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40)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39화(140/412)
#139. 퍼펙트 게임
“예린아, 진짜 잘 생각했다. 암만 생각해도 그건 미친 짓이었어. 아무리 너라도 그런 짓을 했다가는 영업방해로 철창행이었을 거야.”
“으음… 역시 그렇겠지? 좋아, 그건 한국시리즈 때를 위해 묵혀두자고.”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오늘 경기가 시작되기 전, 민예린의 매니저는 그녀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매일 안전망 파손과 그라운드 난입에 대한 뒤처리를 하고 있는 매니저조차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그런 이야기였다.
‘오빠, 나 우리 아파트 옥상 문 여는 비밀번호 알아냈다?’
‘근데?’
‘예전에 패러글라이딩 배운 선생님한테 물어봤는데.’
‘패러글라이딩? 그건 또 뭔 소리야? 갑자기 그게 왜 나와?’
‘내 말 들어봐. 아무튼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잠실야구장에 패러글라이딩으로 내려서는 거 가능할 같더라고. 대충 각이 나온다니까?’
‘…예린아.’
‘봐봐. 오늘 수혁 오빠가 뭔가 대기록을 달성할 거 같거든? 그 기록이 달성되는 순간 내가 패러글라이딩으로 잠실야구장에 착륙하는 거야. 어때? 그 정도면 정말 진심 어린 축하가 되지 않을까?’
그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매니저가 민예린을 바라보았다.
진심이었을까?
물론 진심이었을 거다.
그가 보기에 민예린은 워리어스, 아니, 한수혁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안 된다.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
매니저는 무슨 수를 쓰든 그것만은 반드시 막아낼 거라고 다짐했다.
“오빠, 내가 저번에 부탁한 거는 집에 가져다 놨지?”
“뭐?”
“뭐긴 뭐야. 롤렉스지.”
“아, 아, 그래, 네 말대로 두 개 준비해놨어.”
“오케이, 좋았어. 그럼 이제 느긋하게 대기록 달성만 기다리… 꺄아!”
지난 미국과의 결승전이 끝난 후 민예린의 특명을 받고 롤렉스 두 개를 미리 구매해 놓았다. 밴드에 한수혁이라는 로고를 새겨야 했기에 시간을 맞추느라 애를 먹었다.
그때만 해도 설마설마 했다.
이미 벌어진 미국전 노히트노런은 그렇다 치더라도 설마 하니 첫 번째 KBO 선발 등판에서 퍼펙트 게임이 나올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신의 고용주이자 국내 최고의 아티스트 민예린이 쫓아다니는 저 한수혁이라는 선수는 그런 일반적인 상식을 훌쩍 넘어선, 한마디로 인간 같지 않은 그런 존재였다.
슈웅
퍼어엉!
“스트라이크!”
대기록 달성의 희생양이 될 것으로 보이는 매지션스의 9번 타자.
한때 워리어스의 주전 중견수였다는 정기호라는 놈이 퍼렇게 질린 얼굴로 타석에 서 있었다.
얼굴 표정을 보아하니 이미 틀렸다. 반쯤 시체 같은 저 꼴로 한수혁의 공을 쳐낼 리가 없다.
달달달달달
“예린아……?”
이제 대기록까지 남은 공은 단 하나, 옆자리에 앉은 민예린이 어찌나 다리를 덜덜 떠는지 지진이 난 건가 싶을 정도다.
이미 그녀의 의식은 이곳에 있지 않았다. 저기 안전망 너머 그라운드 위 한수혁과 함께하고 있었다.
마치 경련이 온 사람처럼 팔다리를 쭉 뻗고 달달 떠는 꼴이라니.
혹시나 누가 민예린의 저 흉측한 꼴을 찍어갈까 매니저가 걱정하던 그때.
퍼어어엉!
부웅
“스윙! 아웃!”
“우아아아아!”
“미쳤다! 미쳤어!”
“수혁아! 이 미친놈아!”
“시발! 진짜! 존나! 개쩔어!”
관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친 듯한 함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워리어스의 야수들이 마운드 위로 달려왔고, 한수혁은 별 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뺨을 긁적거리고 있었다.
한국프로야구 46년 역사상 첫 퍼펙트 게임.
멋있었다.
같은 남자인 매니저가 봐도, 고용주 때문에 이제 막 야구를 알아가고 있는 초보 팬의 시선으로 봐도 한수혁은 정말 매력적인 선수였다.
이제야 이해가 간다. 한수혁만 보면 미쳐 날뛰는 고용주의 마음이.
매니저가 조금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예린아, 진짜 대단하다. 네가 롤렉스 구해놓으라고 할 때만 해도 내가 설… 예린아?”
옆을 돌아본 매니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옆에서 달달달 온몸을 떨고 있던 민예린이 어디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이 빠르게 전방으로 향했다.
역시나 있었다. 바로 거기에 있었다.
흥분한 민예린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스피드로 안전망을 타고 오르고 있었다.
저 멀리 달려오는 구장 관리요원을 향해 매니저가 말했다.
“저기, 선생님들.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오늘 날이 날인데 경찰에 연락은 안 하실 거죠? 물론 안전망이 조금이라도 훼손되면 저희가 바로 배상하겠습니다. 네, 네, 이해해주셔서 감사하고요.”
* * *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가 바뀌다. 서울 워리어스 한수혁, 사상 첫 퍼펙트게임 달성] [9이닝 투구 수 100개, 18탈삼진(단일 경기 최다 탈삼진 타이), 그야말로 압도적인 피칭] [워리어스 이대준 감독 “우리는 오늘 위대한 선수의 탄생을 함께 목격했다”] [경기가 끝난 후 곧바로 병원 후송된 장덕수 “너무 긴장해서 위경련이 왔다”] [오늘 단 하나의 타구도 잡지 못한 워리어스 외야수 월터 스미스 “오늘 난 가장 비싸고 좋은 좌석에서 한 편의 영화 같은 경기를 관전할 수 있었다”] [매지션스 주석도 감독 “한수혁이 대단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정면승부를 후회하냐는 질문에 주석도 감독 “아니다. 우리 선수들은 정말 잘 싸웠고, 그래서 후회는 없다. 다만 상대가 너무 강했을 뿐이다.”] [WBC 대표팀 동료였던 매지션스 김성수 “누군가 한국 야구의 수준을 묻는다면 한수혁의 경기 영상을 보여주면 된다. 그럼 모두 입을 닫을 것”]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뉴욕 연고 구단 스카우터 “오늘부터 한수혁은 영입 대상 1순위”]“선배님, 이쪽이에요.”
“어, 그래. 수혁아. 밖에서 따로 보니까 좀 이상하네. 그런데 무슨 일인데?”
WBC 이후 리그 첫 복귀전에서 발가락 부상을 당한 수원의 정대한은 라인업에서 빠진 채 치료를 위해 서울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걸려온 한수혁의 전화. 병원 근처에서 잠깐 만났으면 좋겠다는 말에 허겁지겁 약속장소로 달려왔다.
약속 장소인 커피숍, 그곳에 도착한 정대한에게 한수혁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게 뭐냐?”
“시계요.”
“시계? 무슨 시계?”
“미국전에서 제 공 잘 받아 주신 거 감사해서요.”
“어? 아, 아, 그거? 야, 그런데 퍼펙트 게임도 아니고 노히트노런인데 무슨 시계까지. 됐어, 그냥 덕수나 챙겨줘.”
“덕수 선배님 것도 따로 준비했어요. 받으세요.”
“진짜? 야, 넌 이제 1년 차가 연봉이 얼마나 된다고…….”
정대한이 겸연쩍다는 표정을 지으며 케이스를 열었다. 시계에 대한 전문지식은 없지만 척 봐도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모델이다.
“이게 롤렉스라는 거구나. 야… 이건 진짜 부담스러운데? 난 시계라고 해도 그냥 저가 라인인 줄 알았는데 이거 얼마냐?”
“그냥 받아주세요. 어차피 거기 밴드에 제 이름까지 새겨서 반품도 못 해요.”
“이름? 어? 그러네. 와… 이거 그럼 한수혁 에디션이잖아? 야, 너 나중에 메이저 진출하고 그러면 이 시계 겁나 비싸지겠는데?”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 정대한이 시계를 조심스럽게 케이스에 다시 넣으며 한수혁에게 말했다.
“수혁아.”
“네?”
“같이 사진 한 장만 찍어 줄래? SNS에 좀 올리게.”
안 그래도 후반기 복귀전에서 부상을 당하고, 꼭 그때문은 아니지만 수원이 루징 시리즈를 기록하며 팬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던 참이다.
이럴 때 한수혁에게 시계를 선물 받고 함께 사진을 찍어 올리면 이미지 관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WBC 때의 영광의 기억이 지금 이 순간의 암울함을 가려주지 않을까?
“자, 그럼 찍는다. 치즈~”
* * *
시계를 받아야 하는 건 정대한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쪽이 훨씬 더 중요했다.
“선배님, 이거 받으세요.”
“이게 머여?”
“시계요. 어제 퍼펙트 게임 같이 달성한 기념이요.”
“내가 뭘 했다고 이런 걸 준디야. 됐어. 넣어둬. 경기 끝나자마자 병원 실려간 놈이 뭔 낯으로 이걸 받는디야.”
“받아주세요. 거기 밴드에 제 이름도 새겨 놔서 반품도 못 해요.”
“허미… 수혁아. 고맙다, 고마워.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고마워. 이거 내가 잘 차다가 자식 놈한테까지 물려줄게.”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매지션스와의 2차전을 앞둔 잠실 야구장.
선물을 받아 든 장덕수가 세상 다시없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물론 나도 선물을 준비하려 했다.
미국에서도 퍼펙트 게임과 노히트노런 때마다 포수에게 시계를 선물했었으니까.
이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지금 우리 팀에서 뛰고 있는 월터 스미스 역시 노히트노런 배터리로서 내게 시계 하나를 선물 받은 바 있다.
경기 때문에 직접 움직이기는 힘들어 성훈이 형에게 부탁하려 했는데…….
어제 경기 후 돌아온 집 앞에서 민예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오늘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고마워. 아까 보니까 또 끌려 나가던데 몸은 괜찮아? 다친 데는 없고?’
‘전혀요. 그것보다 이거부터 받으세요.’
‘이게 뭔데?’
‘롤렉스요.’
‘응?’
‘정대한도 줘야 하죠? 그래서 두 개 준비했어요. 받으세요.’
‘야, 이걸 네가 왜 사? 안 그래도 내가 사려고 했는데.’
‘오빠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요? 남자가 큰 일을 해야죠. 이런 세세한 거 신경 쓰지 마시고 오빠는 야구만 열심히 하시면 돼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그걸 왜 네가 알아서 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내려갔다.
그 말을 하는 민예린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알았어. 이거 얼마짜리야? 내가 바로 돈 줄게.’
‘에이, 괜찮아요. 선물이라니까요?’
‘안 돼. 이게 한두 푼도 아니고 이런 걸 어떻게 선물로 받아? 잔말 말고 가격이랑 계좌 메시지로 넣어줘. 바로 돈 보내줄게.’
‘히잉… 안 그래도 되는데… 알았어요. 그럼 보내 드릴 테니까… 전번 좀…….’
‘응?’
‘저 오빠 전화번호 몰라요.’
‘진짜……?’
세상에, 그러고 보니 아직 그녀에게 전화번호조차 안 가르쳐준 상태였다.
당황한 내가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자 민예린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꼭 끌어안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모르겠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세상에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나 싶었는데 이제는 어느새 그녀가 없는 공백이 느껴질 정도로 민예린에게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아버지와 함께 우리 집에 들어와 이상한 소리를 하던 그 여자가 내 배터리에게 줄 롤렉스를 챙겨주는 사이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야, 한수혁, 뭐 하냐?”
“이 세상의 이치와 인간관계의 오묘함에 대해 진지한 성찰 중이시다. 풋내기는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거지.”
“뭐라는 거야. 야, 너 퍼펙트 게임 했다고 지금 잘난 척하는 거야?”
“잘난 척 좀 해도 되지 않을까? 46년 역사상 첫 번째라는데.”
“젠장, 두고 봐라. 내가 오늘 꼭 4연타석 홈런을 날려서…….”
“그래도 퍼펙트 게임에는 안 될걸.”
“그럼 4연속 출루에 8연속 도루 성공을…….”
“글쎄, 할 수 있으면 해보던지.”
“…….”
어제 경기 이후 뭔가 충격을 받았는지 내게 말조차 걸지 못하던 서형주가 이제야 본래의 얼굴로 돌아와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처음 회귀를 했을 때만 해도 오직 성훈이 형 하나뿐이었던 내 주변에 점점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본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을 그런 사람들이다.
내 운명이 바뀜으로써 그들의 운명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어쩌면 나는 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짊어지고 이번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 연습 시작하자. 어제 타자들 아무것도 못 했잖아. 오늘은 제대로 한번 보여줘야지, 안 그래?”
“네, 주장!”
조성오 선배의 말에 선수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어색하기만 하던 이 왁자지껄한 분위기, 서슴없이 내게 다가와 농담을 걸어 대는 동료들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하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과연 이럴 자격이 있을까?
저 혼자 잘났다고 제멋대로 살다가 모든 걸 망쳐버린 내게 신은 왜 두 번째 기회를 준 것일까?
나는,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 척 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 되는 걸까?
“수혁아, 네 차례다.”
조성오의 목소리에 잠깐의 상념이 깨어지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래, 지금 내가 할 일은 그런 쓸데없는 걸 고민하는 게 아니다.
지난 생애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 그리고 지금도 가장 원하는 것.
오직 그것 하나만을 위해 달려갈 때다.
따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