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60)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59화(160/412)
#159. 소년들의 우상
내가 처음 이 팀에 지명을 받던 날, 보다 정확히 말하면 내 지시를 받은 성훈이 형이 나를 지명하던 날.
데뷔 첫해 목표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러분들이 제 말을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허황된 소리라 생각하실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제 목표는 우승입니다. 워리어스가 우승하는 그 순간까지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그때만 해도 내 말에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내가 진심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성훈이 형조차도.
언론에서는 그저 1차 지명 신인의 허황된 패기 정도로 치부했고, 야구팬들은 나를 미친놈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심지어 워리어스 팬들조차 내 말에 그저 피식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2년 연속 꼴찌에 처박힌 팀 성적, 몇 년간의 삽질 끝에 급기야 해체 직전까지 내몰렸던 구단 사정.
거기에 팀 내에는 황성민과 송기태, 정기호 같은 적폐들이 드글거렸고, 감독과 코치, 프런트 직원들은 여러 파벌로 나뉘어 영역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렇게 답도 없던 팀이 지금 여기까지 왔다.
시즌 9경기만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81승 4무 50패를 기록하며 1위 인천에 승차 없이 승률에서 뒤진 2위를 기록 중인 워리어스.
딱 한 걸음, 아직 딱 한 걸음이 모자라 1위를 탈환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제 정말 거의 다 왔다.
단일 시즌 홈런과 타점 신기록 갱신, 거기에 연속 이닝 무실점 등 많은 것이 걸린 오늘 경기.
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건 오직 하나,
이 팀의 승리뿐이다.
그것을 위해 나는 오늘 또 한 번 마운드에 오른다.
* * *
“와아… 실제로 보니까 진짜 지리네…….”
“진짜 저 형이 우리보다 딱 한 살 많은 거 맞아? 나이 속인 건 아니겠지?”
“뭔 헛소리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카메라나 이리 좀 줘봐.”
포수 바로 뒤에 자리 잡은 프리미엄석.
커다란 덩치의 소년이 그보다 더 체격이 큰 옆자리 친구에게서 대포 카메라를 빼앗아 들고 한수혁을 포커싱했다.
워리어스의 1회초 공격이 득점 없이 끝난 가운데 1회말 창원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가 마운드에 올랐다.
올 시즌 하반기 6번의 선발 등판에서 퍼펙트 한 번을 포함, 40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 중인 한수혁.
WBC 우승의 주역이자 MVP, 그리고 올 시즌 KBO 신인왕과 MVP가 유력한 그 선수가 지금 마운드 위에서 투구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발… 개쩌네.”
빡빡 깎은 스포츠 머리에 햇볕에 잔뜩 그을린 구릿빛 피부를 가진 소년이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녀석의 이름은 최마루, 얼마 전 열린 2028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워리어스에 1라운드 지명된 그가 구단의 초청을 받아 오늘 이 구장을 찾았다.
자신의 우상인 한수혁의 투구를 보기 위해 창원까지 내려온 소년이 손에 땀을 쥔 채 그를 바라보았다.
퍼어엉!
퍼엉!
한수혁의 연습투구가 시작되었다.
이제 막 고등학생 티를 벗은 최마루가 감히 평가할 수조차 없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야구 전문가들조차 가장 완벽한 투구폼이라 입을 모아 칭찬했던 그 투구폼이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한수혁의 발끝이라도 따라잡는 걸 인생 목표로 삼은 최마루로서는 단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야, 동석아.”
“왜.”
“너 저 공 잡을 수 있겠냐.”
퍼어엉!
힘을 빼고 던졌음에도 150㎞/h 가까이 나오는 고속 슬라이더가 포수 미트에 틀어박혔다.
그 모습을 보고 뭔가 현타가 온 최마루가 자신의 친구이자 워리어스에 3라운드 지명 받은 포수 박동석에게 물었다.
대전에서 서형주를 데려오며 그 대가로 2라운드 지명권을 넘긴 워리어스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 있는 두 소년은 사실상 워리어스의 1, 2위 지명 신인인 셈이다.
“못 잡아.”
“되게 쿨하게 대답하네. 명색이 포수라는 놈이.”
“야, 애초에 저런 공을 던지는 투수가 우리 나라에 더 있기는 하냐. 그냥 저걸 던지는 형이나 받는 형이나 둘 다 미친 거야.”
“하기사, 내가 던진 155㎞/h도 잘 못 잡는 놈이.”
“뭔 소리야. 작년에 포일 기록한 게 딱 한 번인데.”
“그래, 한 번이지. 봉황기 결승전 9회말 마지막 끝내기 실책.”
“…나쁜 놈, 꼭 말을 해도.”
“그런 놈을 워리어스는 대체 뭘 보고 3라운드에 뽑았나 몰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최마루는 자신의 친구이자 고등학교 내내 배터리를 이뤘던 박동석과 같은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는 데 대해 크게 만족하는 중이었다.
운이 좋았다.
당장 투수가 급한 워리어스가 피 같은 3라운드 지명권을 포수에게 쓸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어쨌든 둘은 나란히 워리어스의 지명을 받았고, 다가오는 마무리 훈련에 합류를 기다리고 있다.
새로 지명받은 신인이 마무리 훈련에 참가할 필요는 없었지만 둘은 자청해서 캠프 합류를 요청했다.
자신들의 우상인 한수혁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최마루는 투수로서 한수혁을 동경했고, 박동석은 타자로서 한수혁을 경외했다.
“…빨리 시간이 갔음 좋겠다. 저 형하고 같이 야구하고 싶다.”
“나도.”
한수혁과 나이 차이는 한 살뿐이지만 그를 우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두 소년이 입을 다물고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오늘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건 그 두 소년들뿐만이 아니었다.
슈웅
퍼어어엉!
“스트라이크! 아웃!”
순식간에 5이닝이 지나갔다.
워리어스 타자들이 집중력을 발휘하며 2점을 내는 사이, 한수혁은 5회말까지 안타 1개만을 내주며 창원 타자들을 꽁꽁 묶어놓았다.
그나마 그 안타 한 개도 한수혁을 대신해 유격수로 나선 유인철의 판단 미스였다.
기록원이 한참의 고민 끝에 안타로 판정을 내리기는 했지만 사실은 실책이라 해도 무방한 타구였다.
어쨌던 오늘도 5이닝 동안 한 점도 내주지 않은 한수혁은 이로써 45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게 되었다.
“괴물이군, 정말 괴물이야.”
“이걸 분석하는 게 의미가 있긴 할까?”
한수혁의 피칭을 분석하기 위해 창원까지 내려온 수원 커맨더스의 전력분석팀 직원들이 암담한 표정을 지으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남은 경기와 상관없이 사실상 3위 자리를 확정 지은 수원은 와일드카드전 승자와 준플레이오프를 치른 후 다시 2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갖게 된다.
현재로서는 인천 레인저스와 서울 워리어스 중 누가 1위가 되고, 누가 2위가 될지 향방을 점칠 수 없는 상황.
수원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두 팀 상황을 모두 체크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한수혁은 언터처블 그 자체였다.
시즌 거의 전 경기를 선발 출전하고, WBC를 치르고, 거기에 하반기에는 투수까지 겸업하고 있는 놈이 도무지 지친 기색을 보이질 않는다.
아니, 구속이 조금 떨어지기는 했다.
오늘 한수혁이 기록한 최고 구속은 164㎞/h.
그것 자체로도 말도 안 되는 구속이기는 하지만 169가 최고 구속인 걸 생각하면 분명 구속이 떨어졌다.
문제는 그게 힘을 빼고 던져서 그런 건지 지쳐서 그런 건지 도통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좋다. 일단 조금은 지쳤다고 해두자. 그래야 좀 숨이 쉬어질 것 같으니까.
하지만 포심은 여전히 164㎞/h가 나오고, 변형 패스트볼은 158㎞/h씩 나오며, 거기에 152㎞/h짜리 고속 슬라이더에 타자들의 배트가 춤을 춘다.
솔직히 말하면 저런 걸 제대로 쳐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보고서에 [한수혁은 암만 봐도 노답임. 차라리 그놈이 등판하는 경기는 포기하고 다른 경기에 올인하는 게 정답일 듯]이라고 쓰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아 누르며 작은 약점 하나라도 발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찾다 보니 약점이 하나 보이기는 한다. 한수혁이 아니라 다른 동료들로 인해 발생한 약점.
“확실히… 유인철 쟤는 아직 덜 여물었지.”
“맞아. 정규시즌에서도 저 정도인데 포스트시즌에 들어가면 자멸할 수도 있겠지.”
“포스트시즌에는 최진철이 대신 유격수로 나오지 않을까?”
“최진철은 3루도 커버해야 하니까.”
“흠.”
오늘 그들이 발견한 유일한 약점은 사실 모두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유격수이자 중심타자인 한수혁이 투수로 등판하는 날이면 그 자리에 대신 신인 유인철이 들어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지명타자가 타선에서 빠진다는 것.
그것은 팀내 최고 타자이자 수비수인 한수혁을 투수로 쓰기 위한 세금과도 같은 것이었다.
실제 오늘 유격수로 나선 유인철의 어설픈 수비로 한수혁은 피안타를 하나 허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 맞아. 문제는 그 유격수 쪽으로 타구가 잘 안 간다는 거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안 보낸다고 해야 하나.”
그 문제에 대해 한수혁이 내놓은 해답은 타구의 방향을 1-2루간으로 유도하는 것이었다.
국내 최고 수준의 2루수 이창모가 서 있는 바로 그 공간으로 말이다.
우타자에게는 최대한 바깥쪽 승부를, 그리고 좌타자에게는 몸쪽 승부를.
물론 타자들 역시 그런 의도를 뻔히 알고 있었지만 알면서도 번번히 당하기 일쑤였다.
“기습번트를 적극적으로 시도해보면 어떨까? 정규시즌도 아니고 단기전에서는 의외로 괜찮지 않을까? 특히 3루 쪽으로 말이야.”
탄탄하기로 소문난 워리어스 내야진이지만 3루만은 예외였다.
신인 안치욱의 3루 수비는 좋게 말해도 리그 평균보다 아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수혁이 투수로 등판하는 날에는 유인철이 유격수로 나선다.
3-유 간이 굉장히 불안해지는 것이다. 그쪽으로 적극적으로 번트를 대본다면?
하지만 그런 계획은 말 한마디에 단숨에 허공으로 날아가버렸다.
“뭔 소리야. 마운드에 유격수가 서 있는데.”
“하아…….”
안치욱과 유인철이 지키는 3-유간이 불안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마운드에 유격수가 하나 더 서 있다는 것 말이다.
사실상 워리어스는 유격수 두 명을 데리고 경기를 하고 있었다.
“에이, 시벌 더러워서 못 해먹겠네. 쟤는 진짜 왜 미국 안 가고 국내에 남은 거야?”
“워리어스 우승…….”
“뭐?”
“워리어스 우승시키려고 남았다잖아.”
“아, 진짜, 크크크. 미치겠네. 진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게 다 진심이었어.”
“워리어스 전력이 하다 못해 대전이나 창원 정도만 됐어도 일찌감치 1위 달리고 있을 거다.”
“하기사, 그 팀 같지도 않은 팀을 데리고 여기까지 왔으니.”
“자, 잡담은 그만하고, 어쨌든 출장비까지 받고 여기 왔으니 뭐라도 쓰긴 써야 할 거 아냐. 뭐라고 정리를 해볼까.”
“음, 음, 그러니까 그게… 그게…….”
두 남자가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정답이 없는 문제였다.
그 둘이 아닌 누가 왔어도 말이다.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 * *
<더블헤더 1차전 7이닝 무실점으로 팀의 5연승 이끈 한수혁, 47이닝 연속 무실점으로 역대 2위 기록>
<워리어스 이대준 감독 “올 시즌 한수혁의 선발 등판은 이번이 마지막. 어린 선수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게 했다”>
<투수 한수혁의 올시즌 성적 7경기 선발 등판 47이닝 무실점, 퍼펙트 1회 포함 7승 무패>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는 내년 시즌 투수 한수혁의 보직은? 선발? 아니면 마무리?>
<한수혁 등판 경기 직관한 워리어스 신인 배터리 최마루, 박동석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완벽한 경기였다. 한수혁은 우리의 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