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92)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91화(192/412)
#191. 그와 단 한 경기만이라도
지난 2027시즌 기준 KBO에 정식 등록된 1, 2군 선수는 대략 600명.
그렇게 많은 선수들 중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게 바로 한수혁이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건 그가 이제 고작 데뷔 2년 차에 불과한 신인이라는 점이다.
차라리 최마루처럼 그의 후배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은 마음이 편하겠지만 동기, 그리고 선배들의 심정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데뷔하자마자 최고의 자리에 올라버린 동기, 혹은 후배.
굳이 야구뿐만이 아니라 어떤 집단을 가도 그런 존재에게는 시기와 질투가 뒤따르는 법이다.
그렇기에 고동식은 진정으로 서형주의 심정이 궁금했다.
입단 동기이자 친구, 거기에 한 팀에서 1, 2번 테이블 세터로 묶여 있는 콤비.
어찌 생각하면 한수혁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선수.
그는 과연 한수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오늘 고동식이 서형주를 만난 건 올림픽 대표팀 승선에 대한 걸 묻기 위함이었지만 일단 이것부터 털어내는 게 순서라고,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고동식의 질문에 서형주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딱히 새로운 질문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많은 기자들이 그런 질문을 해왔으니까.
하지만 서형주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한 적이 없었다.
자격지심 때문이었을까?
글쎄, 처음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기회가 없었던 거다.
언제나 자신과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그 대단한 동기 놈에 대한 진심을 털어놓을 기회.
어쩌면 그것이 오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서형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 * *
“야, 서형주.”
“왜, 이 괴물아.”
“너 아까 인터뷰 때 대체 뭐라고 했길래 그 아저씨가 나 보면서 너랑 사적으로 얼마나 친하냐고 자꾸 묻는 거냐?”
“몰라, 난 암 말도 안 했음.”
“흠.”
“됐고, 공이나 제대로 던질 생각해. 가서 기록이나 세우라고. 훠이!”
“수상한데.”
수원과의 3연전 첫 경기, 선발투수로 나서게 된 한수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불펜으로 걸어갔다.
지난 시즌 61개의 홈런을 날리며 단일 시즌 아시아 최다 홈런 기록을 갱신한 한수혁은 올해 또 다시 새로운 기록에 도전하고 있었다.
일단 팬들이 가장 바라고 있는 건 메이저리그 홈런 기록인 73개를 돌파하는 것.
게임 수를 감안하면, 그리고 상대 투수들이 한수혁만 보면 거품을 물고 도망가는 걸 감안하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지만 그럼에도 팬들은 한수혁이 그 기록을 깨 주길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록이 있었다.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
지난 2027 정규 시즌 50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한국 기록을 넘어선 한수혁.
그는 이제 미국 기록인 60이닝, 그리고 일본 기록인 64.1이닝 연속 무실점에 도전장을 내민 상태였다.
미국의 기록이 1989년, 일본의 기록이 1958년에 이뤄진 것임을 감안하면 그게 얼마나 어려운 도전인지 두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투수로서의 능력, 집중력, 그리고 팀 수비의 도움.
그 모든 것이 삼위일체가 되어야만 가능한 기록이 지금 눈 앞에 다가와 있다.
지난 정규 시즌에서 50이닝, 그리고 올해 첫 경기에서 5이닝을 더해 총 55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 중인 한수혁은 오늘 1998년 LA다저스의 오렐 허샤이저가 세운 60이닝 기록에 도전하게 되었다.
* * *
“시발…….”
“진짜 쟤들은 우리랑 뭐 원수졌나. 항상 중요한 순간에 게임이 잡히네.”
“5회까지 점수 못 내면 미국 기록 타이라고?”
“어, 불행 중 다행이라면 9이닝 완봉을 당해도 일본 기록에는 0.1이닝 모자람.”
“…그거 참 위안된다, 이 새끼야.”
당연한 말이지만 한수혁의 기록 도전에 가장 크게 긴장을 하고 있는 건 수원 선수단이었다.
개막 첫 주 다섯 경기에서 3승 2패를 거두며 나름 안정적인 스타트를 끊은 수원.
그들 앞을 한수혁이 또 가로막고 나섰다.
생각해보면 최경재가 있을 때부터 한수혁에게 지독하리만치 당해온 수원이다.
오죽했으면 정대한이 갈비까지 사주면서 좀 살살 하라고 부탁을 했건만, 저 매정한 놈에게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없는 건지 오히려 수원만 만나면 더 기를 쓰고 뛰는 것 같다.
선수단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수원 감독이 박수를 치며 주위를 환기시켰다.
“자, 다들 들어봐. 기록이란 게 왜 수십 년 동안 안 깨지겠냐. 그만큼 깨기가 힘드니 기록으로 남은 거야. 한수혁? 괴물이긴 하지. 그래도 이제 한 대 맞을 때가 됐어. 아무리 170㎞/h이라고 해도 알고 있으면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 자, 오늘은 우리 팀에서도 에이스가 나간다. 한 점 싸움이 될 거야. 어떻게든 녀석을 무너뜨린다. 할 수 있겠지?”
“네…….”
“할 수 있겠지?”
“네.”
“크게!”
“네!”
“좋아, 그럼 시작하자. 오늘 한수혁에게 타점 올린 놈은 앞으로 한 달간 휴식일 훈련에서 몽땅 열외다. 가족들하고 휴일을 보내고 싶나? 애인하고 데이트도 하고 싶고? 좋아, 그럼 나가서 때려. 저 녀석의 공을 날려버리라고!”
감독의 입에서 꽤나 그럴듯한 당근이 제시되었지만 수원 선수들 중 누구도 환호하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면 벌써 누군가 했겠지.’
아직 경기는 시작되지도 않았건만, 벌써부터 수원 선수들의 가슴 속에는 한수혁에 대한 짙은 패배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경기가 시작되었다.
1번 중견수 서형주
2번 좌익수 최민석
3번 1루수 조성오
4번 우익수 월터 스미스
5번 3루수 민주현
6번 투수 한수혁
7번 포수 장덕수
8번 2루수 이창모
9번 유격수 최진철
지난 시즌에 이어 올해도 수원 유니폼을 입게 된 용병 라파엘 디아즈가 워리어스의 강타선을 상대로 1회를 무사히 넘겼다.
1번 서형주에게 안타를 맞고, 3번 조성오, 4번 월터 스미스에게 볼넷을 내줄 때만 해도 또 개박살이 나겠구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5번 민주현이 친 잘 맞은 타구가 병살타가 되며 쓰리 아웃.
대기 타석에 있던 한수혁이 아깝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고, 하필 그때 눈이 마주친 투수가 경기를 일으키긴 했지만 다행히 금세 정신을 되찾았다.
어쨌든 그렇게 1회초가 지나고, 1회말 한수혁이 마운드에 올랐다.
“우아아!”
“서형주! 월터! 최민석!”
“부탁한다! 제발! 나 한강 가기 싫어! 이쪽으로 꼭!”
“코인충은 입 닥치고! 이쪽! 이쪽으로 던져달라고!”
한수혁이 연습투구를 시작하자 난데없이 외야에 있는 관중들이 워리어스 외야수들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우익수 뒤에 앉은 수원 팬들조차도.
“저기 저 사람들 왜 저런대?”
“혹시나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 달성한 공 잡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거지 뭐.”
“아아, 자기한테 던져 달라는 거야, 지금? 신기록을 달성한 공을?”
“그치.”
“미쳤네…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뭐, 작년에 홈런 볼 주운 사람이 10억을 만졌으니까.”
“하긴… 어찌 보면 또다른 로또네.”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홈런볼을 주운 야구장 관리직원은 순식간에 10억이라는 돈을 만지게 되었다.
물론 한수혁이 그런 큰 돈을 선뜻 내민 건 어차피 가만있어도 돈이 계속 쌓이는 데다가, 누가 봐도 값이 나갈 것 같은 물건을 그냥 돌려주겠다고 가져온 마음이 고마워서였지만.
“우아아아!”
“부탁해! 꼭! 팬 서비스는 야구선수의 기본 항목이라고!”
“제발! 하느님! 부처님! 누가 됐든 공이 이곳으로 날아오길!”
일부 관중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한수혁이 오늘 미국 기록인 60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는 순간 그 공이 외야 플라이가 되고, 그 공을 잡은 외야수가 평소처럼 팬서비스로 관중들에게 그 공을 던져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쟤들 바보 아냐? 외야수들이 설마 그런 중요한 공을 관중석에 던지려고?”
“냅둬, 절박하다 보면 뭐라도 해보려는 거지. 뭐 우리는 당첨될 거 기대하고 매주 로또 사냐? 그냥 혹시나 하는 거지.”
“하긴, 가만 보면 돈 버는 건 잠자리채 만드는 공장뿐인 거 같네.”
“그건 맞지.”
지난 시즌 하반기, 한수혁이 홈런 50개를 돌파한 이후 등장했던 잠자리채 부대들은 이제 개막전부터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야구장을 휩쓸고 있었다.
일단 한수혁과 관련된 공을 잡아 두면 나중에 뭔가 돈이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누구 말처럼 신이 난 건 잠자리채 만드는 공장뿐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런 분위기 속에 한수혁이 첫 번째 공을 던졌다.
슈우웅
부웅
“스트라이크!”
“우아아아아!”
“그냥 삼진 먹고 꺼져버려!”
“빨리 빨리 하자고!”
이제는 한수혁의 시그니처가 되어버린 초구 170㎞/h 포심.
경기 시작과 동시에 상대팀의 의지를 완전히 박살 내는 그 공이 들어오자 잠자리채 부대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수원까지 쫓아와 워리어스를 응원하는 극성 원정팬들, 거기에 팀 응원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한수혁의 기록 달성을 기원하는 잠자리채 부대들.
그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 아무것도 못 하는 홈팬들을 보며 정대한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시발… 진짜 못 해먹겠네.”
* * *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열렸던 서울 워리어스와 수원 커맨더스 간의 경기에서 한수혁 선수가 6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기존 메이저리그 기록이었던 60이닝 연속 무실점을 넘어섰습니다. 이로서 한수혁 선수는 다음 경기에서 3과 3분의 2 이닝만 더 막아내면 세계 최고 기록을 경신하게 되었습니다.]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워리어스 2군 선수단 숙소.
단순한 2군 선수들뿐만 아니라, 1군에 올라가고도 아직 자기 집을 구하지 못한 신인급 선수들, 또는 정식 프로선수로 이름을 올리지 못한 육성 선수들까지.
그렇게 다양한 선수들이 모여 살고 있는 이곳에 조금은 특이해 보이는 선수 하나가 있었다.
TV 볼륨을 완전히 줄인 채 자막만으로 스포츠 뉴스를 보고 있는 선수.
그는 얼마 전 치러진 워리어스 육성선수 테스트를 통과한 성진학교 출신 최재민이었다.
혹시나 했던 신인 드래프트에서 결국 외면 받고, 부산과 대전 육성선수 테스트에서도 떨어진 이 소년은 결국 야구를 접을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러던 중 사회봉사를 나온 한수혁과 장덕수를 만났고, 그에게서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있는, 아주 희박하지만 현재로서는 그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길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타격에만 모든 걸 걸어. 엔트리에 주루와 수비가 안 되는 놈이 왜 끼어 있냐고 물으면 우리 팀에 저놈보다 나은 대타는 없다는 말이 나오도록 말이야.’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극단적인 조언이었다.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
하지만 절벽 끝까지 몰린 최재민은 한수혁의 조언을 받아들였고, 결국 워리어스의 육성선수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었다.
물론 프로 구단의 육성선수라는 게 그렇게 영광스러운 자리는 아니다.
계약금도 없이 최저연봉만 받는, 당연한 말이지만 KBO에 등록조차 안 되어 프로야구 선수로서 그 어떤 권리도 보장받을 수 없는 약자 중의 약자.
불끈
그럼에도 최재민은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청력 문제, 그리고 이로 인한 주루와 수비의 불편함을 빼고 생각하면 최재민은 상당히 쓸 만한 타자였다.
골고루 발달한 하체와 상체의 밸런스, 남들보다 유난히 강한 허리 힘, 그리고 이를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타격 폼.
한수혁의 조언에 따라 급하게 몸을 만드느라 아직 밸런스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번 육성 선수 테스트에서 최재민은 배트에 2개의 공을 맞췄고, 그 공 모두를 담장 밖으로 날려보냈다.
컨택이나 선구안에서는 약간 문제를 보였지만 일단 맞으면 넘어갔다.
그런 최재민에게서 가능성을 본, 선수들에 대한 그 어떤 편견도 갖고 있지 않은 2군의 외국인 감독은 그를 합격시켰고, 구단에서는 최재민을 도울 수화통역사까지 채용하며 그의 프로 도전을 도왔다.
‘수혁이 형…….’
처음에는 몰랐다.
왜 자신에게 이런 행운이 찾아온 것인지.
주루도, 수비도, 모두 불합격 판정을 받은 자신이 단지 홈런 몇 개를 쳐냈다는 이유로 워리어스의 육성선수가 된 것, 그리고 고작 그런 육성선수 하나를 위해 구단에서 수화통역사까지 채용했다는 것.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행운에는 한수혁의 도움이 있었다는 걸 말이다.
이제 최재민에게 한수혁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야구선수이자, 인생의 은인이 되었다.
언젠가는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하지만 당장은 불가능하다.
고작 육성선수에 불과한 지금의 자신은 한수혁에게 도움은커녕 짐이 될 뿐이다.
그렇기에 최재민은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다른 동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봐도, 대체 왜 그런 몸으로 야구를 고집하냐고 비아냥거려도, 누군가 장애를 이유로 자신을 무시하고 깔봐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니까.
‘제가 곧 갈게요, 형.’
최재민의 인생에 남은 유일한 의미, 그리고 희망은 아주 잠시라도 한수혁과 한 경기에서 뛰는 것, 오직 그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