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65)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64화(165/412)
#164. 결국 한수혁 때문이었다
세상 모두가 틀렸다 말할 때도 결코 굴하지 않고 고집스레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백전노장 황병호.
사실 그런 삶을 산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논쟁을 벌이거나 욕을 먹는 걸 꺼리게 마련이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누군가와의 충돌 자체를 꺼리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황병호는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한국 야구판에서 수십 년간 공공의 적으로 배척당해온,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자신의 길을 고집하고 또 그만큼의 성과를 보임으로서 적들의 입을 닫게 만들었던 황병호.
세간의 평판과는 상관없이 수없이 많은 우승 트로피를 수집한 성공한 감독.
그런 황병호가 지금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워리어스를 잡기 위해, 혹은 한수혁이나 장덕수 두 핵심 선수 중 하나를 퇴장시켜 버리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짜냈다.
위장선발, 의미 없는 투수 교체, 무한 견제구, 계속되는 거친 플레이.
상대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워리어스 선수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1회 한수혁을 내보냈다가 뜬금없는 조성오에게 투런포를 얻어 맞았다.
다행히 다음 이닝에 곧바로 따라잡기는 했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이후에도 몸쪽 공을 계속 던지며 워리어스 선수들의 심기를 살살 긁었지만 아무도 넘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이었다.
3회초 볼넷으로 나간 한수혁이 기습 도루를 시도했다.
허점을 찔린 투수가 폭투를 던졌고 그 사이 한수혁이 3루까지 뛰어 들어갔다.
감히 자신에게 항명한 민주현을 대신해 그 자리에 세운 멍청이가 송구를 빠트리며 순식간에 홈 승부로 이어졌다.
뭔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의 포수가 한수혁의 앞에 나타났다.
순간 ‘저것도 나쁘지 않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황병호의 지시를 잊지 않은 포수가 한수혁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150㎞/h가 넘는 공을 잡아내기 위해 준비된 갖가지 보호장비를 착용한 채 말이다.
부상까지는 아니더라도 홈 충돌로 인해 한수혁이 아주 약간이라도 불편을 느끼게 된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황병호의 착각이었다.
한수혁과 충돌한 포수가 마치 덤프트럭에 치인 경차처럼 볼품없이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홈을 밟은 한수혁이 인천 덕아웃을 바라보았다.
놈의 입이 열렸다.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황병호는 본능적으로 한수혁이 뭐라고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다음.
분명 저 녀석은 그렇게 말했다.
“저기… 감독님?”
황병호의 감독 취임 이후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게 된 인천의 코치들.
잔뜩 긴장한 표정의 배터리 코치가 황병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포수랑 투수는 어떻게… 누구로 교체할까요?”
한수혁 하나로 의해 초토화된 그라운드.
워리어스를 망가뜨리려던 인천은 오히려 3회도 채 지나지 않아 투수 두 명과 포수 한 명을 잃고 말았다.
* * *
인천의 배터리가 통째로 교체되고, 이후에도 계속 투수가 바뀌는 동안 워리어스 선발 이영주는 4회말까지 인천 강타선을 단 두 점으로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야구는 팀스포츠다. 가끔은 팀 전체에 감도는 분위기가 개별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릴 때가 있다.
오늘 이영주가 바로 그랬다.
불안에 떠는 투수를 야수들이 적극적으로 도왔다.
10개 구단 최강으로 평가받은 센터 라인이 미칠 듯한 호수비로 안타성 타구를 범타로 만들어버렸다.
호수비가 계속되자 어깨가 가벼워진 이영주의 공이 점차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던 5회초 워리어스의 공격, 드디어 기다리던 그것이 터졌다.
따아아아악!
“우와아아아아!”
“어어어! 이쪽이다! 이쪽!”
“밀지 마! 밀지 말라고!”
9번 최민석에게 안타를 맞은 인천의 여섯 번째 투수가 마운드에서 쫓겨 내려갔다.
그리고 일곱 번째로 나선 투수가 1번 서형주에게 볼넷을 줬고, 발 빠른 주자 둘이 마치 더블스틸을 할 것처럼 투수를 위협했다.
제구력이 흔들린 인천 투수가 다시 안치욱에게마저 볼넷을 허용하며 순식간에 무사 만루.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얼굴이 벌개진 황병호가 여덟 번째 투수를 출격시키며 말했다.
“큰 건 절대 안 돼. 몸에 맞아도 좋으니 몸쪽 낮은 곳으로 던져. 내 말 알아들어? 차라리 볼넷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큰 거는 안 된다고!”
세상 일이 계획대로만 되면 얼마나 편할까?
루상을 가득 메운 주자 때문에 고의사구를 줄 수도 없게 된 인천은 결국 한수혁과 승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황병호가 내린 지시는 볼넷을 주더라도 절대 좋은 공은 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투수의 제구력은 외부 요인에 따라 엄청나게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만루 상황에 한수혁이 들어서자 갑자기 인천 구장 외야에서 잠자리채가 물결치기 시작했다.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바라는, 그리고 그 공을 잡아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홈런을 외쳐댔다.
숫자에서 한참 밀리는 인천 팬들이 있는 힘껏 투수를 응원했지만 나머지 관중들의 거대한 함성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정신이 혼미해진 투수의 제구력이 휘청거렸고, 몸쪽 낮은 곳으로 던지려던 공이 그대로 한가운데로 들어가버렸다.
그 결과가 바로 저것이다.
– 한수혁 선수가! 한수혁 선수가! 드디어! 시즌 60번째 홈런을 날리며 아시아 최다 홈런 타이 기록을 달성하고 맙니다! 대단합니다! 순식간에 스코어를 7 대 2로 벌리는 엄청난 홈런이었습니다!
– 아흐흐흑.
– 위원님?
– 이제 정말 방송국에서 짤려도, 마이크를 놓고 백수로 돌아간다 해도 여한이 없습니다. 세상에 제 눈으로 이런 엄청난 걸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맙소사! 혹시 제가 꿈을 꾸는 건 아니겠죠?
– 저기, 좀 진정하시고…….
– 오늘 경기를 보면서 다들 느끼셨을 겁니다. 결국 야구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가 하는 거라는 걸, 어떤 치사한 짓을 한다 해도 결국 진짜 실력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죠.
– …….
난감한 표정이 된 아나운서가 본사와 연결된 프롬프트를 바라보았다.
그 화면에는 ‘ㄱㄱ’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대로 계속 가라고? 정말?
당황한 그가 올 시즌부터 도입된 실시간 시청률 그래프를 확인했다.
그제야 본사의 지시가 이해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솟구치고 있는 시청률 그래프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광고주인 인천 모기업의 이름값도 저런 압도적인 시청률 앞에서는 결국 힘을 잃고 만 것이다.
용기를 얻은 아나운서가 고동식의 말을 받아주었다.
– 정말이지, 다른 걸 다 떠나서, 정말, 하아, 정말 엄청나긴 합니다, 위원님.
– 그렇죠? 제가 올 시즌 첫 경기 때 뭐라고 했습니까? 한수혁 선수가 우리나라 야구 전체를 다 바꿔 놓을 거라고 했죠? 그날 제 SNS는 악플 때문에 문을 닫아야 했지만요.
– 저런.
– 괜찮습니다. 요즘은 다시 팔로워가 엄청나게 늘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결국 정의, 아니, 한수혁 선수가 승리했습니다.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 * *
촤아아악
터억!
“아웃!”
– 2루로 뛰어들던 주자가 아웃 당하며 경기가 그대로 종료됩니다. 최종 스코어 9 대 5, 워리어스가 시즌 최종 3연전 첫 경기에서 귀중한 승리를 가져갑니다!
양팀 합계 16명의 투수가 동원된 경기.
물론 그중 12명은 인천의 투수들이었다.
오늘 경기로 인해 인천은 진세민이라는 제법 괜찮은 중간계투와 국가대표급 포수 손영진을 부상으로 잃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인천을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오늘 경기를 직접 본 사람이라면 말이다.
[워리어스와 레인저스 간 운명의 3연전 첫 경기, 워리어스가 9 대 5로 승리하며 승차 없이 승률에서 1리 뒤지며 2위 기록] [한 경기라도 패배하면 그대로 끝나는 워리어스, 선발 이영주의 호투로 벼랑 끝에서 탈출] [시즌 60호 홈런 때려낸 한수혁, 소감을 묻는 질문에 “기왕이면 신기록은 야구 경기에서 기록하고 싶지만… 남은 경기가 이것뿐이니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무슨 뜻?] [강습타구 맞고 실려 나간 진세민 시즌 아웃, 무리한 플레이로 홈플레이트 충돌 야기한 포수 손영진도 시즌 아웃, 수원의 가을야구에 비상이 걸리다] [1이닝 만에 물러난 선발, 황병호 감독 또다시 위장선발 논란에 휩싸여] [의미 없는 투수 교체, 거친 플레이로 부상당한 선수들, 이것이 과연 인천의 야구인가?]황병호의 감독 취임을 싫어하면서도 그가 낸 성적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던 인천 팬들이 앞다투어 그의 야구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물론 옹호하는 여론도 존재했다. 뭐가 어찌 되었든 그가 부임한 이후 인천의 성적이 올라간 건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전임 감독과 현 감독을 지지하는 세력이 극명하게 양분되며 대립을 시작했다.
선수단에 이어 팬들까지 휘청거리는 상황.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양팀 간의 2차전이 시작되었다.
1차전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워리어스는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패배하면 그 즉시 2위가 확정되는 벼랑 끝 승부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2차전 선발로 나선 천상진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인천 타자들을 막아냈다.
아직까지도 조금 불편한 천상진의 발목을 인천 타자들이 집요하게 노렸다.
1회부터 2회까지 계속된 투수 앞 기습번트에 천상진의 발목이 삐걱거렸다.
또다시 관중석에서 오물이 날아들고 안전망을 타고 그라운드 난입을 시도하던 민예린과 몇몇 관중들이 퇴장당했다.
보다 못한 이대준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올랐다.
“상진아, 그만 던지자. 아무래도 쟤들 관심은 승리가 아니라 네 발목인 것 같다.”
“감독님.”
“응?”
“감독님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야, 그건…….”
그 대사는 어디 만화책에 나온 것 아니냐고 말하려던 이대준 감독은 그 말을 그냥 삼킬 수밖에 없었다.
감독을 바라보는 천상진의 눈빛에 절대 꺾이지 않을 굳은 결심이 가득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오늘입니다.”
“상진아.”
“평생 2군을 전전하다 선수 생활이 끝날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이런 중요한 순간에 서 마운드에 서 있네요, 감독님.”
“…이 자식아.”
“도저히 못 던지겠다 싶으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이대준은 천상진을 마운드에서 내리지 못했고, 인천 타자들은 그의 발목을 계속 노려댔다.
그럼에도 천상진은 불편한 발목을 붙잡고 5회까지 무려 105개의 공을 뿌리며 버티고 또 버텼다.
“오빠아아아!”
“허어어엉! 오빠야!”
5이닝 3실점으로 물러나는 천상진을 향해 팬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마운드에서 내려온 천상진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집요하게 약점을 파고드는 적, 그럼에도 끝까지 자기 할 일을 해내고 병원으로 실려간 동료의 분전이 워리어스 선수들을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어제에 이어 또다시 12명의 투수를 등판시킨 인천.
이에 워리어스 역시 천상진에 이어 등판 가능한 투수들을 모두 동원하며 끝까지 맞섰다.
그렇게 12회까지 이어진 경기는 결국 승부를 가르지 못하고 그대로 끝나버렸다.
6 대 6 무승부.
여전히 승률에서 1리 앞선 인천은 1위 자리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제 심리적으로 쫓기는 건 워리어스가 아닌 인천이었다.
3게임 중 단 1게임만 이기면 1위를 지켜낼 수 있던 승부가 어느새 단판 승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마지막 3차전에서 승리한 팀이 2027년 정규시즌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게 되었다.
벼랑 끝에서 간신히 기어 올라온 워리어스는 3차전 선발로 베테랑 이만식을 예고했다.
그리고 인천에서는 사흘을 휴식한 임준영이 선발로 예고되었다.
임준영의 혹사 여부를 놓고 여기저기서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평소 언론플레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던 인천이 갑자기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천의 그런 태도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충격적인 사실이 발표되었다.
구단주의 뜻이 곧 진리이자 법인 한국야구에서만 가능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인천 레인저스 황병호 감독, 건강상의 문제로 자진 사퇴. 정규시즌 최종전과 포스트시즌은 수석코치 체제 하에 치룰 것] [인천 레인저스 측 “계속되는 접전에 감독의 스트레스가 컸다. 고령의 몸으로 계속 일정을 이어가는 건 어렵다고 판단했다.”] [구단 고위층의 의지가 아니냐는 질문에는 노코멘트] [시즌 말미 두 번째 감독 교체에 분노한 인천팬들 “이 따위로 팀을 흔들 거면 차라리 구단을 매각하라” 항의]인천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황병호의 퇴임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지난 1, 2차전을 스카이 박스에서 지켜보던 인천의 구단주가 쌍욕을 내뱉었다는 소문이 야구계에 파다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데려온 감독을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내쫓은 인천의 구단주.
그렇게 인천은 황병호를 떠나보냈고, 그는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돌아갔다.
아주 먼 훗날, 황병호는 자서전을 통해 이날의 일에 대해 언급했다.
‘2027년, 맞아. 그때 나는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면서도 내 야구가 왜 실패한 건지 이유를 찾지 못했지. 나는 분명 하던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거든. 지금 와서 생각해도 나는 틀리지 않았어. 하지만 딱 한 가지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더군.’
그의 말대로였다.
당시 그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욕을 먹는 것과 상관없이 팀을 우승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다만 한 가지를 계산에 넣지 못한 게 그의 실책이었다.
한수혁.
만약 워리어스에 한수혁이 없었다면 이번에도 그의 계획은 성공했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성공해온 황병호의 야구가 실패한 이유는 오직 하나, 한수혁이라는 이레귤러의 존재 때문이었다.
“수혁아, 오늘도 잘 부탁한다. 이 형 쪽팔리지 않게 잘 좀 도와주라.”
“형.”
“우승이 걸린 최종전에서 삽질하면 나 관중들한테 맞아죽을지도 몰라. 흐흐, 살아서 돌아갈 수만 있게 해다오.”
그렇게 황병호 체제에서 벗어난 인천이 수석코치의 지휘 아래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던 그때, 워리어스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울 각오를 마친 노장이 선발등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제 2차전이 연장으로 이어지며 기용 가능한 투수가 거의 바닥난 상황, 시즌 최종전이자 1위 결정전에 선발 등판하게 된 이만식의 얼굴에는 강한 책임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