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4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48화(149/412)
#148. 구시대의 유물
[1위팀과 2위팀, 에이스와 에이스의 맞대결, 승자는 서울 워리어스] [7회말까지 0 대 0으로 팽팽하던 경기, 한수혁의 홈런이 모든 걸 바꿔 놓았다] [8회 타자 일순하며 여덟 점을 얻은 워리어스, 인천을 한 게임 차로 추격] [7회말까지 퍼펙트 게임 기록 중이던 한수혁, 팀이 8점을 낸 후 곧바로 마운드에서 내려와] [투수 교체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대준 감독 “수혁이가 원한 일이다. 두 번째 대기록 도전보다는 다음 경기를 위한 휴식이 더 중요하다고 하더라”] [7이닝 무실점, 투구수 83개, 삼진 13개, 압도적인 피칭으로 시즌 3승 수확한 한수혁] [8회 우르르 무너지며 여덟 점을 내준 인천 레인저스, 구용식 감독 “모두 감독인 내 잘못”] [분노한 인천 레인저스 구단주, 경기가 끝나기 전 자리를 떠]└레) 존나 허무하다…
└레) 임준영 시바, 진짜 존나 잘 던졌어. 그냥 한수혁이 너무 좆같았던 거지
└레) 솔직히 임준영이니까 8회까지 버틴 거지
└레) 그 뒤에 올라온 투수 새끼들은 빠따 좀 맞자. 한 이닝이 8실점이 제정신임?
└레) 하… 이러면 워리어스랑 한 게임 차 ㅋㅋㅋ 진짜 믿기지가 않네
└워) 어제 임준영 진짜 개쩔었다. 이번 시즌 잘 관리하고 우리한테 넘겨주면 될 듯
└레) 꺼져 병신아 임준영이 간다고 해도 연봉 맞춰줄 돈이나 있냐?
└워) 그건 우리가 걱정할 일이고 암튼 관리 잘해라. 다치게 하지 말고
└레) 하아… 이제 하다하다 저 새끼들한테 이런 소리까지 듣고 있네
7회까지 진행된 두 투수의 퍼펙트 행진, 하지만 8회 에이스가 무너지고, 뒤이어 등판한 불펜이 연쇄 폭발하며 스윕패를 당하자 인천 팬들의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가장 큰 비난을 받은 건 선수단이 아닌 구용식 감독이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대부분인 다른 팀 감독들에 비해 구용식에게는 그를 지지해줄 올드 팬들이 없다.
2군 무명 선수 출신의 그는 겨우 24살에 유니폼을 벗은 후 운영팀과 전력분석팀 등을 거쳐 감독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스윕 패를 책임질 희생양을 찾던 팬들은 그 분노의 화살을 감독에게로 돌렸다. 자신이 사랑하는 선수들보다는 그쪽이 좀 더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1위 팀이라고 해도 시즌을 치르다 보면 스윕을 당할 수도 있고, 한 이닝에 여덟 점을 내줄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1위이고, 남은 경기 일정과 전력을 감안할 때 여전히 1순위 우승 후보다.
그냥 운이 없었다 생각하고 다시 전력을 재정비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그뿐이다.
시즌 144경기를 치르는 프로야구만큼 팀 전력이 정확하게 반영되는 스포츠는 없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건 흔들리지 않는 꾸준함과 부동심이었다.
한 번 정한 길이라면 잠시 흔들린다 해도 꿋꿋이 버틸 수 있는 그런 부동심.
하지만, 가끔은 어떤 한 사람의 결정이 모든 것들을 망가뜨릴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압도적인 1등이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는, 그리고 자신이 소유한 팀이 눈앞에서 스윕을 당하는 것을 지켜본 어떤 재벌총수의 분노 같은 거 말이다.
[1위팀 인천 레인저스, 갑작스러운 감독교체설에 선수단 당황] [지난 시즌에 이어 여전히 1위를 지키고 있는 인천, 가을 야구 앞두고 감독 교체?] [당황한 인천 팬들, 아무리 그래도 이 상황에 감독을 교체한다고?] [인천 A모 코치 “시즌 초반부터 감독과 프런트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충격 증언]└저건 또 뭔 개소리야… 시즌 초면 우리가 압도적으로 1위였는데 왜 갈등?
└아니, 다 떠나서 이제 시즌 30경기밖에 안 남았는데 감독을 교체한다고?
└하아… 이게 대체 뭐지? 워리어스한테 스윕 당한 건 좆같지만 이럴 일은 아니지 않나?
└우리 사촌형이 레인저스 직원인데…
└좆 같은 소리 하려면 지금 멈추고
└일단 들어봐. 암튼 구단주가 원래부터 구용식 감독을 별로 안 좋아했다고 함
└왜? 맨날 중하위권에 있던 팀 재정비해서 작년에는 우승까지 시켰는데?
└그 구단주가 원래 아날로그 스타일이라 열혈, 근성, 기백, 불굴, 뭐 이런 거 좋아한다던데
└아아… 뭔지 알겠다. 개꼰대라는 소리네
└하기사 구용식이 사람이 좀 심플하긴 하지. 아부 같은 것도 전혀 못 하게 생겼고
└시발 암만 그래도 시즌 막판에 감독을 교체한다고?
└그건 아니겠지. 그냥 경고 같은 거겠지. 연장계약한 거 상관없이 올해 우승 못 하면 알아서 옷 벗어라 뭐 그런?
모두가 설마설마 하는 가운데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기간 동안 우리는 5승 4패를 기록했고, 인천 역시 나란히 5승을 거두며 두 팀 간의 게임 차는 여전히 한 게임 차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부산과의 홈 3연전 2차전에 또 한 번 선발로 등판해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시즌 4승째를 기록했다.
지난 세 차례 선발 등판에서 단 한 차례의 출루를 허용하지 않았던 나는 이번 부산전에서 안타와 볼넷을 각각 1개씩 허용했다.
딱히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남은 일정에 대비해 조금 더 힘을 빼고 던졌고, 그동안 던지지 않았던 몇 가지 구종을 테스트해 봤을 뿐이다.
따아아아악!
“아악! 시발! 또 맞았어!”
“아니, 대체 뭘 하는 건데!”
타석에서는 3개의 홈런을 몰아치며 시즌 홈런 갯수를 51개로 늘렸다.
이것 역시 딱히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이미 시즌을 포기하고 반쯤 정신이 다른 데로 팔린 부산 투수들이 치기 딱 좋은 공을 던져준 덕분이었다.
어쨌든 한국 단일 시즌 홈런 신기록까지 남은 건 이제 다섯 개, 남은 경기는 22경기.
언론에서는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기 시작했고, 매 경기마다 잠자리채를 든 관중들이 외야를 가득 메웠다.
항상 응원단상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곤 하던 민예린 역시 분홍색 잠자리채를 든 채 외야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곤 했다.
그리고 우리는 열흘 만에 다시 인천과의 3연전을 준비했다.
선발 로테이션만 놓고 보면 나와 임준영 선배의 재대결이 유력했지만, 인천에서는 임준영이 아닌 2군에서 올라온, 이름도 난생 처음 들어보는 신인 투수를 선발로 예고했다.
그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인천 내부에 뭔가 일이 있지 않나 하는 느낌.
그리고 그 예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인천과의 1차전을 앞둔 휴식일 오후, 평소 같으면 내 홈런 신기록 도전에 대한 뉴스로 도배되었을 포털 메인에 충격적인 소식이 올라왔다.
[인천 레인저스 시즌 중 사령탑 전격 교체, 구용식 감독 전격 경질] [레인저스 고위 관계자 “구단의 미래를 위해 좀 더 열정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익명을 요구한 내부 관계자 “세이버매트릭스 앞세워 팀을 재건한 구용식 감독과 근성을 강조하는 구단주 사이에 좁히지 못할 간극이 있었다”] [프런트 출신으로 무너져 내리던 레인저스를 재건한 구용식 감독, 계약 기간 2년 4개월 남기고 허무하게 퇴장] [속보, 인천 레인저스 새 감독에 황병호(75) 전 요미우리 자이언츠 육성군 타격코치 임명] [인천 레인저스 공식 발표 “한국시리즈 2연패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사였다”] [계약 기간 5년, 계약금 5억+연봉 5억, 파격적인 조건으로 감독 자리에 오른 황병호 “올 시즌 인천의 경기를 모두 보았다.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국내 은퇴 후 일본에서 지도자 경력 이어온 황병호 감독, 인천 레인저스 야구에 어떤 변화가 닥칠 것인가?] [혼란에 빠진 인천 선수단, 외부 인터뷰 금지 지시에 불만의 목소리]2020년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암흑기에 접어들었던 인천 레인저스에 세이버매트릭스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 야구를 접목했던 구용식 감독이 전격 경질되었다.
정규 시즌을 불과 20여 경기 남겨둔 상태에서 말이다.
애초에 구단주가 지향하는 야구 철학과 잘 맞지 않았음에도 성적을 무기로 버텨오던 구용식은 결국 우리와의 3연전에서 스윕을 당하며 쓸쓸히 지휘봉을 놓게 되었다.
여기까지도 충분히 놀라웠지만 그나마 어렵사리 받아들일 수는 있었다.
구단주의 뜻이 진리이자 법인 국내 야구계에서는 이보다 더 어이없는 인사도 몇 번 있었으니 말이다.
이번 사태에서 정말로 야구팬들을 놀라게 한 것은 구용식 감독의 경질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소식은 올해로 75세가 된 백전노장, 서울과 부산, 대전, 광주 등 국내 구단을 시작으로 일본에서까지 지도자 경력을 이어온 노장 황병호가 대신 그 자리에 앉았다는 점이다.
각 구단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2027년 KBO의 야구 흐름은 세이버매트릭스를 기반으로 한 관리 야구, 데이터 야구였다.
하지만 인천의 새 사령탑이 된 황병호는 그런 현대 야구 흐름을 완전히 역행하는, 90년대 일본 스타일의 야구 철학을 가진 지도자였다.
쉽게 말하자면 현재 워리어스의 감독인 이대준과 완전히 정반대 대척점에 놓인 인물이랄까.
투수의 어깨는 쓸수록 강해진다.
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투수는 언제든 등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각각의 선수는 팀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구성 요소일 뿐이다. 생각하지 마라. 감독이 시키는 대로 정확히 수행하는 것이 너희들의 임무다.
이런 철학을 가진 황병호를 좋아하는 팬도 있고, 반대로 아주 싫어하는 팬도 있다.
그의 밑에서 성장한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황병호를 명장으로 기억했고, 또 누군가는 그와 뛰기 싫다는 이유로 트레이드를 요청하기도 했다.
어쨌든 인천의 새 사령탑이 된 황병호가 첫 출근을 앞두고 자신의 오랜 지기를 만나고 있었다.
“윤석, 이 친구야.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WBC 우승 시켰다고 비싸게 구는 거야?”
“거, 실없는 소리. 1위팀 감독이 된 인간이 왜 엄살을 떨어? 그보다 좀 의외인데? 현장에서 다시 뛰기에는 자네나 나나 이제 좀 힘든 나이잖나.”
“끄떡없어. 자네도 그렇게 뒷방 늙은이처럼 물러나 있지 말고 차라리 대표팀 전임감독이라도 시켜달라고 하던지.”
“전임감독? 아이고,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군.”
“왜, 한수혁 때문에?”
“음?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안 봐도 뻔하지. 투타 겸업을 하는 녀석을 대체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자네가 그걸 얼마나 고민했는지 TV화면으로도 다 보이더군.”
“허어…….”
“어찌어찌 우승을 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자네가 너무 물렀어. 쿠바전도 그렇고 위험한 순간이 몇 번 있었잖아. 나 같으면 절대 그 녀석을 그렇게 쓰지는 않았을 거야.”
“그래? 자네라면 어떻게 했을 건데?”
“예선전부터 4강전까지는 유격수 겸 주전 마무리, 투구 수를 조절하면 하루 걸러 하루씩 던질 수 있었겠지. 그리고 결승전 선발 투입. 그게 최적의 시나리오였어.”
시간이 꽤 흘렀건만 여전히 자신과는 많이 다른 야구철학을 가진 친구다.
한수혁 같은 선수를 그런 식으로 다루면 안 된다고 말해봤자 어차피 귓등으로도 안 들을 사람이다.
벌써 4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친구와 굳이 말다툼을 벌이기엔, 정윤석은 이제 너무 나이가 들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아무튼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게 된 걸 축하해.”
“고맙군. 두고 봐.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줄 테니까 말이야.”
* * *
“형, 오늘 좀 지쳐 보이네요. 무슨 일 있으세요?”
“오늘 불펜 투구를 좀 많이 해서 그런가? 괜찮아, 별 일 없어.”
“내일 선발인데 불펜 투구를 힘이 들 때까지 했다고요?”
“감독님이… 음, 아니다. 이건 너한테 할 얘기는 아니지. 아무튼 나 간다. 감독님 덕아웃 나오기 전에 돌아가야 할 것 같아. 저 갈게요, 형님.”
“그래, 준영아. 어깨 잘 풀어주고.”
나와의 두 번째 선발 맞대결이 무산된 게 못내 아쉬웠는지 미련이 남은 눈으로 마운드를 바라보던 임준영 선배가 자기 팀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오늘 임준영 대신 2군 투수가 첫 선발 데뷔전을 치른다는 말을 듣는 순간 황병호 감독의 스타일이 새삼 실감되었다.
선수의 감정이나 생각보다는 철저하게 감독의 판단에 따라, 그리고 팀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선수단 운영.
황병호는 에이스 임준영을 나와 다시 한번 대결시키는 대신 내일 5선발 이영주와 매칭시키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오늘 마운드에는 버리는 카드인 신인을 올려버렸다.
어차피 질 경기는 그냥 내준다. 대신 이기는 경기는 확실히 챙긴다.
일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단순히 팀의 성적만을 놓고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엄연히 팬을 위해 존재하는 스포츠다.
에이스와 에이스의 맞대결, 특히 지난 경기에서 내게 패한 임준영의 복수를 바라는 인천팬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하지만 황병호 같은 스타일의 지도자에게 그런 건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팬들의 기쁨이 아니라 오직 승리 하나만을 위해, 보다 정확히 말하면 감독의 승리와 커리어를 위해 하는 야구.
바로 그런 점이 황병호를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단점일 것이다.
어쨌든 남의 구단 일이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수혁아, 준비 다 된겨?”
“네, 덕수 형님.”
“좋아. 오늘도 잘 부탁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오늘 경기를 잡아내고 인천을 1위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