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91)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90화(191/412)
#190. 대체 왜 야구를 보는 겁니까
‘흠… 이것이 한국의 야구인가.’
부산 야구의 상징인 사직구장.
잠실야구장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장 낡은 구장으로 꼽히는 이곳 마운드에 어디인지 모르게 외로워 보이는 외국인 하나가 서 있다.
남자의 이름은 에릭 톰슨, 지난 시즌까지 시애틀에서 빅리그와 마이너리그 사이를 오가던 나이 33살의 베테랑 투수였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마이너보다는 빅리그에 가까웠던, 최고 구속 156㎞/h에 달하는 강속구를 던지는 좌완이었던 그는 결국 마지막 벽을 넘지 못해 마이너리거에 머물렀고 이렇게 워리어스의 선수가 되었다.
자신에게 한국행을 추천한 시애틀의 단장 다니엘 미첼은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지. 자네가 다시 빅리그 마운드에 서는 일은 쉽지 않을 거야. 그런 자네에게 선택의 기회가 찾아왔다네. 한국으로 가보는 건 어때? 아마도 새로운 기회가 기다릴지도 몰라. 아, 혹시나 그 팀과 계약을 하게 되면 말이지…….’
‘음?’
갑작스러운 단장의 호출, 거기에 생각지도 않았던 한국행 권유에 얼이 빠져 있는 에릭 톰슨이 이게 대체 뭔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니엘이 대답했다.
‘한수혁과 친하게 지내는 걸 추천하고 싶군. 만약 자네가 그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흠, 어쩌면 은퇴 후에 이 시애틀 프런트에서 꽤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지도 모르지.’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시애틀의 이 단장이 평소 한수혁에게 얼마나 집착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그와는 별개로 워리어스의 제안에 매력을 느낀 에릭 톰슨은 한국행을 선택했다.
구속이 조금 떨어졌지만 여전히 150㎞/h가 넘는 공을 존 구석구석에 던질 수 있는 좌완투수.
어떤 면으로 봐도 지난 시즌 이 팀에서 뛰었던 브룩스 파커의 상위호환인 그가 부산과의 3연전 첫 경기 선발로 나섰다.
인천과의 개막 2연전에서 한수혁, 임준영 원투 펀치를 내세워 가볍게 2승을 거둔 워리어스의 기세가 부산 타이탄스를 덮쳤다.
“우우우우! 죽어! 시발! 다 죽어버려!”
“집어쳐! 이 병신들아! 집어치라고!”
“우리집 개를 풀어놔도 너희보단 잘할 거다, 이 멍청이들아!”
무려 8명의 타자가 등장해 5점을 뽑아낸 워리어스의 1회초 공격이 이제 막 끝났다.
에릭 톰슨이 고개를 돌려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점수가 다섯 점이나 났건만 안타는 단 하나뿐이고, 볼넷은 네 개, 거기에 실책은 무려 세 개가 기록되었다.
1회초 타이탄스의 수비진이 이룩한 기적 같은 업적이다.
홈팀 팬들이 분노했다.
안 그래도 지난 시즌 최하위를 기록한 팀 성적 때문에 어디 한번 두고 보자 하는 심정이었던 부산 팬들이 그라운드를 향해 먹던 닭다리와 회 접시, 도너츠, 피자 조각을 던져 댔다.
“타임! 타임!”
결국 보다 못한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켰다.
그러자 관리 직원들이 우르르 뛰어나와 그라운드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봉지에 주워 담기 시작했다.
1회말 마운드에 올라 아직 하나의 공도 던지지 못한 에릭 톰슨은 생각했다.
‘보스… 아무래도 당신에게 듣던 것과는 이야기가 많이 다른 것 같군요.’
시애틀의 단장 다니엘은 말했다.
한국의 야구 수준은 매우 뛰어나다고, WBC에서 우승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냐고.
거기서 잘만 던지면 스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높은 수준의 야구를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다른 건 대충 넘어간다 치더라도 높은 수준의 야구,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대체 저 팀은 프로 팀이 맞긴 한 걸까?
“우우우우!”
“맛있냐? 맛있어? 하나 더 주까?”
“다 처무라! 이 새끼야!”
덕아웃 앞에 있던 덩치 큰 부산 선수 하나가 관중이 던진 핫도그를 낚아채 그대로 입에 넣었다.
제 딴에는 위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인데 오히려 관중들의 화만 자극해 일을 더 키우고 말았다.
혼란에 빠진 에릭 톰슨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야구는 대체 언제 할 수 있는 거지…….”
* * *
따아아아악!
“우아아아!”
“시발, 존나 화끈하네! 그래! 다 죽여! 다 죽이라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늘 홈런 한 60개쯤 맞아보자고!”
6회초 워리어스가 7 대 1로 앞서는 상황, 선두 타자로 나선 한수혁이 점수를 또 벌리는 시즌 2호 홈런을 때려 버렸다.
부산 팬들이 외쳤다.
어차피 이럴 바에는 오늘 한수혁에게 홈런 60개를 더 맞아서 신기록이나 세워주자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부산 팬들은 그만큼 화가 나 있었다.
점수가 일곱 점 차이로 벌어지자 투수코치가 에릭 톰슨에게 물었다.
“아직 투구 수는 여유가 있는데 좀 더 던질 수 있을까? 보스가 자네 공을 좀 더 보고 싶다는군.”
“한두 이닝은 전혀 문제가 없을 거 같군요. 코치, 그보다…….”
“음? 왜?”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화가 나 있는 겁니까? 이제 고작 개막한 지 3일이 지났을 뿐인데.”
에릭 톰슨이 가리킨 곳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계속 고함을 질러 대는 부산 팬들이 있었다.
“음, 이건 상당히 대답하기 복잡한 질문이군. 그래도 최대한 쉽게 설명하자면 말이야. 일단 지난 시즌에 저 팀은 최하위를 기록했지.”
“아…….”
“물론 그 이전에도 주로 8위 아니면 9위였고 말이야.”
“오…….”
“게다가 지난 시즌이 끝난 후 타율 2할짜리 유격수에게 옵션 포함 거의 100억 가까운 장기 계약을 안겼다는군. 지역 프랜차이즈 고등학교 출신이라는게 어드벤테이지를 준 모양이야.”
“세상에… 정말 엄청나군요.”
“엄청나지. 그런데 중요한 게 하나 더 남았다네.”
“거기서 뭔가 더 있다고요?”
“그 유격수가 시즌을 시작하자마자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어. 어쩌면 시즌을 통째로 날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지.”
“지져스…….”
“음, 다음에 할 이야기는 자네와도 관련이 있다네.”
“저랑요? 뭡니까?”
“1년 전 우리 팀에 선수단 분위기를 좀먹는 쓰레기 같은 놈이 있었거든.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얼른 치워야 했을 정도로 재활용이 불가능했던.”
“그런데요?”
“매지션스라는 팀으로 보냈었는데 거기서도 자리를 못 잡고 다시 부산으로 쫓겨났어. 흠, 방금 말한 100억짜리 장기 부상 유격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게 바로 그놈이라는 거지.”
“오 마이 갓…….”
“맞아. 저기 나오자마자 에러 저지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는 송기태라는 놈, 저게 바로 내가 말한 그놈이야.”
“듣기만 해도 질리는군요. 대체 저 팀 팬들은 왜 야구를 보는 겁니까?”
“글쎄, 내가 알기로는 그게 바로 이 KBO 리그의 삼 대 미스터리라고 하는군. 어쨌든, 다음 이닝도 잘 부탁해, 에릭.”
* * *
워리어스에서 쫓겨나 매지션스로, 그 팀에서 다시 트레이드되어 이제는 부산 유니폼을 입게 된 송기태는 지금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분이 나쁜 상태였다.
윈나우를 선언한 매지션스는 자신과 정기호, 그러니까 워리어스 출신 두 명의 잉여 전력을 아무 고민 없이 부산으로 보내버렸다.
그 대가로 매지션스가 받은 건 고작 중간계투 하나. 그럼에도 대부분의 매지션스 팬들이 송기태와 정기호의 방출에 기뻐했다.
그런 송기태가 마운드 위 용병 투수, 그리고 그 뒤에서 수비 자세를 취하고 있는 야수들을 하나하나 노려보았다.
이제 워리어스는 자신이 뛰던 그 시절의 그 약팀이 아니다.
그라운드 위에 서 있는 선수들 하나하나에게서 챔피언의 무게가 느껴진다.
‘시발.’
지금 자신이 이렇게 처량한 신세가 된 것, 그리고 워리어스의 영광을 함께 누리지 못하게 된 건 모두 자신의 탓이건만,
애초에 송기태라는 인간은 그런 걸 자각하거나 반성할 줄 아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런 송기태를 향해 에릭 톰슨의 초구가 날아 들었다.
슈웅
부웅
“스윙!”
바깥쪽으로 들어오다가 다시 한 번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역회전 공.
어이없는 헛스윙에 등 뒤에서 관중들의 비아냥이 들려왔다.
“그냥 뒤져! 밥이 아깝다고! 은퇴 안 하냐, 송기태?”
“저딴 걸 대체 왜 데려온 거야? 100억짜리 유격수는 어디 가고 저런 게 타석에 서 있는 거냐고?”
“시발, 진짜 이 개 같은 팀 망해버려라!”
겨우 헛스윙 한 번 한 것뿐인데 죽어도 싼 인간이 되어버렸다.
송기태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욕설을 내뱉았다.
“씨발…….”
하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너무 화가 나서 잠깐 잊고 있었다.
지금 홈플레이트 뒤에 앉아 있는 인간이 누구인지.
“크흠.”
티가 나지 않게 아주 살짝 고개를 돌려 장덕수를 바라봤지만 다행히도 자신이 한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이마에서 식은 땀이 주룩 흘러내린다.
싫다.
야구하기 너무 싫다.
‘대충 휘둘러서 삼진 먹고 빨리 경기 끝내자. 어디 가서 술이나 빨아야겠네.’
부상당한 100억짜리 유격수를 대신해 데려온, 올 시즌 부산 타이탄스의 내야를 책임질 주전 유격수의 생각이었다.
* * *
[서울 워리어스, 개막 이후 파죽의 5연승] [인천 2연전에 이어 부산과의 3연전까지 싹쓸이, 시즌 3호 홈런 기록한 한수혁, 올해 또 한 번의 대기록에 도전한다] [또다른 우승후보 매지션스, 창원과 대구 누르고 5연승으로 공동 1위] [임준영 빠져나간 인천, 광주 3연전 쓸어 담으며 3승 2패 기록]2028시즌 개막 첫 주 일정이 모두 지나갔다.
모두의 예상처럼 워리어스와 매지션스가 기세 좋은 출발을 보인 가운데, 개막전 2연패로 주춤하던 레인저스 역시 재규어스에 스윕을 거두며 서서히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5승으로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는 워리어스는 이제 수원과의 홈 3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휴식일임에도 구장에 나와 개인 연습 중이던 워리어스 선수들을 만나기 위해 고동식이 잠실을 찾았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장님.”
“어휴, 아니에요, 위원님. 평소에 저희 구단을 그렇게 아껴주시는데… 더 해드릴 게 없어서 죄송하네요. 오늘은 그냥 요청하신 선수들만 불러드리면 되는 거죠?”
“네, 올림픽 예비 명단에 포함된 선수들 만나서 인터뷰하는 거니까요. 선수당 10분? 그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훈련하는데 폐 끼치면 안 되죠.”
“오케이, 인터뷰는 알아서 잘 해주시리라 믿고 저는 굳이 동석 안 하겠습니다. 편하게 진행하시고,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주시고요. 그럼 서형주 선수부터 들어오라고 할까요?”
“그럼 감사하죠. 흐흐, 그나저나 여기 커피 정말 맛있네요.”
“원두 진짜 좋은 거 쓰거든요. 뭐라더라, 그 이름이… 아, 서형주 선수 마침 들어왔네요. 그럼 위원님, 전 나가 있을 테니 인터뷰 진행하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나중에 제가 한 턱 쏠게요.”
“쏘긴 제가 쏴야죠, 호호.”
오늘따라 유난히 신이 난 워리어스 홍보팀장을 내보낸 고동식이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서형주와 마주 앉았다.
친정 팀 대전에서 쫓겨나듯 서울로 팔려왔던 작은 소년이 불과 1년 사이 어엿한 챔피언 팀의 주전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형주 선수,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위원님. 연습하다 바로 와서 보다시피… 죄송합니다. 보기 좀 그렇죠?”
“아뇨, 운동선수가 땀 흘리는 게 당연한 거죠. 혹시나 몸이 식어서 춥거나 하면 얘기해요. 감기 걸리면 큰일 나니까.”
“에이, 이 정도로 감기 걸리면 안 되죠. 아무튼 오늘 저를 인터뷰 하신다고요?”
“네, 설명 들으셨겠지만 이번 2028 LA올림픽 야구 대표팀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렸잖아요? 그 이야기를 좀 들어보려고 왔는데… 질문 시작해도 될까요?”
워리어스 경기 중계를 할 때를 제외하면 고동식은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이었다.
한참 어린 후배에게 계속 말을 높여주는 그를 보며 서형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저 하고 나면 치욱이 차례인 거 같은데 최대한 빨리 부탁드릴게요. 아직 연습을 못 마쳐서.”
“좋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공식적인 질문에 앞서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이건 대답하기 싫으시면 그냥 넘어가도 됩니다.”
“네, 일단 들어볼게요.”
“고마워요. 제가 궁금한 건 음… 같은 막내이면서도 이번 대표팀의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이는 한수혁 선수에 대한 생각입니다. 조금 무례할 수도 있겠지만… 입단 동기이자 친구로서 한수혁 선수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정말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