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화(2/412)
#1. 야구단 좀 대신 운영해줘
“주말은 잘 보내셨죠? 자, 한수혁 선수에 대한 저희 시애틀 매리너스의 최종 제안입니다. 계약금 350만 달러! 한국 출신 유망주 중 역대 최고액이자 올해 저희 구단 신인 중 최고 대우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사인하시고 저와 함께 미국으로 가시죠. 최고의 선수를 위해 퍼스트 클래스 티켓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아시아 극동 지역 담당 스카우터인 다니엘 미첼은 생각했다.
아시아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엄청난 피지컬, 그리고 20/80 스케일 기준 70점 이상으로 평가받은 패스트볼과 60점짜리 슬라이더. 거기에 고교 통산 5할에 가까운 타율은 덤.
비공식이긴 하지만 103마일을 던진 이 유망주를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
누군가는 이 선수가 제 2의 오타니가 될 거라고 하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그 이상의 포텐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구단을 설득해 최고의 계약조건을 이끌어냈다.
생각 같아서는 이보다 두 배는 더 줘야 한다고 외치고 싶지만 프로 경험이 없는 극동 아시아의 유망주에게 내밀 수 있는 조건은 이것이 한계다.
“한수혁 선수를 위한 최고급 펜입니다. 사인하시고 그냥 가지셔도 됩니다.”
당장 메이저리그에 던져 놓아도 5선발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평가받는 유망주 한수혁.
지난 4년 간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 끝에 마침내 이 순간이 찾아왔다. 이제 사인만 받고 그를 비행기에 태우면 모든 것이 끝난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 유망주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한 마디가 다니엘을 절망에 빠트렸다.
“싫은데요.”
“What···?”
“저 계약 안하려고요. 그동안 저 찾아오느라 고생하셨는데, 여기 빙수는 다 드시고 가세요. 5만원짜리인데 남기면 아깝잖아요. 성훈이 형, 일어나자.”
“으, 으응?”
“가자고. 우리 할 일 많아.”
“아, 그, 그래. 저기, 그럼 다니엘. 미안합니다. 죄송하고, 제가 다음에 연락을···”
“뭐가 그렇게 미안해. 아직 계약서에 도장도 안 찍었는데. 저기, 다니엘, 저 말고 다른 좋은 선수 찾아서 꼭 미국으로 데려가길 빌게요.”
“저기요? 미스터 한? 선생님! 계약금이 부족한가요? 연봉을 올려드리면 될까요? 혹시 보스턴 놈들이 뭔가를 더 제시한 겁니까? 오클랜드 놈들의 꾀임에 넘어간 건 아니죠? 아니면 이동경로가 긴 게 마음에 걸리시나요?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가시면 전 태평양에 빠져 죽어야 합니다. 저기요? 저기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카우터를 뒤로 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중학교 때부터 나에게 공을 들인 다니엘에게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미국행 티켓이 아닌 것을.
“수혁아, 야, 한수혁!”
“얼른 차 문이나 열어. 회사로 가서 얘기하자.”
“야,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막판에 다 엎어버리면 뭘 어쩌자는 건데?”
“여기 오면서 말했잖아. 나 시애틀 안 갈 거라고.”
“아니, 그러니까 대체 왜···”
내 초등학교 야구부 시절부터 함께 해온 선배이자 에이전시 대표인 성훈이 형이 벌개진 얼굴로 내 뒤를 따랐다.
미안하기는 하다. 에이전시 설립 후 처음으로 소속 선수를 미국으로 보낼 기회를 놓치게 되었으니까.
일이 이렇게 되기 전까지만 해도 얼마나 기분이 들떠있었을까?
흠, 그래도 뭐 더 엄청난 걸 준비해 놨으니 그만 미안해도 되겠지?
“일단 가. 사무실로 가서 얘기하자.”
“하아, 모르겠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평소 내 성격과 고집을 알고 있는 성훈이 형이 한숨을 푹 쉬며 시동을 걸었다.
족히 10년은 넘은 경유 SUV에서 검은색 매연이 훅 뿜어져 나온다.
“차 좀 바꾸라니까. 이거 매연 실내로도 유입되는 거 알고는 있는 거지?”
“야, 그러니까 너 시애틀하고 계약했으면 내가 차가 아니라··· 하, 아니다. 일단 네 말대로 가서 얘기하자.”
일단 이 형 차부터 좀 바꿔줘야겠네. 이러니 그런 몹쓸 병에 걸리지.
안 되겠다. 일의 진행 속도를 좀 더 높여야겠다.
‘부웅’
시애틀 스카우터와 만난 호텔에서 대략 30분 거리에 위치한 에이전시 사무실. 석촌역 뒷골목에 위치한 허름한 건물로 들어섰다.
“무릎 부상 때문에 은퇴한 양반이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건물, 안 힘들어?”
“힘들지. 그런데 어쩌겠어. 방금 이 사무실을 탈출할 기회를 누군가 깨끗이 날려 먹었으니 그냥 여기서 아픈 무릎 부여잡고 고꾸라져 죽어버려야지.”
“남자가 이렇게 뒤 끝이 길어서야, 쯧쯧.”
“너 이 새끼, 진짜 내가 말을 안 하··· 하아, 됐다. 일단 밥부터 먹자. 운동선수가 끼니 거르면 안 되지. 뭐 먹을래? 짜장면? 짬뽕? 탕수육 하나 추가하면 되려나?”
“아무거나 그냥 형 먹고 싶은 걸로 시켜. 난 상관없으니까.”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배달되어 사무실 테이블 위에 차려졌다.
“네 건 곱빼기다. 많이 먹어.”
이 와중에도 내 끼니를 먼저 생각해주는 성훈이 형.
중학교 때 어머니를 잃고 오갈 데 없게 된 나를 거둬 키워준 은인이자,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배신하지 않을 거라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저 형이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형도 빨리 먹어.”
“오냐.”
전 삶에서 이 형과 함께 한 온전한 시간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어릴 때부터 응원해온 워리어스가 해체작업에 들어가는 걸 지켜보고, 곧바로 미국 팀들과 협상을 시작하고.
가장 좋은 조건을 내민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하고, 며칠 후 혼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5년 넘는 시간 동안 나를 돌봐 준 성훈이 형과의 마지막 만남은 그렇게 쓸쓸한 기억으로 마무리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성훈이 형이 한국에서 혼자 많이 힘들어 하는 걸 알면서도, 에이전시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걸 전해 들었음에도 나는 애써 그 사실을 모른 척했다.
처음에는 미국 야구에 적응하기 바쁘다는 핑계로, 그리고 빅리그로 승격한 후에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핑계로, 오갈 곳 없던 나를 5년이나 돌봐 준 사람을 찾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보답하면 되겠지, 당장 중요한 건 메이저리거로 성공하는 거니까.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리고 그 사이 성훈이 형이 폐암에 걸렸다.
소식을 듣자마자 한국으로 달려왔지만 거기에는 내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야구부 캡틴이자 내 어린 시절 우상이기도 했던 그는 존재하지 않았다.
항암치료로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 몰라보게 야윈 몸, 그리고 힘없는 눈빛. 그는 그렇게 쓸쓸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뒤늦게 후회하고, 자책하고, 슬퍼하고, 통곡했지만 아무 소용없는 짓이었다.
내가 사랑하던 야구팀에 이어 세상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형이 그렇게 또 세상을 떠났다.
세상 모두가 날 외면했을 때 유일하게 날 지켜주던 사람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완전한 혼자가 되었다.
“성훈이 형, 일단 담배부터 끊어.”
“뭐? 밥 먹다가 갑자기 무슨 뭔 소리야? 됐고, 이거 탕수육이나 마저 먹어.”
“됐어, 배불러.”
“오? 웬 일이야? 먹는 걸 양보를 하다니?”
“그런 건 됐고 아무튼 담배부터 끊어. 무조건 지금 당장.”
“···이 새끼, 이거 왜 이래? 야, 너 시애틀 계약 거절한 거 때문에 미안해서 그래? 나 수수료 못 먹게 돼서? 괜찮아. 시애틀 안 가면 어때? 거기보다 조건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보스턴하고 오클랜드에서도 대기중이니까…”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음?”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음식 그릇을 한쪽으로 밀어버렸다. 그리고 성훈이 형의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혹시 에이전시에 엄청난 미련이 있는 건 아니지? 뭐, 스캇 보라스처럼 세계 최고의 에이전트가 되고 싶다거나···”
“아니, 그냥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인데? 평생 야구만 하던 놈이 무릎 다쳐 은퇴하고 군대까지 면제됐으니 뭘 하겠냐. 이거라도 해야지.”
“그치? 잘 됐다. 그럼 형 야구단 좀 운영해봐라.”
“푸웁!”
마지막 음식을 삼키고, 콜라로 입가심을 하던 성훈이 형의 입과 코에서 검은색 액체가 발사되었다. 정면으로 날아온 그 더러운 액체를 나는 가볍게 피해냈다.
“콜록, 콜록, 커헉, 커허헉!”
“쯧쯧, 칠칠치 못하게. 자 이걸로 좀 닦아.”
“···그, 그래. 고맙, 그게 아니고! 그건 대체 무슨 소리야? 야구단이라니?”
“생각지도 않던 야구단이 하나 생기게 돼서 말이야. 누군가는 운영을 해야 하잖아? 형이 나대신 운영 좀 해줘.”
“이게 대체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콜라가 콧구멍으로 발사되어서인지, 아니면 갑자기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제안을 받게 되어서인지, 성훈이 형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모든 설명을 들은 그가 멍청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네가 오강그룹 천필주 회장 아들이라는 거지?”
“뭐, 일단은.”
“너희 어머니 돌아가실 때도 코빼기도 안 비춘 그 인간이 이제 와서 유산을 물려준다 했고?”
“오강 물산 지분 2% 준다고 한 거 깔끔하게 거절했지. 그거 받아봐야 나중에 이래저래 골 아파질테니까. 거기 아들놈들 욕심이 장난 아니거든.”
“그걸 네가 어떻게 알···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야! 돈으로 대신 받은 건 그렇다 치고, 워리어스, 그 팀은 받아서 뭐하게? 쓸 만한 선수는 다 팔아먹고, FA 먹튀들만 가득한 팀인 거 알고는 있는 거지?”
“알지, 오죽했으면 서울 연고지 팀인데 인수한다는 대기업이 하나도 없겠어?”
“그래, 게다가 부채는 어쩔 건데? 너 설마 천오백 억 받은 걸로 구단 빚 갚을 생각이야?”
“아니, 부채랑 증여세 같은 세금들은 오강 그룹에서 깨끗하게 정리해서 넘길 거야. 법인하나 설립해서 그 명의로 구단 인수하면 돼.”
“···그럼 좀 말이 되긴 하네. 아무튼 그래도 힘들어. 언제 적 워리어스냐, 배다른 네 형, 그 멍청한 인간이 구단주 된 이후 완전히 박살 난 팀이잖아. 그냥 해체되게 냅둬. 대신 돈이나 좀 더 달라고 해. 그 돈 받고 미국 가서 편하게 야구나 해. 응?”
진심으로 날 걱정해서 하는 말이란 거 잘 안다.
하지만 어쩌겠어.
메이저리거 그거, 진짜 아무 의미 없더라. 내 행복은 미국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거더라고.
그 망할 놈의 꼴찌팀 인수해서 우승을 시켜야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거든.
“성훈이 형.”
“아, 왜.”
“나 야구 왜 시작한지 알지?”
“···알지.”
“엄마가 워리어스 팬이었잖아. 지금 와서 생각하면 자기를 버린 남자인데도 그래도 남편이라고 생각했나봐. 하필이면 딱 그 팀을 고른 거 보면.”
“그냥 서울 팀이라서 그러신 걸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아무튼 태어날 부모를 스스로 고를 수 없듯이 야구팀이란 것도 그런 건가봐. 내가 왜 이딴 팀을 좋아하게 된 건지. 크크, 그리고 형 책임도 있어. 워리어스 어린이 회원 가입시킨 게 형이잖아. 아무튼 나, 저 팀 해체되는 꼴은 못 보겠다. 형이 맡아서 좀 살려줘.”
“···야, 다른 거 다 떠나서 너 워리어스 한 해 운영비가 얼마인줄이나 알아? 아무리 몸값 높은 선수가 없다 해도 작년에만 모기업 지원금이 100억인가 들어갔을 걸? 너 천오백 억, 그거 너하고 너희 어머니 인생에 대한 보상이야. 그걸 고작 야구단 살리는데 쓰겠다고?”
“아니, 일단 500억은 내가 보관하고, 야구단에는 천억 정도만 투자하려고.”
“처, 천억! 와, 너 진짜 재벌 다 됐구나. 그 엄청난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래, 천억으로 한 5년, 10년은 버틴다 치자. 그런데 버티기만 하는 야구단에 무슨 비전이 있어? 지금이랑 무슨 차이가 있냐고. 어차피 망해가는 건 마찬가지인데.”
“형, 한 번 생각해봐.”
“뭘!”
“워리어스가 왜 그 모양일까?”
“그야··· FA로 잡은 놈들은 다 먹튀고, 진짜 스타급 선수들은 다 팔려 나가고, 프런트부터 선수단까지 전부 다 개판 오분 전이라서?”
“그렇지? 그럼 그걸 바꾸면 되잖아.”
“뭘 어떻게···?”
“연봉 높은 FA 먹튀들은 어떻게든 트레이드하거나 은퇴시키고, 썩어빠진 프런트랑 선수들도 다 내보내고···”
“미친놈아, 그럼 야구는 어떻게 할 건데? 대체 누가 성적 낼 건데? 그리고 관중들은, 팬들은? 누굴 보러 야구장에 오냐고. 구심점이 있어야 할 거 아냐!”
성훈이 형의 얼굴이 진심으로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래, 아직 이해를 잘 못했구나. 눈치 없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손가락으로 나 스스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
“응?”
“역대 한국 고교야구 최고 유망주이면서 시애틀 매리너스의 350만 달러 계약을 걷어찬 초특급 유망주 한수혁. 어때? 이 정도로는 부족하려나?”
“뭐···?”
그 뒤에 메이저리그 사이영 위너이자 타자 전향 후 아메리칸 리그 MVP라는 수식어가 빠지기는 했지만 뭐 일단은.
“내 이름값으로도 안 될까?”
“···야, 미친, 그러려고 시애틀 제안 걷어찬 거야? 너, 드래프트 신청서도 접수 안 한··· 아니지, 어차피 그거 올해부터 폐지됐구나. 아무튼, 진심이야?”
“당연하지. 워리어스, 이제 내 꺼라니까?”
성훈이 형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이제야 내가 진심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자, 슬슬 쐐기를 박아볼까?
“예전에 초등학교 졸업식 때 형이 나한테 뭐라고 한 지 기억 나?”
“···뭐?”
“형이 그랬잖아. 나중에 워리어스 4번 타자는 형이 할 테니 나는 에이스가 되라고. 그래서 꼭 팀을 우승시키자고.”
“내가··· 그딴 닭살 돋는 소리를 했다고?”
“흐흐, 이제 와서 형이 선수로 복귀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지만···”
성훈이 형이 뭐라 할 말이 없는지 입만 벙긋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같이 만들어보자고. 우리가 생각했던, 우리가 원했던 워리어스 말이야.”
“야, 이 미친놈아…”
망가질 대로 망가진 전력에 믿을 선수라고는 나 하나뿐이고, 운영자금 천억을 가지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디 한 번 해보자고.
내가 그래도 메이저리거로 15년을 뒹군 몸인데 이깟 KBO 팀 하나 우승 못 시키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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