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04)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03화(204/412)
#203. 선택받은 존재
“저 녀석인가?”
“그러네.”
“흠, 영상으로 보던 것보다는 사이즈가 좀 작아 보이는데? 저 몸으로 60개 넘는 홈런을 쳤다고?”
“아무래도 유격수까지 겸하고 있으니까, 함부로 증량하기는 힘들겠지.”
“그래? 오타니 때처럼 투수 겸 지명타자가 아니라 필드 플레이어라고?”
“얼마 못 버티겠군.”
“맞아, 두 가지를 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심지어 수비까지, 욕심이 과해.”
“근데 잘 치고 잘 던지기는 하던데, 그렇게까지 신경 쓸 정도로 대단한지는 잘 모르겠던데?”
한국과의 올림픽 결승전을 앞둔 미국 덕아웃, 한 명 한 명 몸값이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슈퍼스타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한국 덕아웃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오늘 선발로 나설 한수혁이 뭔가 알 수 없는 자세를 취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요가 같은 건가? 아니면 동양의 무술?”
“글쎄, 근데 유연성이 꽤 좋아 보이기는 하네. 젠장, 나도 살을 좀 빼 볼까?”
지난 WBC 결승전에서 한수혁에게 만루홈런을 얻어맞고 지긴 했지만, 사실 직접 경기에 참가하지 않은 대다수 미국 선수들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 일이었다.
애초에 야구라는 스포츠가 아무리 잘하는 팀이라도 10번 중 3번은 질 수밖에 없게 설계되어 있고, 그날이 하필 미국 팀의 3번에 속하는 날이려니 생각한 것이다.
한수혁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WBC에서 그를 직접 상대해본 타이 존슨 같은 선수들은 한수혁이 내뿜는 위압감을 직접 피부로 경험했지만, 불행히도 지금 올림픽 대표팀의 절반 정도는 WBC를 경험하지 못한 선수들이었다.
지난 WBC 당시 미국 대표팀은 리그에서 가장 이름값이 뛰어난 선수들만을 뽑은, 그야말로 올스타라 불러야 마땅한 그런 팀이었다.
하지만 장점과 단점이 공존했다.
일단 장점은 선수 개개인의 실력만 놓고 보면 정말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단점은?
이름값만 보고 뽑다 보니 팀 조합이 엉망이었다.
포지션이 중복되다 보니 어떤 포지션에는 전문 수비수가 아예 없었고, 타자들은 한결같이 장타만을 노렸으며, 팀에 좌완 투수가 단 두 명밖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선수들의 이름값은 WBC 때에 비해 부족할지 몰라도 팀 전력만 놓고 보면 이번 올림픽 대표팀이 더 강할지도 몰랐다.
타이 존슨 같은 슈퍼스타급 선수들이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 가운데 나머지 절반은 빅리그 경력 5년 내외의 비교적 젊은 선수들로 채워진 팀.
물론 젊다는 건 상대적인 거다.
병역 문제로 인해 25세 이하 풋내기들이 즐비한 한국팀과 달리 미국 대표팀의 주축은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선수들이었다.
험난한 관문들을 뚫고 빅리그에 올라와 이제 막 서비스 타임을 끝낸,
커리어 면에서 아직 레전드라 불리기는 힘들지만 육체적으로는 가장 전성기에 도달해 있는 선수들.
그런 선수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한수혁이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인 메이저리그 야구, 그리고 그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선수인 타이 존슨.
그가 지난 WBC 이후 기회가 생길 때마다 한수혁을 입에 올린 탓에 이런저런 궁금증과 호승심들이 누적된 것이다.
“흠… 역시 잘 모르겠어. 일단 붙어봐야 알겠네.”
“확실한 건 피지컬만 놓고 보면… 글쎄, 조금 애매한데.”
시즌 중반을 지난 지금, 한수혁은 키 193㎝에 몸무게 96㎏의 신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냥 보기에는 비율도 좋고 핏도 좋은, 운동 선수로서는 최고의 몸매 같았지만 사실 야구를 하기에는 조금 애매해 보일 수도 있는 체형이었다.
벌크업을 통해 근육의 힘을 최대한 끌어 올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유연성과 스피드를 잃지 않기 위해 지방을 최소한으로 억제한 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 선수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장기 레이스를 치르기 위해, 그리고 타구와 투구에 힘을 싣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몸에 지방을 늘릴 수밖에 없다.
한수혁 정도의 키라면 적어도 110㎏ 이상의 몸무게를 유지하는 게 플레이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타자라면 홈런 숫자가 늘어날 것이고, 투수라면 구속과 구위가 증가할 것이다.
물론 한수혁 역시 그걸 모르는 게 아니었다.
이런 몸을 유지하고 있는 건 자신이 유격수로 뛰어야 하는 팀 사정 때문이었다.
민주현의 영입으로 3-유 간 수비가 훨씬 안정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워리어스에는 그를 대체할 주전급 유격수가 없다.
2군에서 경험치를 먹고 있는 유인철의 기량이 확 올라오지 않는 한 자신이 유격수를 맡아야 한다.
또 대놓고 한수혁을 걸러 보내려는 다른 팀의 작전을 깨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뛸 수 있는 스피드도 유지해야 한다.
결국 지금 한수혁의 잘 단련된 근육질 체형은 그와 제이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타격과 수비, 주루, 그리고 투구를 동시에 하기에 가장 최적화된 몸이었다.
물론 미국 선수들이 그런 세세한 사정을 알 리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수혁을 처음 접한 몇몇 미국 선수들이 호기심과 호승심이 섞인 눈으로 한수혁을 바라보는 사이, 금메달을 놓고 벌이는 올림픽 결승전 무대가 시작되었다.
* * *
‘마음에 안 들어…….’
2027년 기준 일본의 고교야구팀은 대략 3,500개로 고작 70개에 불과한 한국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선수풀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일본조차 미국에 비교하면 초라해질 뿐이다.
등록된 고교야구팀만 17,000개, 거기에 사실상 대학야구가 아무 의미 없어진 한국과 달리 활발하게 운영되는 대학리그, 야구 아카데미에서 배출되는 선수들, 인근 중남미 국가에서 몰려드는 선수들까지.
그런 어마어마한 숫자의 아마추어 선수들 중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의 지명을 받을 수 있는 건 정말 극소수 중의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런 바늘구멍 같은 경쟁을 뚫고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는다 해도 빅리그에 데뷔하는 건 또 별개의 문제다.
심지어 1라운드 지명자들 중에도 빅리그 데뷔를 못 하고 커리어를 마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정도다.
빅리그에 데뷔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 못 하는 야구팬들이 있다.
아주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한국으로 치면 1군이라 할 수 있는 26인 로스터, 거기 들지 못하고 언저리에 걸쳐 있던 선수들이 KBO에 오면 에이스로 군림하게 된다.
일단 빅리그에 발을 딛은 선수는 그 자체만으로 존중받아 마땅한 선수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 미국팀의 선발로 나선 앤드류 데이비스는 신으로부터 축복받은 선수라 할 수 있었다.
1라운드에 세인트루이스의 지명을 받은 후 불과 1년 만에 마이너리그를 박살 내고 빅리그로 콜업, 그리고 이듬해 곧바로 팀의 에이스 자리를 꿰찬 투수.
실력뿐만 아니라 뚜렷한 이목구비와 찰랑거리는 금발 머리카락까지 타고난,
그야말로 미국 야구팬들에게 사랑받을 요소를 모두 갖고 있는 차세대 메이저리그 간판스타.
그런 앤드류가 인상을 찌푸린 채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1번 중견수 서형주
2번 우익수 이찬호
3번 투수 한수혁
4번 1루수 이수영
5번 좌익수 강우찬
6번 3루수 안치욱
7번 유격수 안태규
8번 포수 장덕수
9번 2루수 손재후
오늘 상대할 한국팀의 라인업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 중 이름이라도 한 번 들어본 선수는 한수혁과 이찬호 정도가 전부다.
한국 타자들의 경기 영상을 보고, 전력분석팀에서 건네 준 자료들도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잘해야 트리플A 수준.
만약 한수혁마저 없었으면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했을 그런 상대였다.
하지만 감독, 그리고 베테랑들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 WBC에 이어 이번 올림픽 대표팀에 또 한 번 지휘봉을 잡게 된 미국 감독 로버트 윌슨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왜 널 결승전 선발로 결정했는지 혹시 아나?”
‘글쎄요, 제가 제일 믿음직해서?’
‘빅리거라는 자부심에 찌들어 주변 사람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머저리들보다는 그나마 말이 통하기 때문이야. 잘 들어. 리그의 수준 차이 같은 건 머리에서 지워. 그 팀에는 그런 걸 모두 의미 없게 만드는 괴물이 존재하니까. 명심해,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기미가 보이면 바로 마운드에서 끌어내릴 거야.’
어차피 상대가 누구건 대충 던질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알았다고 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같은 팀의 동료이자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선수인 타이 존슨이 그를 따로 불렀다.
‘이봐, 앤드류.’
‘네, 타이. 무슨 일인가요?’
‘그 자식하고 절대 쉽게 승부하지 마. 젠장, 그냥 피해 가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차피 그 말을 들을 리 없겠지. 아무튼 좋은 공은 안 돼. 네 공에 아무리 자신이 있어도 존 안으로 함부로 공을 넣지 마. 이해했나?’
그게 피해 가라는 말과 뭐가 다른지 차이를 알 수 없었지만 명예의 전당 첫 턴 입성을 거의 확정한 레전드에게 말대꾸를 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도 그냥 알았다고 해주었다.
그렇게 경기를 준비하며 차곡차곡 쌓인 한수혁에 대한 반감이 그를 짜증 나게 만들고 있었다.
‘아무리 대단해 봐야… 모든 타석에서 홈런을 칠 수 있는 건 아니지.’
투수와 타자의 싸움에서 유리한 건 항상 투수 쪽이다.
무려 100년이 넘어가는 야구의 역사와 통계가 그걸 입증하고 있다.
10번 승부를 걸면 최소 7번은 투수가 이긴다.
저 멀리 대기타석에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한국팀의 등번호 1번.
저놈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그런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일단 이놈들부터…….’
하지만 한수혁을 상대하는 건 일단 나중 문제다.
그 앞의 타자들부터 처리해야 한다.
1번 서형주, 2번 이찬호.
이제 데뷔 2년 차에 불과한 풋내기 중견수는 둘째 치고, 2번으로 나선 이찬호는 조금은 주의해야 할 타자다.
적어도 메이저리그에 포스팅을 신청할 정도 수준은 되니까 말이다.
물론 자신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서형주를 상대하고 있지만 앤드류 데이비스의 마음은 이미 이찬호와 한수혁에게로 향해 있었다.
“플레이!”
주심의 경기개시 선언과 함께 앤드류 데이비스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금발, 그리고 보기만 해도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중계 카메라에 담길 자신의 멋진 모습을 상상하며 앤드류가 힘차게 공을 뿌렸다.
아마도 내일 스포츠 신문 1면에 실릴 사진은 이게 될 거라고 확신하며.
슈웅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다.
쓸데없이 멋을 부리느라 재빨리 후속 동작에 안 들어간 것을 말이다.
툭
“Fuck!”
바깥쪽 낮은 코스로 들어오는 100마일 강속구에 가볍게 배트를 가져다 댄 서형주가 죽어라 1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뒤늦게 수비로 전환한 앤드류가 그 공을 잡아 1루로 던졌지만,
“세이프!”
이미 서형주의 발이 1루 베이스를 밟은 후였다.
오늘, 한국과의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될 것이라 확신하던 메이저리그 차세대 에이스 앤드류 데이비스의 첫 번째 승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