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57)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56화(157/412)
#156. 마지막 투혼
팀이 최하위권에 처박힌 2022년 이후 단 한 번도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던 워리어스 팬들은 최근 하루하루가 꿈만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 시즌 꼴찌에 처박혔던 팀이 막판까지 1, 2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프로야구 원년 이후 첫 4할 타율을 비롯 타격 부문 각종 신기록 달성이 유력한 한수혁이 이번에는 단일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에 도전하고 있었다.
“튼튼한 대형 스텐 5단 접이식 잠자리채 팝니다! 단돈 2만5천 원!”
“얼마라고? 2만5천 원? 이런 미친!”
홈, 원정을 가릴 것 없이 워리어스의 경기가 벌어지는 날이면 야구장 주변이 원정 나온 워리어스 팬들과 잡상인, 암표상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인터넷에서 만 원도 안 하는 잠자리채를 사다가 구장 앞에서 비싸게 팔아먹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본인이 직접 제작한 수제 잠자리채를 들고 경기장을 찾는 이들도 있었다.
그 때문에 주변 잡상인을 단속해야 하는 공무원과 경기 후 구장을 청소해야 하는 인력들은 하루하루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버려진 잠자리채를 수거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표 못 구하셨어요? 몇 장 필요하신데?”
“두 장이요.”
“두 장에 40만 원인데, 음, 특별히 할인해서 30만 원 어때요?”
“네에?”
워리어스와 랩터스 간의 경기가 열리는 창원 경기장 주변이 잠자리채를 든 사람들로 뒤덮인 가운데 한수혁이 경기 전 타격 훈련을 하고 있다.
따아아아악!
따아아악!
따아아아아악!
“우와… 진짜 장난 아니네.”
“에이, 괜히 저거 보고 있으면 어깨에 힘만 들어가겠다. 차라리 러닝이라도 하고 있어야지.”
한수혁의 타격 훈련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 선수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최근 실시한 구단 신체검사 결과에 따르면 한수혁의 성장은 거의 멈춘 상태였다.
키 193㎝에 몸무게 97㎏, 만약 그가 투수 겸업이 아니었다면 체지방을 약간 낮추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가장 이상적인 몸을 갖고 있었다.
보통 선수들에 비해 체격이 큰 타자들은 한 가지 핸디캡을 안고 타석에 서야 한다.
큰 체격에 맞춰 스트라이크 존이 함께 넓어진다는 것.
한수혁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정교한 선구안과 긴 팔로 그 약점을 커버하고 있었다.
존 안에 들어오는 공을 절대 놓치지 않는 긴 리치, 그리고 코스와 구종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하는 타격법.
말도 안 되는 장타를 쏘아 올리는, 또 때로는 내야를 빠르게 꿰뚫는 타구를 만들어내는 한수혁의 타격법은 이 분야에서 수십 년을 구른 전문가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전혀 상반된 접근법을 가지고 시즌 내내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정신력과 집중력, 그리고 그에 맞는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타격을 하면서도 단일 시즌 홈런 신기록 타이를 달성한 한수혁이 오늘은 무슨 생각인지 타격 훈련 내내 적극적으로 장타를 노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덕수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오늘 저짝 투수 곡소리 나겠구먼.”
* * *
‘젠장, 진짜 끔찍한 놈이군.’
국내 최대 IT 기업 중 하나를 모기업으로 둔 창원 랩터스는 국내 최대 팬덤을 자랑하는 부산 타이탄스와 지역 라이벌 관계에 있는 팀이다.
현재 창원을 응원하는 팬들 중 상당수가 부산의 막장 운영과 한심한 성적 때문에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라는 걸 감안하면 어쩌면 위성구단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2011년 창단되어 KBO에 9구단 체계를 열게 만든 창원은 막강한 자금력과 적극적인 투자에 힘입어 2020년, 창단 9년 만에 첫 통합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우승을 하기 위해 모든 걸 쏟아 은 창원은 그 핵심 전력들의 이탈과 부상으로 인해 다음 해 곧바로 7위로 떨어졌고, 이후 2026 시즌까지 줄곧 중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올 시즌 중반까지는 대전과 엎치락뒤치락하며 5위 싸움을 이어갔지만 결국 경쟁에서 탈락하며 내년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6위팀 창원 랩터스.
하지만 구단의 성적과 상관없이 자신의 앞날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르고 있는 용병 투수 루카스 베넷은 지금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침중한 표정의 루카스가 고개를 돌려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1 중견수 서형주
2 유격수 한수혁
3 우익수 월터 스미스
4 지명타자 장덕수
5 3루수 안치욱
6 2루수 이창모
7 좌익수 김수학
8 포수 용지훈
9 1루수 강진석
오늘 워리어스의 라인업이었다.
중심타자 조성오는 여전히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했고, 장덕수와 월터 대신 용지훈이 포수 마스크를 썼다.
본래대로라면 장덕수나 월터 스미스 중 한 명에게 포수를 맡기고 타순을 뒤로 미뤄줬겠지만 지금 워리어스에는 그럴 수 없는 이유가 하나 존재했다.
한수혁의 홈런 신기록 도전.
그것을 위해서는 한수혁의 뒤에 믿음직한 타자가 버텨줘야 한다. 상대팀이 그를 함부로 거르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러다 보니 월터 스미스와 장덕수가 3, 4번에 배치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세 번째 포수인 용지훈이 마스크를 쓸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저들을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조성오가 빠진 것만으로도 한결 부담이 덜어진 게 사실이다.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저 한수혁이다.
1번 서형주를 2루수 땅볼로 잡아낸 루카스 베넷이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었다.
창원 덕아웃에서 바라는 건 최대한 놈과의 승부를 피하는 거다.
어차피 가을 야구 진출은 물 건너갔지만 올해로 계약이 만료되는 감독의 입장에서는 단 하나라도 패를 줄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 사정이다.
올 시즌 팀의 부진 속에서도 평균자책점 2.71에 13승 4패를 기록한 루카스 베넷.
그에게는 시즌 후 세 가지 선택지가 기다리고 있다.
올 시즌 110만 달러였던 연봉을 대폭 인상해준다면 창원에 남을 수도 있다.
혹은 그보다 50프로 이상 많은 금액을 부른 일본으로 진출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오늘 이 창원 구장을 찾은 빅리그 스카우터들, 물론 자신이 아니라 한수혁을 보기 위해 온 것이지만 어쨌든,
그런 빅리그 스카우터들의 눈에 들어 다시 한번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다.
물론 그중 가장 원하는 건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는 거다.
와이프의 직업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산 지 벌써 2년, 루카스는 심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좋아.’
덕아웃의 지시대로 최대한 승부를 피하느냐, 아니면 정면 승부를 하느냐.
갈팡질팡하던 루카스의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여기서 저 녀석을 잡아내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일지도 모른다.
경기 전 에이전트와의 전화통화가 떠올랐다.
‘오늘 경기를 보러 빅리그 스카우터들이 우르르 몰려갈 거야.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던져. 물론 그놈들 목적은 다른 데 있긴 하지만.’
‘한수혁을 얘기하는 거겠지? 그런데 스카우터들이 몇 명이나 올 것 같은데?’
‘내가 파악한 것만 최소 13명, 뉴욕, 보스턴, LA, 필라델피아, 이거 뭐 돈 있는 놈들은 전부 다 몰려가는 것 같더군.’
‘흠.’
‘뭐 덕분에 우리한테도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그것 때문에 들뜨면 안 된다는 거야. 중요한 건 루카스 자네 페이스를 유지하는 거라고. 내 말 이해했지?’
한수혁을 보기 위해 몰려 다니는 빅리그 스카우터들, 그들의 눈에 들 수만 있다면,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마침 성가신 1번 타자를 잡아내 루상에 주자도 없는 상황.
입술을 꽉 깨문 루카스가 전력을 다해 한수혁에게 초구를 던졌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다.
따아아아악!
“커헉!”
* * *
1회초 한수혁의 큼직한 2루타와 도루, 그리고 월터 스미스의 희생플라이로 워리어스가 먼저 1점을 선취한 가운데 이만식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얼마 만의 선발등판인가.
WBC 브레이크가 시작되자마자 부상을 당했으니 거의 2달 만인 것 같다.
“자, 선배님, 파이팅입니다!”
“파이팅!”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랜만에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된 용지훈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전반기 백업 포수로 활약했던 용지훈은 월터 스미스가 대체 용병으로 입단한 후 아예 1루 백업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포수 마스크를 쓴 1루수라는 비아냥, 다행히도 기본적인 포구와 블러킹에는 큰 문제가 없다.
이대준 감독이 오늘 그에게 포수 자리를 맡긴 건 베테랑 이만식을 믿어서다.
그라면 용지훈과 배터리를 이뤄서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
휘적휘적
이만식이 오른팔을 몇 바퀴 돌려봤다.
팔꿈치에서 시작해 팔 전체로 퍼져 나가던 기분 나쁜 통증은 거의 사라졌다.
의사를 포함해 주변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수술을 권유했다.
이제는 거의 일상화되다시피 한 토미 존 수술이다.
손상된 인대를 교체하고 재활만 잘하면 얼마든지 제 기량을 찾을 수 있다. 의학이 발달하며 성공률 역시 아주 높아졌다.
문제는 재활 기간이다.
수술부터 재활까지 최소 1년은 필요하다.
이만식이 고민한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만약 자신이 시즌을 접고 수술에 들어간다면 내년 하반기쯤 복귀가 가능할 것이다.
선수 개인만을 생각한다면 그게 정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만식은 알고 있었다. 꼭 팔꿈치가 아니더라도 투수로서 자신의 생명이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단 하루도 러닝을 빼먹지 않고 몸을 관리한 덕분에 체력 하나는 여전히 자신이 있지만, 신인 때부터 10년 넘게 매년 130이닝 이상을 소화해온 자신의 어깨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수술 후 백 프로 예전 기량을 찾을 수 있다 해도 어차피 그 기량 자체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는 중이다.
팀이 2019년 이후 8년 만에 우승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 오랜 시간 절망에 빠져 있던 팬들이 이제야 웃음을 되찾기 시작했다.
여전히 부족하기만 한 팀 마운드 사정, 그중에서도 특히 취약한 선발 자원.
그것을 감안하면 자신이 빠지는 건 절대 안 될 일이다.
결국 이만식은 수술 대신 재활을 선택했고 지옥의 14연전이 시작되기 전 마운드에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14연전 중 2번, 그리고 가을야구 진출 시 또 최소 2번.
총 4번의 선발 등판.
아직 자신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아니,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실이 노장의 얼굴에 절망 아닌 웃음을 피워내고 있었다.
“형님, 맞춰 잡으세요. 제가 다 잡아드리겠습니다.”
처음 볼 때만 해도 세상 무뚝뚝하고 자기밖에 모르던 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먼저 말을 걸어온다.
사실 이만식이 수술 대신 재활을 택한 건, 이번 시즌에 자신의 모든 걸 걸어 보기로 한 건 전적으로 이 녀석 때문이다.
타자로서 한국 신기록에 도전하고 있는, 그리고 투수로서도 자신은 감히 넘볼 수도 없는 실력을 갖고 있는,
WBC를 완전히 박살 내고 우승 트로피를 가져온 한수혁.
저 녀석의 뒤를 따르다 보면 자신도 은퇴 전 마지막 우승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한수혁을 향해 고맙다는 말을 건넨 이만식이 천천히 연습투구에 들어갔다.
어차피 결정은 내려졌다. 더 이상 되돌릴 방법도 없다.
슈웅
퍼엉
WBC 브레이크 기간 동안 발생한 부상, 구속을 올리기 위해 투구폼을 변경하다 찾아온 뜻밖의 불행.
이제 와서 생각하면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때 다치지 않고 버티다 시즌 막판에 터져버렸다면? 그래서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 가을야구를 치러야 했다면?
워리어스라는 팀에 평생을 바친 노장은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이 원래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플레이!”
경기가 다시 재개되고 창원의 톱타자가 타석에 들어선다.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맺힌 노장이 천천히 와인드업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