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5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58화(159/412)
#158. 폭풍전야
“형님, 괜찮으세요?”
“수혁아.”
“네.”
“예전부터 느낀 건데 네가 형님이라고 부르면 내가 너무 늙어 보이는 거 같지 않냐? 그냥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주면 안 될까?”
“그럴게요, 형. 그보다 병원에서는 뭐래요? 괜찮으세요?”
“훨씬 듣기 좋네. 병원에서야 뭐…….”
전날 경기에서 5와 3분의 2이닝을 책임진 이만식은 오늘 오전 부산에 있는 협력병원을 찾아 다시 한번 정밀검진을 받았다.
덕아웃에 이만식이 돌아오자 모두의 관심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괜찮아. 그냥 이렇게 더 이상 나빠지지만 않게 잘 관리하면서 버티다가 시즌 끝나고 새 인대로 갈아 끼우는 거지 뭐. 너무 걱정하지 마.”
투수라면 한 번쯤 거쳐가야 할 코스가 된 토미 존 수술이지만 이전 삶의 나는 그걸 겪어 본 적이 없다.
팔꿈치가 터지기 전에 어깨가 먼저 작살나 투수를 그만뒀으니 말이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
지금 이만식 선배가 저러고 있는 게 정말 괜찮은 건지 말이다.
“그나저나 성오 형님한테 전화 받았다.”
“형님이라고 부르면 늙어 보인다면서요.”
“그거야 그 아저씨는 진짜 늙었잖아. 몇 달 후면 꺾어진 40인데. 크크.”
이만식이 너스레를 떨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수원전 시작하기 전에 그 형님도 돌아온다더라. 생각보다 큰 부상은 아니었나 봐.”
허리와 어깨에 자잘한 부상이 발생한 조성오는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지 않은 채 2군에서 재활과 치료에 집중하고 있는 중이다.
그가 빠진 탓에 중심타선이 꽤나 헐거워졌다. 조성오의 복귀 소식에 워리어스 선수들의 안색이 한층 밝아졌다.
“그나저나 동하야.”
“네, 만식 형님.”
“방금 못 들었냐.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아니, 뭣보다 너는 나랑 몇 살 차이도 안 나잖아?”
“아…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창원 애들 상대할 때 말이야…….”
이만식이 오늘 선발로 나설 강동하에게 다가가 이런저런 팁들을 전수해 주었다.
저런 행동은 단순히 오늘 경기에 이기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이적생 강동하를 이 팀의 온전한 식구로 받아들이기 위한 행동이기도 했다.
어제 경기의 선발투수, 그리고 오늘 경기를 책임질 선발투수가 무언가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때, 이대준 감독이 덕아웃으로 들어섰다.
“자, 다들 주목. 만식아, 너는 병원검진 끝났으면 그냥 먼저 서울 올라가 있지. 어제 선발로 던진 놈이 뭐 주어먹을 게 있다고 여길 왔냐.”
“집에 가봐야 와이프만 귀찮게 하는 거죠. 그냥 애들하고 있는 게 마음 편합니다.”
“하이고, 이놈아. 버릇 안 들이면 나중에 은퇴하고 식구들이 진짜 너 귀찮아할 수도 있어. 지금부터라도 자꾸 집에서 지내면서 가족들하고 익숙해져야 해. 내 말 들어.”
물론 이대준은 이만식이 창원에 굳이 남은 이유가 마지막 원정 14연전을 후배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입에서 나오는 말과는 달리 한결 부드러운 표정이 된 이대준이 덕아웃에 라인업 용지를 붙였다.
뒤돌아 보면 정말 힘든 레이스였다.
부족한 선수단을 이끌고 악전고투 끝에 시즌 134경기를 치러냈다.
하지만 이제 거의 다 왔다.
딱 10경기다. 그 10경기만 끝나면 포스트 시즌 전까지 짧게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자, 오늘 라인업 확인하고, 만식이 너는 여기 계속 있을 거면 차라리 가서 마사지라도 받던지.”
“네, 감독님.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덕아웃에 붙은 라인업에는 오늘 경기에 출전할 선수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1번 중견수 서형주
2번 3루수 안치욱
3번 유격수 한수혁
4번 우익수 월터 스미스
5번 포수 장덕수
6번 지명타자 강진석
7번 2루수 이창모
8번 좌익수 김수학
9번 1루수 용지훈
투수 강동하
몇몇 주전 선수가 빠지기는 했지만 오늘도 역시 총력전이다.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었다.
* * *
베테랑 이만식과 용병 루카스 베넷이 나섰던 1차전이 어느 정도 양팀 모두에게 견적이 나오는 경기였다면, 워리어스 임시 선발 강동하와 창원 랩터스의 1년 차 유망주가 맞붙은 2차전은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난타전으로 진행되었다.
워리어스 투수 넷, 랩터스 투수 다섯, 양팀 합계 아홉 명의 투수가 동원된 가운데 9회초 스코어 6 대 7로 창원이 한 점 앞서 있는 상황.
1사 1루 상황에 등판해 삼진 하나에 볼넷 두 개를 내주며 2사 만루 위기에 몰린 창원의 마무리 우성진이 땀을 뻘뻘 흘리며 덕아웃을 바라보았다.
‘시벌.’
어제 경기 패배로 남은 경기와 상관없이 사실상 6위가 확정된 창원 랩터스.
경기 후 단장실로 불려간 창원의 감독은 올 시즌 후 계약 연장은 어려울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어쩌면 다음 감독이 될지도 모를 수석코치에게 잘 인수인계 해주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일까, 한 점 차 앞선 상황에 찾아온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감독의 눈동자는 멍하니 풀려 있었다.
보다 못한 수석코치가 감독에게 양해를 구하고 마운드로 올랐다.
“성진아, 괜찮냐.”
“아뇨, 죽겠는데요, 코치님.”
우성진이 신인이던 시절 직접 밥을 사 먹이고 품에서 키우다시피 한 사람이 바로 수석코치였다.
그가 감독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우성진의 선수 생활 말년, 그리고 은퇴 후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앞으로 가장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 수석코치가 패닉에 빠진 우성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안심시켰다.
“어쩌겠냐, 그냥 승부해야지.”
“헐…….”
우성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여기서 올릴 투수도 없고, 그렇다고 저놈 걸러 동점 내줄 수도 없고, 어쩌겠냐. 그래도 네가 이 팀의 마무리인데.”
“코치님.”
“왜.”
“저 나중에 유니폼 벗으면…….”
“알지, 알아. 성진아, 너 하나는 내가 책임진다. 그러니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말고 오늘 경기에만 집중하자.”
코치의 말에 우성진의 얼굴에 비로소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모든 선수가 다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니, 90%의 선수들은 그저 팀의 일원으로서 평범하게 선수 생활을 마치게 된다.
리그 평균 수준의 구위, 그리고 그에 걸맞은 평범한 성적을 유지하며 창원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던 우성진 역시 마찬가지다.
은퇴 후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는 평범한 가장이 애써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포수 미트를 바라보았다.
[서울 워리어스 3번 타자 한수혁]장내 아나운서의 입에서 괴물의 이름이 흘러나오는 순간 애써 진정시켰던 우성진의 심장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창원 야구장 전체가 무너질 듯 들썩거렸다.
“우아아아아!”
“한수혁!”
“한 방 날려줘! 제발!”
“여기 이짝으로! 이짝으로!”
“너 보려고 회사도 때려치고 창원까지 왔다! 수혁아!”
“오빠아아아앙!”
모르겠다.
창원까지 원정 온 워리어스 팬들이 홈 팬들보다 더 많은 걸까.
아니면 정말 홈 팬들조차 자신이 홈런을 맞길 기대하고 있는 걸까?
빨강, 파랑, 노랑, 분홍, 보라, 알록달록 오색찬란한 잠자리채들이 마치 군무를 하듯 좌우로 술렁거린다.
외야 전체를 뒤덮은 그 광경을 보니 갑자기 정신이 아찔해졌다.
‘가만… 여기서 내가 홈런을 맞으면…….’
어제 경기에서 이미 새로운 한국 신기록은 달성되었다.
얼마 전 1군에 처음 올라온 불쌍한 2년 차 신인 윤호균의 이름 뒤에 [한수혁에게 57호 홈런을 맞은 투수]라는 타이틀이 덧붙여졌다.
그런데 여기서 자신이 또 홈런을 허용한다면?
윤호균의 이름 대신 자신의 이름 석자가 거기 올라가게 될 것이다.
‘아아… 용준아… 아빠가 미안하다…….’
어쩌면 그 일로 이번에 유치원에 들어간 아들이 놀림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홈런 신기록을 허용한 멍청이의 아들이라고 말이다.
‘안 돼, 그것만은 안 돼.’
자꾸만 멀어져 가는 의식을 간신히 부여잡은 우성진이 글러브 속 공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심판의 얼굴에 짜증이 떠올라 있다. 이제 공을 던질 차례다.
‘니미, 아무리 저놈이라도 친다고 다 홈런이 되는 건 아니겠지.’
은퇴 후 투수코치를 시켜주겠다는 수석코치의 말을 계속 떠올리며 우성진이 투구 준비에 들어갔다.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 그가 믿고 있는 건 그것 딱 하나였다.
하지만,
따아아아악!
“커헉!”
공이 쪼개질 듯한 엄청난 파열음이 들린 후 우성진은 깨달았다.
한수혁이라는 괴물은 결코 그런 만만한 생각으로 제압할 수 없는 괴물이라는 걸 말이다.
타구가 날아가고 있는 우측 펜스 방향, 그곳에서는 여전히 오색찬란한 잠자리채가 마치 물결치듯 좌우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 * *
[불과 하루 만에 갱신된 한국 단일 시즌 홈런 신기록, 9회초 2사 만루에 터진 한수혁의 역전 만루포, 58호 홈런 달성으로 아시아 신기록까지 이제 단 두 개] [이날 만루홈런으로 시즌 150타점 달성한 한수혁, 타점 부문에서도 역대 1위 달성] [타율과 홈런, 타점, 출루율, 장타율 등 타자 부문 각종 신기록을 갈아치운 한수혁, 과연 그의 행보는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58호 홈런볼을 주운 행운의 주인공은 서울에서 원정 온 27살 취업준비생 A씨 “영광이다. 평생 가보로 간직할 것.”] [한수혁의 역전 만루포로 4연승 달린 워리어스, 하지만 인천 역시 승리하며 여전히 2위에 머물다] [시즌 막판까지 이어지는 1, 2위 경쟁, 과연 최후의 승자는?]“빌어먹을.”
수원 시내의 한 호텔, 수원 커맨더스와의 경기를 위해 이곳에 묵고 있는 인천 감독 황병호가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지난 5번의 경기에서 무려 4승 1패를 거뒀다.
아무리 최강팀 인천이라 해도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지도방식에 불만을 내비치던 민주현과 강우찬, 권길용 등 몇 놈을 2군으로 쫓아 보냈다. 당장은 손해일 수도 있지만 선수단 장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인천 선수단을 단번에 장악한 황병호는 하반기 1위 수성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보직 파괴, 로테이션 파괴, 그리고 과감하고 거친 플레이.
에이스 임준영의 선발 주기가 5일 간격에서 4일 간격으로 단축되었다.
올해 두 번째 FA를 앞두고 있지만 임준영은 자신의 이익보다 팀의 승리를 위해 몸을 바치는 그런 선수였다. 워리어스 때도 그랬듯이 말이다.
그런 임준영의 희생을 황병호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굳이 투수의 어깨는 쓸수록 강해진다는 말까지 가지 않더라도, 팀이 시즌 막판 1위를 건 싸움을 하는 상황이라면 에이스는 응당 팀을 위해 자신의 어깨를 걸어야 하는 법이니까.
적어도 황병호는 그렇게 야구를 배웠다.
그리고 용병 마이크 클락을 마무리로 보직 전환시켰다.
기존 마무리 투수던 권길용이 황병호의 지시에 불응하며 2군으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올 시즌 내내 선발로만 뛰었던 마이크가 마무리 보직을 부담스러워했지만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용병이란 돈을 받고 자신의 목숨을 거는 직업이다. 쓰고 버리는 패다.
그렇게 투수 쪽을 개편한 황병호는 타자들에게 이렇게 주문했다.
“타석에서는 어떻게든 투수의 신경을 자극해라. 그리고 2루 베이스로 들어갈 때 무조건 다리를 높게 들어. 상대의 발목을 노리라고! 괜히 아는 사이라고 어정쩡하게 하는 놈들 있으면 곧바로 2군행이다. 내 말 알아들어?”
거친 플레이, 그리고 상대를 자극하고 흥분시키는 플레이.
황병호에게 완전히 장악당한 인천 선수들은 결국 그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 대가로 4승 1패라는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대팀 야수 2명에게 부상을 입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건만 워리어스와의 승차가 좀처럼 벌어지질 않는다.
‘어디서 저딴 놈이…….’
황병호가 생각하는 야구는 감독이 완벽하게 그라운드를 장악하는 그런 야구다.
40년 넘게 현장을 뛰며 감독 야구의 효과에 대해서는 충분히 입증해낸 바 있다.
하지만 단 하나, 겨우 선수 단 한 명.
상식을 벗어난 괴물 하나가 황병호의 모든 계획을 망치고 있었다.
한수혁.
데뷔 첫해에 타율, 홈런, 타점 부문 한국 신기록을 갱신한, 거기에 투수로서는 연속 이닝 무실점에 도전하고 있는 이레귤러.
그놈 하나 때문에 모든 계획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일단 그놈 기부터 꺾어놔야겠군.’
황병호의 얼굴에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