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71)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70화(171/412)
#170. 재격돌
정규 시즌 2위 인천 레인저스와 4위 팀 매지션스 간의 플레이오프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시즌 막판 최악의 감독 교체 사태를 겪으며 이래저래 부침이 많았던 인천은 일주일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선수단을 정비하며 상당 부분 전력을 되찾은 상태였다.
특히나 황병호에 의해 혹사를 당한 임준영의 어깨가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다행히도 정밀검진에서 별다른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5판 3선승제로 진행되는 플레이오프에서 에이스 임준영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엄청나다.
임준영에 대한 소식이 언론을 타고 전해지며 자연스럽게 이번 시즌 FA 자격을 획득하게 될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언급되었다.
[류한결과 임준영, 최경재, KBO 투수 BIG 3의 미래는?]투타를 막론하고 올 시즌 후 거취가 가장 궁금한 건 바로 류한결과 임준영, 최경재 등 3명의 특급 투수들이었다.
7번째 시즌을 보내며 해외 진출 자격을 획득한 류한결, 그리고 첫 번째 FA를 맞게 된 최경재, 마지막으로 두 번째 FA 자격을 코앞에 둔 임준영까지.
프로야구 10개 구단이 이들 투수 BIG 3의 영입을 위해 물밑에서 열심히 움직임을 시작한 가운데, 여기 그들과 전혀 상관없는 미국 뉴욕시 외곽의 거대 저택에서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도련님, 그러니까 결론을 말씀드리면 향후 2년 내에 중국과 대만 간의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게 저희 판단입니다. 이 경우 미국의 GDP가 일시적으로 5% 이상 하락할 수 있으며, 저희 가문 역시 어느 정도는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하암, 조, 알았어. 알았다고. 그래서 결론은 중국이 그런 짓을 저지르면 즉시 경제적, 군사적 응징에 들어가야 한다는 거 아냐? 우리가 5% 손해를 보면 저쪽은 아예 박살이 날 정도로 말이지. 내 말 맞지?”
“맞습니다. 도련님, 장하십니다.”
“그런데 조, 나 이제 일곱 살이야. 아직 그 정도 단계까지는 몰라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어머니랑 아버지도 계시는데 말이야.”
“로펠스 가문의 후계자라면 이 정도는 너무나 당연한… 음…….”
일곱 살 도련님의 눈 밑에 낀 짙은 다크서클이 조 윌슨의 마음을 움직였다.
조금 심했던 걸까, 아무리 미국 내에서 저 소년이 차지하는 위치가 막중하다 해도 아직 일곱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인데.
미안한 마음이 든 비서실장이 소년이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를 꺼내며 잠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혹시 도련님, 그리고 지난번 수업에서 설명드린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시장 현황을 기억하시는지요?”
“기억하지. 현재 상태면 중국 기업에서 제일 먼저 상용화가 가능할 것 같다며?”
“맞습니다. 지금대로라면… 중국 쪽에서 가장 먼저 성공할 가능성이 8할 이상 됩니다. 유럽 주요 기업들, 그리고 미국 내 일부 기업들이 그쪽으로 기술과 자본을 몰아주고 있으니까요.”
“그래? 그거 참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네. 1년 전만 해도 스위스에 그…….”
“ICJN연구소 말씀하시는군요.”
“맞아, 거기. 그때만 해도 스위스 ICJN 연구소가 제일 유력하다고 했지?”
“맞습니다.”
“그럼 스위스 쪽에 투자한 사람들은 큰일나게 생겼네. 어쨌든 그 얘기를 왜 하는 건데? 우리는 그쪽하고 아무 상관도 없잖아?”
“아, 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음… 그 ICJN 연구소 쪽을 조사하다가 재미있는 걸 발견해서 말이죠.”
“재미있는 거? 그게 뭔데?”
소년의 눈에 갑자기 흥미로운 눈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자신의 비서실장이 이런 얘기를 할 때는 항상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따라온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금난에 빠진 ICJN 연구소 쪽에서 대규모 투자자를 모집했더군요. 그런데 골드만삭스를 앞에 내세운 누군가가 몇 달 전 3,300만 달러의 자금을 투자한 게 확인됐습니다.”
“3,300만? 뭐야, 얼마 안 되네.”
“네, 얼마 안 되기는 하는데 어쨌든 그 돈을 투자함으로써 ICJN 연구소의 3대 주주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1년 만에 시장에서 버림받은 게 맞긴 맞나 보네. 겨우 그 돈으로 3대 주주라… 음, 그런데 조, 나 아직 어디가 재미 포인트인지 모르겠는데?”
“아, 제가 중요한 걸 빼놓고 말씀 안 드렸군요.”
아무리 천재라 해도 이제 겨우 일곱 살이다. 그런 어린아이와 이야기할 때 어떤 전개 방식이 가장 큰 흥미를 유발시키는지 조 윌슨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드디어 소년이 흥미로워할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그 투자자가 도련님도 아는 사람입니다.”
“아는 사람이라고? 누구지? 음, 우리 가문 사람인 거야?”
“아뇨. 힌트 하나 드리죠. 동양인입니다.”
“동양인? 음… 누구지? 누군데, 조, 그냥 말해줘.”
소년의 눈에 궁금함이 가득 들어차자 조 윌슨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한수혁입니다.”
“한수혁?”
“네, 지난번 WBC 때 도련님이 관심을 보이신 그 야구선수… 기억하시죠?”
“알지! 당연히 알지. 오… 그래, 그 형이구나. 그 형 야구 말고 투자도 하는 건가? 3,300만 달러면 운동선수한테는 꽤 큰 돈 아냐?”
“그게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야구로 번 돈은 아니고, 상속받은 돈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고작 한국 재벌 따위의 힘으로 로펠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조지의 입에서 투자금의 출처를 들은 꼬마 아이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WBC에서 자신에게 깊은 영감을 준, 그래서 잠시나마 소년에게 야구선수의 꿈을 꾸게 해주었던 고마운 형이 위기에 빠졌다.
그냥 야구로 번 돈도 아니고 상속받은 3,300만 달러라는 돈을 허공으로 날리게 생겼다.
자신에게는 푼돈이지만 일반인들에게 그 돈이 어떤 의미인지 소년은 대략적이나마 이해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뭔가를 고민하던 소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
“네, 도련님.”
“저번에 어머니가 그러셨잖아. 기업 하나 직접 운영하면서 경험을 쌓아보라고 말이야.”
“마님께서 그러셨죠.”
“좋아, 결정했어.”
“뭘 말씀이신가요?”
“스위스 ICJN연구소, 거길 내 첫 회사로 하겠어. 오늘 바로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 처리해줘.”
“한수혁이라는 야구선수를 돕고 싶으신 거군요?”
“뭐, 일단은 언제 우리 적이 될지 모를 중국 회사가 전고체 배터리 시장을 먹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소년의 입가에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얼마 안 되는 돈이긴 하지만 야구선수가 전 재산을 날리면 플레이에 지장을 줄 거 아냐? 나는 그 형이 야구에만 모든 신경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날 도와줄 거지, 조?”
“물론이죠, 도련님. 모든 건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질 겁니다.”
본래 역사에서 전 세계 최초로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성공했을 스위스의 한 연구소는 한수혁의 회귀로 인한 나비효과 때문인지 중국 기업에 밀려 쓸쓸히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운명이었다.
전생에서의 기억 하나만 믿고 투자된 한수혁의 450억 원을 집어삼킨 채 말이다.
하지만 오늘, WBC에서 한수혁이 보인 활약에 홀딱 반한 어떤 도련님의 선택으로 인해 스위스 ICJN 연구소는 향후 전 세계 전고체 배터리 시장을 선도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다른 기업, 혹은 전 세계 그 어떤 집단이 나선다 해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다름 아닌 로펠스, 미국을 움직이는 지배자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조.”
“네, 도련님.”
“그 형, 야구는 잘하는데 투자 쪽은 영 엉망인가 봐.”
“사람이 뭐든 다 잘할 수는 없는 거죠.”
“그런 거지?”
* * *
“에이취!”
“아이, 제이, 케이, 엘, 엠, 엔… 음, 이번 건 좀 재미없었죠, 오빠?”
“푸에에에… 에이취!”
“어? 혹시 감기 걸린 건 아니죠? 잠시만요. 제가 얼른 따뜻한 차 한 잔 타올게요.”
“어, 그래, 고마워. 음, 누가 어디서 내 욕을 하나. 자꾸 귀도 간지럽고 왜 이러지.”
전생의 흐릿한 기억 하나만 믿고 450억이라는 돈을 과감히 한 곳에 몰빵한,
투자 전문가 민태현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아야 한다며 올인을 외쳤던,
자신의 야구에 반한 어떤 소년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순식간에 그 큰 돈을 날릴 뻔했던 한수혁이 연신 재채기를 하면서도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인천 레인저스와 서울 매지션스 간의 플레이오프 5차전이 펼쳐지고 있는 인천 야구장.
9회초 매지션스의 마지막 반격을 막아 내기 위해 인천의 에이스 임준영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에이스가 시리즈를 마무리 짓기 위해 나선 것이다.
감독의 지시가 아니었다.
임준영이 마운드에 오른 건 어디까지나 그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오늘 5차전이 시작되기 전 임준영은 기자들의 인터뷰에 이렇게 대답했다.
‘꼭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워리어스, 그리고 한수혁과 다시 한번 승부를 벌이고 싶습니다. 네, 그가 엄청난, 그리고 저보다 대단한 선수라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임준영이 한수혁에게 지는 한이 있더라도 레인저스는 워리어스에게 지지 않을 겁니다.’
임준영의 말은 진심이었다.
5 대 4 한 점 차까지 쫓긴 상황, 9회초 등판한 인천의 마무리 권길용이 두 타자에게 연속으로 안타를 허용하자 임준영이 마운드에 올랐다.
정규 시즌 막판부터 계속된 등판에 최고 구속은 148㎞/h까지 떨어졌지만 임준영의 기세에 눌린 매지션스 타자들은 결국 그를 공략하지 못했다.
따아악!
“아웃!”
“아웃!”
매지션스 최고참 김성수가 때린 타구가 4-5-3 병살타로 이어지며 결국 경기는 인천의 승리로 끝났다.
시리즈 전적 3승 2패.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팀이 결정되었다.
정규시즌 우승을 놓고 다퉜던 워리어스와 레인저스가 다시 한국시리즈 트로피를 놓고 재격들을 하게 된 것이다.
“오빠, 그런데 임준영 선수는 어디로 갈 거래요? 혹시 아세요?”
“음.”
단지 훈련장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지난 준플레이오프 내내 우리 집을 점령했던 동기 세 놈이 떠난 자리에 민예린이 대신 찾아왔다.
처음에는 이 여자와 같이 야구를 본다는 게 조금 어색했는데, 지난 닷새 연속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 어색함이 많이 사라졌다.
아니, 솔직히 말하건대,
이제 나는 혼자 있는 것보다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게 더 익숙해진 것 같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 대고 혼잣말을 하는 것에 지쳤다.
야구에 대한, 그리고 내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처음부터 몰랐으면 모를까.
이미 누군가와 함께하는 데 익숙해진 나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예린아.”
“네, 오빠.”
“그런데 우리 앞집 말이야. 저기 왜 계속 비어 있는 건지 혹시 알아?”
“아, 저 집이요.”
“응.”
“제가 임대했어요.”
“뭐? 왜?”
“혹시나 오빠 시끄러워서 쉬는 데 방해될까 봐서요. 여기가 최고층이라 층간소음은 없지만 그래도 벽간소음은 좀 있는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빌려버렸어요. 이제 여기 층에는 우리밖에 없는 거예요.”
“예린아…….”
“히히.”
나는 그저 야구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보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내가 옳다고, 오직 나 생각만이 유일한 해답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세상 어디에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고, 설사 있다 해도 그런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 생각해왔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수혁이라는 인간은 나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도움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그 사실을 깨우칠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상처를 주지 않고 살 수 있었을 텐데.
“배고프다.”
“앗, 잠시만요. 제가 얼른 밥 차릴게요.”
“아니, 요 앞에서 파는 우동 먹고 싶다. 같이 나갈까?”
“우동! 우동! 그거야말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요, 오빠. 얼른!”
고작 우동 한 그릇 같이 먹자는 말에 얼굴이 빨개진 민예린을 보며 생각했다.
얜 대체 왜 나를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