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51)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50화(151/412)
#150. 서울 라이벌전
서울 라이벌 워리어스와 매지션스, 서울을 연고로 하는 구단으로는 파이터즈가 하나 더 있긴 하지만 팬들의 숫자나 인식으로 볼 때 아직 저 안에 포함되기에는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KBO 리그가 시작된 지 어느덧 46년째, 그 긴 시간 동안 워리어스와 매지션스의 라이벌 의식이 이어져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공동 홈구장이다.
2027년 현 시점에서 전 세계 프로야구단 중 유일하게 공동 홈구장을 사용하고 있는 두 팀.
하나의 야구장 내에 위치한 두 팀의 사무실, 라커룸, 연습장까지.
일 년 내내 순위 경쟁을 벌여야 하는 두 팀이 한 공간에서 계속 마주친다.
라이벌 의식이 안 생기면 그게 더 이상한 조건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성적과 인기 면에서 워리어스를 압도했던 매지션스는 200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이어지는 긴 암흑기를 보낸 후 2020년대에 들어와서야 다시 강팀의 면모를 되찾는 데 성공했다.
그 긴 암흑기 동안 서울에서 태어난 많은 야구팬들이 매지션스가 아닌 워리어스를 선택했다.
실력과 인기, 모든 면에서 워리어스에게 압살을 당한 매지션스 팬들은 분노했고, 그 분노는 결국 적극적인 투자로 이어졌다.
워리어스가 선수들을 팔아먹으며 이상한 짓을 하는 동안 매지션스는 죽어라 그 선수들을 사들이고 신인들을 키워냈다.
그 결과 매지션스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한 계단 한 계단 차곡차곡 올라가며 지난 시즌에는 결국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하지만 최근 매지션스 팬들은 라이벌 워리어스의 행보를 보며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잠실 라이벌에 뒤질 수도 있다는 공포 말이다.
시즌 전반기만 해도 비슷비슷했던 팀 성적이 어느새 승차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벌어져 버렸다.
매지션스가 대전 팔콘스와 엎치락뒤치락하며 4, 5위를 전전하는 사이 워리어스는 1위 인천의 뒤를 바싹 쫓으며 1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앞서가기 시작한 팬 숫자 역시 최근 들어 다시 역전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오직 단 한 명의 선수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WBC에서 미국팀을 박살 내고 우승트로피를 가져온 괴물.
아직 잔여 경기가 19게임이나 남은 시점에서 홈런 51개를 기록하며 단일 시즌 홈런 신기록 갱신의 기대를 품게 만든 슈퍼 루키.
월드스타라 불리던 민예린을 야구에 미친 여자로 만든, 매 선발 등판 때마다 대포 카메라를 든 여자 팬들을 야구장으로 불러모으고 있는 선수.
192㎝에 달하는 체격과 압도적인 신체 비율, 그리고 굵은 선을 가진 호남형의 얼굴까지.
실력부터 외모까지, 그야말로 모든 걸 다 가진 선수 한수혁.
그런 한수혁이 지금 잠실야구장 구내 식당에서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수혁아, 어떠냐. 우리 샌드위치가 더 맛있지.”
“우물우물, 음, 성수 선배님. 확실히 그렇네요. 이거 뭘 넣은 거죠?”
“햄 대신 훈제 연어랑 구운 닭가슴살.”
“흐음…….”
“우리 프런트가 먹거리 쪽으로 관심이 좀 많아서, 흐흐.”
“과연…….”
감독 교체 후 인천과의 첫 3연전을 마친 우리는 잠실에서 라이벌 매지션스와 더블헤더 포함 4연전을 앞두고 있었다.
같은 홈구장을 사용하는 워리어스와 매지션스는 야구장 내 모든 시설물들을 전문업체에 공동 위탁해 관리하는 중이다.
구내식당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한때 별도로 분리해서 운영도 해봤지만 아무래도 이쪽이 더 효율적이라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다만 같은 요리사가 만드는 음식이라 해도 각 구단에서 선수들의 입맛에 맞춘 음식을 요청하곤 하는데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샌드위치는 확실히 워리어스 선수들이 먹는 것보다 모든 면에서 나았다.
조만간 성훈이 형에게 얘기를 해줘야겠다 생각하며 남아 있던 샌드위치를 한 입에 털어넣었다.
“준영이 자식, 머리 박박 밀린 거 보니까 좀 안쓰럽더라.”
“확실히 두상이 예쁜 편은 아니죠.”
“뭐? 하하, 그래. 그것도 맞지. 용태 그놈은 탈모도 있는데 어휴…….”
경기 전 훈련을 모두 끝낸 나는 매지션스 김성수와 만나 가벼운 식사 겸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딱히 별다른 용건이 있는 건 아니다.
저 사람은 오랜 라이벌 의식과 벤치클리어링, 트레이드 등으로 악화된 양팀 간의 관계를 회복시키길 원했고, 나 역시 쓸데없는 감정 소모는 필요 없다는 데 동의했다.
이후 두 팀은 경기 전 이렇게 서로의 공간을 오가며 대화를 하기도 하고 간식을 나누어 먹기도 하는, 의도가 눈에 뻔히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효과 하나는 확실한 일종의 친목 행위를 시작했다.
“그런데 왜 자꾸 절 부르세요? 성오 형이나 만식이 형이 오시는 게…….”
“걔들 불러서 뭘 하려고? 야, 맨날 애들 교육 얘기만 하는 노땅들 지겹다. 그보다는 앞으로 서로 오래 볼 선수들끼리 친해져야지. 아, 선우야, 마침 잘 왔다. 너도 이리 와서 앉아봐.”
“어, 수혁이 왔네? 잘 지냈지?”
“네, 선배님.”
“야, 오늘은 좀 살살 하자. 대전 애들이 바로 뒤에까지 쫓아와서 우리 진짜 미치겠다. 가을야구 못 가면 팬들한테 맞아 죽을지도 몰라.”
식당 안으로 들어오던 양선우가 나를 보며 웃더니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사람과도 WBC에서 같이 뛰며 그럭저럭 안면을 익혀 놓은 상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체구의 백인 하나가 내 앞에 요구르트 하나를 내려 놓으며 씨익 웃었다.
“이봐, 친구. 이거 먹어봐. 시판 요구르트치고는 꽤나 괜찮더군.”
“음? 어, 그래. 고마워.”
“흐흐, 지난번에 라이언 그 자식을 아주 제대로 혼내주더군. 그걸 보면서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이제부터 너는 내 친구야. 괜찮겠지?”
“뭐,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좋아, 혹시 이태원에 올 일이 있으면 연락해. 내가 끝내주는 곳으로 안내할 테니까.”
매지션스의 중심타선을 이루는 용병 토마스 켐벨이 씨익 웃으며 식당을 빠져나갔다.
“근데 쟨 라이언이 터졌는데 자기가 왜 신난 거죠?”
“아아, 저놈, 메이저리그에서 쫓겨난 게 마지막 경기에서 라이언 티보우한테 삼진 4개 당한 것때문이라고 믿더라고. 뭐, 내가 보기에는 타격이 아니라 수비가 문제인 것 같지만.”
김성수가 별 것 아니라는 듯 피식 웃으며 대답하더니, 옆에 앉은 양선우와 대화를 이어갔다.
“그나저나 인천 애들 좀 걱정이기는 하다. 특히나 준영이는 올해 끝나면 FA인데 혹사당해서 괜히 어깨라도 망가지는 거 아닌지 몰라.”
“혹사요? 막 가을야구에서 3일 간격 연투시키고 뭐 그런 거? 에이, 아무리 황병호라고 해도 지금이 2027년인데 그렇게까지는 못 하겠죠.”
“선우야, 네가 아직 짬밥이 부족하구나. 지난번에 준영이 벌투시킨 거 봐.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야.”
“그건 항명 때문이라는 말이 있던데요. 차마 임준영까지 2군에 보내지는 못하고 그냥 경고만 줬다는 소문이…….”
“뭐가 됐든 앞으로 인천하고 경기할 때는 조심하자. 내가 신인 때 황병호한테 얼마나 당했는지 아는 사람은 알잖아. 이기기 위해서는 뭐든 할 사람이야. 그러니까 다들 몸은 알아서 챙기자고.”
신인 시절 황병호식 야구에 신물이 날 정도로 당했던 김성수가 어깨를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래,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시즌 종료를 코앞에 둔 1위팀이 감독을 교체한 건 그 1위 자리를 반드시 지키라는, 그리고 한국시리즈 트로피를 가져오라는 구단주의 메시지다.
그런 메시지를 받은 황병호 감독이 어떤 야구를 할 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이번 시즌 마지막 경기로 인천과 3연전을 치르게 된다.
만약 그때까지 둘 중 한 팀이 명확한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안녕하십니까.”
“…….”
대화를 끝내고 식당을 나서려는 찰나, 우리 팀 출신의 정기호가 들어오길래 예의상 고개를 숙여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뭐, 저런 자잘한 놈은 일단 신경 끄는 걸로 하고.
* * *
더블헤더로 치러졌던 첫날 2경기에서 워리어스와 매지션스는 나란히 1승씩을 챙겼다.
그리고 나는 두 번째 경기에서 시즌 52호 홈런을 쏘아 올렸다.
KBO 역대 5위에 해당되는 기록이었다.
“꺄아아악! 비켜! 다 비켜!”
“민예린 씨, 아무리 민예린 씨라고 해도 저것만큼은 우리가 절대 양보를… 어엇! 잠자리채 두 개? 그거 반칙 아닙니까?”
이제는 자신의 트레이드가 되어버린, 대체 어디서 저런 걸 만들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본인 피셜 홈런볼을 잡기 위해 특수 제작되었다는 잠자리채 두개를 든 민예린이 외야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폴짝거렸다.
음… 쌍 잠자리채라,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도류 같은 건가?
물론 잠자리채가 두 개라고 해서 홈런볼을 잡을 확률이 두 배로 올라가는 건 아니다.
지난 일주일 내내 홈런볼을 잡는 것에 실패한 민예린이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히잉… 오빠, 저 있는 쪽으로 홈런 쳐주시면 안 될까요?”
“뭐?”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있나.
차라리 내가 홈런볼을 따로 하나 챙겨주는 게…….
음.
다음 날 열린 3차전에서는 강동하가 다시 한 번 임시선발로 나서 팀에 승리를 가져왔다.
7이닝 5실점.
좋은 성적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팀 전력이 삐걱거리는 상황에서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해주었다.
시즌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부상과 피로로 인해 빠진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다.
올 시즌 내내 선발 로테이션을 지켜준 라이언이 팔꿈치에 불편을 호소하며 선발 로테이션을 건너 뛰었고, 각각 4점대와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도 꿋꿋하게 이닝을 먹어준 최정수와 홍영식이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간 상태다.
타자 쪽도 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다.
풀 시즌을 처음 치르는 안치욱의 체력이 방전되어 최진철이 번갈아 3루수로 출전하고 있고, 서형주 역시 3일 정도 경기에서 빠져 휴식을 취했다.
조성오 선배가 경기 후반 용지훈으로 교체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고, 이창모 선배가 옆구리 부상을 당하며 유인철이 주전 2루수로 나서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9월 확장 엔트리가 시행되며 추가로 5명의 선수가 1군으로 올라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음 주면 이만식 선배도 돌아올 테고 말이다.
어쨌든 모든 선수들이 정규 시즌 우승이라는 기적을 위해 온몸을 던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인천에 이어 2위 자리에 머물고 있었다.
황병호 감독 체제가 본격화된 인천이 창원과의 3연전을 스윕하며 다시 우리와 승차를 벌렸기 때문이다.
이제야 확실히 알겠다.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WBC를 우승시키는 것보다 워리어스를 정규 시즌 우승으로 이끄는 게 훨씬 힘들다는 것 말이다.
전력의 고하가 문제가 아니다.
장기 레이스에서는 팀 전체의 전력이 보다 확연히 드러날 수밖에 없기에, 인천에 비해 얇디 얇은 우리 팀의 뎁스가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순간이 너무 즐겁다.
이전 삶에서 내가 얼마나 바라왔던 일인가.
워리어스 유니폼을 입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우승이라는 꿈에 도전하는,
지금 이 상황이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수혁아, 오늘도 그럼 부탁한다.”
“네, 감독님.”
매지션스와의 4연전 마지막 경기.
팀의 승리를 위해 나는 또 한 번 마운드에 오를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