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01)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00화(201/412)
#200. 누군가의 기억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고 했는데…….’
6회초, 한수혁이 때려낸 거대한 타구가 에인절 스타디움 우측 담장을 넘기는 순간 안전망에 붙어 있던 민예린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드디어 그 순간이 온 것을 직감한 민예린의 매니저가 있는 힘껏 그녀의 옷자락을 움켜 잡았다.
이곳이 메이저리그 구단의 홈구장이기는 하지만 이번 경기를 주관하는 건 어디까지나 IOC다.
스포츠맨십이 중요한 아마추어 경기에서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관중들에게도 조금 엄격하고 까다로운 잣대가 적용되게 마련이다.
만에 하나, 흥분한 민예린이 안전망을 타다가 퇴장이라도 당하면 일이 아주 복잡해진다.
매니저는 오늘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의 난동을 막겠다는 각오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예린아……?”
평소 같으면 자신이 말리든 말든 그라운드 난입을 시도했을 자신의 고용주가 안전망에 달라붙은 채 멍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던 짓을 안 하니 오히려 그게 더 불안하다.
그렇게 매니저가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민예린은 아예 그걸 인식조차 못 하고 있었다.
‘이상해… 내가 왜 이러지?’
처음 이 구장에 들어설 때부터 뭔가 기분이 묘했다.
분명 난생 처음 와보는 야구장인데 어딘가 모르게 모든 게 익숙했다.
야구장 주변을 빈틈 하나 없이 둘러싼 거대한 주차장, 중앙 출입구 앞에 설치된 거대한 야구 헬멧 모양의 조형물.
처음에는 영상이나 사진으로 본 게 기억에 남은 걸까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야구장 내에 들어선 민예린은 또 한 번 혼란에 빠졌다.
‘예린아, 여기 우리 좌석이 그러니까 에… 물어봐야겠다. 저기 익스큐즈 미!’
‘이쪽이야, 오빠, 저기 기둥 끼고 돌면 우리 좌석 있는 쪽으로 이어질 거야.’
‘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여기 처음이라며?’
뭐라 대답해 줄 말이 없었다.
살짝 얼이 빠진 매니저를 데리고 좌석으로 가 앉았다.
‘오… 예린아, 저기 외야 중앙에 저거 뭘까? 왜 야구장에 암석지대가 있지?’
‘저거 인공분수야.’
‘응? 뭐라고?’
‘어? 아… 인공분수일 거라고.’
머릿속 어딘가에 저기서 분수가 뿜어져 나오는 광경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정말 이상한 건 그게 민예린 자신의 기억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의 기억을 훔쳐보는 기분?
모든 게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 와중에 경기가 시작되었다.
마운드에 오른 한수혁이 일본 타자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드문드문 외야 전광판에 한수혁의 얼굴이 잡혔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민예린은 알 수 있었다.
지금 그가 슬퍼하고 있다는 걸.
‘오빠…….’
5회말까지 일본 타자들을 말 그대로 박살 내 버린 한수혁이 타석에 들어섰다.
갑자기 가슴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민예린이 자기도 모르게 한수혁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펜스 쪽으로 달려 갔다.
습관처럼 안전망을 타고 오르려던 민예린이 순간 멈칫했다.
퇴장당하지 말라는 한수혁의 당부가 떠오른 것이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안전망을 꽉 움켜잡고 큰 목소리로 한수혁을 불렀다.
‘오빠!’
그 말이 한수혁의 귀에 전달되었는지 잘은 모르겠다.
앞선 타석에서 아무 의욕 없이 서 있던 한수혁이 갑자기 타격 자세를 바꾸더니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을 그대로 밀어 쳐버렸다.
엄청난 타격음과 함께 타구가 우측 펜스를 향해 힘차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일본 우익수가 담장 쪽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갔지만,
‘우아아아!’
‘저게 넘어갔어! 넘어갔다고!’
‘홀리 쉣……!’
한국어와 영어가 마구 뒤섞인 함성과 함께 일직선으로 날아간 타구가 우측 외야 관중석 중단을 강타했다.
순간의 실수로 홈런을 맞아버린 일본 투수가 그대로 마운드에 주저앉았고, 일본 덕아웃에서 물병이 날아다녔다.
평소답지 않게 그 흔한 세레모니 하나 없이 다이아몬드를 한 바퀴 돈 한수혁이 그대로 덕아웃으로 들어가버렸다.
‘예린아, 울어? 너 왜 울어? 내가 안전망 못 타게 해서? 야, 진짜 너 그럼 안 된다. 내가 너 쫓겨날까 봐…….’
저 멀리 중계 카메라가 자신의 얼굴로 향하는 게 느껴졌다.
눈물을 흘리는 한국 탑스타의 얼굴을 잡기 위해서.
하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가끔 한수혁을 볼 때 이상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었지만,
이건 정도를 넘어섰다. 숨조차 쉬기 힘들다.
은별 언니의 말처럼 정말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사람은 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 걸까?
가슴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기분.
안전망에 몸을 기댄 채 한참 동안 호흡을 정리한 민예린이 천천히 자기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 사이 한국팀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 * *
[한국 올림픽 야구 대표팀, 숙적 일본에 10 대 2 대승 거두며 2승으로 A조 단독 선두로 나서] [6회초 한수혁의 홈런 이후 대폭발한 한국 타선, 투 아웃 이후 타자 일순 하며 6득점] [6이닝 무실점 14K, 완벽하다는 말로도 표현 안 될 압도적인 투구, ESPN 통해 미국 전국으로 생중계된 한일전, 미국 야구팬들 “충격적인 투구였다. 대체 저 선수가 누구인가?”] [한수혁에 대해 보수적인 평가 내리던 미국 전문가들 “우리가 뭔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그는 검증이 필요한 선수가 아니었다.”] [한국팀에 대패 당한 일본 호시노 감독 “가끔 혼자서 팀 전체의 전력을 끌어올리는 존재들이 있다. 한수혁이 그런 선수였고, 우리는 그야말로 완벽하게 당했다.”] [일본 야구팬들 “어지간히 당해야 화도 나지, 이건 정말 웃음밖에 안 나온다. 오타니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역대 그 어떤 야구선수도 저런 포스는 보여주지 못했다.”] [미국 대표팀 주장 타이 존슨 “그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세상에 오직 나뿐”] [2경기 만에 2승 거둔 한국, 준결승전 진출 사실상 확정… 구용식 감독 “오늘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네덜란드전은 예정대로 류한결이 선발로 나설 것”]딸깍
“부담되는구먼.”
“뭐가?”
“수혁이 저놈이 너무 잘 던져서 그 뒤에 던지려니께 이상하게 부담되네.”
“너도 부담을 느끼긴 하는구나?”
“먼 소리여, 준영이 형. 내가 얼마나 새가슴인디.”
“새가슴은 무슨, 소년 가장 노릇을 7년이나 한 놈이……. 아무튼 편하게 던져. 네덜란드한테 져도 어차피 준결승은 갈 테니까.”
“형.”
“왜.”
“그래도 내가 이 팀에 유일한 메이저리거인데 그럴 수야 있남.”
“크크, 그럼 이 악물고 죽어라 던지든지.”
“안 그래도 그럴겨. 그나저나 형은 준결승에서 던질 생각하니 안 떨려? 어디가 올라오려나, 지금 보면 도미니카 아니면 쿠바일 텐데.”
“떨리지. 내가 거기서 삽질해서 결승 못 가면 국민들이 다 이렇게 욕할 텐데. 결승만 갔으면 한수혁이 금메달 따줬을 텐데 임준영이 멍청한 짓 해서 다 망쳤네 하고 말이야.”
“그것 참 생각만 해도 손발이 벌벌 떨리네.”
“흐흐, 너무 잘난 후배를 둬서 그런가, 소속팀에서나 여기서나 힘들어 죽겠다.”
“먼 소리여. 그게 얼마나 행복한 건데, 형. 나 하반기부터는 로테이션 더 빡세질 거 같어.”
“왜? 거기 뭔 일 있냐?”
“뭔 일이야 항상 있지. 그중에서도 특히 이번 건 좀 크지. 우리 팀 에이스가 이혼소송 때문에 거의 정신이 반쯤 나가 있거든. 어쩌겄어. 내가 또 그 자리 메워줘야지.”
그 말을 들은 임준영은 생각했다.
사람에게 각자의 운명이 있듯이, 야구 선수에게도 그런 운명 같은 게 존재하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약팀을 홀로 지탱하는 소년 가장, 어쩌면 그건 류한결이 은퇴하기 전까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한결아, 네 생각에는 어때?”
“뭐가?”
“수혁이 말이야. 진짜 미국에서 뛰면 어떨 거 같아? 어느 정도나 할 수 있을까?”
그냥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처음 워리어스를 우승시키기 위해 한국에 남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 했지만 이제는 임준영도 확실히 알고 있었다.
후배의 그 말에는 단 1프로의 거짓도 섞여 있지 않다는 것을.
메이저리그 경기를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그 녀석보다 나은 선수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직접 미국에서 뛰어본 류한결의 생각은 어떨까?
아주 잠깐 동안 생각을 정리한 류한결이 말했다.
“형.”
“그래, 말해봐.”
“내 생각에는 말이여.”
“어.”
“만약에 우주 저 멀리 다른 행성에서 외계인들이 지구로 침략해 들어왔다 쳐.”
“뭔 소리야, 그게 대체?”
“끝까지 들어봐. 아무튼 그 외계인들이 이렇게 말하는겨. 야구 경기를 해서 자기들이 이기면 지구를 박살 내 버리겠다고 말이지.”
“…계속 해봐.”
“그런 이유로 지구를 대표할 야구선수를 뽑아야 한다면 난 망설임 없이 수혁이한테 한 표를 던질겨. 무조건, 묻고 따지지도 않고.”
“그 정도야?”
“확실해. 여기 빅리그에 수혁이보다 힘 센 놈도 있고, 더 빠른 공을 던지는 것 같은 놈도 있고, 별의별 놈이 다 있지만 그래도 그 녀석만큼 야구를 잘하는 인간은 이 지구상에 없어. 내가 보기에는 그래.”
* * *
이번 야구 대표팀의 핵심이자 결승전 진출 시 선발투수 1순위로 내정된 한수혁의 컨디션에 이상이 생겼다.
코치로부터 이런 보고를 받은 구용식 감독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
안 된다. 다른 선수는 몰라도 한수혁에게는 털끝만큼의 문제도 발생해서는 안 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일본전이 끝난 후 가장 먼저 한수혁의 상태가 이상한 걸 느낀 건 임준영이었다.
그런 임준영이 수석코치에게 보고를 했고, 그것이 결국 감독에게까지 전해졌다.
구용식은 그 즉시 한국에 있는 한수혁의 스승, 그러니까 이대준과 정윤석 등에게 전화를 걸어 이에 대한 토론을 나누었다.
거기서 나온 결론은 하나,
육체적으로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니면 그냥 두라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굳이 건드리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는 게 가장 좋다는 결론이었다.
자신보다 한수혁을 훨씬 잘 아는 두 사람의 조언에 따라 구용식은 그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조치들을 취했다.
고참급 선수들을 불러 누군가 한수혁의 기분을 건드리지 않도록 당부하고, KBO에서 따라붙은 지원팀 직원들에게도 모니터링 강화를 부탁했다.
누군가 사정을 알게 되면 특혜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한수혁의 모든 편의를 봐줬다.
하지만 한번 가라앉은 한수혁의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말 다행인 건 다음 날 이어진 네덜란드와의 3차전에서도 한수혁은 여전히 자신의 몫을 다해냈다는 것이다.
선발로 나선 류한결이 네덜란드의 좌타 라인을 6이닝 2실점으로 묶는 동안 한국은 4번 이수영의 2타점 적시타와 이찬호의 희생플라이 등을 묶어 3점을 냈다.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한 점 차 승부 상황, 9회 마지막 타석에 들어선 한수혁이 네덜란드의 간판 선수이자 샌디에이고의 주전 마무리 투수의 공을 후려쳐 담장 밖으로 날려버렸다.
따아아아악!
“됐어! 갔다! 간다고!”
“넘어갔어! 홈런이야!”
그것으로 승부는 결정되었다.
4 대 2, 한국의 승리.
당초 A조에서 최약체로 평가받던 한국이 3전 전승으로 단독 1위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2028 LA올림픽 조별 라운드가 모두 끝났다.
A조에서는 3승을 기록한 한국이 1위, 2승 1패를 기록한 일본이 2위를 차지하며 준결승 무대에 진출했다.
반면 예선 통과를 자신하던 멕시코는 1승 2패, 네덜란드는 3전 전패라는 초라한 기록을 남긴 채 쓸쓸히 짐을 싸야 했다.
그렇게 이변이 있었던 A조와 달리 주최국 미국이 속해 있던 B조에서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결과가 나왔다.
3전 전승의 미국이 1위, 그리고 2승 1패를 기록한 도미니카가 2위를 기록한 것이다.
A조 1위 한국 대 B조 2위 도미니카
A조 2위 일본 대 B조 1위 미국
2028 LA 올림픽 야구 종목의 준결승전 대진표가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