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62)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61화(162/412)
#161. 패배는 안 된다
적장 황병호가 이번 3연전 첫 경기를 위해 선수들의 군기를 잡는 동안 이에 맞설 워리어스의 감독 이대준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거 진짜 미친놈들이네?’
지난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인천이 치른 경기 영상을 모두 확인했다.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드는 선수들, 처음에는 황병호의 지시에 마지 못해 거친 플레이를 시작한 인천 선수들이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그런 짓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현역으로 뛴 이대준은 그런 인천 선수들의 심리에 대해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원래 그런 거다.
전쟁을 앞둔 군대에서 병사들을 적들의 총칼 앞에 스스로 뛰어들게 만드는 건 아주 간단하다.
그들의 입에서 악 소리가 날 정도로 박박 굴린 후 그 분노의 방향을 살짝 비틀기만 하면 된다.
보아라, 너희가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건 모두 저놈들 때문이다. 그러니 가서 죽여라.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병사들도 시간이 갈수록 그 분위기에 취해, 그리고 세뇌되어 스스로 적을 향해 총칼을 휘두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만 보자면 이 나라에 황병호만큼 병사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지도자는 없을 것이다.
‘으음…….’
인천의 거친 플레이 문제는 둘째 치고 워리어스 선수단 역시 제 컨디션은 아니었다.
시즌 말미부터 시작되었던 선수들의 잇단 부상, 그로 인한 전력의 공백이 이제야 간신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장기간 라인업에서 빠졌던 이만식이 돌아왔고, 마찬가지로 거의 일주일 넘게 결장했던 최고참 조성오도 돌아왔다.
지옥 같은 일정이기는 했지만 최대한 로테이션을 돌리며 주전 선수들의 체력도 회복시켜 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많이 부족하다.
1군 엔트리 전원이 주전급으로 구성된 인천과 맞서 싸우기에는 말이다.
주전 라인업 중 누군가가 부상당하거나, 혹은 체력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면 순식간에 모든 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 가을야구까지도 말이다.
마지막 3연전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워리어스는 84승 4무 53패 승률 0.613을 기록하며 84승 6무 51패 승률 0.622를 기록 중인 인천에 한 게임 차로 뒤진 상태다.
게임 차는 불과 한 게임뿐이지만 사실 현 시점에서 워리어스의 정규 시즌 1위 탈환은 거의 불가능한 게 사실이다.
프로야구 순위는 철저히 승률에 따라 결정된다.
이번 3연전에서 워리어스가 단 1패라도 당하게 되면 승차와 상관없이 승률에서 앞서는 인천이 무조건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인천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3전 전승, 혹은 최소 2승 1무가 필요하다.
‘음.’
지난 수원과의 4차전이 못내 아쉬운 이대준 감독이었다. 거기서 1승이라도 더 거뒀더라면.
하지만 자신의 선수들은 충분히 잘해줬다.
지옥 같던 11연전에서 7승 4패를 기록한 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자기 몫을 다 해줬다.
‘차라리…….’
부상과 체력 부족으로 여전히 이곳저곳 삐걱거리는 선수단, 충분히 예상되는 인천의 거친 플레이, 그로 인한 주축 선수들의 부상 위협.
거기에 3연전 중 단 한 번이라도 패배하면 1위는 물 건너가는 상황까지.
그 모든 걸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차라리 힘을 빼고 가을야구에 대비할까, 자꾸 그런 유혹이 들었다.
괜히 1위 자리를 노리다가 모든 걸 망쳐 버리느니 차라리 한수혁을 비롯한 주축 선수들을 쉬게 해주고 대신 한국시리즈 트로피를 노리는 건 어떨까.
현실적으로는 그게 맞다.
당장 이번 3연전 외국인 용병 두 명과 임준영의 등판이 예정된 상황에서 워리어스는 이영주와 천상진, 이만식, 이 세 명의 투수로 맞서야 한다.
한때 한수혁을 선발등판 시키라는 여론이 있기도 했지만 절대 안 될 말이다.
올 시즌 내내 타자로, 그리고 투수로, 국가대표로 너무 많은 경기를 치르게 했다.
실제 검사 결과에서도 약간 불안한 부분이 발견되었고 말이다.
앞으로도 오랜 시간 이 팀, 그리고 대한민국의 기둥이 되어 주어야 할 선수다. 겨우 1위 한 번 하겠다고 그런 선수에게 위험을 강요할 수는 없다.
설사 한수혁이 빠짐으로서 1위 자리가 물 건너 간다 해도 이대준은 절대 그를 선발로 내세울 생각이 없었다.
‘흐으음.’
어쨌든 결론은 이거다.
인천의 1, 2, 3선발을 상대로 워리어스는 3, 4, 5선발로 맞서야 한다.
그리고 단 한 번도 패배하면 안 된다.
‘아아… 이것 참.’
이제는 정말 선택해야 한다.
과감하게 정규시즌 우승을 포기하고 전력을 보전한 채 가을야구를 준비하느냐.
아니면 뭐가 어쨌든 8년 만에 찾아온 정규시즌 우승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느냐.
물론 중도안도 있다. 일단 1차전에 총력전을 펼쳤다가 패배할 경우 나머지 2경기를 포기하는 방안.
하지만 그건 자칫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주전 선수들이 다치고 거기에 패배까지 떠안게 되는 최악의 상황 말이다.
결국 이대준 감독은 박재철 단장에게서 걸려올 전화를 받은 후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서 결정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옆에 놓아둔 스마트폰이 한 차례 진동했다.
지잉
담담한 표정으로 그 메시지를 확인한 이대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덕아웃으로 향했다.
[감독의 뜻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워리어스의 야구를 하세요.]* * *
“자, 다들 모여봐.”
인천과의 마지막 일전을 위해 훈련 준비를 시작하던 워리어스 선수들이 이대준 감독 앞에 모였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가 1위를 탈환하려면 단 한 번도 지면 안 된다. 그리고 최소 2승을 거둬야 하지. 그래, 사실 쉽지 않을 거야. 아니, 어쩌면 불가능한 일에 괜한 힘을 쏟는 건지도 모르겠다.”
“…….”
감독의 말에 선수들 중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대준의 말이 이어졌다.
“현명한 감독이라면 여기서 전력을 아끼고 가을야구에 올인하는 게 맞을지도 몰라. 아니, 분명 백이면 백 그렇게 할 거야. 남은 전력을 다 쥐어짜서 인천 1, 2, 3선발을 상대해 전승을 노리는 건 사실 바보들이나 할 짓이거든.”
어쩌면 그것은 선수들이 아닌 감독, 자신에게 하고 있는 말인지도 몰랐다.
이대준의 말에 워리어스 선수들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정말 숨가쁘게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정규시즌 1위는 포기해야 하는 걸까, 8년 만에 다시 찾아온 정규시즌 1위에 대한 꿈은 이만 접고 가을야구를 대비하게 되는 걸까?
몇몇 선수들의 한수혁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오직 워리어스의 우승 하나만을 위해 달려온 팀의 막내를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이대준 감독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암만 봐도 난 바보가 맞는 거 같다. 얘들아, 난 무조건 올해 우승을 해야겠다. 여기서 꿈을 접으면 지난 1년이 너무 아쉬울 거 같거든. 너희는 안 그러냐?”
이대준의 말에 선수들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그것이야말로 선수들이 기다리던 그런 말이었기 때문이다.
“맞습니다!”
“좋아, 두말할 필요 없다. 우리는 이번 3연전에 모든 걸 건다.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너희 역시 강하다. 열 게임 넘게 차이 나던 인천을 여기까지 쫓아온 것만으로 너희는 스스로를 입증한 거야. 자, 준비됐지?”
“네! 감독님!”
“좋아, 오늘 라인업이다.”
서울 워리어스 선발 라인업
1번 중견수 서형주
2번 3루수 안치욱
3번 유격수 한수혁
4번 1루수 조성오
5번 우익수 월터 스미스
6번 2루수 이창모
7번 포수 장덕수
8번 지명타자 김수학
9번 좌익수 최민석
선발투수 이영주
* * *
– 유난히 뜨거웠던 2027 KBO 시즌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각 팀당 최소 2게임, 최대 4게임을 남겨놓은 가운데 이곳 인천에서는 1위팀 인천 레인저스와 2위 서울 워리어스 간의 마지막 3연전이 펼쳐지게 됩니다. 제 옆에는 언제나 그렇듯 고동식 위원님 나와 계십니다.
– 반갑습니다. 여러분, 고동식입니다.
– 위원님, 일단 현재 두 팀이 처한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 물론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레인저스는 이번 3연전에서 1승만 거둬도 그대로 1위 자리를 유지하게 됩니다. 반면 워리어스가 1위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2승 1무를 거둬야 하고요.
– 어떤 이유인가요?
– 간단합니다. 프로야구 순위는 승률에 따라 결정되는데요. 무승부가 많고 패가 적은 인천이 승률 계산에서 유리합니다. 때문에 워리어스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3승, 혹은 2승 1무를 거둬야만 인천을 제치고 1위 자리에 올라설 수 있습니다.
– 음, 결국 인천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뭐 그렇게 받아들이면 되겠군요.
– 맞습니다. 그리고 양팀 선발투수를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인천에서는 지난 몇 경기 동안 마무리로 전환되었던 마이크 클락이 1차전 선발로 등판하는 것을 시작으로 데릭 벨, 그리고 에이스 임준영까지 1, 2, 3선발이 차례로 출격합니다.
– 음, 마이크 클락 선수는 사흘 전 마무리로 등판해 2이닝을 던졌는데 오늘 선발에 무리는 없을까요?
– 글쎄요. 뭐 자세한 건 인천 감독이 알겠죠.
– 임준영 선수도 사흘 휴식 후 또 선발 등판을 이어가게 됩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 네, 사흘 휴식 후 선발이 벌써 두 번째인데 솔직히 전 임준영 선수가 혹사를 당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듭니다. 물론 두 번째 FA를 앞둔 베테랑인 만큼 스스로 잘 관리를 하긴 하겠지만… 모르겠습니다. 과연 저런 기용 방식이 맞는 건지 말이죠.
어젯밤 특집방송에서 황병호 체제의 인천 레인저스에 대해 혹평을 퍼붓다가 윗선으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은 고동식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인천의 모기업은 방송국의 최대 광고주 중 하나이다.
슬슬 방송국과의 재계약 시기가 다가오는 고동식으로서는 인천에 대해 함부로 입을 여는 게 굉장히 불편한 상황이었다.
그런 고동식의 마음을 이해한 아나운서가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 아쉽게도 이번 3연전에 한수혁 선수가 등판하지는 않지만 타자로서 여러 기록들에 도전하게 되죠?
– 물론이죠. 역대 최고 타율, 출루율, 장타율, 타점 등 주요 부문 기록을 모두 갱신한 한수혁 선수가 이제 마지막 하나 남은 단일 시즌 홈런 아시아 신기록에 도전을 하게 됩니다.
– 하나 남았네요.
– 네, 딱 하나 남았죠. 사실 시즌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한수혁 선수가 이 정도까지 해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만약 한수혁 선수가 인천이나 수원에서 뛰었다면 아시아 신기록은 물론이고 저 물 건너 미국 약쟁이 기록까지 벌써 깼을지도 모릅니다.
– 저기, 위원님…….
– 왜요, 제가 못 할 말을 했나요? 시즌 초반에 한수혁 선수를 제외한 워리어스 타선이 허ㅈ… 허약하던 당시에 손해본 홈런이 한둘이 아니거든요. 아무튼 됐습니다. 올해만 야구하고 말 건 아니니까요.
– 알겠습니다. 어쨌든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워리어스가 주전을 빼고 백업을 기용할 것이다, 가을야구에 대비할 것이다, 이런저런 말들이 있었지만 결국 핵심 선수들이 모두 출전합니다. 한수혁 선수를 포함해서 말이죠.
– 네, 저는 감히 워리어스를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 뭐라고요?
– 남자의 팀, 타협이나 후퇴 따위는 모르는 그야말로 남자의 팀.
– 음, 위원님. 그런 말씀은 나중에 개인방송에서…….
– 그래요. 솔직히 말씀드리죠. 아무리 그래도 방송 중에 제 마이크를 빼앗지는 않을 테니까요. 여러분, 마음 속으로 어느 팀을 응원하시는지는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올 시즌 워리어스가 보여준, 한수혁 선수가 보여준 위대한 도전들을 말이죠. 야구팬들이라면 지금 이 모습을 꼭 가슴 속에 담아둬야 할 것입니다. 한수혁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