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0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08화(209/412)
#208. 한수혁의 마음
데뷔 2년 만에 KBO를 완전히 터뜨린, 아니, 그걸로도 모자라 WBC와 올림픽에서 빅리거들이 즐비한 팀들을 완전히 박살 내버린 한수혁.
한미 포스팅 시스템 개정으로 인해 한수혁의 해외 진출 걸림돌이 사라졌다.
그리고 WBC에 이어 올림픽를 또 한 번 평정하며 자신이 어떤 선수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켜 줬다.
한국에 파견된 각 구단 스카우터들의 보고서도 한결 같았다.
빅리그에서 최소 3/4/5에 홈런 30개, 최대 MVP급 활약을 보일 수 있는 타자, 투타 겸업을 가정할 때 잘 관리해줄 경우 연간 120이닝 이상을 평균자책점 3점대 이하로 막아줄 수 있는 투수.
물론 이것 역시 극히 보수적인 평가였지만 빅리그 구단들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타자와 투수를 따로 놓고 봐도 엄청난데, 심지어 한 선수가 그 둘을 모두 해낼 수 있으니 말이다.
26인 로스터를 운영하느라 머리털이 빠질 지경인 빅리그 구단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선수였다.
하지만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일단 선수 자체가 빅리그에 진출하겠다는 의지가 거의 없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모든 야구선수들에게 꿈인 빅리그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눈치다.
그런 선수를 유혹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을 내밀어야 할 텐데 거기에도 문제가 있다.
이번에 개정된 한미일 삼국 간의 프로야구 포스팅 규약을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자국 리그에서 1시즌 이상 뛴 선수는 포스팅을 통해 해외 리그로 진출할 수 있다.
포스팅에 참가할 빅리그 구단들은 1차 비공개 입찰로 포스팅비, 즉, 이적료를 제출한다.
단, 포스팅비는 최대 2,500만 달러로 제한하며, 만약 최대 금액을 써낸 구단이 다수일 경우 그 모든 구단들이 선수와 30일간 협상을 벌일 수 있다.
25세 이하 선수의 경우 국제 유망주로 분류되어 마이너 계약만 가능하며, 구단별로 측정된 슬롯머니 내에서만 계약금 책정이 가능하다.
뭔가 복잡하지만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런 거다.
한수혁 입장에서 미국으로 진출할 경우 받을 수 있는 돈은 각 구단 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최대 500만 달러에 불과한 계약금이 전부이며, 3년간의 서비스타임 기간에는 구단이 정해주는 연봉만 받고 뛰어야 한다.
언뜻 생각하면 구단에서 연봉을 많이 주면 되는 것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간 서비스타임에 있는 선수들에게는 최저연봉만 지급해온 빅리그 구단 입장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서비스타임 동안 선수를 최저연봉으로 기용하는 것이야말로 빅리그 구단을 운영하는 핵심 중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눈앞의 선수 하나를 잡겠다고 그걸 잘못 건드렸다가는 다른 선수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들고 일어날 확률이 높다.
연봉 체계가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결국 빅리그 구단들은 한수혁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다른 방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젠장, 일단 무리 없는 선에서 2년 차, 3년 차 연봉으로 얼마까지 줄 수 있는지, 파트너십 계약으로 얼마까지 지원이 가능한지 다시 한 번 산출해봐!”
“네, 단장님.”
적당한 방법이 있긴 했다.
다른 대기업을 끌어들이는 것.
옷, 신발, 시계, 가방, 향수, 화장품, 야구용품, 심지어 차와 집까지.
한수혁을 광고판으로 쓰고 싶은 기업들과 파트너십 계약을 주선해 적지 않은 돈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싫다는데요?”
“뭐? 2천만 달러가 부족해?”
“아뇨, 그런 푼돈을 받고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고 싶지 않답니다.”
“푼돈이라고?”
미국 최고의 명문 구단, 적어도 돈질에서는 절대 밀릴 게 없다고 자부하는 양키스를 비롯, 레드삭스, 다저스, 메츠, 자이언츠, 컵스 등 내로라하는 빅마켓 팀들이 비슷비슷한 조건을 들고 한수혁을 찾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한수혁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
한수혁의 개인자금 담당이자 대리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민태현 선에서 모두 컷.
“아니, 그래도 일단 저희 제안을 좀 더 들어보시고…….”
“소용없습니다. 아무 관심도 없다고 하시네요. 그만 돌아가주시죠.”
한편 틈새를 노린 깨알 같은 입질도 있었다.
일본 최고 명문 구단임을 자부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였다.
“저희 요미우리에서는 한수혁 선수에게…….”
“어디요? 일본? 들어 볼 필요도 없겠군요. 한수혁 선수는 일본에서 뛸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아니, 그래도 일단 제안을 들어는 보고…….”
“일본 전체를 준다고 해도 싫답니다. 이 정도면 대답이 됐나요?”
“…나니?”
난공불락.
그 어떤 제안도 한수혁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 가만히 이번 사태를 주시하고 있던 팀 하나가 움직였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단순히 사이즈만 놓고 보면 빅마켓 구단이라 부르기 애매하지만, 양키스 다음으로 많은 월드시리즈 우승 횟수, 빅리그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관중 동원력 등을 바탕으로 매년 우승을 노리는 강팀.
그들에게는 한수혁 영입을 위해 총력을 다할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그 친구를 데려오면 즉시 연장 계약에 합의하지.”
“정말입니까?”
2029 시즌을 마지막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그럼에도 아직 거취를 명확히 밝히지 않던 팀의 간판스타이자 빅리그 전체를 대표하는 슈퍼스타 타이 존슨.
그가 재계약의 조건으로 한수혁 영입을 내세웠다.
이제 곧 서른 중반에 들어설 나이이긴 하지만 현재 추세로 봤을 때 최소 5년은 최고 레벨에서 경쟁이 가능한 선수다.
아니, 그걸 떠나 저 선수를 떠나보내면 분노한 팬들의 화살이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
어차피 한수혁 영입전에 뛰어 들려 했던 카디널스는 타이 존슨의 말을 들은 후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저희 측에서 제안드리는 조건입니다. 파트너십 계약을 통한 연간 3천만 달러의 수익 보장. 거기에 미국에서의 생활을 위한 저택과 자동차, 고용인… 선수가 아무 걱정 없이 빅리그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어떤가요?”
“글쎄요. 일단 전달은 해드리죠.”
세인트루이스의 참전으로 조건이 확 올라갔다.
예전 오타니 때와는 사정이 달랐다.
그때 빅리그 구단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건 투타 겸업에 대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투타 겸업을 이어 가려 했던 오타니는 결국 그 의사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에인절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한수혁은 그런 검증, 아니, 걱정이 없는 선수였다.
두 시즌 동안 타자와 투수, 심지어 유격수까지 모두 소화해낸, 그러면서도 큰 부상 한 번 없었던 신이 내린 육체.
잦은 부상으로 신음하고, 결국 그로 인해 일찍 선수생활을 접었던 오타니와는 레벨이 다르다.
출장 경기수와 투구 이닝을 조금만 조절해주면 롱런이 가능할 것이다.
그것이 빅리그 구단들이 한수혁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현재로서는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당사자가 전혀 관심이 없으니 말이다.
– 그래서 말입니다. 한수혁 선수, 카디널스의 조건은 꽤나 끌리긴 하더군요. 무엇보다 타이 존슨이 한 선수의 영입을 원하다고 있다는 게…….
“나쁜 제안은 아니지만 당장은 아니에요. 그냥 거절해주세요.”
요지부동.
그 어떤 제안에도 한수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빅리그 구단들은 생각했다.
이 친구가 혹시 FA 자격을 얻은 후 보다 큰 돈을 받고 안정적으로 빅리그로 넘어오려는 생각인가?
만약 그렇다면 지금 그에게 목을 매는 건 그다지 좋은 판단이 아니다.
당장 내년 시즌 구상을 시작해야 할 판국에 말이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렀다.
바짝 달아올랐던 한수혁에 대한 빅리그 구단들의 관심이 서서히 식어가던 그때,
드디어 그가 움직였다.
오랫동안 한수혁을 지켜보며 그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캐치해낸 어떤 미국인 말이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전 스카우터이자 현 단장인 다니엘 미첼은 과거의 끈을 간신히 살려 한수혁과 대면하는 데 성공했다.
“한수혁 선수, 만나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러게요. 음, 대충 무슨 일인지는 알겠는데 이미 수차례 말씀드렸지만 저는 미국 진출에는 별 관심이…….”
“괜찮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니까요.”
“흠… 네, 일단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희 단장님은 왜 같이 보자고……. 어디 보자, 5분 후에는 도착하실 거 같네요. 차가 좀 막히는 모양이에요.”
“좋습니다. 박 단장님이 오신 후 자세한 이야기를 드려야겠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희 매리너스는 워리어스와 자매 구단이 되고 싶습니다. 말뿐만이 아닌 정말 자매 구단 말이죠.”
“으으음?”
“형식적인 선수 교육, 기술 교류, 코치진 연수, 이런 것 말고 진정한, 말 그대로 한 배를 타고 운명을 같이 하는 구단이 되고 싶습니다. 어떤가요? 받아주시겠습니까?”
“뭐… 나쁘지는 않은데 다 떠나서 그런 제안을 왜 선수인 저에게?”
“하하하,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아, 저기 박 단장님께서 도착하셨군요. 자, 그럼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이런, 죄송합니다. 차가 너무 막혀서… 음, 오는 길에 창문 밖을 바라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처음 미국으로 넘어갔던 1990년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때도 서울에는 차가 참 많았죠. 하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 차이는 주차요금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들어오면서 이 호텔 주변 주차장 요금을 확인했습니다. 시간당 만 원… 그래요, 이건 분명 차를 가지고 다니지 말라는 정부의 시그널 같은 거겠죠. 그런 면에서 볼 때 미국은 축복받은 나라죠. 아, 물론 뉴욕 같은 대도시는 제외하고 말이죠. 가만, 제가 그런데 왜 주차요금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한수혁과의 계약이 무산된 후 2년간, 다니엘 미첼은 수없이 생각했다.
야구선수 한수혁의 진짜 목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를 미국으로 데려갈 수 있을지.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그가 답을 말해주었다는 걸 말이다.
워리어스의 우승, 그리고 왕조 건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한수혁이라는 선수는 워리어스를 자기 것처럼 아끼고 있었다.
물론 진짜 자기 것이 맞지만.
어쨌든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걸 전제로 깔고 간다면 한수혁을 미국으로 데려가는 방법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다.
워리어스를 왕조로 만들어주면 된다.
한수혁이 빠져도 아무 이상 없이 KBO를 박살 낼 수 있는 그런 팀으로 만들어주면 된다.
일단 모든 걸 떠나 그게 최우선 과제다.
멍청한 빅마켓 놈들은 그런 간단한 진실을 외면한 채 한수혁에게 보다 많은 돈을 내미는 데 급급했다.
당연히 먹히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
한수혁은 돈으로 움직일 수 있는 선수가 아니다.
그걸 조금 늦게 깨달은 게 아쉽기는 하지만, 괜찮다.
앞으로 1년, 그 안에 승부를 본다.
한수혁이 목숨처럼 아끼는 워리어스, 그 팀을 어떻게든 KBO 최강으로 만든다.
그 과정에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도움을 준다.
선수와 코치 연수든 기술 교류든, 마이너 선수 파견이든, 아무튼 그게 뭐든,
매리너스와 워리어스를 진정한 자매로 만들어버리는 거다.
그리고 한수혁에게 넌지시 제안하는 거다.
자, 충분히 즐기셨나요?
그럼 이제 조금 더 레벨이 높은 리그에서 뛰어 보면 더 재미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희 시애틀로 와 주시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멋진 생각이야!’
처음에는 미심쩍어 했던 구단주도 한수혁이 빅리그 구단의 제안을 모두 걷어차버리면서 조금씩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어차피 돈지랄로는 그놈들을 이길 수 없다.
신임 단장이 가져온 계획대로 일이 풀리면 좋고, 만약 실패해도 큰 손해를 볼 일이 없다.
구단주의 승인을 받은 다니엘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제안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박재철의 손으로 넘어갔다.
“저희 측에서 준비한 제안서입니다. 부디 긍정적인 검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