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72)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71화(172/412)
#171. 신무기 등장
한 해 걸러 한 번씩 우승을 하던 시절에는 미처 몰랐다.
워리어스라는 팀이 황금기를 맞았던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주전 3루수로 활약하며 3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젊은 야구 선수는 이제 서른다섯, 팀의 최고참이 되어 8년 만에 한국시리즈 무대에 발을 딛게 되었다.
‘만식아…….’
정말 아쉬운 것은 그와 함께 워리어스의 흥망성쇠를 함께 겪어온, 가장 아끼는 후배이자 동생 이만식이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이다.
바로 어제 일본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수술은 다행히 잘 끝났다고, 이제 회복이 끝나고 나면 열심히 재활하는 일만 남았다고 웃던 그 바보 같은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조성오는 이만식이 성공적으로 복귀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었을 때도 꾸준히 그 자리를 지켜온 미련한 놈이 그리 쉽게 마운드를 떠나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하지만 그 녀석과 함께 한국시리즈 무대에 다시 오르게 될 날이 올까?
올 시즌 기대 이상의 개인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자신은 이제 언제 꺾여도 이상하지 않을 노장이다. 심지어 이번 시즌이 끝나면 다시 구단과 재계약을 논해야 한다.
거기에 이만식은 최소 1년 재활의 시간이 필요하다.
운동선수에게 가장 무서운 건 적이 아니라 바로 시간이다.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 그 어떤 대선수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조성오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들에 앞서 KBO를 평정했던 선배들이 어떻게 은퇴를 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으니까.
그래서일까, 한국시리즈 맞상대로 인천이 결정되고, 오랜 시간 암흑기를 보낸 팬들이 열화와 같은 응원을 보내는 상황에서도 조성오는 좀처럼 기운이 나질 않았다.
팀의 주장으로서 후배들을 이끌어야 할 사람이 이러면 안 되지, 스스로를 다독여봐도 좀처럼 기분이 나아지질 않았다.
그런데 오늘, 그렇게 심해 속으로 가라앉던 조성오의 기분이 갑자기 나아지기 시작했다.
[한국시리즈 재격돌, 서울 워리어스와 인천 레인저스 1차전 선발로 한수혁과 데릭 벨 예고] [시즌 말미 어깨 이상설에 휩싸였던 한수혁, 1차전 선발 예고되며 건재함 과시] [임준영, 마이크 클락 대신해 1차전 선발로 낙점받은 데릭 벨 “나는 다시 태어났다” 무슨 뜻?] [전문가 예상, 1차전은 워리어스 우세, 하지만 전체 시리즈는 여전히 레인저스가 우세할 것] [베테랑 이만식이 빠진 마운드의 무게, 주전 선수들의 자잘한 부상, 그리고 여전히 얇은 뎁스는 워리어스의 약점] [플레이오프에서 매지션스를 3승 2패로 꺾은 레인저스, 경기 감각에서 앞서] [8년 만에 정상 탈환을 노리는 워리어스, 그리고 2년 연속 우승 도전에 나선 레인저스, 과연 최후의 승자는?]당초 용병 라이언 스타크의 등판이 유력했던 한국시리즈 1차전에 한수혁이 선발로 예고되었다.
별 것 아니었다.
그저 선발 투수의 이름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간단한 사실 하나만으로 조성오를 포함한 워리어스 선수단 전원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워리어스의 주전 라인업 중 조성오와 이창모, 최민석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시리즈 경험이 아예 전무했다.
처음으로 밟게 된 한국시리즈 무대에 대한 설렘, 긴장감, 그리고 두려움에 자기도 모르게 위축되던 선수들이 한수혁의 등판 예고 하나만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조성오가 고무된 건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워리어스의 한국 시리즈 우승을 자신하냐는 질문에 한수혁 “물론이다. 그리고 올해를 기점으로 우리는 새로운 왕조를 구축할 것이다.”]별 것 아닌 인터뷰 한 꼭지.
예전 같으면 의욕 넘치는 막내의 출사표 정도로 생각했을 그 인터뷰 기사 하나가 조성오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올해 우승뿐만 아니라 새로운 왕조의 건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비록 자신은 이제 노장의 반열에 접어 들었지만 설사 주전이 아니라 해도 상관없다.
그저 워리어스의 유니폼을 입고 계속 뛸 수만 있으면 족하다.
한수혁의 말처럼 왕조를 건설하게 된다면 내년, 혹은 내후년, 또다시 이만식의 손을 잡고 한국시리즈 무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한수혁, 자신이 생각하기에 세계 최고일지도 모를 선수가 자신한 일 아닌가.
이제부터 자신이 할 일은 그런 한수혁의 야망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묵묵히 뒤에서 돕는 것이다.
이번 시즌 팀 내 한수혁에 이어 가장 좋은 타격지표를 기록한,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위치를 자각 못 하고 있는 조성오가 자기도 모르게 씨익 웃음을 지었다.
지금 그가 바라는 건 단 하나, 한수혁이 만들어갈 새로운 워리어스 왕조에 아주 작은 보탬이라도 되는 것, 그것뿐이었다.
* * *
팀에서 쫓겨나듯 떠난 황병호를 대신해 인천 레인저스를 지휘하게 된 임시 감독 한재호.
오늘날 인천 레인저스의 토대를 만든 전임 감독 구용식의 가장 절친한 후배이자 신봉자이기도 한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저게 대체 무슨……?’
황병호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팀을 이끌고 매지션스와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항명하다 쫓겨난 강우찬과 민주현, 권길용 같은 선수들을 다시 불러 다독이고, 그의 입맛에 맞춰 콜업한 몇몇 쓰레기 같은 놈들을 다시 2군으로 내려 보내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팀의 에이스, 황병호의 혹사로 엉망이 된 임준영을 정성껏 케어하며 여기까지 올라왔다.
매지션스를 상대하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비록 시즌 성적은 4위에 머물렀지만 그건 여러 불운이 겹친 결과물이었다.
단순히 주전 라인업의 파워, 그리고 단기전에서의 승부만을 생각하면 사실 인천이 가장 꺼리는 팀은 매지션스였다.
그런 매지션스를 3승 2패로 꺾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왔다.
그 과정에서 마지막 5차전에 임준영을 마무리로 올려야 했지만 다행히 투구수가 많지 않았기에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그 대가로 이번 한국시리즈 선발은 데릭 벨 – 마이크 클락 – 임준영 – 김용재 순으로 운영해야 한다.
에이스를 1차전에 등판시킬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그가 아니었다면 한국시리즈에 올라 오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나마 한재호 감독이 믿는 구석은 상대 팀 워리어스의 에이스 한수혁 역시 어깨가 완전치 않다는 점이었다.
데뷔 첫해부터 투타 겸업을 하며 WBC까지 다녀온 한수혁의 어깨가 완전치 않다는 소문은 계속 있어 왔다.
워리어스 측에서는 극구 부인했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직접 상대한 한수혁의 구위는 시즌 내내 보여주었던 정상적인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기대했다. 혹시나 한수혁이 아닌 다른 투수가 1차전 선발로 나오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아니었다.
워리어스는 한수혁을 1차전 선발로 예고했다.
그럼에도 한재호는 낙담하지 않았다.
이정도 소문이 돌았다는 건 크고 작건 어깨에 이상이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워리어스는 한수혁에게 어떤 지시를 내릴까?
최대한 힘을 뺀 투구, 아무리 많이 던져봐야 7이닝.
그게 바로 한재호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일단 워리어스의 선발 라인업이 좀 이상했다.
1번 중견수 서형주
2번 좌익수 최민석
3번 1루수 조성오
4번 포수 월터 스미스
5번 투수 한수혁
6번 3루수 안치욱
7번 2루수 이창모
8번 우익수 김수학
9번 유격수 유인철
자신의 예상을 한참 벗어난 선발 라인업에 한재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덕수 저놈 혹시 뭐 부상이라도 당한 건가?”
이번 시즌 워리어스의 안방을 책임진 건 장덕수였다.
전체 경기의 85% 이상에서 포수 마스크를 쓴 이 선수는 워리어스의 중심타자이기도 했다.
그런 장덕수가 라인업에서 완전히 빠진 채 벤치에 앉아 있다. 그리고 대신 용병 월터 스미스가 선발 포수로 출전했다.
대체 왜?
한재호 감독의 의문은 1회초 워리어스의 배터리가 그라운드에 발을 디디며 더더욱 가중되었다.
오늘 포수로 나선 월터 스미스의 미트가 뭔가 이상했다.
그건 일반적인 포수 미트가 아닌 소프트볼에서 사용되는 1루수용 미트였다.
크고 거대한, 어떤 특정한 공을 잡기 위해 준비된 그런 미트.
순간 한재호의 머릿속에 어떤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설마, 그런 미친…….”
* * *
슈웅
부웅
퍼엉!
“스트라이크!”
– 아아,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수혁 선수가 이번 시즌 단 한 번도 선보이지 않았던 너클볼을 꺼내 들고 인천 타자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1회 3명의 타자들 중 그 누구도 한수혁 선수의 공에 배트 한 번 대보지 못했습니다!
– 크크크크.
– 위원님?
– 크하하하하!
– 저기 웃지만 마시고, 일단 해설부터 좀…….
– 아, 죄송합니다. 이것 참 너무 좋은 구경을 해서 말이죠.
– 일단 다른 것보다 시청자분들이 궁금해하는 건 저 너클볼이라는 구종입니다. 어떤 공인가요?
–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공의 회전을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던진 투수조차 그 공이 어디로 갈지 예측할 수 없는 공이죠. 축구의 경우를 예로 들면 무회전 프리킥이라고 있죠? 그것과 동일한 이치라고 보시면 됩니다.
– 아아,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한수혁 선수가 갑자기 왜 너클볼을 던지고 있는 걸까요?
– 간단합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 한수혁 선수가 아무리 강철 어깨를 가졌다 해도 이번 시즌을 치르며 어깨에 부하가 걸린 상태입니다. 당연한 겁니다. 무려 투타 겸업을 하고 있는 선수이니까요.
– 그런데요?
– 저는 솔직히 한수혁 선수가 오늘 경기에서 구속을 좀 낮추고 맞춰 잡는 피칭을 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대충 155㎞/h로만 던져도 여전히 위력적인 건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한수혁 선수는 전혀 다른 해법을 가지고 나왔네요.
– 어떤 해법인가요?
– 아주 간단히 말씀드리면 저 너클볼이라는 구종은 어깨 부상으로 구속을 잃은 베테랑 투수들이 가장 마지막에 선택하는 볼입니다. 어깨에 부담이 적어서 40세를 넘긴 투수도 던질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한 경기에 200개도 거뜬히 던질 수 있는 그런 공이라는 겁니다.
– 아하, 그렇다면……?
– 네, 한수혁 선수는 지금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솔직히 나도 인간이라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충 힘 빼고 5이닝 정도 던지다 물러날 생각 따위는 없다. 자, 여기 새로운 무기를 들고 왔으니 어디 한번 칠 테면 쳐봐라.
– 아아, 듣기만 해도 소름이 오싹 돋네요. 그럼 오늘 월터 스미스 선수가 포수 미트를 낀 건 이 너클볼과 연관이 있는 거겠군요.
– 네, 기록을 확인해 봐야겠지만 아마 월터 스미스 선수가 미국에서 너클볼을 받아본 경험이 있겠죠? 포수로서의 전체 기량은 장덕수 선수가 앞선다 해도, 너클볼은 훈련된 포수가 아니면 절대 받기 힘든 공이거든요.
– 음, 이렇게 되면 시즌 중간에 타자 용병을 교체한 게 신의 한수가 되었군요.
– 물론이죠. 하지만 이 모든 건 오직 한수혁 선수가 있기에 가능한 겁니다. 오늘 1회를 보세요. 평소보다 조금 느리기는 하지만 여전히 160㎞/h 이상 나오는 포심, 거기에 공중에서 춤을 추는 120㎞/h짜리 너클볼이 날아옵니다. 대체 이걸 누가 쳐낼 수 있을까요?
– 흐음…….
– 자, 이렇게 되면 전문가들 역시 예상을 좀 수정해야 할 겁니다. 한수혁 선수의 어깨 상태에 대한 패널티가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오늘 1차전에 이어 또 한 번 한수혁 선수가 등판한다고 가정하면 사실상 인천은 2패를 떠안고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니까요.
– 과연…….
– 어쨌든 그건 전문가들 사정이고, 야구팬 여러분은 그저 한수혁 선수가 펼치는 멋진 투구쇼를 감상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한동안 국내무대에서 사라졌던 너클볼이 다시 부활했습니다!
– 그런데 위원님.
– 네?
– 너클볼이 그렇게 던지기 어려운 공이라면… 한수혁 선수는 대체 그걸 어디서 배운 걸까요?
– 글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