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4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42화(143/412)
#142. 야구장에 야구가 아닌 것을…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피부색은 그 이유에 포함될 수 없다]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였던 재키 로빈슨이 처음 빅리그에 데뷔했을 때 백인들이 보인 그에 대한 거부감과 적대감은 지금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재키 로빈슨과 다저스 구단 앞으로 죽여버리겠다는 내용의 협박 편지가 셀 수 없이 날아들고, 심지어 같은 편인 다저스 선수들이 모여 경기 파업을 모의하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자기 편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재키 로빈슨이 처음 빅리그 무대에 데뷔하던 날.
관중들이 쏟아내는 야유와 인종차별 발언으로 경기장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닫던 그때, 다저스의 1루수로 나섰던 백인 피 위 리즈가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재키 로빈슨을 포옹했다.
그것은 흑인을 받아들이는 걸 거부하던 미국 야구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는 사건이었다.
피 위 리즈는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건 피부색이 아니라 실력이라고.
그리고 이 말을 남겼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피부색은 그 이유에 포함될 수는 없다.
나는 이 말을 조금 다르게 바꿔보고 싶다.
그라운드에서 중요한 건 출신 학교가 아니라 실력이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출신 학교는 그 이유에 포함될 수는 없다.
흠, 조금 오지랍인가.
그냥 경기를 준비하던 과정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홈팀과 원정팀의 훈련이 모두 끝나고 양팀 선수들이 경기 준비를 마무리하던 그때, 타이탄스 덕아웃 쪽에서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시건방진 새끼가, 어디서, 마! 니가 뭐라고 함부로 나대나? 어?”
“형님, 잠시만요. 제가 하겠습니다. 저기, 주호 형. 너무 나가신 거 같은데요. 경도 형님한테 사과하세요.”
사실 우리가 알 바는 아니었다. 확실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았고 말이다.
그냥 타이탄스 선수들끼리 뭔가 말다툼이 있었구나, 그리고 그중 하나가 베테랑 김주호구나 하는 정도가 우리가 알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1회초 타석에 들어선 나는 이번 사태가 생각보다 조금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 선발로 나선 타이탄스의 2년 차 투수 이규민을 상대로 우리 워리어스 타선이 1회부터 폭발했다.
1번 서형주가 상대 투수에게 공 10개를 골라낸 끝에 결국 볼넷으로 출루했다.
진골 출신으로 2군에서도 오냐오냐 보살핌을 받으며 곱게 자라온 부산 투수 이규민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1군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한 상황이다.
그런데 첫 타자를 상대하면서 벌써 문제가 발생했다.
올시즌 도루 1위 자리를 다투고 있는 워리어스의 리드오프를 1루로 출루시키고 만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1루에 나간 서형주는 계속 바쁘게 움직이며 투수의 집중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세이프!”
“세이프!”
“세이프!”
“우우!”
뛸 듯 말 듯 계속 신경을 건드리는 서형주로 인해 이규민의 어깨에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차라리 깔끔하게 2루 도루를 주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형주는 끝까지 뛰지 않았고 결국 제구가 흔들린 이규민은 다음 타자 최민석에게까지 볼넷을 허용하고 말았다.
무사 주자 1, 2루.
3번 조성오가 친 타구가 1-2루 사이로 날아갔을 때 모든 사람들이 타이탄스의 멸망을 떠올렸다.
하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그 타구가 2루수의 글러브에 걸려들며 적시타가 아닌 진루타가 되었다.
1사 주자 2, 3루 상황이 만들어졌다.
내가 6번으로 빠졌지만 워리어스 타선의 응집력은 대단했다.
따아악!
4번 타자로 나선 월터 스미스가 이규민의 초구를 그대로 받아쳤다.
45도 각도로 솟구친 거대한 타구가 외야를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2루! 2루!”
다행히도 워낙 발사각이 컸던 덕에 담장을 넘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다행일까? 차라리 홈런을 맞고 새로 시작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월터에게 2타점 2루타를 허용한 이규민은 이미 반쯤 혼백이 달아난 상태였다.
그리고 안치욱이 거기에 쐐기를 박아버렸다.
따악
안치욱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1-2루간 총알 같은 타구.
이번에는 행운의 여신이 이규민을 외면했다.
2루수 글러브를 스친 타구가 외야로 데굴데굴 굴러갔고, 그 사이 월터 스미스가 거대한 몸을 이끌고 죽어라 홈을 향해 뛰었다.
타이탄스의 우익수 최인선이 그 타구를 향해 달려 들었다. 빠르게 송구를 하면 홈에서 승부를 노려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평소 튀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거라는 좌우명을 갖고 있던 최인선은 담담한 표정으로 홈 대신 2루를 향해 공을 던졌고, 그 사이 월터가 홈으로 들어오며 스코어는 3 대 0이 되었다.
“하아…….”
타이탄스 덕아웃에서 짙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결국 타이탄스의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올라오고 야수들이 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괜찮아, 규민아. 마, 이정도 갖고 뭘 그리 쫄아? 겁내지 마! 이런다고 너 2군으로 안 쫓겨난다. 내가 지켜줄게!”
“우리 규민이 겁먹었네. 하이고, 고놈 참. 됐고, 빨리 경기 끝내고 형하고 물회나 한사바리 하러 가제이.”
성골 이규민의 동문이자 타이탄스의 핵심 세력인 선배들이 그를 둘러싸고 계속 위로를 해준다.
하지만 그 가운데 오직 한 사람, 오늘 경기 전 덕아웃에서 팀 주류 세력들과 충돌했던 3루수 김주호는 소외되어 있었다.
대기타석에 있던 나는 이상하게도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다른 선수들 사이에 끼지 못하고 계속 주변을 맴도는 김주호의 쓸쓸한 옆모습에서 말이다.
타석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새삼 실감이 났다.
이 한국 야구판에서 지연과 학연이라는 게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지 말이다.
하기사, 워리어스 역시 내가 구단을 인수하고 철밥통 감독과 코치, 프런트 직원들, 거기에 황성민 같은 썩은 물들을 싹 다 치워버린 후에야 간신히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되었으니, 다른 구단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
성훈이 형의 말에 따르면 아직도 선수들 중 극히 일부와 프런트 직원들이 파벌을 이루려는 시도를 한다고 한다.
싹 다 갖다 버리라고 하는 내게 성훈이 형이 이렇게 말했다.
‘수혁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쩔 수 없어. 서로 만나면 고향부터 물어보고, 출신 학교가 어딘지 궁금해하고, 조금이라도 인연이 닿는 사람들 챙겨주려 하고, 그냥 이건 이 사회가 그런 거야. 너무 욕할 필요는 없어. 선을 넘지만 않게 잘 조절하면 돼.’
일단은 알겠다고 했다. 형의 말처럼 너무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어쨌든 저 타이탄스라는 팀은 내 생각보다도 훨씬 썩어 있는 듯하다.
한 팀에서 FA를 포함해 15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선수, 그것도 부주장인 베테랑을 저렇게 눈에 보일 정도로 왕따를 시키다니.
지금 김주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저 선수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한국에서 어떤 선수인지는 잘 모르지만 지난 삶에서 마흔이 다 되어 가는 한국 선수가 마이너리그에 도전했고, 그 선수의 이름이 김주호였다는 것 정도는 확실히 기억한다.
KBO에서도 단 한차례도 풀 시즌을 뛰어본 적이 없는 유리 몸, 서른 중반부터 매년 팀을 바꿔가며 저니맨 생활을 해온 그의 빅리그 도전기가 미국 방송을 통해 소개된 적이 있다.
몸을 아끼지 않고 팀에 헌신했던, 하지만 어느 순간 시작된 잦은 부상으로 매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는 이제 타이탄스와의 계약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다.
글쎄, 나는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모든 이들에게 버림받은, 어찌 보면 이 한국야구판의 비주류라 할 수 있는 그가 지금 무슨 생각으로 타이탄스 3루를 지키고 있는지, 자신을 무시하는 팀 동료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고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패거리를 이루고, 그 주류에서 벗어난 동료를 왕따시키는 저 행각이 내 신경을 건드린다는 거다.
“수혁아, 잘 지냈지? 오늘은 꼭 형이랑 회 한사바리…….”
“선배님.”
“어, 수혁아. 왜? 드디어 형이랑 술 한 잔 할 생각이 난 건가? 잘 생각했데이. 내가 안 그래도…….”
“야구가 대체 뭘까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야구가 뭐냐니? 공 던지고, 치고, 받고, 뭐 그런 아닌가?”
“그렇죠?”
알고 있다.
포수 마스크를 쓴 채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 구재현이라는 선수에게는 별다른 잘못이 없다는 걸.
팀 내 진골에 해당되는 진서고 출신이지만 이 사람 좋은 호인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모두와 잘 지내는 사람이라는 걸.
그렇기에 그에게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내 속에 맺히기 시작한 말들이 어디론가 향했고, 마침 그곳에 구재현이 있었을 뿐이다.
“오늘은 야구 좀 해야겠네요.”
“뭐? 야, 네가 지금까지 한 게 야구가 아니면 무슨…….”
그 순간 간신히 멘탈을 되찾은 이규민이 나를 향해 초구를 던졌다.
이규민이라는 선수를 1군 무대에서 버티게 해준 슬라이더의 제구가 흔들리며 목표했던 곳보다 조금 더 존 안으로 들어왔다.
부웅
따아아아악!
조금은 무리한 자세에서 그 공을 있는 힘껏 밀어쳤다. 평소 같으면 그냥 두고 봤을 공이지만 왠지 그러고 싶었다.
“우아아아아!”
“한수혁!”
“수혁아!”
까마득하게 솟아오른 공이 사직야구장의 우측 펜스를 향해 힘차게 날아간다.
부산의 우측 외야를 지키는, 오늘 김주호를 구석으로 모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이들 중 하나인 진골 최인선이 육중한 몸을 뒤뚱거리며 타구를 쫓아간다.
하지만 타구는 떨어지지 않고 계속 날아갔다.
배트를 집어 던지는 대신 그대로 바닥에 박아넣고 마치 지팡이처럼 짚은 채 그 타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타구가 사직야구장 우측 관중석 최상단에 떨어졌다.
“꺄아아아악!”
“수혁 오빠! 오빠야!”
“한수혁! 한수혁! 한수혁!”
사직야구장을 가득 메운 워리어스 팬들이 미친 듯이 함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한참 동안 타석에 선 채 타구를 감상했던 내게 타이탄스 선수들이 적의 가득한 시선을 보내온다.
상관없다. 야구장에 야구 아닌 것들을 끌고 들어온 놈들에게 예의 따위를 차려줄 생각은 없다.
배트를 휙 집어 던지고 베이스를 향해 출발했다.
1루를 돌아 2루로, 3루로, 다시 홈으로.
대놓고 덤비는 놈은 하나도 없었지만 살갗이 따끔거릴 정도의 적의가 느껴진다.
오직 한 사람, 3루수 김주호에게서만은 적의가 아닌 경쟁심이 느껴졌지만.
턱
내 오른발이 홈플레이트를 밟는 순간 사직야구장 전광판의 3이라는 숫자가 5로 바뀌었다.
그것은 오늘 타이탄스의 운명을 예고하는 신호탄과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