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76)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75화(176/412)
#175. 마지막 결전의 날
“야, 한수혁. 솔직히 말해봐.”
“뭘?”
“내 타격 말이야. 어디가 문제인 거 같냐?”
시즌 전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워리어스 코치들의 뒷목을 잡게 했던 안치욱은 이제 어엿한 팀의 주전 3루수로 성장했다.
타율 0.297, 출루율 0.341, 장타율 0.421, 그리고 11개의 홈런과 69타점.
리그 평균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에러 숫자가 문제지만 단순 타격만 놓고 보면 10개 구단 3루수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성적이다.
시즌 초반 안치욱의 목표는 동기 한수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헛된 망상인지 깨닫고 난 후에는 즉시 그 꿈을 버리고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매일 옆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얄미운 동기 서형주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는 것으로 말이다.
아쉽게도 시즌 후반 체력 고갈과 부상이 겹치며 3할 타율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그건 서형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타격 매커니즘상 여전히 1-2루 사이로 집중되는 그의 타구 방향이다.
9개 구단 모두가 안치욱의 타석에서는 수비 시프트를 사용한다.
그걸 뚫고 3할에 가까운 타격을 기록한 게 기적일 정도로 노골적인 수비 시프트가 반복되고 있다.
안치욱이 다시 한 번 한수혁에게 물었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대화가 오갔지만 결국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큰 기대는 없다.
다만 안치욱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강한 타자에게 조언 하나라도 듣고 싶을 뿐이다.
그랬다.
안치욱은 동기 한수혁을 인정하는 걸 넘어 존경하고 있었다.
“안치욱.”
“어.”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정답 같은 건 없어. 애초에 그런 게 있었다면 수비 시프트는 이미 사라졌겠지.”
“…음.”
“그래도 굳이 내 의견을 듣고 싶다면… 그걸 피하는 것보다는 부수는 게 훨씬 빠를 거라는 거야.”
“부순다?”
“더 빠르고 강한 타구를 만들라는 거지. 그걸 위해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할까?”
“…훈련을 늘린다?”
“정답.”
“젠장.”
“결국 세상에 거저 되는 일은 없는 법이란다, 애송아. 이런 소리 할 시간에 가서 배트라도 한 번 더 휘둘러.”
* * *
4번 조성오의 1타점 3루타로 동점을 만들었지만 5번 월터 스미스가 언더핸드 투수에게 삼진을 당하며 1사 주자 3루로 바뀐 상황.
월터 한 타자만 상대한 언더핸드 투수가 내려가고, 대신 안치욱을 상대하기 위해 좌완 스페셜리스트가 마운드에 올랐다.
타석에 들어선 안치욱이 오늘 경기 전 있었던 한수혁의 말을 떠올렸다.
더욱 강하게, 빠르게.
사실 그도 알고 있다. 그게 정답이라는 것을.
그저 확인받고 싶었을 뿐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동기이자 존경하는 선수인 한수혁에게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야구와 관련해서는 그의 말이 무조건 옳다는 걸 안치욱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연습량을 더욱 늘린다.
제이콥의 도움을 받아 만든 지금의 타격폼을 극한까지 업그레이드시킨다.
1-2루 간의 시프트를 힘과 스피드로 뚫어버린다.
‘뭐야, 별 거 아니잖아?’
생각해보니 그리 별 일도 아니다.
머릿속에 가득 들어찬 번뇌를 지워낸 안치욱이 상대 투수를 노려보았다.
2 대 2 동점에 1사 주자 3루 상황.
깊숙한 땅볼이나 외야 플라이 하나만 나오면 바로 득점인 상황이건만 인천 벤치에서는 또 수비 시프트를 걸어왔다.
3루수가 유격수 자리로, 그리고 유격수가 2루 베이스 바로 옆으로.
1-2루 사이에 세 명의 수비수가 자리 잡았다.
좌타자의 당겨치기를 막기 위한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
한수혁의 말이 다시 한 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빠르게, 더욱 강하게.
자신은 한수혁과 같은 홈런 타자가 아니다.
애초에 타구의 궤적 자체가 홈런 타자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플레이는 우익수 쪽으로 강하고 빠른 타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스윽
3루 주자를 흘낏 쳐다본 투수가 안치욱을 향해 초구를 던졌다.
그와 동시에 안치욱의 배트가 힘차게 뻗어 나왔다.
1-2루간을 뚫기 위한 가장 빠르고 강한 스윙.
따아아악!
강렬한 파괴음에 공을 친 안치욱도, 그리고 1-2루 사이에 몰려 있던 인천 야수들도 동시에 깜짝 놀랐다.
그들의 시선이 동시에 어디론가 향했다.
우익수의 머리 위로 날아가던 타구가 그대로 담장을 넘어가고 있었다.
“우아아아아!”
* * *
[7회초 터진 안치욱의 투런 홈런, 승부를 결정짓다… 4 대 2, 워리어스가 승리하며 다시 시리즈는 원점으로] [결승 홈런 때려낸 안치욱 “한수혁의 조언이 큰 힘이 되었다”] [무명 선수에서 한국시리즈 선발로, 2군 신화 써 내려간 천상진, 7이닝 2실점으로 생애 첫 한국시리즈 승리] [4차전 승리 투수 천상진 “야구에 대한 것이 잠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괴로운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너무나 즐겁다”] [볼넷으로 출루해 파괴적인 주루 플레이 선보인 한수혁 “워리어스 동료들이 자랑스럽다”] [7이닝 2실점으로 잘 던진 인천의 차세대 에이스 김용재 “분하지만 이것이 야구라 생각한다”] [4차전까지 2승 2패 동률 이룬 두 팀, 이제 다시 잠실로 옮겨 마지막 5, 6, 7차전 돌입]1승 2패로 몰렸던 워리어스는 4차전, 천상진의 호투와 안치욱이 때려낸 뜻밖의 홈런에 힘 입어 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리고 하루 휴식을 취한 두 팀은 잠실로 무대를 옮겨 5차전을 벌였다.
1차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맞붙은 한수혁과 데릭 벨의 선발싸움.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했다.
아무리 한수혁이라 해도 이제 한 번쯤은 점수를 줄 때가 된 것 아니냐고.
정규이닝부터 시작해서 계속되고 있는 57이닝 무실점 기록이 이젠 깨질 때가 되지 않았겠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인천 팬들의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
슈웅
부웅
“스윙! 아웃!”
9회초, 한수혁이 던진 마지막 공에 인천 타자 손영진의 배트가 허공을 가르며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워리어스의 1 대 0 승리. 시리즈 전적 3승 2패를 기록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기까지 단 1승만이 남았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9이닝 완봉승을 거둔 한수혁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덕아웃으로 돌아온 한수혁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선배님은요?”
“아직, 아직 검사 중이야.”
선발 데릭 벨이 4회 제구 난조를 겪으며 두 타자 연속 볼넷을 주자마자 인천의 철벽 중간계투진이 등판했다.
8회까지 인천이 다섯 명의 투수를 등판시키는 동안 한수혁은 혼자 인천 타자들을 책임졌다.
그렇게 0 대 0으로 팽팽하게 맞서던 8회말 워리어스의 공격, 어렵게 만든 2사 주자 3루 상황에서 조성오가 타석에 들어섰다.
따아아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타구가 2루수 베이스 위로 날아갔다.
빠질 수도 있었던 타구를 인천 2루수 손재후가 온 힘을 다해 건져냈다.
“1루! 1루!”
그 사이 3루에 있던 서형주가 홈을 밟았지만 아직 1루에서의 승부가 결정나지 않았다.
손재후의 빠르고 정확한 송구가 1루로 날아갔다.
그리고 팀의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건 노장이 죽을 힘을 다해 1루를 향해 달렸다.
“끄아아!”
조성오의 기합 소리와 함께 1루심의 입에서 세이프 판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워리어스 응원석에서 들려온 건 팬들의 함성이 아니었다.
“뭐야, 대체 뭐야?”
“다친 거야? 아, 안 되는데.”
“주장! 야, 인마, 조성오! 일어나! 일어나라고!”
적지 않은 나이에 거의 풀 시즌 주전 1루수로 자리를 지켰던 조성오가 발목을 움켜 잡은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얼마 전까지 허리와 발목 문제로 라인업에서 빠져 있던 조성오다.
앰뷸런스가 들어와 조성오를 싣고 나갔고, 워리어스 선수단이 침묵에 잠겼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워리어스의 마운드를 지키고 있던 게 한수혁이라는 점이었다.
9회초 마지막 수비에 나선 한수혁의 투구 패턴이 변했다.
완봉을 노리고 나온 듯 오늘 경기 내내 완급 조절을 하던 한수혁이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 인천 타자들을 삼진으로 잡아내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한수혁의 공에 손을 대지 못했다.
관중들의 입에서 찢어질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지만 한수혁은 그런 것에 아무 관심도 없었다.
투수 최고참 이만식에 이어 이번에는 주장인 조성오가 쓰러졌다.
정밀검진 결과 내려진 진단은 오른쪽 발목 신전지대 손상.
쉽게 말해 발목 힘줄을 감싸는 막이 찢어진 것이다.
당장 수술이 필요한 건 물론이고 재활까지 최소 4개월 이상이 필요한 중상이었다.
고작 경기 하나를 이기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희생했다.
그렇게 워리어스를 이끌던 주장이자 주전 1루수, 팀의 중심타자가 라인업에서 제외되었다.
경기를 끝낸 선수들이 병원으로 달려 가려 했으나 조성오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냐는 그의 메시지에 선수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2차전에서 손톱 이상으로 일찌감치 강판을 당했던 용병 라이언 스타크의 손톱이 결국 또 문제를 일으켰다.
완전히 갈라진 손톱.
용병답지 않게 팀에 대한 애착이 강한 라이언은 아크릴 손톱이라도 붙이고 경기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이대준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80년대에나 할 법한 그런 무식한 짓 대신 이대준은 선발 투수의 등판 간격을 하루 앞당기고 대신 중간계투를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지난 등판 이후 사흘을 쉰 브룩스 파커가 6차전에 등판했다.
그에게 주어진 이닝은 최대 5이닝.
올 시즌이 끝난 후 일본 야구 진출이 유력한 그는 지난 2년 동안 자신을 뛰게 해준 워리어스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지난 3차전에서 5와 2분의 1이닝 3실점의 부진을 씻어내고, 오늘 자신에게 약속된 5회까지 단 1점만을 내준 브룩스를 향해 워리어스 팬들이 기립박수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야구의 신은 워리어스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한수혁의 홈런으로 워리어스가 4 대 1로 앞서가던 8회초, 이번 시즌 내내 워리어스의 셋업으로 만점 활약을 한 김두영이 세 타자를 연속으로 출루시키고 말았다.
급하게 몸을 푼 양기철이 마운드에 올랐지만,
따아아악!
인천 레인저스의 5번 타자 민주현의 배트가 힘차게 도는 순간 워리어스 선수들의 고개가 땅으로 툭 떨어졌다.
역전 만루 홈런.
그것으로 끝이었다.
8회말과 9회말, 인천의 철벽 계투진과 마무리 권길용이 워리어스 타선을 잠재웠다.
한수혁 다음으로 믿을 수 있는, 또한 정신적인 기둥인 조성오를 잃은 워리어스 타자들은 그 한 점의 차이를 결국 극복해내지 못했다.
5 대 4 인천의 대역전극.
그리고 시리즈 전적은 다시 3승 3패.
KBO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반가운, 하지만 경기를 하는 양팀 선수들이나 팬들에게는 괴롭기 그지없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다시 아침이 밝았다.
한국시리즈 7차전이 열리는,
2027년 프로야구 최고팀을 결정짓게 될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