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4)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3화(14/412)
#13. 거대한 홈런
스프링캠프에 들어와서야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 올리는 메이저리그와 달리 한국 야구의 시즌 준비는 꽤나 바쁘게 흘러간다.
쉽게 말해 메이저리그가 정규 시즌 개막일에 맞춰 몸 상태를 조절한다면 한국 야구에서는 시범경기 일정에 맞춘다는 느낌?
스프링캠프가 진행된 지 일주일, 처음으로 팀 내 청백전이 진행되었다.
“자, 다들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잘 보이겠다고 너무 오버하지 말고. 내 말 알아들었지?”
“네! 감독님!”
오늘 청백전은 기존 주전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청팀 대 신인과 백업 선수 위주로 짜인 백팀 간의 대결로 치러지게 되었다.
새 얼굴들이 주축이 된 백팀에서 나는 유격수 겸 3번 타자로 출장하게 되었다.
그 외에 방금 전 알 수 없는 웃음을 보였던 안치욱 놈이 3루수 겸 4번 타자, 그리고 내 룸메이트인 순둥이 장덕수 선배가 포수 겸 8번 타자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안치욱 저 바보 놈 때문에 어제 성훈이 형과 급하게 통화까지 해야 했다.
‘어, 수혁아. 왜, 이틀 전에도 통화했잖아. 무슨 일 있어?’
‘여기 안치욱이라는 놈 있는데 암만 봐도 감독이 2군에 처박을 거 같거든?’
‘안치욱? 9라운드에 뽑은 애? 아무튼 그래서?’
‘박재철 단장에게 말해서 일단 그 놈 1군에 박아두게 해줘. 고집이 세서 코치들 말을 좀 안 듣는데 그냥 2군 보내긴 아깝거든. 내가 쥐 잡듯이 잡아서라도 사람 좀 만들어볼 테니까’
‘흠··· 그래?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할게. 다른 일은 없고?’
‘어, 당장은 그것만 부탁해. 형’
나도 생각 같아서는 2군에 처박고 정신 차릴 때까지 박박 굴리게 하고 싶지만 당장 개막전부터 지명타자 슬롯이 비어 있는 걸 생각하면 저 놈 재능이 너무 아깝다.
좋아, 옆에 붙어서 내가 인간 하나 만들어봐야지.
한편 주전 선수가 주축이 된 청팀에서는 먹튀 1호 송기태가 유격수 겸 2번 타자, 먹튀 2호 황성민이 포수 겸 6번 타자, 용병 타자 맥스 워커가 우익수 겸 4번 타자로 각각 출전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팀 합류가 며칠 늦은 저 새 용병의 타격을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내 피 같은 달러로 데려온 저 친구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한수혁 선수, 이쪽을 향해서 얼굴 한 번만. 시청자분들에게 인사 한 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네. 안녕하세요? 오늘 경기 재미있게 해보겠습니다. 많이들 봐주세요.”
오늘 경기는 구단 자체 인터넷 방송을 통해 생중계된다.
말하자면 나를 포함한 새 얼굴들이 팬들에게 처음으로 자신을 선보이는 자리인 셈이다.
흠.
메이저리그에서 15년을 구른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좀 우습기는 하지만 충격적인 첫 인상을 남기고 싶다.
어디 오늘은 대놓고 홈런만 노려볼까?
“플레이볼!”
오늘 주심을 맡은 타격코치가 즐거운 표정으로 경기 시작을 알렸다.
우리 팀의 선발 투수로 나선 용병 라이언 스타크가 긴장된 표정으로 첫 타자를 맞이했다.
작년에 던진 영상을 봤는데 150km/h에 가까운 포심과 커브, 슬라이더를 던지는 정통파 우완투수다.
그런 라이언을 맞아 청팀 1번 타자로 나선 중견수 정기호가 타석에 들어섰다.
팀에 얼마 남지 않은 고참급 선수이자 싸움닭이라는 별명을 가진 발 빠른 외야수다.
2할 중반대의 타율에 3할 초반대의 출루율, 거기에 실패가 좀 많기는 하지만 매년 두 자리 도루가 가능한 빠른 발까지.
상위권 팀이라면 1번으로 뛰기에 좀 애매한 성적이지만 워리어스 같은 팀에서는 충분히 리드오프로 활용할 수 있는 선수다.
그렇기에 4년 20억이라는 FA계약을 따냈고 말이다.
사실 이 선배의 진짜 문제는 성적이 아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성격이 더 문제라고 해야 할까.
“아웃!”
순식간에 승부가 끝났다.
팀의 1번 타자로서 타석에서 인내심을 보여줘야 할 정기호가 초구를 쳐서는 내야 플라이로 물러났다.
채팅창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쟤 왜 은퇴 안하냐
﹂이제 나이 서른임. 그리고 작년에 FA계약했는데 은퇴하라니;;;
﹂정기호 은퇴하면 우리 중견수 아예 없음
﹂ㅋㅋㅋ 한수혁 입단하고 행복회로 미친 듯이 돌렸는데 시범경기도 아니고 연습경기 첫 타석에서 바로 대가리 깨지네
﹂저런 애를 1번으로 쓰면서 가을야구 꿈꾸면 솔직히 우리가 양심 터진 거
﹂개소리 ㄴㄴ 수혁 선생님께서 우리 우승시켜주신다고 했음
﹂그건 그냥 신인의 패기지. 쟤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우리가 무슨 우승
﹂다른 건 됐고··· 한수혁 신인왕만 받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우리 마지막 신인왕이 언제냐?
﹂2010년
﹂미친··· 싸이월드 있던 시절이네
﹂그게 뭐임? 싸이가 뭐 했었음?
﹂그 싸이 말고, 하아, 됐다··· 그래 나 아재다
﹂ㅋㅋㅋ, 1번, 2번, 3번 타자 3연속 초구 건드려서 아웃. 팀 꼬라지 보소
그리고 청팀의 지휘를 맡고 있는 이대준 감독의 얼굴도 불타는 혜성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공교롭게도 내 앞으로 타구가 하나도 안 온 탓에 그냥 유격수 자리에 멀뚱히 있다가 돌아온 나는 곧바로 타격 준비에 들어갔다.
새로운 얼굴들이 주축이 된 게 우리 팀이다보니 대기 타석에 선 1, 2번 타자들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 있는 게 보인다.
뭐, 금방 내 차례가 돌아오겠군.
배트를 몇 번 휘둘러본다.
부웅
몸 컨디션은 최고에 가깝다. 오버페이스가 걱정될 정도로 움직임이 너무 가볍다.
“아웃!”
“아웃!”
예상대로였다.
우리 팀 토종 에이스 이만식 선배가 노련하게 1, 2번 타자를 잡아내며 순식간에 투 아웃,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한수혁이다!
﹂오오··· 우리의 희망
﹂체격 봐라. 배터 박스가 아주 꽉 차네
﹂믿습니다, 믿습니다, 홈런 쳐주실 걸로 믿습니다. 투수를 박살내주실 거라 믿습니다
﹂야, 지금 상대 투수가 우리 3선발임··· 박살은 너무 심하잖냐
﹂만식이 쟤 아직도 은퇴 안함? 징하네;;;
﹂말 넘심. 그동안 우리한테 해준 게 얼마인데
﹂얼마냐고? 예전은 모르겠고 작년에는 정확히 8승을 해주셨지. 연봉으로 치면 1승당 6,250만 원꼴
﹂효율 오지고요
﹂쉿, 쓸데없는 소리 좀 멈쳐봐. 방금 공지 뭐 올라온 것 같은데?
﹂필요 이상의 비하 발언은 강퇴처리한다는 거였음
﹂1승당 6,250만원이란 게 비하발언은 아니지
팬들에게 욕을 얻어먹는 것에 비해 이만식 선배가 그 정도로 엉망인 투수는 아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 팀의 주축 선발투수로 10년을 뛰었다는 건 어느 정도 기량이 있다는 뜻이다.
전성기 시절 오버핸드였던 투구폼이 이제는 사이드암에 가까울 정도로 내려왔고, 공의 구속보다는 다양한 변화구와 지저분한 볼 끝으로 승부하는 투수가 되었다.
사실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시절 나는 이런 타입의 투수들에게 비교적 약한 편이었다.
타석에서는 무조건 홈런, 출루하면 곧바로 도루를 노리던 나는 이런 노련한 타입의 투수들에게 꽤 먹음직한 먹이 감이었던 셈이다.
물론 타자로서 경험치가 점점 쌓이고, 아메리칸 리그 MVP를 차지하며 마음을 여유를 되찾은 후에는 그 약점마저 사라져버리고 말았지만.
“볼.”
﹂야! 투수, 너 빈볼 던지지 마라! 우리 수혁이 다칠 뻔했다. 내가 찾아가서 죽여버린다
﹂미친놈아··· 저건 그냥 손에서 빠진 거잖아. 그리고 지금 투수, 우리 팀 토종 에이스라니까?
﹂에이스고 뭐고 수혁이 다치게 하면 진짜 내 손에 죽는다···
﹂하아, 아직 정식 데뷔도 안 했는데 얼빠들 천지네···
이만식 선배가 던진 초구가 내 엉덩이 뒤쪽으로 날아왔다.
사실 유니폼에 조금 스친 것 같기는 하지만 심판을 향해서 안 맞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조금 더 보고 싶다.
이 팀의 토종 에이스가 어떤 공을 던지는지, 그리고 젊은 육체를 얻게 된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볼.”
“만식아! 편하게, 편하게!”
팀에 몇 남지 않은 한국인 수비코치가 큰 목소리로 이만식 선배를 응원했다.
뭐, 이번 공은 긴장했다기보다는 그저 내 타격포인트를 흐트러뜨리기 위한 그런 공이었다.
“스트라이크!”
이번에는 몸 쪽에서 바깥쪽으로 흘러 나가는 슬라이더가 들어왔다.
우 타자인 내가 치기에는 조금 힘든, 아니, 사실 치려고 마음먹으면 못 칠 건 없지만 큰 타구를 만들기는 힘든 코스였기에 그냥 흘려보냈다.
그리고 다음 공.
나는 알고 있다.
프로야구에서 에이스로 뛴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독한 일인지.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친 투수들이 어떤 마인드를 갖게 되는지.
프로 10년차를 넘긴 저 베테랑 투수는 여기서 절대 볼을 던져 쓰리 볼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데뷔 첫 타석을 맞은 신인에게 그런 공을 던지면 스스로의 마음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미국에서 한 팀의 에이스로 뛰었던 나는 이만식 선배의 눈빛에서 그런 마음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드드득
그렇다면 노린다.
살짝 헐겁게 잡고 있던 그립을 바짝 조이고, 무게 중심을 뒤로 둔 채 다음 공을 기다렸다.
그 순간 몸 쪽 낮은 곳으로 투심이 날아 들어왔다.
미리 낮게 조절해 두었던 그립에 살짝 반동을 주며, 밑에서 위로, 끌어 올리듯.
130km/h가 살짝 넘는 그 공을 향해 내 모든 힘을 담은 스윙이 날아간다.
따아아아아아악!
머니볼과 세이버매트릭스로 유명한 오클랜드 어틀레틱스는 타율이나 홈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게 평가받는 출루율과 장타율 같은 스탯에 주목했다.
덕분에 3할을 치는 타자보다 2할을 치더라도 출루율이 높고 장타를 많이 치는 선수들이 점점 더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세이버매트리션들이 선호하는 그런 타입의 선수는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공에는 무조건 방망이를 내밀었으니까.
홈런을 하나라도 더 치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다.
심지어 땅에 처박힌 커브볼을 때려 홈런을 만든 적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타율에 비해 출루율이 높은 선수가 아니었다.
물론 기본 타율이 3할을 넘겼으니 출루율도 낮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홈런 40개를 넘긴 후에는 그런 걸 따지는 것조차 무의미한 선수가 되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랬다.
극단적인 배트볼 히터, 그게 바로 내 타자 초창기의 모습이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이만식 선배의 낮은 투심을 그대로 걷어올렸다.
아무튼 내 거대한 어퍼스윙에 얻어맞은 공이 하늘 높이 새까만 점이 되어 사라진다.
멀리멀리, 아리조나 상공을 비행하듯 아주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그렇게 고도를 낮추지 않고 계속 날아가던 타구가 관중석 최상단에 그대로 박혀버렸다.
타석에서 타구를 감상하던 나는 나도 모르게 배트를 뒤로 집어 던지고 말았다.
“우와!”
“저게 말이 돼? 저런 타구가 가능해?”
“한수혁, 진짜 미친 놈!”
사방에서 난리가 났다.
엄청난 궤적의 타구에 잔뜩 흥분한 선수와 코치들이 지금이 승부 중이라는 것조차 잊은 듯 마구 고함을 질러댔다.
음.
그래, 손 맛도 좋고 다 좋은데···
이만식 선배의 눈이 순식간에 썩은 동태 눈깔처럼 변해버린 걸 보니 조금 후회가 든다.
처음 보자마자 선배님 대신 만식이 형이라고 부르라던 좋은 사람이었는데.
다음 타석에서는 삼진이라도 하나 당해줘야 하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