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34)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33화(134/412)
#133. 2027 WBC CHAMPION
나는 단 한 번도 하늘이 내 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정말 신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내 하나뿐인 가족을 빼앗아간 것으로도 모자라 성훈이 형까지 그렇게 데려갈 리는 없었을 테니까.
그뿐인가.
유일하게 남은 희망이었던 야구, 그 야구를 하는 동안에도 운명은 항상 내 앞길을 가로막곤 했다.
내가 무언가를 기도하면 신은 항상 그 반대의 길을 강요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하늘에 감사하고 있다.
내게 마지막 타석을 허락해준 데 대해 말이다.
경기 내내 미국에 짓눌려 있던 우리 타자들이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내 앞에 만루 찬스를 만들어주었다.
이제 미국은 나를 거를 수 없다. 어떻게든 나와 승부를 해야 한다.
“타임!”
경기가 잠시 중단되고 굳은 표정의 미국팀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올라왔다.
세 타자를 연속으로 출루시킨 지미 맥카운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오늘 등판한 미국 투수들 중 가장 저조한 성적, 하지만 그것이 모두 저 선수의 잘못이라고 볼 수 있을까?
글쎄, 그건 아닌 것 같다.
그저 이번 이닝 우리 팀 타자들의 집중력과 의지가 저 녀석의 그것을 뛰어넘었을 뿐이다. 거기에 약간의 행운도 따랐고 말이다.
퍼엉
퍼어엉
마운드에 오른 새로운 투수가 연습투구를 시작했다.
트레버 닉슨, 내셔널리그 최강팀 세인트루이스의 수호신.
승부치기에 대비하기 위해 아껴 놓았을 미국 불펜의 최강카드가 내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103마일에 달하는 강력한 포심과 투심, 컷패스트볼, 체인지업. 거기에 수년간 마무리로 뛰며 다져진 강철 같은 멘탈.
이런 상황에서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적.
하지만 내 가슴 속에서는 절망이 아닌 기쁨이 피어나고 있었다.
즐겁다. 등골이 짜릿하기까지 하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우리가 야구라는 걸 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런 즐거움 때문 아닌가?
빠른 공을 던지고, 그 공을 쳐서 멀리 보내고.
그 즐거움을 따라 계속 걷다 보니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것 아닐까?
“플레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그런데 그 모습이 포수인 프레드 에이버리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다.
“웃어? 지금 이 상황이 웃기나, 애송이?”
“프레드.”
“언제 봤다고 프레드야, 이 개자식아.”
“케리는 잘 지내?”
“뭐?”
“지금쯤 저기 관중석 어디에서 널 지켜보고 있으려나?”
“Son of a bi…….”
“닥쳐. 거기서 한마디만 더 하면 결승전이고 뭐고 네 대가리를 깨 버릴 테니까.”
“…….”
프레드 놈의 같잖은 도발은 거기서 끝났다.
아마 지금 놈의 머릿속에는 내가 대체 어떻게 자신의 애인 이름을 알고 있는지, 그 궁금증과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부인과 애까지 있는 놈이 원정 경기마다 애인을 데리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문제지.
이놈은 결국 몇 년 후 꽤나 떠들썩한 이혼을 하게 되고, 야구를 하며 모은 돈 대부분을 날리게 될 거다.
젠장… 그러고 보니 이런 쓸데없는 건 다 기억하면서 왜 그 여자 이름은…….
“이봐, 둘 다 진정하고 선수로서 품격을 지켜줬으면 좋겠군. 지금 우리는 WBC 결승전을 하는 중이라고.”
“알겠습니다. 전 이의 없습니다.”
“…….”
주심의 말에 내가 곧바로 대답을 한 반면, 프레드는 그냥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끄덕
수차례 사인을 거부하던 트레버 닉슨의 고개가 마침내 위아래로 흔들렸다.
세 가지 변형 패스트볼을 던지며 체인지업으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투수.
끝내기 패배 직전까지 몰린 암울한 분위기.
하지만 그 상황에도 자기만의 공을 던질 수 있는 베테랑인 트레버 닉슨의 초구가 내게로 날아 들었다.
슈웅
퍼엉
“스트라이크!”
바깥쪽으로 흘러 나가는 컷패스트볼, 병살을 유도하기 위한 그런 공이었다.
여기서 나에게 병살타를 유도하겠다?
갑자기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봐, 바람둥이.”
“Fucking Kore…….”
“야구하기 정말 좋은 날씨야. 안 그래?”
“God dam I…….”
“이런 멋진 경기가 그냥 땅볼이나 희생플라이 같은 걸로 끝나면 너무 한심하잖아. 안 그래?”
“…….”
“기왕이면 좀 더 멋지게 끝내 보자고, 저 관중들이 티켓값 생각은 안 하게 말이야.”
나도 모르게 또 포수에게 말을 걸었다.
뭔가 저주에 가득 찬 욕설이 돌아왔지만 이미 나는 놈에게서 흥미를 거둔 지 오래였다.
꽤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경기였다. 이제 이 길었던 경기를 끝낼 시간이 되었다.
어떻게든 병살타를 만들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대기 중인 야수들, 땅볼을 유도하기 위해 공 하나하나에 온 힘을 다해 던지는 투수.
저 녀석들에게 이제 편안한 휴식을 선물해줄 차례다.
드드득
헐거웠던 그립을 다시 한 번 힘차게 감아 쥔다.
공이 변하기 전에 친다는 마음으로 타격 포인트는 조금 앞으로, 타이밍은 100마일 포심에 맞춰서.
지난 생에서부터 수도 없이 반복해온 동작들이 마치 정밀 기계처럼 재현된다.
꾸욱
준비는 끝났다. 그리고 투수의 손끝에서 공이 떠났다.
따아아아아아악!
“안 돼!”
“젠장, 빌어먹을, 젠장, 이 멍청한 놈들 같으니!”
“죽어! 아니, 죽여! 저 자식을 죽여버리라고!”
미국 팬들이 품고 있던 실낱 같은 희망이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거대한 파열음이 터지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배트에 맞은 타구가 새까맣게 먼 하늘로 솟아오르는 순간, 미국 관중석에서 비명과 욕설이 뒤섞인 괴성이 쏟아져 나왔다.
45도 각도로 발사된 타구가 프로그레시브 필드의 좌중간을 가르며 계속 날아간다.
멀리, 아주 멀리,
그렇게 계속 날아간 타구가 좌측 펜스 최상단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그대로 직격했다.
콰앙!
“우아아아아!”
그 순간이었다. 그때까지 입을 틀어막은 채 타구를 바라보던 한국 관중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태극기를 흔들며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옆사람을 끌어안았다.
또 누군가는 안전망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비켜요, 비켜요, 제발 비켜줘!”
“우아아! 나도 간다!”
“이게 이 맛에 타는 거구나!”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민예린 혼자만이 아니었다. 흥분한 한국 응원단이 안전망에 매달려 그라운드 난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방금 전 홈런을 친 배트를 홈플레이트 옆에 가만히 내려 놓았다.
“나 돌아올 때까지 잘 보관해줘. 어쩌면 박물관에 전시될지도 모르니까.”
“…….”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포수는 아예 내 말에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1루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2루로, 다시 3루로, 마지막으로 홈으로.
“끄아아아아! 최고다! 한수혁, 네가 최고야!”
“수혁아!”
“허어어엉, 한수혁, 이 미친놈아!”
먼저 홈으로 들어온 동료들, 그리고 덕아웃에 있던 코치와 감독이 모두 쏟아져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쿠웅
마침내 내 발이 홈플레이트를 밟는 순간.
퍼버버버버벙!
퍼벙!
퍼버벙!
퍼버버버벙!
경기장 외곽에 설치되었던 폭죽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발사되었다.
그리고 대수를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드론들이 일제히 구장 상공을 향해 비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날아오른 드론들이 저마다 반짝거리는 빛을 뿜어내며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론들이 만들어낸 문구 하나가 프로그레시브 필드 상공에 찬란하게 새겨졌다.
2027 World Baseball Classic CHAMPION
Republic of Korea
* * *
“축하합니다. 진심으로, 그리고 다음에는 미국에서 당신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개막식 때만 해도 한국팀을 조금 내려다보던 메이저리그 커미셔너가 한수혁의 목에 메달을 걸어주며 한 말이었다.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WBC 일정이 모두 끝났다.
우승 대한민국, 준우승 미국, 3위 베네수엘라, 4위 일본.
이번 대회 최종 성적이었다.
[대한민국 야구대표팀, 사상 첫 WBC 우승, 한수혁의 만루포로 경기를 끝내다] [9이닝 노히트노런, 거기에 끝내기 홈런까지… 한수혁을 위해 준비되었던 결승 무대] [정윤석 감독과 대한민국 대표팀 일동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모두 수혁이의 공”] [7경기 10홈런, 1승 1세이브 기록한 한수혁, 이견의 여지 없는 완벽한 MVP] [투구수 제한이 있는 이상 다시는 나오지 않을 대기록 WBC 결승전 노히트노런] [미국 대표팀 로버트 윌슨 감독 “나는 감독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 생각했다. 하지만 한수혁을 본 순간 다시 현역으로 복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 타이 존슨 “한 번만 더 그와 승부해 보고 싶다. 이런 기분이 든 건 정말 오랜만이다”] [끝내기 홈런 허용한 트레버 닉슨 “그에게 첫 공을 던진 순간 깨달았다. 내일 조간신문에 내 사진이 크게 나올 거라는 걸 말이다.”] [4강전에서 한수혁을 상대한 일본 호시노 감독 “사실대로 말해달라. 정말 스무 살이 맞는가?”] [일본 간판투수 다나카 야마토 “빅리그 생활을 접어야 할 것 같다. 그런 선수가 한국에서 뛰는데 내가 뭐라고…” 말을 흐리다] [중국 대표팀 에이스 왕 레이 “오늘부터 내 목표는 한수혁이다. 물론 나는 그를 따라잡을 수 없겠지만” 중국 팬들, 왕 레이 SNS 폭격]└존나 씨발, ㅋㅋㅋ, 하하하, 개 미친…
└뭐 하냐
└진짜 이게 말이 됨? 7경기 10홈런? WBC 결승전 노히트노런? 실화임?
└내 말이, 왜 저런 놈이 한국에서 뛰는 거냐고
└뭐래, 어차피 전반기 내내 한수혁한테 신나게 터졌는데 뭘 새삼스럽게
└아니 그때는 적어도 투수는 안 했잖아. 이게 말이 돼? 유격수에 홈런타자에, 이제는 선발까지 해먹겠다?
└짧지만 즐거웠다… 이제 저 좆같은 놈을 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거구나
└ㅋㅋㅋ 타이 존슨도 못 친 공을 우리 식충이들이 건드릴 수나 있을까?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할 듯. 저 무친놈이 선발로 나오는 날에는 그냥 타자들도 다 백업 올리고 임시 선발 세우는 거지. 그냥 휴식일 개념으로
└씨발 이러면 전반기에 워리어스랑 경기 많이 치른 팀들이 존나 유리한 거잖아
└대전하고 수원이 경기수 많았나? 존나 부럽네
한국의 언론매체와 인터넷 게시판이 사상 첫 WBC 우승에 대한 감격, 그리고 하반기 일정에 대한 공포감으로 떠들썩한 사이, 우리 대표팀은 우승축하연을 위해 경기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방금 전 시상식에서 이상할 정도로 비굴하게 굴던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의 태도도 그렇고, 우리 팀을 대하는 대회 스태프들의 태도가 이상할 정도로 공손하다.
우승팀에 대한 예우 같은 걸까? 글쎄, 얘들이 그런 놈들이 아닌데.
그런 의문은 경기장을 벗어난 후에도 계속되었다.
이번 대회 일정 내내 우리를 태우고 다녔던 대형 버스가 아닌 최고급 리무진 수십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리무진에 올라탄 선수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역시 천조국의 스케일은 다르다는 둥 하면서 말이다.
음, 내가 보기에 이건 그런 범위를 벗어난 것 같은데.
“출발하겠습니다.”
선수 1인, 혹은 2인당 하나씩 배정된 리무진이 스르르 미끄러지며 어디론가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딘가에 도착했다.
그곳은 당초 축하연이 예정되었던 작은 호텔이 아니었다.
뉴욕 맨하튼 한가운데 위치한 가장 크고 웅장한 호텔, 로펠스라는 이름이 붙은 초대형 호텔 로비 앞에 수십 대의 리무진이 일렬로 멈춰 섰다.
“이게 대체 무슨…….”
“왜 이쪽으로 온 거죠? 코치님은 혹시 아세요?”
“아니, 나도 잘… 이거 팀장님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살짝 얼이 빠져 있는 선수들을 호텔 직원들이 하나하나 연회장으로 안내했다.
족히 천 명 이상은 입장 가능한 거대한 호텔 연회장에는 이미 파티 준비가 완벽히 끝나 있었다.
그곳에 초대받은 건 선수들뿐만이 아니었다. 오늘 경기 내내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친 응원단들이 미리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이거… 욕 먹는 거 아니야? 무슨 돈으로 이런 호텔을?”
“KBO가 미쳤나. 돈 없다고 이코노미 태운 양반들이.”
“아, 맞다. 이거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해준 건가 보다.”
“아하, 그래, 그러면 말이 되지.”
궁금증을 해소해줘야 할 KBO 직원들도 하나같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렇게 우승 축하연이 시작되었다.
사람 키의 거의 두 배만 한 우승 축하 케익이 나오고, 여기저기서 샴페인이 터지고, 미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나와 한국팀을 위한 축하공연을 펼치고.
연회 중간에는 자신을 조 윌슨이라 밝힌 남자가 조용히 나를 찾아와 말을 걸었다.
그제야 나는 오늘 이 연회가 어떻게 마련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저희 도련님이 한국팀, 아니, 한수혁 선수의 열렬한 팬이십니다. 부디 편하게 즐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 출국하실 때는 저희 측에서 전용기를 준비해 놓겠습니다.”
뭐, 크게 따지지 않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니까.
“사인볼이라도 몇 개 드릴까요?”
“아앗, 그러면 저희 도련님이 정말 기뻐하실 겁니다.”
그렇게 가방에 있던 공 몇 개에 사인을 해서 건네주니 화색이 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상 첫 WBC 우승을 기념하는 행사가 그렇게 끝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서서히 마지막을 준비하던 그 순간.
스르륵
닫혀 있던 무대의 커튼이 열리고 누군가 그 안에서 걸어 나왔다.
-There’s a hero…….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한 가사, 그리고 그보다 더 익숙한 목소리.
민예린이였다. 어느 틈에 하얀 원피스로 갈아입은 그녀가 머라이어 캐리의 Hero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다. 그녀가 단순히 야구에 미친 여자가 아니라 월드클래스 팝스타라는 걸.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맑고 투명한 목소리가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노래가 절정으로 흐르고 무대 뒤편에서 코러스들이 등장해 그녀의 노래에 화음을 입히기 시작했다.
-And you’ll finally see the truth That a hero lies in you…….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는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영웅을 찾으라는 마지막 가사 말.
나도 모르게 그 의미를 곱씹고 있던 그때, 민예린의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내게로 향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오직 그녀만이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