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44)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43화(144/412)
#143. 내 영역의 크기
“Fuck!”
“야! 쟤, 말려!”
“라파엘! 컴다운! 컴다운! 야! 안 돼”
부산 타이탄스의 1루 용병 라파엘 호르헤, 평소에도 성격 더럽기로 유명한 그가 홈팀 관중석을 향해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경기가 잠시 중단되고 심판들이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6회초, 워리어스가 타이탄스를 8 대 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
1회 한수혁의 투런 홈런을 포함 타자 일순하며 여섯 점을 뽑아낸 워리어스는 이후 조성오의 홈런과 장덕수의 적시타 등에 힘입어 일방적으로 타이탄스를 학살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한수혁은 5회말까지 볼넷 한 개를 내준 걸 제외하면 타이탄스의 타선을 완벽히 봉쇄하며 승리투수 요건을 갖춘 상태였다.
겨우 5이닝 만에 10개의 삼진을 헌납한 한심한 타자들.
얼마 되지 않는 타이탄스 홈 팬들이 자기 팀 선수들을 향해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욕설을 알아들은 1루수 라파엘 호르헤가 폭발한 모양이다.
모르겠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자기 팀 관중들한테 저렇게 욕설을 내뱉는다고?
타이탄스 감독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저런 상황이면 1루수를 교체할 법도 하건만 타이탄스 벤치는 움직이지 않았고, 결국 그 상태로 경기가 다시 재개되었다.
“야, 빈볼 조심하고, 1루 나가더라도 저놈 괜히 자극하지 마라. 괜히 한 대 맞고 울지 말고.”
“뭐래, 나도 싸움 잘하거든?”
“라파엘 저놈 팔뚝이 네 허벅지만 한데?”
“…젠장.”
잠시 뒤로 물러나 있던 안치욱이 다시 타석으로 들어섰다.
크게 벌어진 스코어, 거기에 자기 팀 팬들의 야유에 흥분한 타이탄스 선수단.
이래저래 빈볼이 나오기에 딱 좋은 상황이다.
만약 저놈들이 시비를 건다면 지금이 딱 적당한 타이밍이다.
보복구 때문에라도 투수인 나를 노리지는 못할 테니 만만한 신인인 안치욱이 타겟이 될 확률이 상당히 높다.
“볼.”
부웅
“스트라이크!”
만에 하나, 저 투수가 안치욱의 몸을 맞춘다면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마운드로 뛰어올라가 놈의 턱에 펀치를 날려버릴 것이다.
내 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을 건드리는 놈들에게 자비 따위는 없다.
성훈이 형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시간 나와 함께 하고 있는 동료 선수들은 당연히 그 영역 안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따악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타이탄스의 투수는 결국 안치욱에게 빈볼을 던지지 못했다.
몸쪽 가까이 공이 날아왔지만 맞지는 않았다.
오히려 안치욱이 그 공을 멋지게 받아 쳐 우전 안타로 만들어버렸다.
1루에 도착한 안치욱에게 라파엘 호르헤가 또 뭐라 중얼거리는 것이 눈에 보인다.
“쟤는 아무도 통제를 못 하는 건가요, 아니면 안 하는 건가요?”
“…….”
홈플레이트 뒤에 앉은 구재현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첫 타석에서 내가 한 말이 마음에 안 든 건지, 아니면 단순히 라파엘을 입에 담은 것 자체가 짜증이 난 건지, 둘 중 어느 쪽인지 잘 모르겠다.
상관없다. 굳이 대답이 듣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니니까.
그냥 같은 국적의 선수들끼리도 출신 학교 따라 편가르기를 하는 양반들이 저렇게 안하무인으로 구는 용병은 왜 그냥 두고만 보는 건지 그게 궁금했을 뿐이다.
됐다.
야구나 하자.
“볼.”
“볼.”
“볼.”
“볼.”
“흠.”
“…….”
아무래도 삐진 것 같다. 여전히 아무 말 없는 구재현을 그대로 두고 1루로 향했다.
여덟 점 차이로 지는 상황에서 굳이 내게 볼넷을 줄 이유는 없을 거다. 그냥 제구가 잘 안 되는 거겠지.
1루를 향해 반쯤은 걷듯 천천히 들어갔다.
그런 나를 라파엘 호르헤가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 *
– 5이닝을 완벽히 막아내면서 일찌감치 승리투수 요건을 갖춘 한수혁 선수가 이번에는 타석에서 볼넷으로 출루합니다.
– 다행입니다. 저는 행여나 빈볼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타이탄스 벤치에서 선수들을 잘 컨트롤한 것 같습니다.
– 빈볼이요?
– 네, 사실 지금 분위기가 딱 싸움 나기 좋은 상황이거든요. 홈 경기인데 관중석에는 원정팀 팬들이 더 많지, 실망한 홈 관중들이 자기 선수들한테 욕을 해대지, 게임은 개발… 아니, 큰 점수 차로 지고 있지, 이거 뭐 싸움이 안 나는 게 이상한 상황이거든요.
그러고 보니 그랬다.
아나운서의 시선이 그라운드를 천천히 훑었다.
여전히 경기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워리어스 선수들, 반면 세상 다 산 듯한 얼굴로 짜증을 팍팍 부리고 있는 타이탄스 선수들.
관중석에서는 원정 온 워리어스 팬들과 홈팀인 타이탄스 팬들이 여기저기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고, 양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로 다른 응원 구호가 엉키며 경기장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었다.
‘진짜 뭔 일이 나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네.’
아나운서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때.
뻐어억!
“꾸웩!”
1루 베이스 쪽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거구의 타이탄스 용병이 피를 토하며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양팀 덕아웃에서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고 곧 그라운드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이게 대체 무슨…….”
* * *
시뻘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타이탄스 1루수 라파엘 호르헤가 먼저 말을 걸었다.
“네가 이번 WBC MVP라고?”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큰 점수 차로 앞서고 있는 경기, 가을야구를 위해 승리 하나하나가 소중한 상황에서 성질 더러운 용병 놈의 분탕질에 말려들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으니까.
그저 조용히 경고만 날려 주었을 뿐이다.
“야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거면 네 팀 동료들하고 하던지.”
입 닥치고 야구나 하란 뜻이었다. 하지만 라파엘은 그런 내 말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듯했다.
“동료? 흠, 글쎄, 저런 멍청한 놈들을 동료라고 할 수 있을까?”
놈을 상대해주는 게 짜증 나 1루심을 바라보았다. 그가 이 아무 생산성 없는 대화를 멈춰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1루심은 착용하고 있는 장비에 뭔가 문제가 있는지 경기를 중단시킨 채 본부석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라파엘의 헛소리가 계속되었다.
“너도 빅리그에 갈 뻔한 선수이니까 잘 알겠지? 빌어먹을, 이 냄새나는 우리에서 야구를 한다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 마이너 수준도 안 되는 놈들하고 손발을 맞추는 게 얼마나 좆 같은 일인지 말이야.”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등신 같은 놈을 내치지 않는 한 타이탄스는 내년에도 암울할 거라는 것.
동료애, 그리고 자신이 뛰고 있는 리그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눈에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이런 놈을 단지 홈런 좀 잘 친다고 계속 기용하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장비 문제에서 시작된 경기 중단이 조금 길어지고 있다. 아마도 1루심이 차고 있던 캠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라파엘의 혓바닥이 계속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젠장, 난 이 부산이라는 도시가 너무 싫어. 자기 팀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내는 놈들에게 팬 대접을 해줄 필요가 있을까? 아까 나한테 욕을 했던 놈, 그놈은 밖에서 만나면 내가 반드시 죽여버릴 거야.”
“이봐.”
“왜?”
“그 팬들 주머니에서 네 연봉이 나오는 거야. 그리고 난 너희 팬들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으니까 불만이 있으면 프런트에 가서 말하든지.”
“흠, 역시 같은 피부색이라 그건가? 하긴, 팬들이 좆같기로는 너희 팀도 만만치 않지.”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라파엘이 뜬금없이 워리어스 팬들에게로 총구를 돌렸다.
내가 왜 이런 같잖은 놈에게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지 짜증이 울컥 솟구치던 그때, 놈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렸다.
“저기 외야에 매달려 있는 여자를 봐. 저거 너를 따라다니는 광팬이지? 미국에서 하는 짓을 봤는데 정말 크레이지하더군.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저 정도면 아주 쓸…….”
“닥쳐.”
“뭐?”
“닥치라고. 거기서 한 마디만 더 하면 죽여버릴 거니까.”
“호오… 뭐지, 설마 저 여자와 벌써 하룻밤을 보내기라도 한 건가? 그래서 이런 과민반응을 보…….”
“닥치라고 말했다.”
“흐흐, 역시 너도 좆 같은 이 나라 사람이군. 좋아, 오늘 있었던 일은 내가 SNS에 올려서 너와 그녀의 관계에 대해…….”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막연히 갖고 있는 내 영역의 크기를, 그 안에 누가 들어 있었는 지를.
라파엘이라는 쓰레기가 민예린을 입에 담는 순간, 그 더러운 혀가 나불거리며 그녀에 대한 험담을 내뱉는 순간.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꽈악
“입 닫으라고 했지, 이 빌어먹을 자식아!”
뻐어어어억!
“꾸엑!”
왼손으로 놈의 멱살을 잡아채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주먹이 날아왔다.
가볍게 그 주먹을 피해낸 후 놈의 턱을 향해 펀치를 날려버렸다.
입에서 피를 뿜으며 날아간 놈이 바닥에 쓰러진 채 사지를 부들거렸다.
“야, 뭐야! 뭐야!”
“몰라, 나도! 일단 나가봐! 야! 덕수, 너는 안 돼! 감독님, 저놈 좀 잡아주세요!”
“덕수야! 안 된다! 할머니가 하늘나라에서 보고 계실 거다! 안 돼! 사람 죽이면 안 돼!”
흥분한, 혹은 깜짝 놀란 동료들이 우르르 1루를 향해 달려 나왔다.
멍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보고 있던 타이탄스 선수들도 조금 늦게 그라운드로 나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심판들이 달려와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있었던 일이 밖으로 퍼지는 것 자체가 싫었다.
들것이 들어와 정신이 반쯤 나간 라파엘 놈을 그라운드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심판의 입에서 퇴장이 선언되었다.
내 두 번째 선발 등판은 그렇게 조금 일찍 끝을 맺고 말았다.
* * *
“흠, 한수혁 선수. 이리 앉으세요. 피곤하실 텐데 길게 붙잡고 있지는 않겠습니다. 빨리 끝내고 우리 선수들이 저 빌어먹을 타이탄스 놈들을 박살 내는 걸 지켜봐야죠. 자, 목이 텁텁할 테니 여기 이 차부터 한 잔 하시죠. 흥분을 가라 앉히는 데 아주 좋을 겁니다.”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좋아요.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1루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재철 단장이다.
오늘 내가 흥분한 이유를 파악해야 후속 조치를 할 수 있을 거다.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최대한 간략하게 방금 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 미친놈이 계속 한국야구, 그리고 팬들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다가 결국 민예린에 대한 희롱이 섞인 발언까지 이어졌다는 걸.
모든 걸 들은 박재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한수혁 선수, 제가 이 자리에서 약속드리겠습니다. 폭력에 따른 최소한의 징계는 피할 수 없겠지만 대신 그 미친놈은 반드시 이 나라에서 매장시켜 버리겠습니다.”
박재철 입장에서 민예린은 세상에 다시없을 은인이자 귀인이었다.
마케팅과 홍보, 그 외 구단 운영과 관련된 직간접적인 도움들까지.
그동안 워리어스를 위해 그녀가 해준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걸 돈으로 환산하면 대체 얼마가 될까?
매일 매일, 그녀가 워리어스 팬이라는 걸 감사하고 살아오던 박재철로서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었다.
“이제 모든 걸 알았으니 안심하고 숙소로 돌아가서 쉬고 계세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박재철의 눈동자가 흥분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