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8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88화(189/412)
#188. 그의 그늘 아래서
[WBC의 영웅 한수혁, 월드스타 민예린과 핑크빛 염문설… 단둘만의 미국 여행?]“흠…….”
“왜 예린아, 뭐가 또 마음에 안 들어? 이제라도 그 기사 내리라고 전화할까?”
“아니, 내리긴 왜 내려. 그냥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오빠가 보기에는 어때? 진짜 잘 나온 거 같지 않아?”
민예린이 내민 태블릿 속에는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한수혁에게 안긴 민예린의 뒷모습이 담겨 있었다.
키 193㎝에 달하는 한수혁에게 안긴 158㎝의 민예린.
솔직히 말하자면 어딘가에 매달린 조그만 청거북이를 보는 것 같았지만 매니저는 그런 말을 입밖으로 내뱉을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그래? 그게 마음에 들어? 기자한테 사진 원본 달라고 부탁해볼까?”
“어, 원본 받아서 우리 집에 액자로 좀 해 놔줘. 그나저나 오빠.”
“응, 왜? 또 뭐 있어?”
“오늘 진짜… 안 되겠지?”
“안 돼, 예린아, 아무리 너라고 해도 안 되는 일은 있는 거야.”
“히잉…….”
지난 1년간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야구장, 아니, 한수혁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민예린은 이제 더 이상 그 생활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그녀를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그리고 지난 1년간 한수혁을 보며 느낀 영감들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 본업으로의 복귀를 결심한 것이다.
[활동 중지했던 톱스타 민예린, 1년 만에 복귀… 곧바로 신규 앨범 작업 들어가]그토록 보고 싶었던 워리어스의 우승, 거기에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수혁의 품에 안기기까지 했던 민예린은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미국 여행에서 단 한 번의 스킨십도 없었지만, 기껏해야 뭔가를 주고받으며 손가락이 닿은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사귄다고 해도 되는 거 아닌가?’
어쨌든 일단 연예계 복귀를 선언한 이상 매일 야구장을 따라다니며 안전망을 오르내리는 삶은 이제 끝이다.
그 정도는 충분히 각오했다.
하지만…….
“히잉, 하필이면 개막경기 날 녹음이 잡힐 게 뭐야…….”
“예린아, 저분들은 미국, 영국에서 너랑 작업하려고 오신 거야. 우리가 불평하면 안 되지.”
“휴우… 알아. 그냥 억울해서 그러지. 우리 오빠 나 없으면 제 실력 발휘 못 할 텐데.”
내가 보기에 한수혁은 굳이 네가 없어도 아무 이상 없이 야구 잘만 할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매니저는 그 말 역시 꾹꾹 눌러 삼켰다.
한참 동안 혼자 뭔가를 중얼거리던 민예린이 이내 결심을 마친 듯 주먹을 꼭 쥐며 말했다.
“좋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6월 말까지 작업 다 끝내고 올림픽은 꼭 직관하는 거다. 민예린, 할 수 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앨범도 만들어야 하고,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몇 경기만이라도 쫓아다녀야 하고, 한수혁이 부탁한 누구인지 모를 여자도 찾아줘야 한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 모든 걸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이루어 내려면 조금이라도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민예린이 녹음부스로 들어서며 크게 소리쳤다.
“저 준비 다 됐어요. 시작할게요!”
전국 5개 구장에서 야구가 시작되던, 2028년 4월의 어느 날이었다.
* * *
“플레이!”
주심이 경기 시작을 알리는 순간, 한수혁의 머릿속에 갑자기 1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2027년 4월, 부산 타이탄스와의 개막전 경기.
이창모가 1번을 맡고 있었고, 지금은 대만 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맥스 워커가 4번을 쳤었다.
황성민이 발가락 부상으로 빠지며 장덕수가 허겁지겁 포수 마스크를 써야 했고, 쓸 만한 타자가 부족해 신인 유인철이 지명타자를 맡아야 했었다.
그러던 팀이 1년 새 많이 강해졌다.
한수혁이 고개를 돌려 전광판에 새겨진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눈에 새겼다.
1번 중견수 서형주
2번 좌익수 최민석
3번 1루수 조성오
4번 우익수 월터 스미스
5번 3루수 민주현
6번 투수 한수혁
7번 포수 장덕수
8번 2루수 이창모
9번 유격수 최진철
지난 시즌 리드오프 자리에 섰던 이창모가 8번까지 밀려났다는 것, 그리고 한수혁이 6번에 서도 타선이 전혀 약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워리어스의 현 전력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한수혁이 날카로운 눈으로 상대 타자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개막전 흥행을 위해 KBO가 일부러 짜 놓았을 지난 시즌 1, 2위 팀 간의 개막전.
임준영과 민주현이라는 투타의 기둥을 우리에게 빼앗긴 인천 선수단, 그중에서도 유독 두 사람과 친했던 리드오프 강우찬이 독한 얼굴로 한수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강우찬을 향해 피식 웃음을 한 번 날린 한수혁이 천천히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기세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애써 전투력을 끌어올리던 강우찬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지난 시즌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한수혁이 던진 170㎞/h.
그 말도 안 되는 강속구의 잔상이 다시 한 번 떠올랐기 때문이다.
슈우우웅
강우찬이 이를 악물고 평소보다 훨씬 빠른 타이밍에 배트를 돌렸다.
하지만,
부웅
“스윙!”
“우아아아아!”
한수혁의 손끝에서 떠난 공이 그 배트의 궤적을 피해 포수 미트에 박히는 순간, 야구장 전체가 떠나갈 정도의 엄청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강우찬의 시선이 저 멀리 전광판으로 향했다.
구속 170㎞/h, 회전수 3050RPM.
뭘 던질지 뻔히 알았음에도 배트에 스칠 수조차 없었다.
이제 막 경기가 시작되었건만, 인천 선수들의 머릿속에 패배라는 단어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 * *
“우와…….”
“최마루! 정신 안 차려?”
“아앗! 죄송합니다! 코치님!”
“네 마음은 알겠는데 너는 이제 팬이 아니고 워리어스의 당당한 1군 투수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이해했나?”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어깨를 푼다. 실시.”
“실시!”
자기도 모르게 넋을 놓고 한수혁을 바라보던 최마루가 불펜코치의 호통에 깜짝 놀라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막 경기가 시작된 거 같은데 어느새 5회초다.
4회까지 12명의 타자를 맞아 삼진 9개를 잡아낸 한수혁이 다시 마운드에 올라 인천 타자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민주현이 빠졌음에도 1번부터 9번까지 빈틈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인천 라인업이 오늘따라 불쌍하게 보일 지경이다.
슈웅
퍼엉
“좋아, 오늘 공 좋네!”
“감사합니다!”
불펜 포수의 칭찬에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최마루가 아직은 조금 낯선 공의 그립을 잡아보았다.
고등학교 시절 155㎞/h에 달하는 공을 던지며 전체 1라운드 1순위로 워리어스의 유니폼을 입은 초특급 유망주 최마루.
6억 원의 계약금, 벌써부터 스타 대우를 해주는 주변의 시선들, 자신을 치켜세워주는 언론들.
자칫하면 자만하거나 혹은 나태해질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을 다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마루는 조금도 그런 마음을 품을 수가 없었다.
임준영, 천상진, 양기철 등 기라성 같은 투수 선배들, 자신과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 서형주와 안치욱 같은 직속 선배들.
그리고 슈퍼스타 한수혁.
자신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고교 야구선수들이 가장 존경하는 최고의 선수가 바로 옆에 있는데 감히 어떻게 그런 불경한 생각을 품는다는 말인가.
‘검지보다 중지에 좀 더 힘을 주라고 하셨지…….’
스프링캠프 동안 한수혁의 조언을 받는 것만으로 최고 구속이 3㎞/h나 올랐다.
사실은 조언보다는 최마루가 갖고 있던 포텐이 터진 것이라 봐야 했지만 어쨌든 그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도움을 받은 건 포심뿐만이 아니었다.
구속에 비해 무브먼트가 다소 약하다 평가받은 최마루에게 한수혁은 투심 패스트볼을 권했다.
그게 자신에게 맞을지 안 맞을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가르쳐 주시면 영광으로 알고 전력을 다해 배워보겠습니다!’
‘흠, 뭐 영광까지는…….’
아직은 조금 낯설기는 하다. 그립도, 손에 느껴지는 감촉도.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한수혁이 직접 전수해준 공이다.
‘가만, 이러면 내가 수혁이 형님의 1대 제자가 되는 건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한수혁의 광적인 추종자였던 박동석은 시즌 개막과 함께 2군으로 내려갔다.
장기적으로 박동석을 주전 포수로 키우기 위한 구단의 조치였지만 한수혁과 떨어지게 된 녀석의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을 거다.
친구이자 동기인 녀석과 헤어지게 된 게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어차피 퇴근 후에 2군 숙소에서 지겹도록 보게 될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한수혁의 옆에서 무엇 하나라도 더 배울 거다.
자신이 평생 노력해 봐야 저 대단한 사람의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할 걸 알지만…….
‘언젠가는 흉내 비슷하게라도 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한수혁의 그늘 아래서 미래의 스타 한 명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그렇게 최마루가 즐거운 상상을 품은 채 불펜투구를 이어가던 순간이었다.
따아악!
하위타선에 자리를 잡으며 조금 더 체력적인 여유를 갖게 된 거포 장덕수가 잠실구장 가운데를 훌쩍 넘기는 석 점 홈런을 터뜨렸다.
5회말 스코어 7 대 0.
덕아웃의 전화를 받은 불펜코치가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최마루! 다음 이닝 나간다. 준비해!”
* * *
– 워리어스가 7 대 0으로 크게 앞선 가운데 6회초 인천 레인저스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아, 투수가 바뀌는군요. 5회까지 인천 타자들을 완벽하게 묶어 놓은 한수혁 선수가 내려가고 신인 최마루 선수가 올라옵니다.
– 시즌이 시작되기 전 인터뷰에서 이대준 감독은 올 시즌 한수혁 선수는 물론이고 투수들의 투구수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지난 시즌 말미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언급하면서 말이죠.
– 그렇군요. 어차피 7 대 0으로 앞선 상황에서 굳이 에이스를 더 던지게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겠군요. 음… 그나저나 지난 시즌하고는 뭔가 느낌이 좀 다릅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않나? 워리어스에게서 그런 여유가 느껴지네요?
– 챔피언이란 게 그런 거죠. 어떻게든 한 번 그 자리에 서게 되면 그 이름만으로 무게를 갖게 되는 거니까요. 어쨌든 마운드에서 물러난 한수혁 선수는 이제 6번 지명타자로 남은 이닝을 뛰게 됩니다.
– 아, 그렇죠.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 한 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 네, 지난 시즌까지는 선발 투수 겸 타자로 뛰던 선수가 다른 투수로 교체되면 경기에서 빠지거나, 아니면 다른 필드 플레이어의 자리로 들어가고 그 자리에 있던 선수가 빠져야 했거든요.
– 복잡하군요.
– 맞습니다. 그런데 올 시즌부터는 일명 오타니 룰이라 불리는 규정이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리그에서도 동시에 적용되었습니다. 선발 투수 겸 타자로 뛰던 선수가 마운드에서 물러나면 지명타자로 변경되어 계속 경기를 뛸 수 있는 거죠.
– 음… 당장은 한수혁 선수만을 위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투타 겸업에 도전하려는 여러 선수들에게 혜택이 되겠군요.
– 그렇죠. 올 시즌에 입단한 신인 중에서도 투타 겸업을 선언한 선수가 있잖습니까? 부산 타이탄스에 박장열이라고… 어쨌든 선수 보호 측면에서 좋은 규정이 도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말씀 감사합니다. 새로운 룰 도입으로 인해 한수혁 선수를 비롯한 국내 선수들이 더욱 보호받길 기대하며 경기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여기는 잠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