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0)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9화(20/412)
#19. 스프링캠프 종료
“요즘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고, 기껏 잠이 들어도 몇 시간마다 한번씩 악몽을 꾸면서 깨게 됩니다. 선생님.”
“저런, 뭔가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으신가요? 편하게 말씀해 보시죠. 박성훈 님.”
“네, 굳이 말하자면··· 업무적으로 좀.”
“음, 보통 꿈은 렘수면 상태에서 꾸게 되는데요. 꿈을 자주 꾼다는 건 그 렘수면 중에 자꾸 각성을 한다는 뜻이고, 대부분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선생님?”
“일단 상담을 위해 박성훈 님의 심리 상태를 알아보는게 먼저겠군요. 실례지만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여기서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의료법에 따라 절대 외부로 새나가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시고 말씀해보세요.”
“네··· 저는 프로야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야구단을요? 호오··· 이거 대단한 분이셨군요. 자, 그럼 요즘 뭐가 제일 박성훈 님을 힘들게 하는지 어디 한 번 말씀해보실까요?”
“그게···”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에게는 오랜 꿈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경청하겠습니다. 천천히 말씀해보세요.”
“코찔찔이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했습니다. 다행이 운동신경이 좋아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정식으로 야구를 배우게 되었고요.”
“그것 참 다행이군요.”
“그럭저럭 소질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며 야구를 했는데 제가 6학년 때 새로 야구부에 들어온 꼬맹이 하나가 자꾸 눈에 밟히더라고요.”
“누구였나요?”
박성훈의 머릿속에 까까머리를 한 초등학교 시절 한수혁의 귀여운 모습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이름은 말씀드릴 수 없고··· 아, 어차피 알게 되시려나. 아무튼 그 꼬맹이가 형형 하면서 따라다니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심지어 그 어린 놈이 야구에도 제법 소질이 있더라구요.”
“친동생처럼 느껴지셨나보군요.”
“네, 하는 짓이 너무 귀여워서 학교 끝나고도 계속 데리고 다니고, 떡볶이도 사주고··· 좋아하는 프로야구팀 어린이 회원도 같이 가입했죠.”
“행복하셨겠군요. 아, 참고로 저도 부산 타이탄스 어린이회원 출신입니다.”
“···저런, 많이 힘드셨겠군요.”
“괜찮습니다. 인터넷 스포츠 란을 통째로 안 본지 몇 년 됐거든요. 박성훈 님이 야구단을 운영하신다는데 그래서 제가 못 알아봤나 봅니다.”
“아이고, 그 팀도 언젠가 볕들 날이··· 있을 겁니다.”
“글쎄요. 저 죽기 전에 한 번쯤은 우승하겠죠. 뭐 못해도 어쩔 수 없구요. 자, 이러다 제 고민상담이 되어버릴 것 같군요. 하던 말씀 계속하시죠.”
“네··· 아무튼 그렇게 형동생처럼 지내다가 그 놈이 중학교 1학년 때 일이 터졌습니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던 놈이었는데 그만 어머니마저 돌아가셨거든요.”
“저런···”
“평생 순하고 야구밖에 모르던 놈 눈에서 시퍼런 불꽃이 튀는데··· 어휴, 그냥 두면 안되겠다 싶어서 부모님에게 말씀드리고 저희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좋은 일을 하셨군요.”
“뭘요, 어차피 저도 형제 없이 혼자라 외롭기도 했고. 아무튼 그렇게 같은 집에서 살면서 프로가 되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했는데···”
“또 무슨 일이 있었나요?”
“네, 이번에는 저한테 일이 생겼죠. 고등학교 3학년 춘계 대회에서 무릎을 다쳐서 야구를 그만두게 됐거든요.”
“저런···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그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지금은 뭐, 괜찮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야구선수로서의 재능은 그저 그랬거든요. 아마 그대로 뒀어도 프로는 못 되었을 겁니다.”
“음, 그럼 선수 생활을 접은 후에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네, 부상 때문에 군대는 면제됐고, 배운 게 야구뿐인지라 그 주변을 돌면서 먹고 살기 위해 바둥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이런저런 일이 겹치면서 분에 넘치는 야구단을 운영하게 되었고요.”
“음, 박성훈 님의 인생에 대해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게 되어 기쁩니다. 자, 그럼 이제 말씀해 보시죠. 뭐가 그렇게 당신의 마음을 힘들게 하나요?”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그게 가장 힘든 것 같습니다. 선생님.”
“기대요?”
“네, 방금 말씀드린 그 동생 놈이 저와 함께 하겠다면서 엄청난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렸거든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저 같은 놈을 믿는다면서 말이죠.”
“그렇군요.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기분이 어땠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부상으로 야구를 접고 이제 꿈 같은 건 꿀 일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예전처럼 함께 해보자는 소리를 들으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더라고요.”
“행복하셨겠군요.”
“네, 진심으로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마치 새로 태어난 기분이라 해야 할까요?”
“인생에 흔치 않은 기회를 잡으셨네요.”
“맞습니다. 선생님. 제 인생에 아마 이런 행운은 두 번 다시 없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제가 그 놈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그게 걱정입니다.”
“기대라··· 박성훈 님. 제가 모든 걸 아는 것은 아니기에 확언드릴 수는 없지만, 그 동생 분께서 자신 앞에 놓인 좋은 기회를 포기하고 대신 함께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자고 제안했다는 거죠?”
“네, 선생님.”
서울 송파구 일대에서 상담 잘하고 신뢰도 높기로 소문난 정신상담센터의 소장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비록 그 동생 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마음은 대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그 분이 가장 원하는 게 바로 박성훈 님과 함께 하는 삶이라는 걸 말이죠.”
“아···”
“그냥 즐기세요. 제가 함부로 속단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그 분이 원하는 건 부와 명예가 아닌, 박성훈 님,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는 그 한걸음 한걸음인 것 같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자, 이제 그만 스트레스 받으시고, 그냥 지금 하실 수 있는 일만 하시면 됩니다. 인생 별 거 없거든요. 하루하루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 그것에만 초점을 맞추세요. 저 같은 타이탄스 팬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가지 않습니까?”
“네, 정말 도움 많이 됐습니다.”
“좋아요. 박성훈 님. 그럼 다음 상담시간에 뵙겠습니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상담실을 나가려던 박성훈이 갑자기 뭔가 생각난듯한 얼굴로 물었다.
“아, 그리고 선생님. 제가 고민이 하나 더 있는데···”
“네?”
“제 주변에 저를 보기만 하면 뭐를 달라, 뭐 해달라 조르는 인간이 하나 있는데···”
“저런.”
“심지어 말이 너무 많아서 한 번 휘말리면 기본이 두 시간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요?”
“멀리 할 수 없는 관계인가요?”
“아쉽게도··· 네.”
“음, 투머치토커에 대한 부분은 제가 고민을 좀 해보고 다음 상담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담 전에 비해 한결 표정이 가벼워진 박성훈이 웃는 얼굴로 자신의 사무실로 복귀했다.
그래, 상담선생의 말이 맞다.
자신에게 구단을 부탁한 동생 놈의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 이건 행복한 고민이다.
그냥 이대로 천천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보자.
비록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돈 들어갈 곳은 계속 늘어나고, 선수단 뎁스는 개판이고, 팔아 치워야 할 애물단지들은 입질조차 없지만.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박성훈의 마음이 비로서 평온을 되찾았다.
“구단주님!”
최근 들어 말이 더 많아진 단장이 자신의 방에 쳐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네, 단장님.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연예인 시구 문제로 추가 예산이 더 필요합니다!”
“하아, 제가 그건 힘들다고··· 그냥 무료로 해준다는 분들 위주로 하면 안 될까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급이란 게 있죠. 명색이 서울 팀이, 그것도 개막전에서 B급 연예인을 부를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한때 잘 나가는 연예인들이 너도나도 이 팀의 시구를 하겠다고 줄을 서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꽤 오래 전의 이야기다.
지금 워리어스는 제대로 된 연예인 시구자를 잡기도 힘든 비인기 팀이다.
이제는 진짜 A급 연예인을 섭외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문제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
오강이 아이코닉 파트너즈의 법인 계좌로 입금해준 1,000억 원의 자본금 중 벌써 90억 원이 KBO 가입비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구단 운영비로 돈이 계속 흘러 나가고 있다.
지난 시즌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예측해볼 때 아무리 아껴 써도 1년에 100억 가까운 돈이 빠져나갈 것이다.
수혁이 놈은 돈이 부족해지면 자기가 어떻게든 더 구해오겠다는데 절대 안 될 말이다.
그 놈에게 운동이 아닌 다른 일로 신경을 쓰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이유로 박성훈은 예산 1원에도 손발을 부들부들 떠는 짠돌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양해해주세요. 지금 돈 들어갈 곳이 한 둘이 아니라···”
“아, 그리고 인플루언서 마케팅 건은 왜 결재를 안 해주시나요?”
“그것도 돈이 한두 푼 드는 게···”
“하아, 정말 구단주님. 제가 이런 말씀까지는 안 드리려고 했는데, 여기 잠시 앉아보시죠. 제가 뛰던 미국에서는 말이죠. 일찍부터 마케팅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고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빙해 자체적인 독립조직으로 발전을 시켜왔습니다. 이게 말하자면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간의 콜라보라고 볼 수 있는데, 실제 야구선수들 중에서는 웬만한 셀럽 저리가라 할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저기 구단주님? 제 말 듣고 계신가요?”
“네, 네.”
박성훈이 반쯤 해탈한 표정으로 단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척했다.
다음 주 상담에서는 이 말 많은 단장에 대한 대처법을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 * *
“자, 다들 수고 많았고, 사흘 동안 푹 쉬고 다시 보자. 절대 다칠 만한 행동은 하지 말고.”
“네! 감독님.”
“좋아, 해산.”
지난 35일 동안 미국 애리조나, 그리고 오키나와에서 진행된 서울 워리어스의 스프링캠프가 무사히 종료되었다.
그동안 치러진 국내외 팀과의 연습경기에서 서울 워리어스는 2승 3패를 기록했다.
다른 선수들 속에 섞여 함께 캠프를 치르고 나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확연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일단 내 상태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다.
회귀한 직후 갑자기 어려진 육체에 적응하는데 조금 애를 먹었지만 제이콥이 짜준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새 밸런스가 꽤 잡힌 상태다.
솔직히 말하면 KBO 정도는 나 혼자서도 터뜨려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음.
다음으로 팀에 대해 말해보자면···
어떤 선수는 자료상으로 보던 것과 달리 썩 괜찮았고, 반대로 어떤 선수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내실이 부족한 경우도 있었다.
뚜렷한 목표의식 부여가 필요한 선수도 있었고, 훈련량을 좀 늘리면 기량이 확 늘어날 선수도 발견했다. 또 어떤 놈들은 혹독한 정신개조가 필요해 보이기도 했다.
물론 송가 놈이나 황가 놈에 대한 판단은 전혀 바뀐 게 없다. 최대한 잘 포장해서 빨리 팔아 치워야 한다.
아무튼 이런 건 밖에서 볼 때는 절대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것저것 두서없는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지던 그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새 내가 초심을 잃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든 걸 잃고 혼자 괴로워하던 그때를 떠올려봤다.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은 고민이라 부를 수도 없는 가벼운 것들에 불과하다.
그래,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보자.
정 안 되면 나 혼자 홈런 한 80개쯤 치고, 70세이브쯤 거두면 되는 거 아니겠어?
“잠실 부탁드립니다. 기사님.”
“네, 손님.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공항 앞에서 택시를 잡아탄 나는 아직 낯설기만 한 내 집을 향해 출발했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길이 막히지 않은 덕에 금세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막 내리던 그때, 성훈이 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 형. 왜? 내일 어차피 만날 건데 뭐하러 전화를.”
– 야, 넌 그게 한달 반이나 외국 나가 있던 놈이 할 소리냐? 됐고, 비행은 괜찮았어? 몸은? 어디 불편한 데는 없고?
“멀쩡해. 아주. 그보다 형 목소리는 왜 그래? 어디 산에 가서 소리라도 지른 거?”
– ···박 단장하고 세 시간 동안 떠들었더니 목이 다 쉬었다
“흐흐흐, 그래도 이제는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나 보네. 같이 맞받아칠 수 있게는 됐나 봐?”
– 하아, 내가 엔간하면 그냥 참고 들어주려고 했는데, 연예인하고 인플루언서 마케팅 비용으로 10억을 내놓으라잖냐. 글쎄
“10억? 얼마 안 되네. 개막전 준비하려면 그 정도는 필요하지. 해주지 그랬어?”
– 야!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너랑 어머니랑··· 하아, 관두자. 암튼 그 인간 얘기는 내 앞에서 꺼내지도 마. 혈압 오르니까
“에이, 그래도 참고 잘 대해줘. 그만한 단장 어디 가서 못 구한다.”
– ···그 얘기는 됐고. 아무튼 내가 피곤한 애 너무 오래 잡고 있었네. 얼른 들어가서 아무 생각 말고 일단 쉬고 내일 보자
“응, 형.”
저렇게 아웅다웅하기는 하지만 성훈이 형과 박재철 단장은 은근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싸우다가 정든다고 저러다가 나이를 초월한 베스트 프랜드가 될 것 같다.
그나저나 돈 때문에 성훈이 형이 스트레스가 많나 보네.
음, 하다가 정 안 되면 내가 메이저리그 가서 몇 년 알바 뛰다 오면 되는데 왜 저렇게 걱정을 하지?
내 말을 못 믿는 건가.
천억 정도는 땡겨올 자신 있는데.
‘띵’
잠깐 딴 생각을 하는 사이 35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한달만에 돌아온 집이다. 그동안 별 일은 없었으려나.
담담한 표정으로 번호키를 누르려던 그때, 옆집 문이 열리며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내가 계약을 할 때만 해도 비어 있던 옆 집에 기어코 누군가 이사를 온 모양이다.
조용히 좀 지내나 싶었는데.
‘멈칫’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옆집에서 나오던 사람이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그대로 집안으로 쑥 들어가버리는 것 아닌가?
뭔가 싶었지만 말을 섞는 것조차 귀찮을 정도로 몸이 피곤해서 그냥 못 본 척 무시하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낯설기는 하지만 그래도 집이라고, 안으로 들어서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안해진다.
흠.
그나저나··· 방금 그 얼굴···
어디선가 본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