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3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38화(139/412)
#138. 마지막 아웃카운트
야구 종주국이자 야구를 국기 스포츠로 삼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점점 프로야구의 인기가 다른 스포츠 종목들에 밀리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일단 다른 종목과 달리 야구는 한 명의 슈퍼스타가 게임에 미치는 영향이 극도로 제한된다는 것. 즉, 슈퍼스타가 만들어지기 힘들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나올 때마다 승리를 따낼 수 있는 에이스라 해도 시즌 162경기 중 고작해야 서른 번 정도 등판하는 게 전부다.
타자의 경우 매일 경기에 나설 수는 있지만 그래 봐야 9명 중 하나일 뿐이다. 자신의 타석이 끝나면 하염없이 다음 타석을 기다려야 한다.
농구나 축구처럼 혼자 상대 수비를 박살 내고 연속 득점을 올리는 시원시원한 플레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것 말고도 이유는 많다.
일단 3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긴 경기 시간에 대해 젊은 층들이 거부감을 갖는 것도 문제이고, 중계 자체가 로컬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전국 중계를 통한 스타 만들기도 어렵다.
문제는 그런 현상이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미국 다음으로 프로야구 시장이 큰 일본, 그리고 한국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다.
가끔은 특출난 선수 하나가 경기를 완전히 지배하고, 그의 존재만으로 팬들이 야구장으로 몰려드는 그런 경우가 있다.
오늘 홈런 한 방으로 양팀 통틀어 유일한 타점을 기록한 데 이어, 마운드에서도 상대 타자들을 압도하고 있는 한수혁 같은 선수 말이다.
“타임! 선수 교체하겠습니다.”
선수와 벤치, 그리고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까지, 모두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던 경기가 어느새 9회초로 접어들었다.
스코어는 여전히 1 대 0, 양팀이 낸 점수라고는 6회말 한수혁이 친 홈런 하나가 유일했다.
오늘 경기가 더욱 사람들의 피를 말리게 하는 건 8회까지 매지션스 타자 중 누구도 1루를 밟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안타는 물론이고 볼넷, 심지어 실책조차 하나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경기.
퍼펙트 게임.
KBO 역사상 단 한차례도 기록되지 못한 그 전무후무한 기록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오늘 하루 유격수 자리를 잘 지켜낸 신인 유인철이 종아리에 경련을 일으키며 들것에 실려 나갔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정말 죄송합니다.”
“됐어, 인마. 잘했어. 너 오늘 충분히 제몫 했어. 이제부터는 진철이가 대신 잘 할 테니까 걱정 말고 들어가서 마사지부터 받아.”
이대준 감독이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표정의 유인철을 어르고 달래 트레이너실로 들여보냈다.
8회까지 투구 수 90개, 총 24명의 타자를 상대해 삼진 15개, 2루 땅볼 3개, 1루 땅볼 1개, 유격수 땅볼 1개, 그리고 중견수 플라이 3개, 좌익수 플라이 1개.
오늘 한수혁이 기록한 말도 안 되는 투구 내용이다.
삼진 15개는 그렇다 치더라도, 5개의 땅볼 타구 중 4개가 2루수와 1루수 쪽으로 향했다. 이 팀의 내야진 중 가장 믿을 수 있는 베테랑 쪽으로 말이다.
외야로 뻗어 나간 타구는 더 신기하다.
리그 탑 수준의 수비력을 가진 서형주가 3개, 그리고 그에 못지 않은 좌익수 최민석이 1개를 처리했다. 우익수 월터는 오늘 단 하나의 타구도 잡아보지 못했다.
정말일까? 투수가 타구의 방향까지 유도할 수도 있는 걸까?
모르겠다. 한수혁이 직접 말을 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진철아, 긴장하지 말고. 믿는다. 차분하게 해.”
“알겠습니다, 감독님.”
창원에서 데려온 만능 백업요원 최진철이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그라운드를 향해 뛰어나갔다.
잘 데려왔다. 좋은 선수다. 적어도 수비에 있어서만큼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좋은 선수가 라인업에 추가되었다.
수비 위치를 잡는 최진철을 향해 한수혁이 뭐라고 말을 건넨다.
웃고 있는 표정을 보니 그리 심각한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아무리 자신의 선수라고 해도 이건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
저게 정말 작년까지 고등학생이었던 놈이라고?
퍼펙트 게임까지 아웃카운트 3개밖에 안 남겨놓은 투수가 교체된 야수와 농담을 주고받는다고?
입단 동기인 유격수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다리에 쥐가 나서 실려 나왔는데, 저놈은 대체 뭐란 말인가?
‘맙소사.’
이대준은 아직 자신이 한수혁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 *
‘할매, 너무 떨리는구만유. 저는 어떻게 한데유.’
지금 이 상황에 떨고 있는 건 유인철과 이대준만이 아니었다.
그라운드에 있는 모든 선수들이 초비상 상태였다.
오늘 하루 야수들 중 가장 많은 공을 만진 1루수 조성오는 혹시라도 포구 실수를 할까 봐 시간이 날 때마다 글러브를 벗고 손을 주무르고 있었다.
2루수 이창모는 머릿속으로 타구가 날아올 궤적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었고, 오늘 공 한 번 만지지 못한 3루수 안치욱은 반쯤 혼이 나가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하는 상태였다.
외야 쪽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장 경험이 많은 월터 스미스는 왜 타구가 자기 쪽으로 오지 않는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고, 좌익수 최민석은 7회 하마터면 놓칠 뻔했던 타구를 생각하며 다리를 벌벌 떨고 있었다.
중견수 서형주의 마음은 조금 더 복잡했다.
라이벌이라 여겼던 한수혁의 충격적인 퍼포먼스, 그에 대한 부러움, 동경, 혹은 약간의 질시.
하지만 가장 큰 감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실수는 하지 않겠다는 것, 한수혁의 퍼펙트 게임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그렇게 모든 선수들이 초긴장 상태에 접어든 가운데 가장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포수 장덕수였다.
대표팀에서 한수혁과 정대한이 배터리를 이뤄 노히트노런을 만들어내는 걸 눈앞에서 보았다.
그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언젠가 자신 역시 한수혁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날이 오리라 예감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시간이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한수혁의 첫 등판에서 곧바로 이런 상황이 닥쳐오다니.
오늘 한수혁이 조금 힘을 빼고 던진 덕분에 받기 어려운 공은 많지 않았지만, 투수를 리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다 보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여기서 왜 이런 공을 던지겠다는 거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공에 타자의 방망이가 허공을 갈랐다.
이건 좀 위험한데 싶으면, 타자가 그 공을 건드려 2루 땅볼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 패턴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한수혁의 템포를 따라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벤치에서도 따로 사인을 내지 않았다. 오늘 모든 사인은 투수인 한수혁이 낸 것이다.
저 대단한 후배이자 기특한 동생은 대체 어떻게 이런 볼배합을 할 수 있는 걸까?
아주 잠깐 걸그룹 영상을 보는 것 외에는 하루 종일 포수로서의 수비 공부에 모든 걸 쏟고 있는 장덕수로서는 오늘 엄청난 공부를 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9회가 찾아왔다.
이제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세 개.
그 세 타자만 잡아내면 한수혁과 자신은 KBO 역사상 첫 번째 퍼펙트 게임을 이룬 배터리로 기록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또다시 손발이 벌벌 떨려온다.
중학교 시절, 집 마당까지 내려온 멧돼지를 향해 몽둥이 하나를 들고 덤빈 장덕수다.
수십 명에 달하는 고등학생 일진들을 상대로도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던 것이 바로 장덕수다.
그런 장덕수가 고작 145g짜리 공을 받아내는 게 무서워 부들부들 떨고 있다.
‘할매… 제발… 제가 실수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유.’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빌고 비는 것, 제발 자신으로 인해 자랑스러운 동생의 대기록이 깨지지 않도록 비는 것.
그것 하나뿐이었다.
* * *
상대 타자의 타구를 잡아내기 위해 서로 간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는 야수들.
투수와 한 몸이나 다름없는 포수, 거리상으로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는 2루수와 유격수, 그리고 3루수와 1루수, 심지어 저 멀리 펜스 가까운 곳에서 대기 중인 외야수들까지.
그 모든 선수들의 긴장감과 두려움이 내게로 전달되어 온다.
외야에서 내야 쪽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숨 죽인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관중들, 그리고 그 관중들 사이에 묻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어디선가 나를 응원하고 있는 이웃의 시선까지.
모르겠다.
어떻게 그런 게 느껴지냐고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냥 가끔 이런 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플레이!”
심판의 경기 개시 사인과 함께 매지션스에서 대타를 내보냈다.
등 번호를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저 선수의 스탯과 특성, 최근 컨디션까지.
하지만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나는 이 지구상 어떤 타자를 상대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긴장과 두려움에 떨면서도 나를 위해 몸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는 동료들.
한수혁이라는 투수를 보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 야구장을 찾은 팬들까지.
그 모든 이들을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려 한다.
스르륵
투구판을 밟고 와인드업을 시작한다.
90개를 넘게 던졌음에도 여전히 에너지가 펄펄 넘치는 육체가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예전 삶에서 꿈에나 그리던, 부상 없는 젊은 육체가 주인의 의지에 따라 가동되기 시작한다.
부드럽게, 하지만 힘차게.
슈웅
퍼어어엉!
“스트라이크!”
몸쪽 낮은 곳에 틀어박히는 163㎞/h의 포심에 매지션스 타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투수와 타자 간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물론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순간에는 거기에 하나가 더해진다.
우리가 흔히 정신력이라 부르는 그것, 살짝 삐끗하기만 해도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그런 긴박한 순간에도 자신이 할 일을 해내는 끈기와 의지.
나는 지금까지 15년 넘게 매일 그런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살아왔다.
퍼펙트게임? 완봉? 팀의 승리?
겨우 그런 것에 긴장할 정도로 나는 나약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나를 흔들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슈웅
부웅
“스윙!”
슈웅
퍼어엉!
“스트라이크! 아웃!”
이제 기록 달성까지는 아웃카운트 두 개.
저기 내 앞에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고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 *
슈웅
부웅
퍼어엉!
“스윙! 아웃!”
– 삼진! 또 삼진입니다! 한수혁 선수가 대타 오동규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투 아웃을 잡아냅니다! 이제 한수혁 선수는 대기… 아, 죄송합니다. 시청자 여러분, 제가 너무 흥분한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기를 어길 뻔했네요.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 괜찮습니다.
– 네? 위원님,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 지금 한수혁 선수가 뭘 하고 있는지 보세요.
– 음? 아, 네… 동료들을 향해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려 보이고 있네요?
– 맞습니다. 이제 하나 남았다는 거죠? 한수혁 선수 표정을 보세요. 너무 즐거워 보이죠?
– 진짜 그러네요. 와… 진짜 고동식 위원님, 지켜보는 저조차 위액이 역류해 식도가 따끔거리는데 당사자인 한수혁 선수는 어떻게 저렇게 편안할 수 있을까요?
– 글쎄요. 한 가지 확실한 건 한수혁 선수가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는 겁니다.
– 말씀드리는 순간 한수혁 선수가 관중들을 향해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려 보입니다. 아, 정말 엄청난 멘탈입니다.
–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한수혁 선수는 이 정도로 멘탈이 흔들릴 선수가 아니라니까요? 자, 이제 마음 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KBO 역사상 누구도 달성하지 못했던 퍼펙트게임까지 이제 타자 한 명만 남겨 놓고 있습니다. 마지막 상대는 공교롭게도 워리어스에서 트레이드 된 정기호 선수군요. 과연 오늘 이 위대한 경기의 끝은 어떻게 될지 다 함께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