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97)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96화(197/412)
#196. 시작해보자
“선배님, 미국에서 뛰는 기분은 어떤가요? 걔들 진짜 그렇게 야구 잘하나요?”
“TV로 보니까 배트 스피드 살벌하던데, 확실히 다르긴 다른가요?”
“저번에 루카스 앤더슨 상대했었죠? 기분 어땠어요, 형?”
“자자, 하나씩, 하나씩 물어. 뭐 일케 중구난방이랴. 어이구, 정신 없어.”
한국팀이 훈련장으로 배정받은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류한결이 후배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지난 시즌이 끝난 후 3천만 달러에 가까운 포스팅 금액과 연평균 700만 달러에 달하는 연봉을 받고 LA에인절스의 유니폼을 입게 된 류한결.
미국 현지에서 체류하다 곧바로 대표팀에 합류한 그에게 대표팀 후배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빅리거들이 즐비한 다른 나라와는 달리 한국 팀 내 빅리거는 류한결이 유일했다.
애초에 한국인으로서 빅리그에 진출해 있는 선수가 그 하나뿐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때 다수의 메이저리거를 배출하며 세계 정상을 다투던 한국야구는 이제 없다.
만약 한수혁이 없었다면 1라운드 통과도 자신할 수 없는 명백한 약팀.
그것이 현 대한민국 대표팀의 현주소였다.
“일단 저부터! 선배님, 미국 타자들 상대해보니 가장 큰 차이가 뭔가요?”
한국에 있을 때도 임준영을 가운데 두고 제법 괜찮은 사이를 유지했던 후배 김용재가 물었다.
그 물음에 류한결이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대답했다.
“실투.”
“실투요?”
“어, 한국에서는 실투를 던져도 크게 개의치 않았거든. 다음 공을 더 잘 던지면 되지, 뭐. 그런 생각? 그런데 여서는 그게 안 통하더라고. 잠깐만 삐끗하면 바로 홈런이여.”
“아아.”
“그래서 그런지 오래 던지는 게 힘들어. 벤치에서 투구 수 관리를 하는 것도 있지만 공 하나하나 신경을 쓰다 보니 체력이 못 버티더라고. 게다가 애초에 경기수가 훨씬 많기도 하고. 암튼 그래서 올해가 끝나면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손봐야 할 거 같어.”
“그렇군요… 실투, 실투…….”
이번 대표팀에서 승리조 역할을 담당하게 될 김용재가 뭔가를 중얼거리며 한 발 뒤로 물러 섰다.
그 뒤를 이어 받은 건 이번 대표팀의 막내 중 하나인 서형주였다.
“선배님, 코치님들하고 좀 더 상의를 해봐야겠지만 수비 위치를 좀 더 뒤로 잡는 게 나을까요?”
“내가 전문 외야수는 아니지만 타격음만 듣고 한국하고 똑같이 판단하면 좀 헛갈릴 수도 있을 거 같아. 비거리도 비거리지만 타구 속도 자체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르거든.”
“아아… 타구 속도…….”
“어, 그러니께 위치는 네가 알아서 잡더라도 타구가 생각보다 더 빨리 날아온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둬야 할겨. 에이, 뭐 이런 건 굳이 나한테 안 물어도 코치님들이 알아서 말씀해 주실 텐데.”
류한결의 말에 서형주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다만 서형주가 이렇게 난리법석을 떠는 건 난생 처음 경험하게 될 성인대표팀 경기, 그것도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빅리거들을 상대할 생각에 조금은 흥분한 탓이다.
대한민국 대표팀 내 유일한 현직 빅리거로서 후배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해준 류한결이 들고 있던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켠 후 어딘가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그런데 말여.”
“네, 선배님.”
“내가 지금까지 한 말에 조금도 과장되거나 부풀린 건 없지만 그래도 너무 겁먹을 거 없어.”
“네?”
“니들은 이미 빅리거보다 더 심한 놈을 경험해 봤잖여.”
류한결의 손가락 끝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뒷짐을 진 한수혁이 마치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는 노인네 같은 표정을 한 채 그라운드 위를 어정거리고 있었다.
“저놈이 저기서 왜 뒷방 늙은이 놀이를 하고 있는지 몰라도 말여. 내가 보기에는 저놈보다 야구 잘하는 놈은 없는 거 같어.”
“네에?”
“아마, 음… 내가 뭐 모든 선수들과 다 상대해본 적은 없지만 말여. 아, 얼마 전에 양키스랑 붙었을 때 루카스 앤더슨하고도 상대해 봤는디…….”
“봤는데……?”
“저기 저놈보다 못하더라고. 실력은 둘째 치고, 그 뭐랄까, 투수한테 주는 압박감이라고 하면 되려나. 암튼 수혁이만큼은 아니었어.”
“아아…….”
“그러니께 그냥 이렇게 생각하고 게임하면 돼. 한수혁보다는 조금 못한 놈들이 계속 타석에 들어선다 뭐 그런 생각? 내가 타석에 선 적이 없어서 투수 한수혁에 대해서는 잘 모르겄네.”
류한결의 말에 선수들의 시선이 다시 한 번 한수혁에게로 집중되었다.
뒷짐을 진 채 에인절 스타디움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던 한수혁이 갑자기 덕아웃 앞에 멈춰 서더니 아련한 표정으로 관중석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애초에 한수혁은 그런 사적인 물음에 잘 대답을 해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대표팀 선수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한수혁의 80~90% 정도 되는 선수들이 줄줄이 나온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류한결의 조언.
아주 멀게만 느껴지던 빅리거들과의 거리가 조금이나마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면 한번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한수혁의 80% 버전이면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다.
저쪽에는 완전치 못한 한수혁 짝퉁들이 즐비하겠지만 이쪽에는 100% 완벽함을 갖춘 진짜 한수혁이 있지 않은가?
그것도 타자뿐만 아니라 투수로서도 완전무결함 그 자체인.
혹자는 말한다.
아직 한수혁은 빅리그에서 검증받지 못했다고.
심지어 한국에 체류하며 한수혁 경기를 졸졸 따라다니는 스카우터들 중에도 그런 멍청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몇몇 존재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들은 그게 얼마나 멍청한 생각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저 괴물을 검증하겠다고? 풋, 누가 누굴 검증해?’
그게 언제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언젠가 저 괴물은 좁은 한국을 벗어나 미국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 전문가라는 놈들도 알게 될 것이다.
야구판에 재앙이 존재한다면 그게 바로 한수혁이라는 걸.
뭔가를 결심한 표정이 된, 그리고 아직도 한수혁의 뒤를 쫓는 걸 포기하지 않은 서형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괴물!”
“…….”
“안 들려? 한수혁! 한수혀어어억!”
“말해, 귀 안 먹었다.”
“그 노인네 같은 짓 그만두고 와서 공이나 좀 던져줘봐.”
“싫은데.”
“왜?”
“기분이 울적해서?”
“뭐라는 거야…….”
한수혁과 서형주 간에 오간 별 것 아닌 대화 몇 마디에 대표팀의 어린 선수들, 앞으로 한국 야구를 이끌어가야 할 선수들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 적으로 만났을 때는 누구보다 꼴 보기 싫던 괴물이 잠시나마 우리 편이다.
빅리거 놈들이 얼마나 야구를 잘하는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한수혁이 있다.
처음 구장에 발을 디뎠을 때보다 한결 표정이 밝아진 선수들이 훈련에 복귀하기 위해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멀리서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구용식이 코치에게 말했다.
“그냥 내버려 두길 잘했죠?”
“그러네요.”
“앞으로도 애들이 기죽은 거 같으면 수혁이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죠.”
“좋은 생각입니다.”
아무리 마음이 강한 사람에게도, 의지가 굳건한 사람에게도 가끔은 기댈 곳이 필요하다.
내가 무너졌을 때 누군가 뒤를 받쳐줄 수 있으리란 믿음, 그것이 있는 인간은 보다 강해진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에게는 그 역할을 맡아줄 한수혁이라는 든든한 존재가 있었다.
* * *
“저리 가서 방망이라도 한 번 더 휘둘러. 가라고, 훠이.”
“나쁜 새끼…….”
자꾸만 공을 던져 달라 귀찮게 달라붙는 서형주를 떨쳐내고 외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표팀 동료들, 그리고 감독과 코치가 내게 뭔가를 바라는 듯한 눈치였지만 지금 내게는 잠시나마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이곳에 처음 발을 디디는 순간 무언가 떠올랐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무언가가.
저벅저벅
에인절 스타디움 오브 애너하임.
지난 1966년 개장해 1999년 리모델링이 이루어진 LA에인절스의 홈구장.
미국에서 치안이 가장 좋은, 그래서 연예인과 기업인 등 부유층들에게도 인기 있는 도시 오렌지 카운티 한가운데 위치한 야구장.
그리고 아직도 잊히지 않는 기억을 남기고 떠난 그녀가 살던 곳.
맞다.
이제서야 떠올랐다.
내가 찾고 있는 그녀.
마음 속에 남은 마지막 후회를 떨쳐내기 위해 꼭 한 번은 만나야 할 그녀.
그녀의 집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한, 언제가 되든 좋으니 꼭 한번 우리 집에 놀러 와줬으면 좋겠어요.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닷가가 제법 근사하거든요. 거기서 당신하고 술 한 잔, 아차, 술은 안 하죠. 좋아요. 그냥 커피 한 잔만 할 수 있으면 전 너무 기쁠 거 같아요.’
당연한 말이지만 난 단 한 번도 그녀의 초대에 응한 적이 없다.
못 들은 척 무시했고, 그럼에도 그녀는 내가 뛰는 경기를 따라다녔다.
마치 지금의 민예린처럼 말이다.
저기 저 관중석을 보니 생각난다.
바로 이곳,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경기가 있는 날이면 그녀는 꼭 저 자리에 앉아 있곤 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나에 대해 일방적인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었던, 어깨 부상 후 모든 사람들이 나를 외면할 때도 끝까지 남아 나를 응원해주던,
그런 사람을 나는 못 본 척 밀어냈고, 결국 그것이 후회와 미련이 되어 가슴에 남아 있다.
모르겠다.
내가 지금 여기서 그녀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을 떠올린 게 과연 행운인지, 불행인지,
아주 작은 단서들만을 갖고 그녀의 행방을 찾고 있는 민예린에게 이 정보를 전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나에 대한 아무런 감정이나 기억도 없이 잘 살고 있을 그녀를 찾는 것 자체가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두 살이 어렸던, 그렇기에 아직도 소녀 티를 벗지 못하고 있을 그녀를 만나 내 가슴 속에 있는 말들을 전하는 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만에 하나, 그녀의 얼굴을 본 내가 책임질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면?
과거에 대한 미련, 혹은 그녀에 대한 미안함, 연민으로 인해 뭔가 다른 생각을 갖게 된다면?
“후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결국 이 상태로는 해결될 일이 하나도 없다.
나는 민예린에게 그녀의 집에 대한 정보를 넘길 것이다.
이런 작은 조각들이 모여 언젠가 하나의 그림이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왔을 때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그것은 결국 미래의 나에게 맡겨 두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수혁아! 감독님이 집합하란다! 가자!”
저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러닝과 스트레칭, 그리고 가벼운 산책으로 몸을 풀던 선수들이 이제 본격적인 훈련을 위해 한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졌다.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열기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어디론가 분출시키기 않으면 내가 못 견딜 것만 같다.
후, 그래, 일단 그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여기 온 목적부터 달성하자.
첫 경기가 어디라고?
멕시코?
거기 누가 있더라?
모르겠다. 그냥 다 터뜨려버리면 되는 거겠지.
좋아, 시작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