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6)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5화(16/412)
#15. 생각보다는 괜찮네?
어떤 직종이든 다른 나라에 와서 돈을 번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언어부터 시작해서 먹을 것, 생활환경, 문화, 모든 것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거기에 어느 정도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는 내국인들과 달리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 속에 떨어야 한다.
야구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프로에 입단하기만 하면 이런 저런 제도에 의해 보호받는 내국인 선수와 달리 용병에게는 아주 약간의 자비도 허용되지 않는다.
시즌 중 부상을 당하거나, 혹은 성적이 부진하거나 하면 순식간에 길거리로 내몰릴 수도 있다.
생계 유지를 위해 매일매일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해야 하는 프로야구 용병.
여기 워리어스의 새로운 용병슬롯을 차지하게 된 맥스 워커가 있다.
“헤이, 브룩스. 저 친구가 그 슈퍼루키인가? 시애틀에서 오퍼를 받았다는?”
“그래, 괴물이지. 저 친구가 치는 걸 한 번 보자고.”
지난 시즌 처음으로 올라간 빅리그에서 1할대의 타율을 기록한 후 깔끔하게 메이저리거에 대한 미련을 버린 맥스 워커는 이제 워리어스의 우익수가 되었다.
한국 나이로 스물여덟, 아직 메이저리거의 꿈을 포기하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기는 하지만 그는 스스로에 대해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었다.
파워와 스피드, 내구성, 그 모든 면에서 자신이 메이저리거가 되기에는 조금씩 부족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진짜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해서는 신이 내려준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따아아아아악!
바로 저 놈처럼.
“우와! 미친 놈! 또 홈런이야!”
“어어, 저거, 저거, 장외네, 장외로 넘어갔어.”
“이번에는 배트 안 집어던지네?”
“야, 아까는 지도 신이 나서 그런 거겠지. 괜히 신인 기 죽이지 마라.”
“내가 뭐라 했나? 그냥 그렇다는 거지.”
두 번째 타석 후 교체되어 동료 용병 브룩스와 잡담을 나누던 맥스의 눈이 누군가 그려낸 거대한 타구의 궤적을 쫓았다.
한수혁이 그려낸 타구가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더니 결국 장외로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옆에서 팀의 동료들이 뭐라고 떠들어 댔지만 한국어라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다 통하는 법이다.
이 엄청난 환호성은 분명 저 괴물에 대한 찬양일 것이다.
맥스 워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마치 대단한 공연을 보고 난 관객처럼 말이다.
“브라보!”
“?”
다른 동료들이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방금 전 맥스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게 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처음 치른 자체 연습경기가 마무리되었다.
7대 5, 백팀의 승리.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누가 이겼냐가 아니었다.
경기를 마친 맥스 워커가 배트 한 자루를 손에 들고 한수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헤이, 친구. 멋진 타구야. 굿 배팅.”
“그냥 편하게 영어로 해도 돼.”
“오! 그래? 영어를 할 줄 아나?”
“물론.”
“다행이군! 난 맥스 워커라고 해.”
“알아.”
“흐흐, 좋아. 친구. 앞으로 친하게 지내보자고.”
스물여덟의 나이에 자신의 조국을 버리고 낯선 땅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맥스 워커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한국 야구가 위계질서가 심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건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나 적용되는 이야기다.
미국에서 몇 개 팀을 전전하며 수 없이 많은 유망주들과 슈퍼스타들을 직접 보았다.
하지만 단언컨데 눈앞의 이 미친 루키 같은 재능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확신할 수 있다.
앞으로 이 팀의 중심은 바로 이 친구가 될 것이다.
그런 선수가 자신과 함께 플레이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면?
감독과 이야기를 나눌 때 자신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한 마디라도 해준다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해 벌써 먹여 살릴 아이가 둘이나 되는 맥스 워커는 한수혁의 뒤를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 * *
이상한 놈이 하나 더 늘었다.
그날 연습경기가 끝난 후 안치욱에 이어 맥스 워커라는 외국인 용병이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잠깐 한눈을 팔다가 뒤를 돌아보면 한국인 한 놈과 미국인 한 놈이 내 연습하는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또 연습을 끝내고 쉬고 있을 때면 두 놈이 가져온 음료수가 내 옆에 놓여질 때도 많았다.
거기에 가끔은 이대준 감독도 한 손을 보탰고.
모르겠다. 대체 무슨 생각일까?
“헤이, 친구. 어떤 것 같아?”
“뭐가?”
“내 스윙 말이야. 혹시 조언해줄 부분은 없을까?”
“흠, 나보다는 코치님에게 물어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오··· 난 네 의견을 듣고 싶은데, 혹시 내가 너무 무례했다면 사과하지.”
선후배 사이에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게 자연스러운 한국야구와 달리 메이저리그에서는 베테랑들이 자신의 지식을 루키들에게 잘 전해주지 않는다.
물론 기꺼이 그런 호의를 베푸는 베테랑들도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덕아웃 리더라고 부른다.
생각해보면 메이저리거 시절 내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주려던 선배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베테랑들을 퇴물이라 부르며 비웃었다.
대체 나란 인간은…
내 입에서 튀어나온 무뚝뚝한 대답에 맥스 워커가 찔끔하며 뒤로 물러섰다.
얼마 전 흘끗 본 맥스 워커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종합해보면 그랬다.
트리플A 기준으로 제법 괜찮은 컨택 능력과 쓸 만한 장타력, 강한 어깨를 갖고 있음.
하지만 느린 발과 수비에서의 실책은 가장 큰 감점 요인. 강한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스프레이 히터.
어차피 우익수로 서게 될 맥스 워커에게 수비에 대해서는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타격인데···
“내 생각에는 좀 더 부드럽게 쳐보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부드럽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을까, 친구?”
“장타를 치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우리 홈 구장은 전세계적으로도 손 꼽히는 투수친화적 구장이거든. 홈런보다는 차라리 2루타를 노리는 게 나을 거야. 팀에서도 그걸 바라고 널 데려온 거고.”
“흠. 그런 건가?”
“그래, 괜히 날 따라하려고 하지 마. 내 생각에는 맥스 너랑은 잘 안 맞을 거 같으니까.”
지금 사용하고 있는 내 타격 폼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완성한, 빅리그 데뷔 초창기의 거친 감성을 담고 있는 타격 폼이다.
오직 홈런을 위한, 타율이나 출루율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공을 멀리 보내기 위한 타격폼.
처음 메이저리그에서 타자 준비를 하던 때가 생각난다.
나는 투타 겸업을 하고 싶어 했고, 시애틀에서는 팀 사정상 투수 쪽에 더 무게를 두려 했지.
어쨌든 내 고집이 결국 이겨서 나는 빅리그 데뷔 시즌 투타 겸업을 시작했다.
머리가 허옇게 센 시애틀의 타격 코치는 나를 볼 때마다 그런 말을 했다.
‘이봐, 한. 자네 피지컬이면 그렇게 무리하게 걷어 올리지 않아도 충분히 타구를 담장 밖으로 보낼 수 있을 거야’
물론 나는 코치의 그런 조언을 가볍게 무시했다.
당시 내게 필요한 건 홈런이었다.
동양에서 건너온 어린 선수에 대한 견제와 무시, 그리고 관중석에서 날아오는 인종차별 발언들.
그런 것들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큰 것 한 방이었다.
결정적인 순간 터지는 큰 것 한 방이야 말로 그런 자잘한 문제들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명쾌한 해법이었다.
그렇기에 타석에서 나는 항상 큰 것 한 방을 노렸다.
처음에는 나를 우려 섞인 표정으로 보던 감독과 코치도 시즌이 끝날 무렵에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실력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빅리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다음 차례는 자네야.”
“네, 코치.”
내 연습차례가 돌아왔다.
그렇게 데뷔 초창기 극단적인 어퍼스윙만을 고집하던 나는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가지 타격폼을 교대로 사용했다.
한 가지 타격폼만을 고수해서는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KBO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준비하는 지금 나는 이 극단적인 어퍼스윙을 사용하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워리어스라는 팀은 지난 몇 년 간 너무 주눅이 들어 있다.
팀 선수들이나 팬이나 전부 다.
그것은 주축 선수들이 모두 팔려 나가고 황폐화된 팀 사정에서 기인한다.
팀을 이끌어갈 핵심 선수들이 FA로 계속 유출되었다.
홈런타자는 몸값이 가장 비싸다. 당연히 가장 먼저 팔려 나간다.
그러다 보니 워리어스에는 중심이 될 스타플레이어가 전무한 상황이다.
“헤이, 한, 준비됐나?”
“네, 코치님.”
“좋아.”
코치의 기분 좋은 목소리 뒤로 배팅볼 투수가 치기 좋게 던져준 공이 차례로 날아온다.
따아아악!
따아아아악!
따아아아아악!
나는 그 공 대부분을 담장 밖으로 넘겨버렸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실투를 밀어쳐 넘기면서 이러다가 타격 밸런스가 좀 흐트러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며 말이다.
그라운드에 있던 모든 선수들, 그리고 코치들이 동작을 멈추고 내 타구를 감상한다.
그리고는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바로 이런 거다. 이 팀에 팽배한 패배주의를 걷어내려면 이런 게 필요하다.
야구의 꽃은 홈런.
경기에 이겨야 하는 선수단에게나, 그리고 경기를 즐기는 팬들에게나 역시 가장 인기가 있는 건 홈런 타자다.
결정적인 순간 터져 나오는 커다란 한방은 우리 편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상대편의 어깨를 무겁게 만든다.
최고의 슈퍼스타는 언제나 홈런왕 중에서 나오는 법이다.
“역시.”
“보스, 제 코치 경력을 걸고 장담하죠. KBO를 아직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저 선수가 올해 리그를 지배하게 될 겁니다.”
그렇기에 올 시즌 나는 철저히 홈런 타자가 되고자 한다.
큰 거 한 방으로 상대를 침몰시키고 아군의 사기를 올려줄 수 있는 그런 홈런 타자.
* * *
스프링캠프가 시작된 지 어느새 3주가 흘렀다.
지금까지 캠프에 함께 하고 있던 박재철 단장이 급하게 한국으로 귀국했다.
아마도 트레이드 관련해 뭔가 이슈가 있나 본데, 캠프 내내 그의 말상대를 하느라 고생했던 이대준 감독은 그의 귀국을 은근 반기는 눈치였다.
그렇게 3주라는 시간이 흐르니 선수들 사이에서 조금씩 옥석이 가려지기 시작했다.
1루 쪽에서는 이 팀의 야수 최고참인 좌타자 조성오 선배가 제일 유력하고, 2루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한 후 리턴한 이창모 선배, 3루는 아마도 송가 놈.
그리고 유격수는 당연히 내가 될 거 같다.
외야는 일단 김수학 선배, 정기호 선배, 그리고 맥스 워커.
투수가 던진 포크볼을 뒤로 흘리고 적반하장격으로 그 투수를 노려보는, 정말 포수 같지도 않은 포수이지만 그래도 일단 트레이드가 성사되기 전까지는 황가 놈이 주전 포수를 봐야 할테고···
음.
이거 내가 들어가서 그런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는 나쁘지 않네?
지명 타자 슬롯을 채울 선수 하나만 구한다면 말이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