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47)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46화(147/412)
#146. 벼랑 끝 승부
최고가 아니면, 1등이 아니면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는 하위권이 너무나 익숙해진, 하지만 한때는 우승을 위해 다른 구단 예산의 몇 배를 투입하곤 했던 대구 버팔로스가 대표적인 예다.
우리는 대한민국 넘버원 기업이다. 그러니 우리가 운영하는 스포츠팀은 무조건 우승을 차지해야 한다.
구단주의 마인드가 그러니 밑에서는 어떻게든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운영하는 구단은 대부분 구기종목이었다.
야구, 축구, 배구, 농구, 뭐 이런 종목들.
공은 둥글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압도적인 자금력은 그런 변수마저 완전히 집어삼켜 버렸다.
막대한 자금력으로 FA선수를 싹쓸이하고, 모기업이 흔들거리는 구단에 접근해 유망한 선수들을 쏙쏙 빼 내오고.
그렇게 대구는 한때 이 나라의 프로 스포츠를 지배했다.
스포츠에 크게 관심 없는 후계자가 회장직에 오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2027년 현시점에서 대구의 뒤를 잇는, 쉽게 말해 1등 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팀은 어디일까?
바로 통신과 자율주행, UAM 등의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국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인천 레인저스의 모기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구 감독, 이런 식으로는 곤란합니다. 제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3연전에 당신의 목이 걸려 있다고요.”
“죄송합니다.”
워리어스와의 1, 2차전 경기를 끝내고 이제 마지막 3차전만을 앞둔 인천 레인저스 사무실.
사장으로부터 직접 호출을 받은 구용식 감독이 담담한 표정으로 사장을 바라보았다.
결전을 앞둔 감독을 불러 이런 소리를 하고 있긴 하지만 멍청하기 짝이 없는 다른 구단의 사장들에 비하면 그닥 나쁜 사람은 아니다.
아니, 모기업으로부터 예산을 따오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면에서 보면 상당히 능력 있는 인물이다.
문제는 단 하나, 자신이 그런 사장,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기업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1등, 그것도 그냥 1등이 아닌 압도적인 1등.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 영입된 4명의 고액 FA, 외부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2백만 달러에 가까운 연봉을 주고 있는 세 명의 특급 용병들.
시즌 내내 선수단에 제공되는 최상급의 인프라와 지원까지.
이 모든 것들은 오로지 인천 레인저스 모기업의 1등 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구 버팔로스의 모기업을 넘어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1등 기업이 되겠다는 그들의 야심, 무조건 1등이 아니면 안 된다는 그들의 자존심.
구용식 감독은 지난 시즌 인천을 우승시키면서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3년짜리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리고 올해도 1위를 달리고 있다.
문제는 그 윗선이 원하는 게 단순한 1위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라이벌로 생각지도 않았던 서울 워리어스에게 뒤를 내주었다는 게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지난 1차전, 용병 마이크 클락이 선발로 나선 경기에서 인천은 4 대 3 역전패를 당했다.
철저한 데이터와 계산에 따라 투수진을 운영하고, 상대 타자를 공략했지만 결국 9회초 한수혁에게 2타점 역전 2루타를 맞으며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경기장에서 자신이 만든 제국, 그리고 그 휘하 병사들이 벌이는 전투를 관람하던 인천 레인저스의 구단주가 안색을 굳힌 채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그나마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세 게임 중 한 게임을 먼저 내준 것뿐이니까.
하지만 다음 날 열린 2차전에서 인천은 또 패배했다.
인천의 수뇌부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결과였다.
180만 달러나 주는 연봉을 주고 데려온 용병 선발이 워리어스의 임시 선발, 얼마 전까지 패전 처리 취급을 받았던 강동하와 맞붙어 깨지고 만 것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2차전은 인천 레인저스가 자폭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즌 전반기 장덕수와 시비를 벌이다 마운드에 심어졌던 특급 용병 데릭 벨, 그 녀석이 또 경기를 망쳐버렸다.
놈의 급한 성격과 다혈질에 대해 알게 된 워리어스 선수들이 끝없이 데릭 벨을 자극했다.
리드오프 서형주는 데릭 벨의 공을 계속 커트하며 투구 수를 늘렸고, 루상에 나간 주자들은 계속 도루를 시도하며 놈의 신경을 건드렸다.
차라리 데릭 벨의 성격이 폭발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벌개졌던 놈의 얼굴은 장덕수를 보는 순간 그대로 하얗게 질려버렸다.
기가 완전히 눌린 데릭 벨은 볼을 남발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 상대 선발은 점수를 내주더라도 꾸역꾸역 버텼다.
그렇게 경기가 타격전으로 흘렀고, 인천은 선발 매치업의 우세를 전혀 살릴 수 없었다.
2연패, 얼굴이 흙빛이 된 구단주가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순간 구단의 관계자들이 모두 고개를 떨궜다.
올 시즌 나머지 9개 구단 대비 거의 1.5배 이상의 예산을 사용하고 있는 인천 레인저스다.
모기업 회장 비서실로부터 전화를 받은 사장은 결국 구용식 감독을 호출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경기에서 지면… 당신뿐만 아니라 내 목까지 위험해진다는 거 잊지 마세요.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거 알고 있겠죠? 나가보세요. 그리고 무슨 수를 쓰든 이기세요.”
사장의 입에서 결국 최후의 통첩이 떨어졌다.
* * *
인천 선수단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아무리 나와 선발 맞대결이 예정되었다고 해도, 평소 같으면 우리 쪽으로 먼저 다가와 인사를 했을 사람이 이쪽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임준영 선배뿐만이 아니다.
한때 껄끄러운 사이였지만 미국전 이후 이상하게 친한 척을 하던 3루수 민주현 같은 선수들도 얼굴을 잔뜩 굳힌 채 나를 외면한다.
우리에게 2연패를 당해서? 경기 차가 2경기로 좁혀져서?
아니면 어제와 그제, 이틀 연속 구단주가 지켜보는 앞에서 경기에 패배해서?
글쎄, 확실한 건 오늘 경기를 끝내고 나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분위기 되게 살벌한데?”
“저기 저 분위기에 네 지분이 한 20프로는 될 거 같은데.”
“흐흐, 뭐 그건 칭찬이겠지?”
어제 경기에서 3번의 출루와 2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리드오프의 역할을 확실히 해낸 서형주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한때 대전의 골칫덩어리로 불렸던 놈은 이제 이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되었다.
경험이 부족하고 성격이 특이해 가끔 이상한 실수를 하곤 하지만 타고난 선구안과 배트 스피드, 그리고 스피드로 그것을 메꾸는 놈이다.
요즘 들어 자꾸 장타에 욕심을 부리는 것 같길래 몇 번 지적을 해주었더니 앞에서는 툴툴거리지만 결국은 그걸 받아들이는 여우 같은 놈이다. 자신에게 뭐가 도움이 되는지 확실히 알아차리는 능력을 갖고 있다.
“오늘 한우 내기 한 번 더 콜?”
저 멀리 가던 서형주가 휙 뒤를 돌아보며 나를 향해 소리쳤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팀의 핵심으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
빅리그 팀의 주전 중견수가 될 정도의 재능을 가진 서형주나 1년 차에 주전 3루수 자리를 꿰찬 안치욱, 올해 계약이 만료되는 서른다섯의 노장 조성오, 앞으로 4년 후면 FA자격을 얻게 되는 장덕수, 어쩌면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만식까지.
몇 년이 지난 후, 이들 중 몇 명이나 덕아웃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다음 단계를 위해 도전을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다른 환경을 찾아 팀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부상 때문에, 또 어떤 이는 그저 자연스럽게 유니폼을 벗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전광판에 새겨진 저 라인업을 보는 게 어쩌면 올해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그 사람들과 함께 뛰고 있는 동료로서, 그리고 그들이 떠난 후에도 워리어스를 계속 운영해야 하는 구단주로서,
나는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끼고 있었다.
* * *
“익!”
부웅
“스윙! 아웃!”
임준영이 단 4구 만에 서형주를 삼진으로 돌려 세웠다.
공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서형주가 허탈한 표정을 지은 채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와, 저 형 오늘 장난 아니네.”
“그 정도야?”
“네, 1회부터 155를 던진다고? 한 5회만 던지고 말 건가?”
“마지막에는 컷패스트볼이었지?”
“맞아요. 오늘 구속도 구속이지만 각이… 어휴.”
서형주가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최근 들어 상대 선발의 투구 수를 늘리는 데 재미를 들렸던 놈이 임준영에게 완전히 눌려버린 것이다.
오늘 이대준 감독은 임준영을 상대하기 위해 평소와 조금 다른 라인업을 내놓았다.
1번 중견수 서형주
2번 2루수 이창모
3번 1루수 조성오
4번 우익수 월터 스미스
5번 투수 한수혁
6번 포수 장덕수
7번 3루수 안치욱
8번 좌익수 최민석
9번 유격수 최진철
평소 최민석이나 안치욱이 들어서던 2번 자리에 이창모가 들어갔다.
어차피 임준영을 상대로 대량 득점은 힘들 거라는 계산 하에 타율은 낮지만 팀 배팅에 가장 능한 베테랑을 앞으로 세운 것이다.
내가 빠진 유격수 자리에는 유인철 대신 창원에서 데려온 최진철이 들어갔다.
유인철이 우리 팀 입장에서 반드시 키워야 할 신인이기는 하지만 한두 점 승부가 유력한 오늘 같은 경기에서는 수비력이 뛰어난 최진철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부웅
“스윙! 아웃!”
“음, 진짜 장난 아니네.”
“선배님은 그래도 임준영 선배 공 잘 치셨잖아요.”
“오늘 던지는 거 보니까 꼭 3년 전에 마무리로 뛰던 시절 생각나네. 전력투구야.”
굳이 이창모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늘 임준영이 진심 모드라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1회 전력투구는 그렇다 치고 타석에 조성오 선배가 들어섰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평소 인사까지는 아니어도 꼭 아는 체를 하던 사람이 말이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오늘 경기에서 꼭 이겨야 할?
음.
뭐 그렇다고 해도 일부러 져줄 생각은 전혀 없지만.
* * *
– 스윙! 삼진! 또 삼진입니다! 한수혁 선수가 5회말 인천의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며 경기는 여전히 0 대 0, 팽팽한 접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 대단하네요. 앞선 5회초 타석에서 임준영 선수에게 삼진을 당한 걸 분풀이라도 하는 건지 5회말 인천의 세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잡아냈습니다. 이렇게 되면 두 투수의 기록이…….
– 네, 임준영 선수가 5회까지 투구 수 77개, 삼진 5개를 기록하고 있고, 한수혁 선수는 투구 수 58개, 삼진 10개가 되었습니다. 두 선수 다 대단합니다. 오늘 두 팀의 타자들 중 그 누구도 1루 베이스를 밟지 못했습니다.
– 한수혁 선수도 그렇지만 오늘은 임준영 선수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네요. 하반기 들어 완전 물이 오른 워리어스 타선을 완전히 힘으로 누르고 있습니다.
– 위원님, 제 눈에는 후배에게 절대 질 수 없다, 뭐 그런 각오로 보이는데 제가 맞게 본 걸까요?
– 그런 것도 있을 거고… 오늘 경기마저 내주면 두 팀 간의 경기 차가 1게임으로 좁혀지잖습니까? 에이스로서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뭐 그런 감정도 한 몫을 하겠죠. 이유가 뭐든 간에 오늘 정말 대단합니다. 야구팬들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엄청난 투수전입니다.
– 이제 잠시 후면 클리닝 타임이 끝나고 경기가 후반부로 접어들게 됩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투수전이 이어질 경우 어느 팀이 유리하다고 보시는지요?
– 이건 제가 아무리 한수혁 선수 빠… 흠,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인천이 유리하겠죠. 이대준 감독의 평소 성향을 생각하면 아무리 한수혁 선수라 해도 오늘 또 완투를 시키지는 않을 거 같고요.
– 아무래도 그렇겠죠?
– 네, 하지만 ‘그 기록’이 또 가까이 다가오면 이대준 감독도 머리가 복잡해지기는 할 겁니다. 어쨌든 후반부로 가면 선수층이 풍부한 인천이 확실히 유리해집니다. 워리어스로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점수를 내야 하는 상황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