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90)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89화(190/412)
#189. 한수혁의 시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야구팬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 WBC 우승의 주역이자 데뷔 1년 만에 대한민국 역대 최고 야구 선수에 이름을 오르내리고 있는 한수혁조차도 말이다.
하지만 여기, 적어도 서울과 인천, 두 팀 팬들에게만큼은 영웅으로 기억되어 있는 선수 하나가 있었다.
서울 워리어스와 인천 레인저스 간의 개막 2연전.
그 두 번째 경기의 선발로 나서게 된 임준영이 홈, 그리고 원정 팬들을 향해 모자를 벗은 채 고개를 숙였다.
“와아아아! 임준영!”
“잘 돌아왔다!”
“거기서도 잘해! 인마!”
워리어스 팬들에게는 과거 이 팀의 황금기와 암흑기를 함께 보냈던 에이스로, 그리고 레인저스 팬들의 머릿속에는 인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리더로서 기억되고 있는 임준영.
팬들에게 인사를 하느라 경기 시작이 늦춰지고 있었지만 심판들조차 그저 못 본 척 고개를 돌린 채 그에게 시간을 주고 있었다.
임준영은 그런 선수였다.
류한결이라는 국내 최고 투수가 떠난 지금, 어쩌면 10개 구단 팬들 모두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선수.
그런 임준영이 자신의 옛 동료이자, 자신을 친형처럼 따르던 강우찬을 향해 힘찬 초구를 던졌다.
슈우웅
“스트라이크!”
“우아아아아!”
“빠르다! 빨라!”
“이제 어깨 괜찮나 보네!”
“조심해, 임준영! 무리하지 말라고!”
지난 시즌 말부터 한국시리즈까지, 타의에 의해, 그리고 자의에 의해 연투를 이어간 임준영의 어깨는 많이 지쳐 있었다.
그런 임준영을 위해 워리어스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
입단 계약을 마치자마자 따뜻한 캘리포니아에 캠프를 차리고 트레이너와 닥터를 포함한 스태프들을 파견해 임준영의 재활을 도왔다.
수십 년간 프로야구 선수들을 전담해온 전담의가 말하길, 적어도 내구성에서만큼은 자신이 본 가장 대단한 선수라 평가받은 임준영은 부상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며 마운드에 복귀했다.
한수혁과 임준영.
국내 최고, 아니, 역대 최고라 해도 좋을 원투 펀치를 갖게 된 이대준 감독은 이들에 대한 특별 관리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만식의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던 순간의 참담한 기억, 그리고 어깨 이상으로 너클볼까지 던져야 했던 한수혁의 얼굴을 떠올리며.
눈앞의 승리보다는 장기적인 전력 보전에 더 힘을 쓰기로 했다.
이번 겨울 중간계투진을 보강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 역시 그런 계획의 일환이었다.
지난 시즌 이 팀의 5선발이었던 이영주와 강동하, 그리고 트레이드로 데려온 제법 괜찮은 자원들, 시범경기 활약으로 1군 무대에 이름을 올리게 된 신인 최마루까지.
그들을 중간계투로 활용해 최대한 선발투수진의 어깨 부하를 줄여줄 생각이었다.
아직까지도 팀을 위해서라면 투수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한 야구계에서 이대준은 참으로 보기 드문 타입의 감독이었다.
슈우웅
부웅
“스윙! 아웃!”
“우아아아!”
그런 코칭스태프의 배려, 돌아온 자신을 반갑게 맞아준 선후배들, 거기에 몰라보게 달라진 구단의 지원까지.
그 모든 것이 임준영을 행복하게 했다.
비록 지난 4년간 자신을 응원해준 인천 팬들에게 마지막 우승을 선물하지 못한 게 미안하긴 했지만,
이제는 그런 감정도 모두 털어버리고 지금 입고 있는 유니폼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슈우웅
부웅
“스윙! 아웃!”
“진짜 최고다!”
“이 맛에 현질하는 거구나!”
“우와! 어제 오늘 진짜 야구 볼 맛 난다!”
1번 강우찬에 이어 2번 손재후까지, 인천의 테이블 세터를 삼진으로 잡아낸 임준영이 자기도 모르게 활짝 웃어 보였다.
행복하다.
지난 시간의 고생들이 모두 보답 받는 것 같은 기분.
다시 워리어스 유니폼을 입고 잠실야구장 마운드에 서는 것만으로도,
임준영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였다.
* * *
[3번 타자 1루수 조성오]이제는 한국야구에서도 가장 강한 타자를 2번에 세우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올 시즌 2번으로 고정될 예정인 한수혁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야구팬들의 머릿속에는 ‘팀내 최고 타자 = 3번’이라는 인식이 마치 공식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올 시즌 워리어스의 3번 타자를 맡게 된 조성오는 그 자리가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팀에는 자신보다 홈런을 많이 친 선수가 셋이나 있다.
한수혁은 그렇다 치고 월터와 장덕수의 파워는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올 정도다.
타율이나 출루율을 기준으로 해도 새로 영입한 민주현이 자신보다 나았다.
하지만 이대준의 선택은 조성오였다.
‘성오야,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지만 내가 가장 믿는 타자는 너야. 그래서 너를 수혁이 바로 뒤에 배치하려는 거다. 거기서 수혁이가 마음대로 플레이할 수 있게 잘 도와줘. 할 수 있겠지, 주장?’
모르겠다.
감독이 왜 자신을 선택한 건지.
올 시즌에도 다른 팀 투수들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을 게 뻔한 한수혁.
자신이 부진하면 한수혁이 볼넷으로 걸어 나가는 횟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런 큰 책임과 부담감.
그럼에도 조성오는 아무 군소리 없이 그 역할을 받아들였다.
‘제가 능력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감독님’
작년 한국시리즈에서 다쳐 수술까지 해야 했던 발목은 이제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타격을 할 때마다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건 아마 난생 처음 몸에 칼을 대본 후유증일 것이다.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 때문에 주춤거릴 때가 아니다.
모두가 말한다.
지난 시즌 워리어스의 우승은 한수혁 덕분이었다고,
벼랑 끝에서 떨어지려는 팀을 한수혁이 억지로 잡아 끌고 정상으로 끌어 올렸다고.
맞는 말이다.
그래서 분하고, 한편으로는 한수혁에게 너무 미안했다.
올해는 절대 그렇게 만들지 않을 거다.
투타 최고참이 빠진 무대에서 한수혁이 혼자 분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생각이다.
해낸다.
녀석이, 내가, 그리고 모두가 그토록 원하는 왕조 건설을 위해 이 한 몸을 불태울 거다.
‘만식아, 빨리 돌아와라. 우리가 할 일이 많아.’
2루 서형주, 1루 한수혁.
연속 볼넷으로 루상에 나간 후배 둘이 계속 스타트를 끊으며 인천 투수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얼굴에 짜증이 한가득 고인 투수가 드디어 자신을 향해 초구를 던졌다.
‘흡!’
몸쪽으로 바싹 붙어 오는 강력한 포심.
지난 시즌 초만 해도 대응조차 제대로 못 하던 그 공을 향해 조성오의 배트가 힘차게 뻗어나갔다.
따아아악!
“우아아아아!”
“간다! 간다! 넘어간다!”
임준영이 마운드에서 던지고, 리그에서 손꼽히는 신인 두 명이 그라운드를 휘젓고,
타석에 들어선 자신이 커다란 타구를 만들어내는 이 광경.
예전에는 꿈에서나 그리던 그 모습이 현실이 된 것에 조성오는 하마터면 눈물을 터뜨릴 뻔했다.
“홈런! 홈런이야!”
“멋지다! 주장!”
“잘했어!”
“조성오! 조성오! 조성오!”
이 팀이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을 때, 구단 운영에 관심없는 구단주가 연일 이상한 짓을 저질러 댔을 때,
모두가 말했다.
워리어스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하지만,
쿠웅
“우아아아!”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버텨볼 것이다.
1회말 석 점 홈런을 때려낸 조성오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 * *
지난 시즌 막바지, 체력 저하와 경험 부족으로 나란히 3할 타율 도전에 실패했던 신인 콤비 서형주, 안치욱은 스프링캠프 기간 기술보다는 체력 훈련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이들이 후반기에 고전을 한 건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거였다.
얼마 전까지 고등학생이었던 몸으로 144경기에 달하는 풀 시즌을 치러낸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으니까.
그냥 하필이면 한수혁이라는 괴물과 입단 동기가 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비교가 된 게 문제였을 뿐이다.
어쨌든 프로 2년 차를 맞아 더욱 강해진 두 신인 콤비, 거기에 부상을 말끔히 털어내고 돌아온 주장 조성오, 이제는 한국야구에 완전히 적응한 듯 시범경기 동안 장타를 펑펑 날려 대던 용병 월터 스미스, 그리고 팀을 옮기자마자 중심타선에 자리 잡게 된 민주현으로 구성된 상위타선.
상위타선뿐만이 아니었다. 하위타선 역시 몰라보게 강해졌다.
체력 관리를 위해 하위타선으로 내려온 거포 장덕수, 언제든지 상위타선으로 올라가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베테랑 이창모, 거기에 여차하면 1번으로도 활용 가능한 최민석.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더 강하다.
시즌이 시작된 후 전문가들이 워리어스의 공격력에 대한 평가를 상향 조정했다.
서형주와 안치욱이 2년 차 징크스에 빠지거나, 나이 많은 조성오와 이창모가 갑자기 부상을 당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리그 정상에 도전할 수 있는 타선이라고.
물론 중요한 것 하나가 빠져 있었다.
한수혁.
안 그래도 강한 워리어스 타선에 한수혁이 더해지면?
두말할 필요 없는 리그 최강.
엄청난 돈을 들여 선수단을 보강한 매지션스 입장에서는 억울할 노릇이지만, 그렇게 워리어스는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하던 선수들과 신인들을 하나로 묶어 리그 최강의 타선을 만들어냈다.
따아아아악!
3회초,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한수혁의 배트가 힘차게 돌아갔고, 거기에 맞은 타구가 끝도 없이 날아가 좌측 관중석 최상단에 떨어졌다.
“우아아아아!”
3 대 0이던 스코어를 5 대 0으로 만드는 거대한 홈런.
지난 시즌 단일 시즌 아시아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운 한수혁이 때려낸 올해 첫 홈런이었다.
“비켜! 비켜! 내 거야!”
“밀지 마! 에헤이, 밀지 말라고!”
2027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한수혁이 때려낸 61호 장외 홈런볼을 주운 건 구장을 관리하는 외주 업체의 직원이었다.
한국 기록도 아닌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달성한 홈런 볼.
과연 그 가치는 어느 정도 될까?
24년 전 한국 신기록으로 기록되었던 홈런 볼은 TV 경매를 통해 무려 1억5천만 원이라는 가격에 판매되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심이 동하지 않을 수 없는 큰 돈이다.
하지만 머리가 히끗히끗한, 손녀의 대학등록금에 보태기 위해 경기장 주변 청소일을 하던 직원은 그 공을 들고 워리어스 구단을 찾았다.
‘귀중한 물건인 것 같아 가져왔습니다. 주인에게 돌려주세요.’
경기가 끝난 후 한수혁이 직접 그 노인을 만났다.
그리고 10억 원에 그 공을 다시 사들여 구단 사무실에 전시했다.
고작 야구공 하나의 가치가 그 정도일 거라 생각도 못 한 노인이 크게 당황하며 사양했지만 한수혁은 기어코 그 돈을 노인에게 전달했고, 거기에 덧붙여 손녀딸을 위한 사인볼과 사인배트, 유니폼 등의 선물을 따로 챙겨주기까지 했다.
그 사실이 알려진 후 한수혁의 공을 노리는 콜렉터들의 숫자가 더욱 늘어났다.
한국시리즈에서 외야를 점령했던 그들은 지금도 열심히 외야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잠자리채를 휘두르고 있었다.
한수혁의 KBO리그 통산 62호이자 2028시즌 1호 홈런볼을 잡기 위해.
“잡았다! 내가 잡았어!”
“아아아… 까비!”
이제 막 리그가 시작되었건만 고작 타구 하나에 좌측 외야 관중석 전체가 들썩거린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KBO 직원 하나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쟤 없으면 리그 큰일 나겠네, 정말.”
오늘로 딱 데뷔 1주년을 맞은 한수혁은 이제 실력과 인기, 모든 면에서 명실공히 KBO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었다.
그 어떤 나라의 선수들과 비교해도 실력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아니, 오히려 압살하는,
거기에 스타성 면에서는 역대 그 어떤 선수보다 뛰어난,
2028년 봄, 한국 프로야구는 본격적인 한수혁의 시대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