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1)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0화(21/412)
#20. 진짜 중의 진짜
‘끄아아아아! 어떻게 해! 어떻게 하지? 응? 민예린, 이 바보야. 생각을 해봐! 어떻게 할지!’
한수혁이 사라진 후 자신의 집으로 들어온 여자가 손으로 입을 꾹 틀어막은 채 터져 나오는 비명을 집어삼켰다.
그리고는 거실로 달려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예린이냐? 새 집은 어때? 잘 지내는 거지?
“아빠!”
–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질러? 뭔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 또 스토커라도 나타난 거야?
“그게 아니라! 한수혁!”
– 한수혁? 갑자기 한수혁은 왜? 아, 진짜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걔는 진짜더라. 너 연습경기 인터넷 중계한 거 봤지? 예린이 너 혹시 그 친구 만날 일 없을까? 보게 되면 사인 꼭 좀 받아줘라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 아아, 그렇지. 내가 또 잠깐 흥분했네. 최 매니저는? 아직 도착 안 한거야? 하아, 그러니까 예린아, 내가 그냥 소속사 적당한 데 골라서 계약하라고 했잖아. 혼자서 그게 무슨 고생이냐, 명색이 민예린인데?
“아빠!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옆집에 한수혁!”
– 그래, 혹시 만날 일 있으면 꼭 사인 좀 받아···
“수혁 님이 산다고! 우리 옆 집에! 방금 문 앞에서 만났다니까!”
– 뭐어?
한때 대한민국에서 최고라 불렸던 투자 전문가이자 극성 워리어스 빠로 유명했던, 지금은 미국 최고의 자산운용사에 근무중인 민태현이 다급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 너희 옆집에 한수혁이 산다고? 거기 비어 있다며?
“나도 빈 집인줄 알았지! 이사 오고 사람 그림자도 못 봤으니까, 근데 오늘 돌아왔나봐. 워리어스 스프링캠프 끝났잖아!”
– 오 마이 갓! 네가 이사간 집이 하필이면 딱 한수혁 선수 옆집이라는 거지?
“나 어떻게 해. 심장이 막 떨려, 아빠.”
– 야, 말로만 들은 나도 이런데 너는 오죽하겠냐, 아, 지금 이럴 게 아니라 내가 한국으로 들어갈까? 바로 출발하면 내일 오전중에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럴래?”
– 어, 예린아. 내가 바로 비행스케줄 알아볼게. 그런데 그 친구가 우릴 만나줄까?
“방법은 내가 생각해볼게.”
– 오케이, 그럼 바로 출발한다
“응, 아빠.”
워리어스라는 이름 앞에서는 뭐든 할 수 있는, 이 팀에 얼마 남지 않은 진짜 중의 진짜 팬인 두 부녀의 뜻이 한곳으로 모였다.
올해 스무 살이 된 대한민국 톱가수 민예린, 열넷의 나이에 데뷔해 불과 6년만에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싱어송라이터.
한국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실상부한 KPOP의 여왕.
SNS 팔로워만 2천만 명을 거느린 연예인들의 연예인.
2026년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연예인 1위.
그것이 바로 민예린이었다.
‘수혁 님이 내 옆집에···’
그녀의 아버지 민태현은 뼈속부터 워리어스의 골수팬이었다.
이 팀이 창단되던 해에 태어나 어린이 회원부터 차곡차곡 계단을 밟아온 그는 투자전문가로 눈코 뜰 새도 없는 삶을 살면서도 잠실야구장을 밥 먹듯이 드나들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남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으니 그 미래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민예린은 다섯 살 코흘리개 시절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잠실야구장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뒤를 따라 자연스럽게 워리어스의 팬이 되었다.
그때 워리어스는 KBO를 대표하는 강팀 중 하나였다.
투자에는 인색했지만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한 뜻으로 뭉쳐 매년 가을야구에 도전하는 매력적인 팀이었다.
민태현과 민예린, 두 부녀는 행복했다.
그녀가 소속사에 들어가 가수로 데뷔한 후에도 그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워리어스에서 불러주지 않아도 먼저 찾아가 시구를 자처했고, 그들의 플레이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며 손수 응원가를 작곡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워리어스가 그들 부녀를 배신했다.
오강 그룹의 큰 아들이라는 놈이 구단주로 취임하더니 지 멋대로 팀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옆에서 아양을 떠는 인간들의 말만 믿고 팀을 지탱하던 기둥들을 하나하나 쳐냈다.
그녀가 사랑하던 팀이 박살나기 시작했다. 한때 그녀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선수들이 하나 둘 유니폼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일이 벌어졌다.
노장 이만식과 함께 워리어스를 지탱해온 젊은 에이스 임준영. 다소 금액차가 나더라도 워리어스에 꼭 남고 싶다던 그가 FA로 풀려 인천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오강 그룹의 로비를 이겨낸 양심 있는 스포츠 기자가 특집기사를 터뜨렸다.
알고 보니 임준영과 함께 FA자격을 얻은 황성민, 송기태, 그 두 놈을 잡기 위해 임준영에게는 아예 계약제안조차 하지 않았더란다.
‘미친 것들···’
그때를 생각하니 다시 한 번 열불이 치솟는다.
다른 팀에서 거들떠도 안 보는 반푼이 포수와 유격수에게 수십억을 안겨주면서 팀의 젊은 에이스인 임준영에게는 아예 계약제안조차 하지 않다니.
분노한 민예린은 자신의 SNS에 ‘퍼킹 오강’이라는 문구를 박제해버렸다.
이를 알게 된 오강 그룹과 그들의 영향을 받는 몇몇 회사에서 CF계약 해지 및 손해배상 얘기를 꺼냈지만 민예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딴 거 없어도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도 없었고, 월가로 스카우트된 아버지 민태현은 미국 최고의 로펌을 동원해서 싸우자며 그녀의 등을 떠밀기도 했다.
거기에 전세계적으로 2천만명이 넘는 그녀의 팬들까지 동조하고 나서며 SNS에 ‘퍼킹 오강’이라는 밈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아무튼 그 날부터 그들 부녀는 워리어스에 대한 모든 걸 잊기로 했다.
그동안 쌓았던 애증도, 추억도, 그 모든 것들을 가슴 속에 묻기로 했다.
팀을 말아먹던 구단주 놈이 워리어스를 매각한다고 했을 때는 가슴이 조금 짠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가 전부였다.
이제 와서 미련을 갖기에 그 팀은 자신들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반전이 일어났다.
잇따른 매각시도가 불발되며 해체 이야기까지 나오던 워리어스를 어떤 투자회사가 인수했단다.
아버지가 알아본 바로는 젊은 야구 에이전트가 세운 회사라고 하는데 솔직히 별다른 기대감 같은 건 없었다. 어차피 팀은 썩을 대로 썩은 상태였으니까.
그렇게 덤덤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민예린과 민태훈은 어느 날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수혁, 국내 고교야구 역사상 최대 유망주이자,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165km/h를 던졌다는 그 괴물 신인이 메이저리그 대신 워리어스에 입단한단다.
꿈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근무중인 아버지는 한수혁의 시애틀 입단을 확신하고 있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그런 한수혁이 말했다. 워리어스를 우승시키겠다고.
너무 기뻤지만 솔직히 믿음은 가지 않았다.
거지 같은 전력은 둘째 치고 그 팀 내부에 박혀 있는 쓰레기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워리어스를 인수한 박성훈이라는 구단주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한수혁을 입단시킨데 이어 이번에는 메이저리거 출신인 박재철을 단장으로 내세워 워리어스 내부에서 파벌 싸움을 벌이던 코치들을 싸그리 날려버렸다.
그날, 민예린과 민태현은 눈물을 흘리며 소주를 삼켰다. 다시 한 번 워리어스를 응원하리라 마음먹으며 말이다.
한때 워리어스를 목숨처럼 사랑했던 극성팬 둘이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잠시 활동을 쉬려 합니다’
마침 민예린의 전속 계약이 종료되었다.
그녀는 전 소속사 및 다른 기획사들의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1년 간 무조건적인 휴식을 선언했다.
외부적으로는 창작 에너지가 다 고갈되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1년 동안 야구만 보러 다닐 생각이었다.
인터넷에서 한수혁에 대해 헛소리를 하고 다니는 놈들을 잡아 싹 다 고소미를 먹여버렸다.
그리고 잠실야구장 가까운 곳으로 이사도 했다.
예전에 살던 고급 빌라만큼 보안이 좋지는 않았지만 야구를 보러 다니기에는 이만한 집이 없었다.
야구장과 걸어서 10분 거리인, 거기에 거실 창문으로 잠실 야구장이 훤히 내다 보이는 이 집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옆집, 그리고 그 옆집의 옆집이 모두 비어 있는 게 조금 의아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조용히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그 옆집에 사는 사람과 처음 만나게 되었다.
민예린은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아니, 정말로 멎었을지도 모른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비명을 간신히 참아 누르며, 그녀에게 연기의 재능은 없다고 평가하던 중견배우가 봤으면 깜짝 놀랄 정도의 연기력을 발휘하며 간신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한수혁이다!
내가 다시 야구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게 만든! 무너진 워리어스를 살릴 구세주님께서 내 옆집에 강림하셨다.
민예린이 경건한 마음으로 눈을 꼬옥 감았다.
워리어스의 밝은 앞날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무적 최강 워리어스… 승리하리라…”
그녀가 직접 작곡한 워리어스의 응원가가 거실 안에 나지막히 울려 퍼졌다.
* * *
‘띵동’
“으으음···”
현관 벨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방금 전까지 내가 흘린 눈물이 베개를 펑 하니 적셔놓았다.
꿈을 꾸었다.
어머니가 처음 내 손을 잡고 워리어스 경기를 보여주던 그때로 돌아갔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머니의 장례식장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시간을 뛰어넘어 성훈이 형이 폐암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내가 그 앞에서 울고 있던 시간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꿈속에서 나는 여전히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숨이 턱턱 막히고,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했지만 아무런 행동도,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모든 광경을 지켜봐야만 했다.
꿈속의 나는 마치 미친 놈처럼 서럽게 통곡했다.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멸망한 세상에 혼자 남겨진 아이처럼 울고 또 울어댔다.
그러다가 눈을 떴다. 누군가 누른 현관 벨 소리에.
이제는 다 지난 일이라고, 다시 제 자리로 돌려놓으면 된다고 생각했건만, 내 가슴 속에는 아직 그때의 일들이 멍울처럼 고여 있었나 보다.
예전 삶의 기억들은 이렇게 종종 나를 힘들게 하곤 한다.
언제쯤이면 이런 악몽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음···”
그나저나 대체 얼마나 잠을 잔 것일까?
그냥 훈련만 해도 피곤한데 선수단에 대한 정보까지 파악하느라 완전히 넉다운이 되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오늘 저녁에 성훈이 형, 그리고 제이콥과 만나기로 했으니 아직 시간 여유는 충분하다.
근데 누구지? 우리 집에 찾아올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의아한 마음에 인터폰 화면을 들여다보니 양복을 입은 중년의 아저씨,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옆 통수만 보이는 긴 머리의 여자 하나가 서 있었다.
“안 사요. 교회는 안 다닐 거고요. 도에도 관심 없고요.”
– 아앗! 잠시만! 그게 아니라
조금 더 잘 생각에 그 둘을 쫓아내려던 찰나, 인터폰 너머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 옆집 사람들입니다. 안녕하세요!
“옆집이요?”
– 네, 이쪽은 제 딸이고, 저는 그 아버지고, 하하
뭐라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옆집 사람이다 이거지?
그런데 무슨 일일까?
옆집이라고 해도 요즘 아파트에서 굳이 인사를 다닐 리도 없고··· 혹시 내가 시끄럽게 군 적이 있던가?
아니, 잠만 잤으니 그럴 리가 없는데.
의아한 마음에 뒷통수를 벅벅 긁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문 앞에 서 있던 두 남녀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들 뭐야.
“무슨 일로···”
“안녕하세요! 옆집 사는 민태현이라고 합니다! 아, 물론 계속 사는 건 아니고 미국을 왔다갔다, 아참참,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여기는 제 딸입니다. 인사드려, 딸.”
남자의 채근에 옆에 서 있던 젊은 여자가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린 채 내 쪽을 향해 고개를 까닥거렸다.
뭐지, 왜 사람 얼굴을 쳐다도 못 보는 건데?
“아, 아, 네··· 그런데 진짜 무슨 일로··· 제가 지금 좀 피곤해서요.”
“아아앗! 그러시군요. 하긴··· 아직 시차적응도 안 되셨···”
“네?”
“아닙니다! 그럼 오늘은 이것만, 이것만 전해드리고 가겠습니다.”
내 말에 당황을 한 것인지 얼굴이 벌개진 중년남자가 두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내게 쑥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지, 집들이 선물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음···”
“부담 가지실 필요 없으세요! 그저 옆집 사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마음으로, 하하.”
대체 뭐가 든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남자가 내민 쇼핑백을 받아들었다.
받는 순간 묵직한 것이 뭔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저기··· 저는 딱히 이웃분들에게 준비한 게 없어서···”
“아, 아니예요! 그냥 여기 살아 주시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영광··· 흡.”
“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또 이상한 말을··· 아무튼 정말 괜찮습니다!”
“음··· 그럼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 잔···”
뭔가 빚을 진 것 같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속에도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아뿔싸, 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는 몰라도 내 말 한 마디에 표정이 확 변하더니 말릴 사이도 없이 집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오, 이곳이 바로 성지···”
“네?”
“아, 아닙니다.”
“···일단 잠시만요. 제가 차라도 한 잔. 커피를 어디 두었더라···”
“아앗, 잠시만! 저희가 하겠습니다. 딸아! 뭐해? 가서 커피 좀 타 와, 얼른!”
남자의 말에 젊은 여자가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달려갔다.
이 사람들 지금 뭐하는 거?
“저기, 차는 주인인 제가···”
“아뇨, 아뇨! 그 귀하신 손으로 어찌 그런 하찮은 일을··· 뜨거운 물에 물집이라도 잡히시면.”
“···?”
내가 잠깐 멈칫하는 사이 주방으로 달려간 여자가 능숙한 솜씨로 커피 세 잔을 타서는 거실 테이블로 가져왔다.
그리고는 또 나와 시선도 맞추지 않은 채 슬쩍 앞으로 잔을 내밀었다.
찻잔을 내미는 여자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여기…”
“자, 어서 드시죠. 한수혁 선수. 어떻게 입에 맞으실 지 모르겠네요. 아, 그나저나 제 소개를 아직 안 했군요. 저 절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여기 제 명함!”
아, 진짜 정신없어 죽겠네.
그나저나··· 어라, 이거 뭐야?
골드만삭스 부사장 민태현?
이 나사 빠져 보이는 중년 아저씨가 골드만삭스 부사장이라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