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7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78화(179/412)
#178. 하얀 점 하나
[A man has to have goals – for a day, for a lifetime – and that was mine, to have people say, “There goes Ted Williams, the greatest hitter who ever lived”.]남자라면 그날의 목표, 그리고 인생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나의 목표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저기 테드 윌리엄스가 지나간다. 이제까지 존재한 가장 위대한 타자다.”
텍사스 주 깡촌에서 태어나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처럼 되기를 꿈꾸던 한 소년의 꿈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처음 시애틀의 지명을 받고 마이너리그에서 뛸 때만 해도 그는 자신이 곧 슈퍼스타가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천재라 생각했던 자신의 재능은 그저 평범한 수준에 불과했고, 4할은커녕 통산 타율 2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빅리그에서 퇴출당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잘 모르겠다.
농장이나 물려받고 대가족을 이뤄 행복하게 살라는 아버지의 말을 어긴 것부터가 문제였는지, 아니면 빠른 빅리그 진입을 위해 포수 마스크를 쓴 게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빌어먹을.’
시애틀에서 방출 당한 후 진지하게 농장주로의 전업을 고민하던 월터 스미스는 지금 워리어스 유니폼을 입은 채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올해 나이 서른, 본래대로라면 시애틀의 다섯 번째 포수 옵션으로 마이너와 빅리그를 오갔을 월터였지만 한수혁의 회귀로 인한 나비효과로 인해 한국으로 왔고, 워리어스의 중심타자가 되었다.
사라진 빅리거의 꿈.
월터의 머릿속에는 과거에 대한 후회가 가득했다.
조금 더 노력하고, 조금 더 조심했어야 했다.
자신의 우상인 테드 윌리엄스처럼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그걸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자신은 이제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젠장…….’
그렇게 한국 무대를 밟게 된 월터는 누군가를 통해 자신의 잃어버린 꿈을 투영하게 되었다.
올 시즌 0.432의 타율을 기록한 괴물 중의 괴물.
한수혁.
누군가는 말한다.
저 말도 안 되는 타율은 KBO라는 하위 리그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 증거라고.
개소리다.
바로 옆에서 한수혁이라는 괴물을 지켜본 월터는 알고 있다.
투수들의 집중견제 속에서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팀 배팅을 한 결과물이 4할3푼2리다.
‘흐흐흐.’
빅리그 우월주의에 빠진 전문가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만약 저 한수혁이라는 괴물을 빅리그 상위팀에 풀어 놓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말이다.
앞뒤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타자를 둔 한수혁이 팀 배팅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오로지 개인 성적에만 집중한다면?
월터는 확신했다.
테드 윌리암스 이후로 끊어진 메이저리그 4할 타자가 또 한 번 등장할 거라고 말이다.
“플레이!”
이제 겨우 데뷔 1년 차에 불과한 애송이를 볼 때마다 세상이 불공평함을 느낀다.
더더욱 분한 건 그런 애송이에게 자꾸만 끌리는 자신이다.
녀석이 4할 타율을 달성하고,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달성하고, 뭔가를 하나씩 해낼 때마다 왜 이렇게 기쁜 마음이 드는 걸까?
왜 질투가 아닌 경외의 감정이 떠오르는 걸까?
이 팀의 우승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각오가 되어 있는 애송이.
타자로, 투수로, 그리고 이제는 팀의 리더로,
그는 이미 완벽한 선수다.
그런 완벽한 선수가 저 멀리 2루 베이스 위에서 자신을 바라본다.
굳이 말을 들어볼 필요도 없다.
지금 저놈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듣지 않아도 뻔하다.
무슨 수를 써서든 자신을 홈으로 불러들이라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놈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운동선수가 가장 힘든 건 자신이 주연이 아닌 조연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화려한 플레이가 아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저 건방진 애송이 둘을 홈으로 불러들여야 한다.
드드득
올 시즌 내내 월터를 괴롭혔던 임준영.
오늘 따라 유난히 각오가 철철 흘러 넘치는 그가 천천히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이번 시즌 저 임준영이라는 투수가 자신에게 던진 초구 중 약 82%가 바깥쪽 낮은 포심이었다.
좀처럼 실투를 던지지 않는 에이스 중의 에이스다.
그렇기에 두 번의 기회는 없다.
만약 그 공이 오지 않는다면, 혹은 알고도 쳐내지 못한다면,
이번 타선에서 자신은 조연의 역할마저 수행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친다,
칠 거다,
무조건 쳐낼 것이다.
‘와라!’
임준영의 손에서 하얀 공 하나가 번쩍이는 그 순간,
월터의 배트가 힘차게 뻗어 나갔다.
그리고 그 공과 배트가 한 점에서 만났다.
따아아악!
성공이다.
내야를 빠져나가는 자신의 타구를 보며 월터가 외쳤다.
“퍼킹 베이스볼!”
* * *
“와아아!”
“잘했어! 천상진 잘했다!”
“최고다! 내년에도 잘 부탁해!”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천상진을 향해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보내주고 있다.
1회말 월터 스미스의 2타점 적시타로 2점을 먼저 내주며 끌려 다니던 인천은 7회초 포수 손영진의 동점 투런 홈런이 터지며 마침내 동점으로 따라붙었다.
실투였다.
인천 강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올 시즌 최고의 호투를 이어가던 천상진이었지만 딱 공 하나, 그 하나의 실투가 홈런으로 이어지며 동점을 내주고 말았다.
오늘 경기에서 꼭 승리투수가 되고 싶다던,
국내 최고 투수 중 하나인 임준영을 존경하지만 오늘 만큼은 꼭 그를 넘어서고 싶다고 말하던 천상진의 고개가 땅으로 툭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투구를 이어갔다.
이어진 인천의 8, 9, 1, 세 명의 타자를 모두 범타로 처리한 그가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순간, 잠실야구장을 가득 메운 워리어스 팬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내주었다.
7이닝 동안 투구 수 103개, 4피안타 1피홈런 3사사구 2실점.
2027년 천상진의 마지막 투구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자, 이제 우리 차례다. 상진이가 저렇게까지 했는데 우리도 뭔가 보여줘야지?”
“해보자! 한번 해보자고!”
그런 천상진의 투혼이 워리어스 선수단을 자극했다.
평소 덕아웃에서의 존재감이 제로에 가까웠던 김수학이 먼저 후배들을 독려하며 앞으로 나섰다.
앞선 두 타석 모두 삼진으로 물러났던 그가 방망이를 짧게 잡고 임준영의 공을 커트해내기 시작했다.
항상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한, 그래서 프로선수 생활을 하기에는 너무 무르다는 소리를 듣던 그다.
서형주와 최민석의 합류로 주전 외야수 자리에서마저 밀려난 그가 이를 악물고 예전의 자신을 소환해냈다.
고등학교 시절 악바리라 불리던, 다른 건 몰라도 근성 하나만큼은 최고라고 평가받던 과거의 자신을,
틱
“파울!”
틱
“파울!”
퍼엉
“볼!”
평소 같으면 소용없는 짓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투수라 해도 임준영 역시 인간이었다.
투구수가 계속 늘어나고, 집중력이 떨어지며 원하지 않는 곳으로 공이 날아갔다.
“볼!”
“우아아아아!”
“김수학! 잘했다!”
“김수학! 김수학! 김수학!”
무사 주자 1루의 천금 같은 찬스를 만들어낸 김수학이 벌개진 눈으로 관중석을 바라보았다.
이제 자신은 이 팀의 주전이 아니다.
내년에 선수단이 보강되면 백업 자리조차 장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김수학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깊은 불안감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그래서 시발! 뭐 어쩌라고?’
오늘 이 작은 변화, 전력을 다해 던지는 임준영을 상대해 얻어낸 천금 같은 볼넷.
이것을 계기로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오랜 시간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김수학은 이제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준영아, 괜찮겠니?”
“문제없습니다.”
“좋아, 널 믿는다.”
마운드에 올랐던 투수코치가 임준영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준 후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지난 나흘간 푹 쉬며 어깨의 상태가 많이 돌아왔다.
한계 투구 수까지 여유도 있다. 계속 던지겠다는 본인의 의욕 또한 강하다.
무엇보다 한국시리즈 7차전 2 대 2 동점 상황에서 임준영만큼 믿고 맡길 수 있는 투수는 없다.
그런 벤치의 신뢰 속에 임준영이 다시 투구를 이어갔다.
8번 강진석과 9번 최민석이 연속 삼진으로 물러날 때만 해도 인천 벤치의 선택이 옳았던 것으로 보였다.
아니, 투 아웃을 잡은 이후 서형주의 애매한 타구가 내야 안타 판정을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안치욱에게 던진 회심의 승부구가 볼 판정을 받는 순간,
그라운드 위의 인천 선수들, 그리고 덕아웃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3번 타자 유격수 한수혁]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인천 선수들의 가슴 속에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대기 타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한수혁이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타석으로 들어선다.
그 별 것 아닌 동작 하나가 상대팀 선수들을 얼어붙게 만들고, 아군의 사기를 극한까지 끌어 올렸다.
2사 주자 만루,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는 상황.
“감독님, 고의사구를 요청할까요?”
“후우…….”
여기서 한수혁을 내보내 한 점을 주고 다음 타자와 승부를?
하지만 임준영이 오늘 월터 스미스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은 게 마음에 걸린다.
한수혁을 피하려다 더 큰 문제를 만들 수도 있다.
아직 인천에게는 8회와 9회, 두 번의 공격 기회가 남았다.
아무리 한수혁이라고 해도 모든 타석에서 안타를 칠 수 있는 건 아니다.
“강 코치.”
“네, 감독님.”
“오늘 경기 전에 준영이가 그러더군. 조금 건방진 소리일 수도 있지만 우리 팀에서 한수혁을 막을 수 있는 투수가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자신일 거라고.”
“…….”
“웃긴 게 뭔지 알아?”
“글쎄요.”
“내가 생각해도 그 말이 맞다는 거야. 심지어 7회까지 던지느라 꽤나 지쳐 보이는 저 준영이 자식이 지금 이 순간 제일 믿음직하다는 말이지.”
“그렇다는 건…….”
“가보자고, 여기서 저 한수혁을 거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투수를 올릴 수도 없잖아? 강 코치가 보기에는 어때? 준영이 대신 누굴 올리면 승리할 확률이 올라갈까?”
“…제 생각에도 임준영이 최고라고 봅니다.”
“좋아, 그럼 가자고.”
인천 덕아웃의 결정이 내려졌다.
정면 승부를 하라는 사인이 임준영에게 전달되었고,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다.
오늘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한수혁을 피해왔던 임준영은 아이러니하게도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그와 승부를 벌이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올 시즌이 끝나고 자신의 거취가 어떻게 되든, 저 한수혁이라는 최악의 상대를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상태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만 같았다.
이긴다.
반드시 이긴다.
스르륵
데뷔 이후 올해까지 12시즌 동안 그를 국내 최고 투수 중 하나로 불리게 만들었던,
한수혁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국내 최고라고 칭송하던,
155㎞/h에 달하는 강력한 포심이 홈플레이트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불과 0.4초 후,
따아아아아아아악!
하얀 점 하나가 엄청난 궤적을 그리며 멀리, 아주 멀리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