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70)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69화(170/412)
#169. 한수혁의 계획
정규 시즌 144경기를 치르며 결정된 순위가 고작 가을야구 몇 게임으로 인해 뒤집힌다는 건 어쩌면 상당히 불합리한 일일 수도 있다.
5개 팀씩 묶인 지구에서 우승한 후 다시 그 우승팀들끼리 리그 우승을 다투고, 거기서 이겨야 비로소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
그런 미국 야구에 익숙한 나로서는 10개 팀 중 5위를 차지한 팀이 그 해 1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꽤 있는 듯하다.
그들이 주장하는 건 바로 약자의 업셋을 보는 짜릿함이었다.
시즌 내내 중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던 팀이 상위권 팀들을 차례차례 누르고 결국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의견.
내가 이해하건 못 하건 지금 그런 희박한 확률에 도전장을 내민 팀이 또 하나 있었다.
지난 시즌 준우승에 힘입어 올 시즌에는 반드시 우승을 차지하겠다 자신했던 매지션스.
워리어스의 징글징글한 이웃이 바로 지금 그 업셋을 위해 총력을 쏟아붓고 있다.
“하영 선배가 또 나오네.”
“와… 이러면 4게임 연속 등판 아닌가?”
“진짜 승부욕 하나는…….”
“저기… 다 좋은데 왜 자꾸 우리 집에 와서 야구를 보는 거지?”
“그야 너희 집이 제일 넓고 TV도 제일 크니까, 일단 조용히 해봐. 경기나 마저 보자.”
“…….”
아직까지도 2군 기숙사에 머물고 있는 안치욱은 그렇다 치고, 멀쩡히 서울에 집이 있는 서형주까지 우리 집에 모여 야구를 보고 있다.
“수혁아, 혹시 나 물 좀 마셔도 될까?”
“물? 저기 냉장고 옆에 생수 박스 있을 거다.”
“고마워.”
거기에 이상하게도 날 어려워하는 눈치인 동기 유인철까지.
오전 팀 훈련을 마친 후 갑자기 우리 집으로 밀려든 동기 세 놈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많이 나아졌다 생각했건만, 여전히 나는 사적인 공간에 누군가를 들이는 게 많이 어색하다.
슈우웅
파앙!
“스윙! 아웃!”
– 아! 그대로 경기가 끝나고 맙니다! 서울 매지션스가 준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며 수원 커맨더스를 제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 멋지네요! 이하영 선수, 4게임 연속 등판을 자처하며 기어코 팀을 승리로 이끕니다. 팀이 승리한 세 경기에 모두 등판해 세이브를 기록하게 됐네요. 으음… 누군가는 혹사를 얘기할 수도 있지만 지금 이하영 선수의 표정을 보면 그런 말을 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 반면 커맨더스는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 이어 이번 시즌에는 준플레이오프에서 또 매지션스에게 발목을 잡히고 맙니다. 아쉽네요. 올해가 끝나면 최경재 선수가 FA로 풀리게 되는데 그 결과에 따라 수원의 향후 미래가 결정될 것 같습니다.
5전 3선승제로 진행된 3위팀 수원 커맨더스와 4위 서울 매지션스 간의 준플레이오프는 결국 매지션스의 업셋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준플레이오프의 주인공은 매지션스의 마무리 이하영이었다.
시속 155㎞/h를 뿌리는 이 좌완 마무리는 팀이 거둔 세 번의 승리를 자신의 손으로 완벽하게 마무리 지으며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 놓았다.
매지션스의 최고참이자 이제 곧 은퇴를 앞둔 김성수가 벌개진 눈으로 관중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반면 FA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팀을 위해 뭔가를 남기겠다 다짐했던 수원 에이스 최경재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은 채 정대한에게 안겨 있었다.
“저 형도 우나 보네.”
“그러네…….”
시즌 내내 나에게 지독하게도 시달린, 그래서 농담처럼 워리어스로 이적하겠다고 말하던 최경재가 수원 관중들을 앞에 두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야구란 스포츠는 정말로 잔인하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혼자 팀을 우승시킬 수는 없다.
그렇기에 류한결이나 최경재 같은 특급 투수들 역시 팀의 패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지난 2021년, 2년 차의 몸으로 수원을 창단 첫 우승으로 이끌었던 최경재가 이제 선수 생활의 2막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를 믿고 따르던 후배들을 뒤에 남겨둔 채 말이다.
[2027년 수원 커맨더스 최종 순위 3위]그렇게 수원 커맨더스의 야구는 끝을 맺었다.
그건 그렇고…….
“야! 안치욱! 너 과자 부스러기 흘리지 말라고 내가 말 안 했어?”
“…왜 자꾸 나한테만.”
* * *
따아아아악!
“우아아아… 진짜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네.”
“홈런 비거리로만 치면 미국에도 저 정도 치는 애들은 없지 않을까?”
“평균 비거리로 치면 그럴지도 모르지.”
“성오야, 수혁이 타격 연습 끝나면 감독실로 좀 오라고 해라.”
“네, 감독님. 알겠습니다.”
정규 시즌이 끝난 후 와일드카드 결정전과 준플레이오프, 그리고 플레이오프가 진행되는 기간은 대략 보름 남짓.
다른 팀들이 한국시리즈 진출을 위해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이는 동안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한 팀에게는 휴식과 훈련을 병행하며 선수단을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획득한 서울 워리어스.
오전 내내 진행 중인 타격 훈련에서 한수혁이 또 말도 안 되는 장타를 날려대며 선수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
‘으음…….’
감독실로 걸음을 옮기던 이대준은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상황이 도통 적응이 안 된다.
뭐랄까, 마치 꿈을 꾸는 기분이랄까?
팀에서 반쯤 쫓겨나듯 은퇴한 후 짧지 않은 시간을 야인으로 보냈다.
코치 경험조차 없는 초보 감독.
모두가 이대준의 선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결국 그는 해내고 말았다.
과정이야 어쨌던 지난 시즌 최하위 팀을 이끌고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건 대단한 업적이었다.
여전히 이대준을 신뢰하지 않는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하기도 한다.
모든 건 한수혁 덕분이라고, 이대준은 그저 선수를 잘 만난 운 좋은 지도자일 뿐이라고.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역대 타격 주요 부문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거기에 투수로서도 완벽에 가까운 존재인 한수혁.
그가 없었다면 절대 워리어스의 우승은 불가능했을 테니까.
아무리 야구가 선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된 스포츠라 해도 한 시즌 61개의 홈런에 162개의 타점을 올린 선수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게다가 그 타자가 마운드에 올라 50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면 더더욱.
하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워리어스 선수단을 지켜본 전문가들, 예를 들면 고동식 같은 이들은 그와 조금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이대준이기에 한수혁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한수혁은 아주 이질적인 존재였다.
비교할 대상이 없는 실력은 둘째 치고, 행동이나 마음가짐이 도무지 국내 선수 같지가 않다.
그 어떤 선수도 피해 갈 수 없는 선후배 사이의 관계, 혹은 용병들과의 관계를 설정함에 있어 거침이 없다.
그에게 함부로 굴다 개박살이 난 선수가 어디 한둘인가.
어떻게 보면 망나니처럼 보일 수도 있다. 선배들이고 뭐고 일단 수틀리면 들이박는 사고뭉치로 낙인 찍힐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수혁은 결국 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큰 사고를 치지 않은 채 무사히 한 시즌을 보냈다.
물론 한수혁이 같은 팀 선후배들에게는 아주 깍듯했다는 게 컸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이대준이 한수혁을 잘 컨트롤한 덕분이었다.
한수혁이라는 인간에 대해 하나하나 공부해 나가던 이대준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팀에 대한 애정, 그리고 야구에 대한 열정, 승부에 대한 집념.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없는, 그야말로 야구를 위해 태어나고 살아가는 생명체.
그런 한수혁에게 봉변을 당한 놈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선배라는 권위 의식에 사로 잡혀 되도 않는 위세를 부렸다거나, 혹은 야구장에서 야구가 아닌 다른 치사한 짓을 했다는 등의 공통점이 있었다.
한수혁의 실체를 깨달은 이대준은 그 속에서 자신의 옛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 처음 프로 유니폼을 입고 앞으로 리그를 대표할 선수가 되겠다 마음먹었던 순수했던 시절의 자신 말이다.
이제는 너무나 오래되어 그 순수한 마음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그때를 떠올리고, 그 마음 그대로 한수혁을 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세간에 알려진 초보 감독 이대준에 대한 평가, 감독보다는 친형님처럼 느껴지는 특유의 카리스마.
그건 바로 한수혁을 컨트롤하기 위해 노력하며 만들어진 부산물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대준의 비호와 격려 하에 한수혁은 한 시즌을 무사히 치렀고, 이제 그 둘은 함께 사상 첫 한국시리즈에 도전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 한수혁을 한국시리즈에서 어떻게 기용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완전치 않은 어깨를 갖고 마운드에 올랐던 한수혁은 이후 투구 훈련을 완전히 중단한 채 매일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천만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별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시즌 내내 축적된 피로와 염증으로 인해 어깨의 컨디션에 완전치 않다, 딱 그 정도가 현재 알 수 있는 전부였다.
한국시리즈는 7전 4선승제로 치러진다.
지금까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팀들 중 일부는 에이스를 1차전과 4차전, 그리고 7차전에 등판시키는 만행을 저질렀고, 그 대가로 에이스를 잃기도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대준은 절대 한수혁을 무리시킬 생각이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 딱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카드로 활용하거나, 정말 가능하다면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는 타자로만 뛰게 하고 싶었다.
투타 겸업으로 빅리그를 벌컥 뒤집어 놓았던 오타니 쇼헤이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이대준은 똑똑히 보았다.
이대준은 팀의 우승을 위해 한수혁을 희생할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그렇기에 오늘 이대준은 한수혁에게 한국시리즈에서 타자에만 전념할 것을 지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수혁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1차전, 그리고 5차전에 등판하겠습니다.”
“수혁아. 네 어깨는 지금 완전치 않아.”
“알고 있습니다, 감독님. 절대 어깨에 무리를 주지 않는 선에서 던지겠습니다. 이만식 선배가 없는 상황에서 저까지 빠진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순간을 위해 일 년 동안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마지막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우승도 중요하지만 넌 이제 시작이야. 앞으로도 기회는 얼마든지 더 올 거다. 그리고 네가 안 던진다고 우리가 꼭 패배하리란 법도 없고 말이야.”
“음… 감독님, 나중에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잠시만 저에게 시간을 좀 내주시죠.”
“시간? 왜?”
한수혁이 이대준을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텅 빈 불펜이었다.
그곳에는 월터 스미스가 먼저 와 대기하고 있었다.
“월터, 준비는 됐죠?”
“물론, 난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지.”
“고마워요.”
둘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를 이대준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을 왜 불펜으로 데려왔는지, 왜 장덕수가 아닌 월터가 포수 장비를 차고 있는지, 그리고 그가 왼손에 끼고 있는 저 미트는 무얼 뜻하는지 말이다.
“수혁아, 대체 뭘 하려는 거냐.”
“제가 한국시리즈에서 뭘 하려는지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음?”
슈웅
퍼엉!
30분 후.
“수혁아, 그러니까 이게…….”
“이번 시리즈 두 경기,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럼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감독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