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50)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49화(150/412)
#149. 진짜 야구란
팀의 승리와 효율적인 운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된 학문이 바로 세이버매트릭스다.
기존에는 선수를 평가하고 기용하고, 연봉을 산정하는 방식이 프런트와 사령탑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었다.
똑같은 선수를 두고 어떤 지도자는 타율이 낮아 라인업에 넣기 힘든 선수라 칭했고, 또 어떤 지도자는 중요한 순간에 한 방을 쳐줄 수 있는 타자라며 중용하기도 했다.
선수의 기량과 플레이를 분석하는 역할을 객관화된 데이터가 아닌 사람이 담당했기 때문이다.
세이버매트릭스가 도입된 후 전 세계 모든 야구단은 단장이나 감독의 판단이 아닌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선수들을 평가하고 기용하기 시작했다.
구용식 감독 지도 하에 있던 인천 레인저스가 가장 대표적인 예였다.
일반 야구팬들이 보기에 인천 레인저스는 참으로 신기한 팀이었다.
매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선수단을 보충하고 운영하지만 막상 선발 임준영 정도를 제외하면 소위 말하는 S급 스타는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9명의 주전 라인업 중 용병을 제외하면 30홈런을 치거나 100타점을 기록한 타자가 단 한 명도 없다.
투수 쪽도 마찬가지였다.
워리어스에서 데려온 임준영 정도를 제외하면 리그를 대표한다 할 수 있는 선발이나 중간계투, 마무리 투수는 한 명도 없었다.
대신 그들에게는 빈틈이 전혀 없다.
쉽게 말하자면 S급 선수는 임준영 하나뿐이지만 1군 명단에 들어 있는 모든 선수들을 A급으로 채웠다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세이버매트릭스에 기반해 선발되고 키워진 A급 선수들이 각자 가장 잘할 수 있는 자리에 포진해 팀의 승리를 위해 플레이한다.
그리고 주전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한다.
전임 구용식 감독이 만들어 놓은 선수단과 시스템.
한두 명의 슈퍼스타에 의존해 굴러 가는 팀에 비해 보다 효율적이고 꾸준한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인천만의 비결이었다.
“잘 들어라, 내가 추구하는 건 오직 하나. 팀의 승리뿐이다. 그것 외에 나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다. 내 지시에 대해 의문을 갖지 마라. 모든 건 내 계산 하에 통제될 것이다. 믿어라. 날 믿으면 너희를 챔피언으로 만들어주겠다.”
오늘 경기 전 인천 선수단을 처음 만난 황병호의 취임 일성이었다.
그는 인천이 이런 압도적인 전력을 갖고도 워리어스에게 뒷덜미를 내준 건 전적으로 전 감독인 구용식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황병호가 생각하기에 현대 야구의 흐름이자 인천 레인저스의 근간을 이루는 세이버매트릭스, 그리고 자신의 야구 철학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팀 승리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공식을 찾는다는 공통점.
다만 세이버매트릭스에서는 그 효율적인 방식을 찾기 위해 최대한 객관적이고 신뢰성 있는 지표를 제시하지만, 황병호식 야구는 철저히 감독의 직감에 의존한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쉽게 말해 감독의 생각이 진리이며 법이라는, 2027년 현대 야구의 흐름에 역행하는 철학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황병호 본인이야 자신의 야구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었지만 대다수 야구전문가들은 이번 인천 레인저스의 결정에 대해 상당한 불안감을 보였다.
데이터 야구가 완전히 뿌리 내린 2027년 현시점에서 황병호의 올드스쿨 스타일 야구가 과연 먹힐 것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한국에서 야구단은 모기업의 소유물이고, 그 모기업의 주인이 그걸 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홈팀 선발투수인 한수혁이 먼저 마운드에 올라 몸을 풀기 시작했다.
낡은 수첩을 들고 뭔가를 한참 적어 나가던 인천 황병호 감독이 오늘 톱타자로 나서게 된 강우찬을 불렀다.
“잘 들어라. 네 역할은 출루가 아니야.”
“네? 감독님, 그게 무슨……?”
“배트를 짧게 잡고 공을 커트해라. 단 하나라도 저 녀석에게 공을 더 던지게 하면 그걸로 네 역할은 끝이다. 잘 들어. 우리가 한국시리즈에서 워리어스를 만나게 될 걸 생각하면 지금처럼 한수혁이 멋대로 날뛰게 둬서는 안 돼. 공을 거르고 커트해서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녀석을 지치게 만들어라. 알아들었지? 자, 가봐.”
감독의 지시를 들은 강우찬은 생각했다.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쉽나?’
강우찬이 타석에 서자마자 지체 없이 초구가 날아왔다.
부웅
“스윙!”
슈웅
틱
“파울!”
슈웅
부웅
“스윙! 아웃!”
“…….”
최대한 공을 커트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166㎞/h 포심과 152㎞/h 고속 슬라이더, 그리고 95㎞/h 슬로우커브에 농락당한 강우찬이 고개를 푹 숙이고 벤치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본 황병호가 큰 목소리로 일갈했다.
“이런 멍청한 놈! 오늘 경기 끝난 후 3시간 특타다. 장 코치, 네가 책임지고 저 녀석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굴려!”
“네? 아, 네, 감독님.”
인천 덕아웃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숫자와 효율을 중시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팬들을 위한 야구를 추구했던, 그리고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관리함에 있어서도 매뉴얼에서 벗어나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았던 전임 감독과 너무도 대비되는 황병호였다.
그런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2번 2루수 손재후가 타석에 들어섰다.
강타자를 2번에 배치시키는 최근 현대 야구와는 완전히 상반된, 타율은 다소 낮지만 번트를 아주 잘 대는, 그래서 황병호 감독의 마음에 쏙 든 손재후가 이를 악물고 한수혁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슈웅
따악!
“아웃!”
초구에 나간 그의 배트가 한수혁의 커터를 건드렸고, 그대로 1루수 앞 땅볼이 되며 투 아웃.
공 네 개만으로 순식간에 투 아웃을 만들어낸 한수혁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인천 덕아웃 쪽을 바라보았다.
황병호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 돋아났다.
“저런 건방진 놈이……. 다음 타자 누구야? 제이슨? 이봐, 통역, 내 말 똑똑히 전해. 절대 초구는 건드리지 말고 최대한 많은 공…….”
“저기, 감독님. 벌써 아웃됐는데요.”
황병호가 잔뜩 흥분해 혼자 방방 뛰는 사이, 역시 초구를 건드려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난 인천의 용병 타자가 뒷통수를 벅벅 긁으며 덕아웃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노 감독의 안색이 빨갛다 못해 검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 * *
– 뭔가가 또 황병호 감독의 신경을 건드린 것 같습니다. 9 대 0으로 워리어스가 크게 앞서가고 있는 가운데, 인천 덕아웃이 또 웅성거리기 시작합니다. 아, 투수가 또 바뀌는군요. 오늘 게임에서 인천은 5회까지 일곱 명의 투수를 투입하고 있습니다.
– 저게 대체 뭐 하는…….
– 네?
– 정말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네요. 오늘 경기를 보세요. 에이스 중의 에이스, 선수 위의 선수, 한국야구의 희망 한수혁 선수가 선발 등판한 경기입니다. 인천에서는 졸렬, 음, 전략적으로 임준영 대신 신인 투수를 선발로 올렸고요.
– 그렇죠.
– 3회 워리어스가 여덟 점째를 내는 순간 사실 게임은 끝난 겁니다. 인천에서도 오늘 경기는 반쯤 버린다는 생각으로 임했으니 더 할 말은 없겠죠.
– 그런데요?
– 그런데는 무슨 그런데요입니까, 지금 경기를 보세요. 아무 의미도 없는 투수 교체로 시간만 잡아먹고 있잖습니까. 정작 여덟 점을 줄 때까지는 그냥 내버려두더니 경기가 완전히 기운 후에 계속 투수를 교체하고 있어요. 타자가 바뀔 때마다 투수가 교체되는 게 말이 되나요?
– 뭔가 전략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투수들의 컨디션을 점검한다거나, 혹은 아직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거나 뭐 그런…….
– 하, 우리 말은 바로 합시다. 지금 저 투수 교체가 한수혁 선수의 어깨를 식게 만들기 위한, 그리고 앞으로 계속 만나게 될 라이벌 팀의 심기를 자극하기 위한 거란 걸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황병호 감독이 아무리 야구 원로라고 해도 저런 플레이를 할 때는 언론이 나서서 제대로 지적을 해…….
아나운서의 머릿속에 빨간 불이 켜졌다. 아무리 고동식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위험한 발언이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말이다.
– 또다시 투수가 교체되며 이번에는 올 시즌 1군에 처음 등판하는 안호열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그럼 잠시 광고 보고 오겠습니다.
– 어허, 말 중간에 끊지 말고, 이 기회에 구시대적 야구에 대해 좀 더…….
* * *
“수혁아, 유격수 가능할까?”
“네, 가능합니다.”
“좋아, 그럼 수혁이가 유격수로 들어가고, 인철아, 오늘 고생 많았다. 이제 좀 쉬어.”
“감사합니다, 감독님.”
5회말, 유인철의 데뷔 첫 홈런이 터지며 워리어스가 10 대 0, 압도적인 점수 차로 앞서 나가자 이대준 감독은 지체 없이 나를 마운드에서 내렸다.
상대팀의 감독이 계속 투수를 교체하고 시간을 끌며 내 투구 리듬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럴 때 굳이 길게 던질 필요는 없다는 게 이대준의 생각이었다.
투타 겸업을 시작한 이후 내 투구 수에 엄청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대준 감독이다.
사실 팀 트레이너와 제이콥, 이 둘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내 신체에 대해 체크하고 있는 걸 감안하면 조금 과한 걱정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귀찮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좋은 지도자다. 당장 눈앞의 1승보다 선수를 아낄 줄 아는, 저기 인천 덕아웃에 앉은 누군가와 정말 비교되는 그런 감독.
그렇게 내가 유격수 자리로 옮겨 감에 따라 9번에 있던 유인철이 아웃되었다.
내게서 마운드를 물려받게 된 홍영식이 자기도 한때 4번 타자였다며 이상한 소리를 해댔지만, 글쎄, 내가 보기에는 그가 타석에 들어서게 되면 대타가 나설 확률이 높아 보인다.
일찌감치 10점을 앞서게 된 워리어스 선수단에 여유가 감돌기 시작했다.
반면 감독의 취임 첫 경기에서 대패를 당하게 된 인천 덕아웃에는 살벌한 기운이 풍기고 있었다.
어차피 자기들이 선택한 일이다. 에이스 간의 맞대결 대신 버리는 카드를 투입한 것 말이다.
물론 임준영 선배와의 2차 맞대결이 이루어졌다 해도 내가 승리를 양보하는 일은 절대 없었겠지만.
“아웃!”
그렇게 별다른 일 없이 경기가 계속 진행되었다.
10 대 0의 스코어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어느새 경기는 9회초로 접어들었다.
내 뒤에 나온 투수들의 성적을 생각하면 인천의 타선이 단 한 점도 못 낸 게 솔직히 신기할 정도다.
모르겠다.
구용식을 쳐내고 대신 황병호를 감독 자리에 앉힌 게 인천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그리고 그들을 1위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할 우리에게는 득이 될지 실이 될지.
한 경기만으로 알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게임 셋!”
인천의 마지막 타자가 또 힘없이 삼진으로 물러나며 그대로 경기가 끝나버렸다.
10 대 0 워리어스의 완승.
나는 올 시즌 하반기 다섯 번의 등판에서 모두 승리를 따내며 시즌 5승을 기록하게 됐고, 워리어스는 73승 4무 36패로 1위 인천 레인저스와의 승차를 없애는 데 성공했다.
파바바방!
오늘을 위해 민예린이 기부했다는 폭죽들이 동시에 발사되었고, 흥분한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워리어스의 응원가를 합창했다.
그리고 얼굴이 완전히 굳어버린 인천 선수단이 아무 말 없이 경기장에서 떠나갔다.
그들의 표정에는 패배의 아픔이 아닌 깊은 회의와 절망감이 자리 잡아 있었다.
* * *
[지난 시즌 꼴찌팀 서울 워리어스, 인천을 10 대 0으로 잡아내며 1위와의 승차를 없애는 데 성공하다] [5이닝 1피안타 삼진 8개 무실점 완벽투, 한수혁 시즌 5승째 수확] [한수혁의 선발등판 = 워리어스의 승리, 성공 방정식은 계속 이어진다] [단일 시즌 한국 홈런 신기록까지 이제 다섯 개, 워리어스 잔여 경기 외야석 매진 행렬] [감독 복귀전 치른 인천 레인저스 황병호 “모든 것은 내 계획대로였다” 무슨 의미?] [원정팀 응원석에서 만난 인천 팬 “감독을 왜 교체한 건가? 구용식 감독은 적어도 비겁자는 아니었다” 한수혁 vs 임준영 카드 무산시킨 황병호 감독에게 원색적인 비난] [인천 레인저스 임준영, 선발 로테이션 변경에 대한 질문에 “노 코멘트, 그건 코칭스태프의 영역”]1차전에서 완패를 당한 황병호 감독이 드디어 본격적인 움직임을 시작했다.
2차전 경기를 앞두고 인천의 1군 라인업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나와 함께 WBC 대표팀에 소집되었던 3루수 민주현과 투수 권길용, 우익수 강우찬 등 몇몇 베테랑급 선수들이 1군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이미 전성기를 지나 은퇴를 앞두고 있던 선수, 혹은 2군에 있던 무명 선수가 그 자리를 대신 메웠다.
임준영 선배를 비롯해 인천 선수들의 머리카락이 모두 빡빡 밀려 있었고, 그들이 신은 양말은 무릎까지 올라와 있었다.
황병호 감독이 추구하는 근성 야구, 선수가 아닌 감독이 하는 야구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인천 선수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럼에도 임준영은 역시 대단했다.
2차전 9이닝 2실점 완투승.
한 경기에서 140개의 공을 던진 임준영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힘겨워 보였다.
점수 차가 일곱 점 차로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황병호는 임준영을 내려주지 않았다.
민주형과 권길용을 비롯 2군으로 쫓겨간 선수들이 황병호에 항명을 했다더라, 그리고 임준영 역시 항명을 하다가 벌투를 당한 거라더라.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았지만 인천 내부자가 아닌 이상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마지막 3차전, 다시 우리가 승리를 가져오며 결국 승차 없이 승률에서 뒤진 2위 자리를 지킨 채 서울로 돌아왔다.
두 경기에서 나는 단 하나의 홈런도 추가하지 못했다. 인천 투수들이 나와의 승부를 철저히 피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게 홈런을 맞더라도 끝까지 승부를 걸어오던 임준영 선배조차도 말이다.
3차전이 끝난 후 패배한 인천 선수들의 표정에는 독기가 가득 차 있었다.
누군가 그 광경을 보며 말했다.
전형적인 황병호식 선수단 길들이기가 시작된 거라고.
모르겠다. 정말 저게 맞는 걸까?
승리를 위해 선수들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저런 지도 방식 말이다.
“수혁아, 너 표정이 왜 그러냐.”
“형님.”
“어, 왜?”
“저 꼭 우승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아니, 반드시 우승해야 할 이유가 하나 추가되었네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저딴 짓이 이제는 절대 안 통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