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87)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86화(187/412)
#186. 우상과 함께(1)
“사무총장님, 너무하시네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팀에서 6명을 차출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 박 단장, 그러지 말고 사정 좀 봐줘요. 지난번에 오타니 룰 통과도 그렇고, 우리도 많이 노력했잖아요. 응? 다시 한 번만 검토해줘요.
“한수혁, 안치욱, 서형주, 양기철… 뭐 여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임준영, 장덕수라뇨? 작년 혹사 후유증 때문에 특별관리를 받고 있는 선수들을 올림픽에 보내 달라고요?”
– 하아… 당장은 그렇지만 7월이면 대충 회복이 되지 않겠어요? 다른 걸 떠나서 지난번 WBC 우승 때문에 국민들 눈이 너무 높아졌어요. 이번 올림픽도 무조건 우승해야 하는 분위기라고.
“저희에게 중요한 건 올림픽이 아니라 한국시리즈 우승인데요, 총장님.”
– 진짜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사정 좀 봐줘요. KBSA에서도 그 선수들은 꼭 데려와야 한다고 난리예요. 이제 막 그쪽이랑 관계가 개선되려는 상황인데 우리도 성의를 보여야죠.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 미국하고 일본 메이저리거들이 몽땅 다 올림픽 참가를 선언한 상황이잖습니까? 한수혁 선수하고 꼭 한번 다시 붙어보겠다고 말이죠. 예전처럼 미필 선수들로만 채워서 나가면 진짜 박살 나게 생겼다니까요. 그러니까, 응?
시범경기 개막전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박재철 단장은 미처 그 경기를 볼 시간조차 없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KBO의 부탁, 애원, 압박 때문이었다.
오는 7월 열리는 2028년 LA올림픽에 야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출전 문제로 IOC와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힘겨루기를 벌이고, 그 결과 2008년을 끝으로 올림픽에서 퇴출된 야구.
결국은 이권 싸움이었다.
빅리그 선수들을 출전시켜 올림픽의 권위를 높이려는 IOC, 그리고 WBC를 통해 미국 중심의 세계대회를 만들어가려는 사무국 간의 힘 겨루기.
두 거대 집단 간의 이권 싸움에 올림픽 무대에서 야구는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농구, 축구와 마찬가지로 올림픽에서 세계 최고 선수들을 보고 싶다는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의 여론, 그리고 개발도상국으로의 야구 보급 등을 위해 결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빅리그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허락한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뒤따랐다.
선수가 원하고 구단이 승인해야 한다는, 아주 당연하면서도 이루어지기 어려운 조건.
병역 문제, 그리고 국민 정서 때문에 반쯤 떠밀리듯 참가하는 한국 선수들과 여타 다른 다라 선수들의 사정은 판이하게 달랐다.
몸값이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선수들은 굳이 올림픽에 나갈 이유가 없었고, 설사 나가고 싶어 한다 해도 구단에서 허락을 안 해주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저희 귀중한 고객께서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겠다고 하네요.”
“어, 어, 그, 거긴 왜…….”
“꼭 다시 한번 상대해보고 싶은 선수가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고객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빠른 승인 요청합니다. 우리가 이런 일로 얼굴 붉힐 사이는 아니겠죠?”
시작은 세인트루이스, 아니, 메이저리그를 대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타이 존슨이었다.
지난 WBC에서 한수혁에게 패한 후 큰 충격을 받았던 그는 한수혁이 올림픽에 나올 거란 얘기를 듣자마자 곧바로 에이전트를 통해 구단에 올림픽 참가를 통보했다.
다른 선수라면 몰라도 타이 존슨의 요구를 거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세인트루이스 팬들뿐만 아니라 미국 국민 전체의 지지를 받는 야구 영웅이었으니까.
게다가 계약기간마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결국 타이 존슨이 물꼬를 트자 여기저기서 올림픽 참가를 희망하는 선수들이 튀어나왔다.
대부분은 WBC에서 한수혁에게 박살이 났던, 그래서 극심한 내상을 입고 신음하던 이들이었다.
올림픽 메달권 진입을 목표로 하던 한국 야구계에 비상이 걸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 박 단장, 아무튼 꼭 좀 부탁할게요. 6명이 같이 가면 워리어스 선수들도 외롭지 않고 좋잖아요. 응? KBSA에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통보해도 되겠죠?
이렇게 거듭 사양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박재철 역시 알고 있었다.
팬들의 여론을 감안해서라도 어차피 나가야 할 거라는 걸.
다만 박재철이 이렇게 버티는 건 마지막 이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좋습니다. 음… 총장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보내 드리도록 하죠. 어허, 그렇다고 울지는 마시고… 다만 저희 입장에서는 두영이도 국제대회 경험을 좀 쌓았으면 좋겠는데… 임준영 말고 김두영이는 어떨까요? 안 된다고요? 에이, 모르겠다. 그럼 그냥 둘 다 데려가시죠. 어휴, 이러면 우리 팀에서만 일곱이네. 세상에 이렇게까지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구단이 또 있겠습니까? 흠, 헌신하니까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군요. 제가 두 번째 WBC에 참가하던 때였습니다. 이래저래 구단에서 취급이 좋지 못했던 시절이었죠. 그때 어떤 기자분이 제게 묻더군요. 당신에게 국가란 무엇입니… 여보세요?”
* * *
1번 중견수 서형주
2번 유격수 한수혁
3번 1루수 조성오
4번 우익수 월터 스미스
5번 3루수 민주현
6번 지명타자 안치욱
7번 포수 장덕수
8번 2루수 이창모
9번 좌익수 최민석
1회초, 한수혁의 홈런과 조성오의 안타, 그리고 지명타자로 밀려난 안치욱의 분노의 2타점 2루타가 터지며 워리어스가 먼저 3점을 선취했다.
“수고했다, 경재야. 여기까지만 하자.”
“네… 감독님.”
야심차게 영입한 에이스 후보 최경재가 1회부터 난타를 당했다.
녀석이 한수혁에게 처절할 정도로 약하다는 걸 알기에 되도록 오늘 경기에는 등판시키지 않으려 했건만.
다른 사람도 아닌 구단 사장이 직접 지시를 내렸다.
‘회장님께서 투자의 결과물을 확인하고 싶어하셔. 응, 그러니까 비싼 돈 주고 데려온 선수들 아끼지 말고 다 출전시키라고. 어떻게든 좋은 모습을 보이란 말이야!’
그 결과가 이것이다.
한수혁을 보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최경재는 결국 1회초 석 점을 내준 후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7번 장덕수가 친 홈런성 타구가 펜스 바로 앞에서 잡히지 않았다면 결과는 더욱 비참할 뻔했다.
지난 겨울 큰 돈을 들여 데려온 투수가 초라한 모습으로 덕아웃에 쭈그려 앉아 있다.
매지션스 감독이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가 어질어질하지만 여기서 정신을 놓으면 안 된다.
이제 1회초가 지났을 뿐이다.
아직 보여줄 카드는 여럿 남아 있다.
반격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슈웅
퍼어엉!
“스트라이크! 아웃!”
1번 양선우 삼구 삼진.
그리고 파이터즈에 엄청난 대가를 주고 데려온 이찬호도 삼구 삼진.
“우아아!”
“한수혁!”
지난 한국시리즈 후유증으로 한동안 공을 만지지 않았다던 괴물이 시범경기부터 160㎞/h가 넘는 공을 뻥뻥 뿌려댔다.
그나저나 방금 전 던진 공은 또 뭘까?
혹시 너클 커브?
설마 최경재가 자신에게 너클 커브를 던진 걸 비웃고 싶은 걸까?
슈웅
부웅
“스윙! 아웃!”
“Fuck!”
숨겨진 옵션을 포함 거의 200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주고 데려온, 지난 시즌 빅리그에서 10개의 홈런을 때려낸 특급 용병 다니엘 헌터가 삼구 만에 삼진을 당했다.
올 시즌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라 꼽히는 매지션스, 그 매지션스를 지휘하고 있는 주석도 감독은 생각했다.
한수혁이 국내에 남아 있는 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과연 우승이 가능할까 하는 그런 생각.
* * *
“잘 들어, 동석아. 그동안 몇 번 경험해봐서 알겠지만 어설프게 프레이밍 같은 거 시도하지 마. 그냥 수혁이가 던지겠다는 코스에 미트를 대고 가만히 있으란 말이야. 공 잡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라고. 그것만 해도 꽤 벅찰 테니까. 내 말 이해했어?”
“…….”
“야, 박동석. 박동석? 하아, 이 새끼 이거 완전 얼었네. 정신 차리라고, 인마.”
“네? 네! 네! 알겠습니다, 코치님! 뭔가 하려고 설치지 말 것. 공만 똑바로 잡을 것. 이해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잡아보겠습니다.”
“좋아, 그럼 나가봐. 어어, 그거 렉가드 끈 제대로 안 맸잖아!”
지난 시즌이 끝난 후 수석코치 벤자민이 데려온 코치들 중 몇이 좋은 제안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벤자민 역시 꽤 괜찮은 자리를 제안받기는 했지만 그는 조금 더 이 팀에 남기로 했다. 한수혁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신 역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비어 버린 자리는 이대준이 직접 뽑은 코치들이 들어와 메웠다. 지금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배터리 코치 역시 그중 하나였다.
신인 포수 박동석을 간신히 진정시켜 홈플레이트 뒤로 보낸 배터리 코치가 한숨을 푹 쉬며 감독에게 말했다.
“휴우, 형님. 일단은 올려 보냈습니다.”
“덕수는? 상태 괜찮은 거 맞아?”
“그냥 속이 좀 안 좋은 거 같아요. 아까 경기 전에 샌드위치를 너무 많이 먹더라니.”
“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병원 보내 보고. 아무튼 박동석 저놈 괜찮겠지? 아무리 시범경기라도 관중이 이렇게 많은데 큰 사고 치는 거 아닌가 몰라.”
이대준의 말에 배터리 코치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을 겁니다. 지금 수혁이랑 첫 배터리를 이룬다는 것 때문에 정신이 반쯤 나간 거 같은데 실전에 들어가면 잘할 거예요. 제가 보장합니다.”
“후, 그래. 그럼 다행이고. 아무튼 올해 들어온 신인 놈들은 대체 다 왜 저래? 지들이 야구선수라는 자각은 있는 건가? 한수혁 팬클럽도 아니고 대체 왜들 저러는데?”
“하하하, 그야 저 녀석들에게는 수혁이가 세상에서 제일 가는 슈퍼스타이니까요.”
* * *
“자, 동석아. 침착하고, 우리가 도와줄 테니까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돼.”
“그래, 어차피 시범경기잖아. 긴장해서 실수하지 말고 연습하던 대로만 해도 충분해.”
두근두근
애써 진정시켜 놓은 심장이 또다시 쿵쾅거린다.
4회말, 장덕수가 복통을 호소하는 바람에 갑작스럽게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된 신인 박동석.
이번 시범경기 엔트리에 포함되며 한 번쯤은 이 자리에 앉게 될 거라 기대하긴 했다.
이 팀에는 장덕수라는 주전포수와 월터라는 주전급 백업 포수가 있기에 정규시즌이 시작되면 2군으로 내려갈 게 불 보듯 뻔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1년 차 신인으로서 프로야구 1군 무대에 얼굴을 내밀 수 있다는 건 그것만으로 크나큰 영광이었다.
하지만 그 기회가 너무 빨리 찾아왔다.
“자, 그럼 파이팅 하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매지션스 놈들 박살을 내주자.”
석 달이 넘는 재활을 끝내고 그라운드로 돌아온 주장 조성오가 박동석을 안심시켜 주었다.
그럼에도 박동석의 심장은 좀처럼 진정될 줄을 몰랐다.
세상에,
무려 잠실 라이벌과의 시범경기 개막전이다.
거기에 자신과 배터리를 이루게 될 투수가 무려…….
“박동석.”
“네? 네, 네! 형님!”
“한 살 차이에 무슨 형님이야. 그리고 덩치는 산만한 놈이 뭘 그렇게 떨어?”
지금 내가 떠는 건 당신의 공을 받을 수 있게 되어서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박동석은 있는 힘을 다해 그 말을 눌러 삼켰다.
지난 스프링캠프를 통해 한수혁이 그런 말을 듣는 걸 아주 싫어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뭐라더라, 쓸데없는 아부할 시간에 연습이라도 한 번 더 하라고 했지.
‘아부 아닌데…….’
어쨌든 고등학교 3학년 내내 한수혁과 배터리를 이루는 걸 꿈으로 삼고 달려온 박동석은 우연한 기회에 생각보다 훨씬 빨리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플레이!”
오늘 첫 번째 타석에서 삼구 삼진을 당한 매지션스 리드오프 양선우가 타석에 들어섰다.
한수혁에 정신을 빼앗겨서 그렇지, 사실 생각해보면 이 사람도 엄청난 선수다.
무려 지난 WBC 우승팀의 주전 멤버 아닌가?
그런 선수가 타석에서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다는 게 박동석은 놀라울 뿐이었다.
“…젠장, 인정머리 없는 자식. 인류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식… 내가 특제 샌드위치까지 갖다 바치면서 그렇게 잘 부탁한다고 애원을 했는데…….”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이해했다.
이 타자가 한수혁에게 엄청나게 겁을 집어먹고 있다는 걸.
스슥
벤치에서는 한수혁이 직접 사인을 낼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동석은 자신도 모르게 한수혁을 향해 사인을 보냈다.
이렇게 겁먹은 타자에게 어떤 공이 가장 효율적일지 순간 영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몸쪽 고속 슬라이더’
박동석이 사인을 내자 한수혁이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한수혁 입장에서는 어차피 뭘 던져도 상관없기에 한 행동이었지만 그를 하늘처럼 섬기는 박동석에게는 너무나도 고마운 선배의 배려였다.
‘역시 대단하신 분…….’
이제는 완전히 진정이 된 박동석이 공을 잡을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동시에 한수혁의 손 끝에서 하얀 공이 발사되었다.
슈웅
“으헉!”
존 중앙으로 들어오다 몸쪽으로 휙 꺾여 들어오는 고속 슬라이더에 양선우가 기겁을 하며 주저 앉았다.
파아앙!
“스트라이크!”
지이이이잉
공을 잡은 박동석은 눈을 꼭 감은 채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이 자신의 19년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임에 확실하다고.
“어이, 어이, 포수! 뭐 해? 경기 안 할 거야? 왜 눈은 감고 있어? 빨리 투수에게 공 던져줘.”
“선생님.”
“선생님 아니고 심판.”
“심판님.”
“왜?”
“저 이대로 가만있을 테니까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
“이놈이 지금 뭐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