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46)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45화(146/412)
#145. 인천 3연전
“이쪽에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이제 곧 나오실 겁니다.”
한 번에 외우기조차 힘들 정도로 긴 직함을 가진 남자가 우리를 안내했다.
WBC에 참가했던 30명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광주 재규어스와의 3연전이 끝난 후 맞이한 휴식일, 오랜만에 모인 대표팀 선수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3연전에서 워리어스는 2승 1패로 위닝 시리즈를 기록했다.
언론에서는 3차전에 터진 내 47호 홈런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것보다 팀 승률이 드디어 6할을 넘겼다는 데 만족하는 중이다.
1위 인천 레인저스와의 승차가 4게임 차로 좁혀졌다. 너무 멀다고 생각했던 그 고지가 이제 눈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지난 WBC 브레이크 기간 동안 박재철 단장이 데려온 선수들이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이제 곧 부상으로 빠졌던 천상진 선배가 돌아올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입으로는 계속 우승을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 조금 불안했던 건 사실이다. 시즌 초반 워리어스의 전력은 아무리 포장해도 엉망 그 자체였으니까.
물론 아직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제는 그 누구도 우리의 우승 도전에 대해 비웃지 않는다는 거다. 최소한 우승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정도의 전력은 갖추게 되었다는 뜻이다.
구단주의 병신 같은 짓과 선수단 내의 파벌 싸움으로 개판 나 있던 꼴찌팀이 말이다.
“나오십니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선수와 관계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후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영빈관 구석에 자리 잡은 카메라맨 몇이 그 광경을 열심히 영상과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다들 운동하느라 바쁘실 텐데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가를 빛낸 분들에게 밥 한끼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제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이라 이렇게 부득이하게 여러분들을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단 음식이 식기 전에 식사부터 하시죠.”
간단한 인사말을 끝으로 대통령과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음식은 솔직히 그저 그랬다. 가뜩이나 음식의 맛 같은 데는 별로 관심이 없는 데다가 이곳 영빈관의 음식은 여전히 싱겁고 밍밍했다.
예전 삶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한수혁 선수, 반갑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 선수는 꼭 한번 만나고 싶었어요.”
어색한 침묵 속에 식사가 끝났다. 테이블을 돌며 선수들과 하나하나 인사를 나누던 대통령이 내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대답이 너무 짧았던 걸까. 대통령 옆 비서실장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다.
신경 쓰지 않았다. 솔직히 내 알 바 아니다.
“WBC 우승이라니… 솔직히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바람 같아서는 수고하신 여러분들에게 병역 혜택이라도 주고 싶지만… 하하,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죠. 아쉬울 뿐입니다.”
병역 특례라… 상관없다. 나는 이제 스무 살이다. 앞으로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불편한 시간을 끝내고 훈련장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제가 우리 야구계를 위해서 해줄 일이 있을까요? 평소에 생각하신 게 있으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대통령의 말에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뻔히 쳐다보았다.
회귀 전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이곳 청와대의 주인은 이 사람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다음 대의 대통령이었지.
그도 내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대통령으로서 야구계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겠냐고 말이다.
없긴 왜 없어. 당연히 있지.
“새로운 구장이 필요합니다. 선수들이 마음껏 플레이하고, 관중들이 편안하게 야구를 볼 수 있는.”
“음?”
“지금 서울과 부산에 있는 구장은 이미 그 기능을 잃은 지 오래거든요. 야구장이나 하나 지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 안 되면 야구장을 지을 부지라도.”
“험험험.”
“국유지 중에 노는 땅이 많을 텐데 이상한 것 그만 짓고 야구장이나 하나 지어주시죠.”
내 말이 끝나자마자 비서실장이 당장이라도 불을 뿜을 듯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고, 대통령의 얼굴에는 난감함이 떠올랐다.
왜? 뭐 어쩌라고?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며?
* * *
“수혁아, 내 말 무슨 뜻인지 이해했지?”
“네, 감독님.”
“좋아, 혹시나 나에게 섭섭하거나, 아니면 건의하고 싶은 건 없고?”
“없습니다.”
“고맙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내 선발 등판할 예정이었던 대구 버팔로스와의 홈 1차전이 우천으로 취소되었다. 암표상과 되팔렘들의 통곡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지만 그거야 뭐 우리가 알 바는 아니었다.
어쨌든 이대준 감독은 내 선발 순서를 뒤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아예 로테이션을 한 번 건너 뛰어 버리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부산전 스윕과 광주전 위닝으로 여유가 생긴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 대구전 다음으로 예정된 인천과의 원정 경기에 모든 걸 걸기 위해서였다.
4게임 차로 우리를 앞서고 있는 인천과의 3연전.
만약 그 3경기를 모두 쓸어 담을 경우 순식간에 1게임 차로 따라잡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이대준 감독은 인천과의 1차전에 천상진 선배를 등판시키기로 했다.
전반기 막바지 작은 부상을 당했던 천상진 선배는 복귀전에서 최강팀을 상대하게 됐다.
그 다음 날 열릴 2차전에는 파이터즈에서 이적해온 임시 선발 강동하가 나선다. 그리고 인천에서는 용병 데릭 벨이 등판할 예정이다.
임시 선발과 3선발의 매칭, 경기가 타격전으로 흘러가지 않는 한 워리어스에게는 힘든 하루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3차전에는 나와 임준영 선배의 매치가 준비되어 있다.
지난 WBC에서 함께 국가를 대표해 싸웠던 동료이자 국내 최고를 다투는 투수와의 첫 선발 맞대결이다.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난 WBC에서 호주와 쿠바를 힘으로 눌러버린 임준영 선배의 실력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실제 지난 WBC 이후 임준영 선배의 몸값이 꽤나 높아졌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FA 영입을 노리는 우리팀에게는 부담스러운 소식이지만…….
음, 나는 나와 맞대결을 하는 투수가 강할수록 더 힘이 나는 타입이라서.
* * *
“야, 쟤들 언제 여기까지 따라왔냐?”
“진짜 장난 아니네. 설마 저게 될까 했는데 되네?”
“쉿, 감독님 오신다.”
워리어스와의 3연전을 앞둔 인천 레인저스의 전력분석실.
그 좁은 공간에 모여 있던 전력분석팀 직원과 코치, 그리고 임준영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프런트 재직 시절부터 국내 최고의 세이버매트리션으로 불렸던 구용식 감독.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인천을 1위 자리에 올려 놓고 있는 명장.
그가 굳은 표정으로 전력분석실 안으로 들어섰다.
“아, 됐어요. 그냥 앉아 계시고, 시간 없으니 바로 시작하죠.”
“네, 감독님.”
“다들 알다시피 워리어스가 버팔로스전에서 1승 1패를 기록하면서 4게임 차로 쫓아왔습니다.”
“정말… 많이 따라왔네요.”
“맞아요. 올해도 커맨더스, 아니면 매지션스가 경쟁 상대라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이번 3연전은 올 시즌을 결정지을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준영아, 다른 선수는 몰라도 에이스인 너는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
“네, 감독님.”
“한수혁이 아무리 대단한 투수라고 해도, 네가 싸워야 할 상대는 그 녀석이 아니라 워리어스 타자들이라는 것 명심하고.”
“알고 있습니다.”
“좋아, 네가 괜한 짓 하지 않을 놈이란 건 내가 더 잘 아니까 더 이상 길게 말하지 않으마. 어제 경기분까지 업데이트 된 자료, 한 번이라도 더 살펴보고. 경기 잘 준비해다오. 우리 팀의 에이스로서 말이야.”
“절대 지지 않겠습니다.”
임준영의 눈동자에 결연한 의지의 빛이 떠올랐다.
* * *
“오랜만에 마운드에 서니 좋네.”
“형, 얼굴 좋아 보이네요. 한번 쉬어 가는 타이밍이 적절했나 봐요.”
“그래? 하하, 고맙다, 수혁아. 앞으로는 안 다치게 몸 관리 잘할게. 나 없는 동안 고생했다.”
부상으로 선발 로테이션에서 빠져 있던 천상진이 드디어 팀에 복귀했다.
인천과의 원정 3연전 첫 경기, 상대팀의 2선발인 마이크 클락과 대결을 펼치게 된 천상진 선배가 가벼운 표정으로 러닝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그 옆을 따라 걸으며 천천히 몸을 풀었다.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머릿속이 온통 야구로만 꽉 차버리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 야구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인 천상진으로서는 부상으로 선수단에서 제외되어 혼자 재활을 하는 과정이 꽤나 지루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올 시즌 첫 1군 무대를 경험하고 있는 천상진의 육체에는 이번 부상으로 인한 휴식이 꽤나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강우찬, 최근 다섯 경기에서 바깥쪽 낮은 코스 공에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
물론 몸은 쉬었지만 머리는 쉬지 않았는지 지금 이 순간에도 저렇게 상대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계속 암기하고 있지만 말이다.
“상진, 음… 허벅지는 괜찮은가? 종아리는? 조금이라도 불편한 것 같으면 바로 날 찾아와.”
“네, 트레이너님.”
총 144경기를 치러야 하는 장기 레이스다.
시즌 초만 해도 형편없다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했던 워리어스가 이렇게 계속 기세를 유지하고 있는 데는 수석코치가 데려온 저 트레이너 군단이 큰 몫을 해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그리고 끝난 후, 한시도 쉬지 않고 선수들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관리해 주는 저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팀이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훅, 훅.”
훈련을 끝낸 선수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모자란 부분을 채우던 그때, 이대준 감독이 선수들을 덕아웃으로 불러 모았다.
“얘들아, 1위팀과의 3연전이라고 너무 긴장할 것 없다. 아직도 34경기나 남았어. 시간은 충분해.”
어쩌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우승에 대한 열망이 강할 이대준 감독이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선수들을 다독였다.
“오늘은 상진이의 복귀전이다. 무리하지 않게 다들 잘 도와주고, 라인업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언제나 그렇듯 즐겁게, 야구는 일단 하는 사람들이 즐거워야 해. 괜히 목숨 걸고 싸우겠다느니 그런 소리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거만 하면 된다. 자, 이상.”
“네, 감독님!”
오늘 천상진 선배의 복귀전에 이대준 감독이 내세운 라인업은 이랬다.
1번 중견수 서형주
2번 좌익수 최민석
3번 유격수 한수혁
4번 1루수 조성오
5번 지명타자 월터 스미스
6번 3루수 안치욱
7번 포수 장덕수
8번 2루수 이창모
9번 우익수 김수학
체력적으로 약간의 불편함을 호소한 월터가 지명타자로 선 것 외에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라인업이다.
1위팀과의 매치업, 잘만 하면 경기 차를 1게임으로 좁힐 수 있는 찬스임에도 불구하고 이대준 감독이 짜 놓은 라인업에서는 그런 조바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팀의 주포라 할 수 있는 장덕수의 체력 관리를 위해 타순을 7번으로 내리는 여유까지 보여주었다.
좋은 지도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반기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나 역시 1위 자리까지는 욕심내지 않았다.
최소 4위, 최대 2위.
그것이 내가 워리어스에 바라는 이번 정규 시즌의 성적표였다. 그 정도면 한국시리즈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지난 시즌 꼴찌팀에서 이듬해 바로 정규 시즌 1위에 오른 기적 같은 팀.
지금까지 그 어떤 팀도 해내지 못한 그 기적 같은 일에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자, 얘들아. 한번 모여보자.”
그리고 이 사람들과 함께 그 영광을 누려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