러워진다.
진짜 천재는 저런 놈을 말하는 거다.
한수혁.
얼마 전 부상으로 조금 이른 은퇴를 선택한 야구천재의 대명사 오타니.
일본에 오타니가 있다면 한국에는 한수혁이 있다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포텐은 오히려 한수혁 쪽이 더 높은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아무튼 시애틀 입단이 확정적이라던 놈이 갑자기 워리어스에 입단하는 게 꿈이었다며 한국 무대를 선택했다.
그 놈을 처음 본 순간 바로 깨달았다. 말도 안 되는 어퍼스윙으로 엄청난 거리의 홈런 타구를 날리는 걸 본 순간 알았다.
이놈은 진짜 미친놈이라는 걸.
지금 당장 주전으로 박아도 아무 문제없을 것 같은 수비실력이나, 대주자로만 기용해도 몸값은 충분히 할 것 같은 주력은 두 번째 문제였다.
지금 1군 투수들 중 가장 컨디션이 먼저 올라온 홍영식의 패스트볼을 난타한, 거기에 자존심이 상한 투수가 던진 변화구까지 박살내버린 한수혁은 단지 초고교급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으음… 진짜 워리어스가 좋아서 메이저리그를 포기한 건가?’
아직 구단 차원의 트레이드가 진행중이고, 새로 들어온 신인들과 용병 타자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지만 일단 팀의 중심타자가 생겼다는 건 확실했다.
데뷔 첫해부터 줄곧 3번 타자를 쳐온, 마지막 순간 은퇴할 때까지 그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처럼 말이다.
‘으음’
사실 이 팀의 문제는 타격보다는 투수력에 있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타격에 비해 투수력이 부족한 게 팀 컬러이긴 했지만 이건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투수조가 훈련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눈이 썩는 것 같다.
‘저게 정말 프로 선수는 맞는 건가?’
지금 이 팀에 남아 있는 투수들 중 지난 시즌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을 거둔 라이언 스타크와 브룩스 파커, 두 명의 용병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정말 한숨이 나오는 수준이다.
지난 10년 동안 팀의 에이스 노릇을 해온 이만식은 이제 노쇠화가 완연했다.
아무리 경험이 풍부하고 멘탈이 좋다 해도 140km/h가 간신히 나오는 공으로는 제대로 된 승부가 힘들다.
또 다른 선발투수 정태호 역시 한숨이 나오는 건 마찬가지다.
패스트볼의 위력은 이만식보다 훨씬 낫지만 변화구의 각이 거의 배팅볼 수준이다.
그나마 올해 스물넷이 된 지난 시즌 필승조 홍영식이 가능성을 보이고는 있지만 어제 신인 한수혁을 상대하는 걸 보니 다듬는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2군 투수와 바꿔 먹은 FA 한진우 대신 새롭게 팀의 마무리를 맡을 예정인 최정수는 멘탈이 너무 불안하다.
공 끝은 홍영식과 더불어 팀 내 최고이지만 스트라이크보다는 볼이 더 많은 저 친구에게 한 시즌 내내 마무리를 맡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솔직히 말하면 절망적인 상황이다.
퍼어억!
165km/h!”
“미친!”
“이게 한국에서 가능한 구속이야?”
“진짜 저러고도 투수는 안 한다고?”
그런데 방금 이대준 감독은 희망 하나를 발견했다.
아니, 이건 희망이라기보다는 당첨이 확정된,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무조건 터지는 복권 같은 거였다.
타격만으로도 이미 계약금 10억 이상의 값어치는 충분히 할 것 같은 한수혁, 그가 던진 공이 165km/h를 기록한 순간 이대준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한국시리즈 7차전이라고 했지?’
계약 때문에 올해 투수로 써먹을 수는 없지만 만에 하나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갈 수 있다면 무조건 승리는 우리 것이다.
물론 저런 공을 계속 던질 수 있는지는 좀 더 확인해봐야겠지만.
친정팀 복귀 1년만에 한국시리즈 우승트로피 들어올린다?
이대준 감독의 머릿속에서 행복회로가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들 뭐해! 구경 그만하고 다시 제 자리로!”
한수혁이 165km/h를 던진 것에 놀라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선수들이 코치의 호통에 화들짝 놀라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방금 전 엄청난 걸 봐서 그런지 다른 투수들의 훈련 모습을 보니 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예전 같으면 엉덩이를 한 대 걷어차주고 그딴 똥볼을 던질 거면 2군으로 꺼지라고 소리치겠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자신은 이제 이 팀의 선수가 아니라 감독이니까.
저런 놈들을 이끌고 1년 동안 144경기를 치러야 할 사령탑이니까.
안되겠다. 마음의 안식이 필요하다.
덕아웃에서 시원한 이온음료 한 캔을 집어든 이대준이 한수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이구, 우리 막둥이. 덥지? 이거부터 마시고, 뭐 불편한 건 없고?”
현역 시절 벤치클리어링 1인자로 팀내외에서 아무도 건드릴 사람이 없었던, 무뚝뚝함의 대명사이던 이대준이 눈에서 꿀을 뚝뚝 흘리며 한수혁을 바라보았다.
조금 움찔하던 한수혁이 이내 웃음을 띠며 이온음료를 받아 들었다.
어린이 회원 시절 자신의 팬이었다는 말에 이대준의 웃음이 더욱 크게 번졌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가 현역을 은퇴하던 시절 한수혁이 세 살에 불과했다는 걸 눈치 챌 법도 하건만, 이대준에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좋은 실력과 인성을 동시에 갖춘 슈퍼 루키, 그를 위해서라면 뭐든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 *
‘괴물 같은 놈···’
한수혁을 지켜보고 있던 건 감독뿐만이 아니었다.
스프링캠프 첫날부터 선배에게 찍혀 두들겨 맞을 뻔한, 입단동기인 한수혁 덕에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신인 3루수 안치욱이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저 놈을 처음 만났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중학교 때부터 이미 초특급 유망주였던 한수혁과 달리 안치욱은 조금 늦게 기량이 만개한 타입이었다. 그가 속해 있던 학교 역시 그다지 강팀은 아니었고 말이다.
결국 고등학교 3학년 춘계대회에 와서야 두 사람이 속한 팀이 처음으로 맞붙게 되었다.
안치욱은 생각했다.
투수를 겸하고 있기에 선수로서 종합적인 평가는 한수혁이 앞서 있었지만 적어도 타자로서의 잠재력만큼은 자신 역시 만만치 않다고.
한수혁을 상대로는 범타에 그쳤지만, 이후 바뀐 투수를 상대로 총알 같은 2루타를 뽑아 내기도 했다.
그날 경기가 끝난 후 코치에게 부탁해 한수혁을 직접 만나게 되었다.
거기서 한수혁이 던진 한 마디가 자신의 야구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말이다.
‘안치욱이라고? 넌 덩치도 큰 놈이 땅볼 밖에 못 치냐?’
‘뭐라고?’
‘스윙이 그래서야 음··· 뭐, 됐다’
안치욱이 갖고 있던 콤플렉스를 제대로 건드렸다.
187cm가 넘는 당당한 체구를 갖고도 홈런이 영 터지지 않는다는 것, 그것 때문에 안치욱은 꽤나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약점이 아닌 장점이었다.
간결하고 정교한 스윙으로 안타를 양산해낼 수 있는 타자, 겉으로 보이는 커다란 덩치와 달리 안치욱은 교타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날 한수혁과의 만남으로 인해 안치욱이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저 놈보다 더 홈런을 많이 치고 말거다’
모두가 칭찬하던 간결하고 예쁜 레벨 스윙을 버렸다.
대신 한수혁의 경기 영상을 수없이 돌려본 후 그의 어퍼스윙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절대 들어먹지 않았다.
감독이 노발대발하고, 코치가 집에까지 찾아와 그의 부모님을 잡고 호소했다.
아드님을 제발 좀 설득해 달라고, 저래서는 팀도 망하고, 프로 입단 역시 힘들 수도 있다고.
하지만 안치욱은 끝끝내 그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미친 듯이 퍼 올리고, 또 퍼 올렸다. 주변에서 그를 국자로 놀려 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결과 장타가 아주 조금 늘기는 했지만, 대신 4할을 가볍게 넘기던 타율이 3할대까지 떨어졌다.
설상가상 원래는 밝고 쾌활하다는 평을 받던 성격도 점점 어두워졌다.
초초한 속내를 감추느라 의도적으로 말수를 줄이다 보니 언제부턴가 말투가 이상하다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
한 마디로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나쁜 놈…’
하지만 저놈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날의 치욕을 갚기 위해 모든 걸 내던졌건만, 놈을 따라잡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텨왔건만.
그는 나를 잊었다. 아니, 애초에 나라는 존재를 머리에 담아두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그 모든 건 이제 지나간 얘기일 뿐이다.
특기이자 정체성인 타격 정확도를 버리고 약간의 장타력을 얻은 안치욱은 당초 기대했던 순위보다 훨씬 낮은 9라운드에 가서야 서울 워리어스의 지명을 받는데 성공했다.
덕분에 프로 선수에게는 가장 중요한 수입인 계약금이 형편없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제주도에서 귤농장을 크게 하는 부모님 덕에 당장 돈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중요한 건 이거다.
한수혁과 한 팀에서 뛸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것은 지난 반년 간 그를 따라하는데 모든 열정을 쏟았던, 어느새 한수혁의 가장 큰 팬이 된 안치욱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한수혁이 유격수 겸 3번 타자로, 그리고 자신이 3루수 겸 4번 타자로 뛰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보다 더 많은 홈런을 치고 MVP를 따내는 상상을 덧대어보았다.
단지 머리에 떠올리는 것만으로 세상이 행복해졌다.
솟아오르는 기쁨을 누르지 못하고 그만 입 밖으로 그걸 내뱉고 말았다.
‘한수혁’
‘왜?’
‘음’
‘말을 해’
‘그러니까 그게’
‘나 그냥 간다’
‘3루 송구가 좋더군’
‘고마워. 그럼 이만’
‘내가 3루에 서고 네가 유격수에 서면 우타자들에게는 악몽이 될 거다’
드디어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그 야심을 한수혁에게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아뿔싸, 지난 시즌까지 이 팀의 주전 유격수이자 어쩌면 올해 한수혁에게 밀려나 3루로 뛰어야 할지도 모를 송기태 선배가 그 말을 듣고 말았다.
그날 밤, 방에서 쉬고 있던 그를 선배가 찾아왔다. 그리고는 아무도 없는 샤워실로 끌려갔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입단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인이 팀의 주전 선수에게 찍히다니.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팀의 고참 중 하나인 선수다. 그런 선배의 분노에 안치욱은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나타나 위기에 빠진 자신을 구해줬다.
한수혁이었다.
선배의 매서운 눈길을 피해 동기의 등 뒤에 숨은 순간 안치욱은 알 수 없는 자괴감을 느꼈다.
한수혁의 등 뒤에 숨으니 저도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분명 동갑내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큰형 같은 든든함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위기에서 빠져나와 방으로 돌아온 안치욱은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한수혁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걸 엿듣게 되었다.
‘응, 형. 힘들지 않냐고? 힘들지. 그래도 어쩌겠어. 이 팀 우승시키려면 진짜 죽을 만큼 열심히 해야 할 거 같거든. 그래, 난 괜찮아’
그렇게 누군가와 통화를 끝낸 한수혁이 또 배트를 휘들렀다.
어둑어둑한 달빛 아래 묵묵히 스윙을 하는 한수혁의 모습은 야구선수가 아닌 도를 닦는 수행자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저 정신 나간 동기 놈이 워리어스를 우승시키기 위해 메이저리그를 포기했다는 게 정말이었다는 걸.
한수혁이라는 이름의 동기 놈은 정말로 이 꼴찌팀 워리어스를 우승시킬 생각이라는 걸.
왠지 모르게 분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싸워 보지도 못했는데 진 것 같은 기분이다.
“음.”
어젯밤 있었던 일을 다시 한 번 떠올린 안치욱이 복잡한 시선으로 저 멀리 있는 한수혁을 바라보았다.
스프링캠프에서 165km/h를 던지는 괴물이다.
야구선수로서 놈을 이기는 건 깨끗이 포기한다.
하지만 단 하나, 저 놈보다 더 많은 홈런을 친다.
그리고 저 놈이 소원하는 워리어스의 우승에 한 손을 보태는 것으로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한 보답을 하고 말 것이다.
“내가 이길 거다. 한수혁.”
“···?”
“두고 봐라.”
“아니 대체 뭘? 말을 시작했으면 제대로···”
“크크.”
자신의 재능을 잘 살리기만 하면 데뷔 첫 해 3할까지도 가능할 덩치 큰 교타자 안치욱이 마음 속으로 홈런왕이 될 것을 다짐하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