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74)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73화(174/412)
#173. 예상치 못한 위기
“흐흐흐흐흐…….”
“여보……?”
“으하하하하!”
“여보!”
“아아, 미안해. 내가 깨운 건가?”
“…이 시간에 대체 뭘 하는 거예요? 야구? 설마 이 새벽에 또 야구를?”
“아아, 미안해. 이게 꼭 봐야 할 중요한 경기라. 알았어. 조용히 볼 테니 다시 가서 자.”
“…당신도 대충 하고 들어와서 자요. 내일 중요한 회의가 있다면서요.”
“그래, 고마워. 굿나잇.”
시애틀 외곽에 위치한 작은 주택가, 아담하지만 잘 정리된 정원이 인상적인 어떤 집 거실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새벽 3시를 넘어 4시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 자기 나라도 아닌 저 멀리 아시아의 어떤 나라에서 진행 중인 야구 경기를 지켜보는 남자의 이름은 다니엘 미첼.
그랬다.
바로 얼마 전까지 한국에 체류하며 한수혁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그는 사장의 부름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작년 이맘때쯤 그가 한수혁에게 500만 달러를 제안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라이언 티보우라는 미국 최고의 투수와 장기 계약을 맺으며 윈나우를 선언한 시애틀은 즉전감 외에도 몇 년 후를 기대할 수 있는 유망주들을 향해 아낌없이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한수혁에게 제안한 350만 달러라는 계약금 역시 그 덕에 가능했다.
물론 그 영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갑자기 미국이 아닌 한국 무대 잔류를 선언한 한수혁.
그 마음을 돌리기 위해 다니엘은 단장에게 계약금 인상을 요구했다.
350이 아닌 500만을 줘도 아까울 게 없는 선수라고.
하지만 그 요구는 단장 선에서 대차게 까였고, 결국 한수혁은 한국에 남았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한국팀의 WBC 우승, 참가국 전체를 모조리 박살 내며 대회 MVP에 오른 한수혁.
그제야 비로소 한수혁의 진가를 알게 된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한국으로 스카우터들을 급파했다.
일본에만 있던 지부가 한국에 새롭게 개설되는가 하면, 아예 한수혁만을 전담할 스카우터를 파견한 구단도 있었다.
그 사이 시애틀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라이언 티보우라는 최고의 투수를 보유하고도 매리너스는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3위에 머물고 말았다.
분노한 구단주가 단장의 목을 날렸고, 스카우트 팀을 책임지던 다니엘 미첼은 지금 유력한 차기 단장 후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런 그의 시선이 거실 테이블 위 노트북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스윙! 아웃!]–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한수혁 선수가 1회와 2회에 이어 3회에서도 세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아홉 타자 연속 삼진을 기록합니다!
“허허, 허허, 허허허…….”
자기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리려던 다니엘이 부인의 화난 얼굴을 떠올리며 입을 꾹 틀어 막았다.
그럼에도 손가락 사이로 자꾸 웃음이 세어 나온다.
어깨 컨디션이 완전치 않은 상황에서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로 낙점받은 한수혁은 첫 번째 이닝에서 그간 꽁꽁 숨겨두었던 새로운 무기를 꺼내 들었다.
사실 한수혁은 그걸 숨겼다기보다 그냥 별 필요가 없어 잊어버렸던 것이었지만 어쨌든 외부에서 보기에는 그랬다.
너클볼.
2027년 현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메이저리그에도 제대로 던질 줄 아는 투수가 거의 없는 마구.
물론 너클볼이 만능은 아니다.
결국 투구의 위력을 논하기 위해서는 구속이라는 부분을 무시할 수 없다.
너클볼은 느리다.
또한 실투가 나오기 쉽다.
조금이라도 회전이 과하게 들어가면 곧바로 배팅볼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한수혁은 거기에 해당되지 않았다.
그는 100마일이 넘는 포심을 던질 줄 아는 괴물이었으니까.
평소보다 조금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100마일이 넘는 포심이 포수 미트에 날아와 박혔고, 그 사이사이 70마일 너클볼과 80마일 체인지업이 끼어들며 타자들의 타이밍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기가 막혔다.
세상에, 너클볼이라니.
저 공은 투수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부상이나 나이로 인해 더 이상 강속구를 던질 수 없게 된 투수들이 생명연장을 위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공이었다.
그나마도 제대로 익힐 가능성이 거의 없는 그런 공.
그런데 최고 105마일의 포심을 던질 수 있는 스무 살짜리 애송이가 완벽한 너클볼을 구사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놀랄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상대 팀 타자들이 빠른 공과 느린 공, 두 가지 타이밍만을 노리고 투구 수 늘리기에 들어가자 한수혁이 또 한 번 투구 패턴을 변화시켰다.
너클볼의 구속이 변했다. 빠른 너클볼, 그리고 느린 너클볼.
그뿐만이 아니다. 이번에는 포심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빠른 포심, 느린 포심.
던지는 구종 자체는 단 세 가지에 불과하다.
포심과 체인지업, 너클볼.
그런데 거기에 구속 변화를 추가하자 타자 입장에서는 다섯 가지 구종을 상대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빠른 포심, 느린 포심, 빠른 너클볼, 느린 너클볼, 그리고 체인지업.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5회초까지 15명의 인천 타자들을 상대하며 1루 땅볼 하나를 제외한 14타자 전원 삼진.
“맙소사…….”
이제 몇 시간 후면 사장이 직접 소집한 긴급회의가 진행된다.
다니엘 자신에 대한 단장 임명 건을 비롯해 몇 가지 중요한 사안이 논의될, 그런 중요한 회의다.
하지만 지금 다니엘의 머릿속에 있는 건 자신이 단장이 될지가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의해 추진 중인 미국, 일본, 한국 간의 통합 포스팅 시스템 개정안에 대한 시애틀 구단의 입장 결정.
만약 그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현재 7시즌으로 규정된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미국 진출 자격 제한이 풀릴 것이다.
일본과 동일하게, 년차와 상관없이 소속 구단의 동의만 있으면 곧바로 해외 진출이 가능해진다.
‘이건 반드시 통과시켜야 해…….’
시애틀 구단의 손익을 위한 여러 의견들이 나오겠지만 다니엘의 생각은 오직 한 가지였다.
통과시켜야 한다.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든 그를 데려와야 한다.
시애틀의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을 위해, 나아가 정상 등극을 위해.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수혁이 필요하다.
시뻘겋게 충혈된 다니엘의 눈이 광기로 물들어갔다.
* * *
슈웅
부웅!
“스윙! 아웃!”
“우아아아아!”
“끝났다! 이겼다! 이겼어!”
“한국시리즈 1승이다! 으아아아!”
– 스윙! 아웃! 게임 셋! 경기 끝났습니다! 양기철 선수가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최종 스코어 5 대 0, 워리어스가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완승을 거뒀습니다!
– 아, 정말 멋진 경기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네, 저도 정말 야구에 대해 개안한 기분입니다. 뭐랄까, 새로운 경지를 엿봤다고 할까요?
– 오늘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본 관중분들은 정말 복받으신 겁니다. 티켓값이 아깝지 않은 그런 경기였어요.
– 동감입니다. 오늘 워리어스 선발로 나선 한수혁 선수는 7회까지 스물한 타자를 맞아 땅볼 두 개, 좌익수 플라이 한 개를 제외한 열여덟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하며 역대 포스트시즌 한 경기 최다 탈삼진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 정말 완벽한 피칭이었습니다. 어깨에 무리를 주지 않는 세 가지 구종만 던졌으면서도 그 공에 다시 구속 변화를 줌으로써 인천 타자들을 완전히 바보로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7회 마지막 타자에게 던진 공은…….
– 168㎞/h였죠. 솔직히 깜짝 놀랐습니다.
– 맞습니다. 어깨 때문에 빠른 공을 못 던지는 줄 알았던 한수혁 선수가 7회 마지막 타자에게 168㎞/h를 던지며 못 던지는 게 아니라 안 던지는 거라는 걸 증명했죠.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 언제는 솔직히 말씀 안 하셨나요? 그냥 편하게 얘기하시죠.
– 인천으로서는 한수혁 선수가 선발 등판할 두 경기는 그냥 버리는 게 마음 편할 겁니다. 못 칩니다. 대체 저런 걸 어떻게 칩니까? 이제 그 누구도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워리어스가 불리하다고는 말하지 못할 겁니다.
* * *
결과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고동식 위원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너클볼이라는 새로운 무기, 사실은 그동안 별 필요 없어서 잊어버렸던 구종을 꺼내든 한수혁이 1차전에서 인천 타자들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한수혁의 7이닝 무실점 18K 투구와 김두영의 홀드, 양기철의 완벽 세이브, 거기에 장덕수의 대타 만루홈런에 힘입어 워리어스가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5 대 0으로 승리했다.
객관적인 전력의 우세, 그리고 워리어스 전력의 절반이라 할 수 있는 한수혁의 어깨 이상으로 인해 당초 인천의 우세를 점쳤던 많은 전문가들이 급하게 입장을 변경했다.
구속 조절이 가능한 너클볼은 둘째 치고, 딱 한 번뿐이지만 168㎞/h에 달하는 포심을 선보이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한 한수혁 때문이었다.
일부 팬들은 벌써 워리어스가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들뜨기 시작했고, 민예린은 한국시리즈 우승 축하무대를 준비하겠다며 안무 연습에 들어갔다.
하지만,
세상은, 아니, 야구의 신은 그리 쉽게 워리어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기세가 오른 워리어스는 2차전에 용병 에이스 라이언 스타크를 등판시키며 연승을 노렸다.
이에 맞서는 인천의 선발은 마이크 클락.
올 시즌 성적이 엇비슷한 두 용병 간의 대결, 그리고 기세가 잔뜩 오른 워리어스 타자들.
6 대 4 정도로 우세가 점쳐지던 그 경기에서 워리어스는 어이없는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한국시리즈 2차전, 인천 레인저스 10 대 4 대승 거두며 1승 1패로 시리즈 원점으로 돌려] [2회 손톱 이상으로 강판당한 라이언 스타크, 그리고 몸이 덜 풀린 중간계투진 대폭발] [또 한 번 입증된 워리어스 중간 허리의 부실함, 이번 시리즈 내내 발목 잡을 듯]팀의 승리를 위해, 그리고 내년 시즌 자신의 목표를 위해 기세등등하게 마운드에 올랐던 용병 라이언 스타크가 불과 2이닝을 버티지 못하고 강판되었다.
공을 낚아채야 할 오른쪽 검지 손가락 손톱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다행히 완전히 깨진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의 투구는 불가능한 상황.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파이터즈에서 데려온 강동하가 급하게 마운드에 올랐지만 인천 타자들의 방망이가 매섭게 돌았다.
강동하에 이어 홍영식, 최정수, 이영주까지 4명의 투수들이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그대로 게임이 끝나고 말았다.
9회말 마지막 타석에서 투런 홈런을 친 한수혁은 그 배트를 자기 스스로 부러뜨리며 분노를 표출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후 하루 동안의 휴식일을 가진 양 팀은 인천으로 무대를 옮겨 3차전을 치렀다.
워리어스 좌완 용병 브룩스 파커와 인천의 에이스 임준영의 대결.
지난 마지막 플레이오프 등판에서와 마찬가지로 임준영의 구속은 150㎞/h를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사력을 다해 워리어스 강타선을 막아냈다.
5회까지 0 대 0 팽팽한 경기가 이어졌고, 결국 두 명의 투수 중 브룩스가 먼저 무너졌다.
인천 리드오프 강우찬의 석 점 홈런.
지쳐 숨을 헐떡이던 임준영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7이닝까지 워리어스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후 마운드를 내려갔다.
인천 팬들이 눈물을 흘리며 에이스에게 기립 박수를 보내주었다.
최종 스코어 4 대 2.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한수혁은 이렇게 말했다.
“야구에서 한 명의 선수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워리어스의 우승을 위해 투타 겸업을 선택했죠. 하지만 오늘 임준영이라는 선수는 투수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플레이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졌습니다. 하지만 내일은 절대 지지 않을 겁니다.”
[2차전에 이어 3차전까지 잡아낸 인천 워리어스,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단 2승만 남겨두다] [에이스의 투혼에 인천 팬들 기립박수, 임준영 7이닝 무실점 완벽 투] [포스트시즌의 절대강자 인천, 경험과 기량에서 모두 앞서다] [1승 2패로 몰린 서울 워리어스, 4차전 선발로 좌완 천상진 예고] [시즌 하반기 선발로 전환된 신예 김용재 “임준영 선배의 뜻을 이어 받아 마운드에서 죽을 각오로 던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