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11)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10화(211/412)
#210. 깨달음
그간 한국팀들이 미국에서 스프링캠프를 진행하며 빅리그 팀들과 연습경기를 가진 적은 있지만 이렇게 한 곳에 모여 합동 훈련을 진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매리너스 선수들은 워리어스의 선수들을 한 수 아래로 깔봤다.
하지만, 처음으로 진행된 양팀 간의 연습경기에서 한수혁이 시애틀의 건방진 애송이들을 개 박살 내놓았다.
매리너스의 주전급 타자들이 한수혁의 공에 꼼짝도 못 하고 삼진으로 물러났고, 빅리그 10승 투수라고 콧대를 잔뜩 세우던 투수들이 한수혁에게 홈런을 얻어 맞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연습경기가 진행되었다.
다소 느슨했던 첫 번째 경기와 달리 시애틀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덤벼들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라이언 티보우를 포함, 올 시즌 시애틀의 마운드를 지켜야 할 주축 투수들이 한수혁에게 난타를 당했다.
한수혁뿐만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잘난 동기의 뒤를 쫓으며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든 그의 동기들,
서형주와 안치욱까지 합세해 시애틀 마운드를 초토화시켰다.
타자들이라고 상황이 다를 건 없었다.
3년 연속 20승에는 아깝게 실패했지만 1.7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임준영, 그리고 연차가 쌓이며 더더욱 완숙해진 천상진, 양기철, 임두영.
그들을 주축으로 한 워리어스 마운드가 컨디션이 아직 덜 올라온 시애틀 타선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그제야 그들은 깨달았다.
워리어스 선수들이 이 캠프에 함께할 자격이 있음을.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합동 캠프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따아아아악!
“Oh……!”
한편 이번 캠프에서 가장 크게 성장한 건 다름 아닌 2년 차를 맞은 최마루와 박동석, 그리고 지난 시즌 말 육성선수에서 정식 선수로 전환된 최재민 등 신인 트리오였다.
김두영과 함께 팀의 셋업맨으로 완전히 자리 잡은 최마루, 이번 시즌부터 본격적인 1군 백업 포수 역할을 담당하게 될 박동석, 그리고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프로야구 선수의 꿈을 이뤄낸 최재민.
빅리그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이 애송이들에게 엄청난 자극이었다.
“음, 정말 대단하긴 하네. 확실히 피지컬부터 달라.”
“그렇긴 하더라. 쟤들 공 받아보니까 네 공은 깃털이야, 깃털.”
“내가 아직 성장이 덜 끝나서…….”
“코치님도 말했잖아. 너 몸 좀 더 키워야 한다고.”
“그랬지. 그리고 너한테는 살 좀 빼라고 하셨고.”
“하아…….”
“휴우…….”
티격태격하는 최마루와 박동석을 지켜보던, 이제는 입모양만 봐도 대충 무슨 말이 오가는지 알아차릴 만큼 두 사람과 가까워진 최재민이 말했다.
‘그·런·데·암·만·봐·도·수·혁·이·형·만·큼·잘·하·는·선·수·는·안·보·이·네’
통역을 통해 그 말을 전달받은 최마루가 대답했다.
“당연하지. 쟤들은 그냥 좀 잘하는 야구 선수이고, 수혁이 형은 야구의 신이니까.”
* * *
따아아아악!
부웅
따아아아악!
부웅
따아아아악!
“좋아, 토니. 조금만 더 쳐볼까? 올해는 몸을 꽤 잘 만든 것 같군.”
“예, 보스.”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온몸이 근육으로 꽉 찬 매리너스 타자 하나가 라이브 배팅을 진행하고 있다.
덕아웃 앞에서 멍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최재민이 옆에 던져 두었던 태블릿에서 그 선수의 프로필을 찾아냈다.
안토니오 가르시아, 보통 팀 내에서는 토니라고 불린다는 도미니카 출신의 선수.
‘187㎝? 음, 나랑 별로 차이 안 나네. 그런데 체중이 105㎏… 와…….’
고등학교 시절 최재민은 186㎝에 82㎏ 정도의 체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직 성장기인 걸 감안해도 지나치게 마른 체형.
그 시절 최재민은 웨이트를 통해 몸을 불리는 걸 극도로 꺼려했다.
유격수 역할을 해내기 위해, 그리고 공수주 모든 면에서 프로 스카우터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한수혁을 만나고, 워리어스 육성 선수 테스트에 합격하고, 자신이 갈 길이 오직 타격 하나뿐인 걸 깨달은 후에는 본격적인 몸 만들기에 돌입했다.
쉽지는 않았다.
애초에 타고나길 근육이 잘 붙지 않는 체질인 데다가 아직까지도 무작정 몸을 불리는 데 약간의 거부감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저 선수를 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지명타자로 뛰고 있는 저 선수는 올 시즌 타율 0.198을 기록했다.
그것만 봐서는 말도 안 되는 성적이다. 주전은 고사하고 대타로라도 빅리그에서 살아남기 힘든 실력이다.
하지만 안토니오 가르시아는 벌써 4년째 시애틀의 지명 타자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그 비결은 타율이 아닌 다른 공격지표에 있었다.
타율은 0.198에 불과하지만 출루율과 장타율이 각각 0.365, 0.571로 OPS가 0.936에 달했다.
2할에도 못 미치는 타율에도 불구하고 55개의 홈런과 105개의 타점을 기록한 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는 극단적인 OPS 타자였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런 성적이 가능한 걸까?’
따아아악!
부웅
따아아아악!
처음 다니엘 미첼의 제안을 받았을 때 워리어스 박재철 단장이 가장 기뻐한 게 바로 이 합동 스프링 트레이닝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미국으로 진출했던 그는 팀의 신인들이 빅리거들과 함께 훈련하는 것만으로도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물론 워리어스 내에도 신인들이 본받을 만한 선수들은 여럿 존재했다.
투수 쪽에서는 임준영이나 천상진 같은 선수들이 그랬고, 타자의 경우 조성오나 이창모, 장덕수 같은 훌륭한 선배들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스타일의 야구를 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임준영처럼 되고 싶어도 빠른 공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고, 장덕수같이 장타를 펑펑 날리고 싶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번 합동 스프링 트레이닝에 참가한 시애틀 매리너스의 선수들은 신인급 선수들에게 살아 있는 교보재나 마찬가지였다.
빅리그의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방면으로 진화를 거듭한 교보재 말이다.
따아아악!
따아아악!
지금 라이브 배팅에서 연신 장타를 날려대고 있는 안토니오 가르시아가 대표적인 예였다.
2할도 안 되는 타율에도 불구하고 50개의 홈런과 100개의 타점을 기록하며 빅리그의 주전을 꿰찬 선수.
퓨처스리그에서 1년간 뛰며 장타력은 뛰어나지만 컨텍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다 평가받은 최재민이 그에게 시선을 빼앗긴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훈련 모습을 관찰해도 그 비결을 알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수화 통역 선생님에게 부탁을 해봐야 할까? 아니, 저 사람은 영어를 쓸 텐데?
그것보다 KBO 리그에서 1군도 아닌 2군 선수에 불과한 자신의 질문에 그가 대답을 해줄까?
최재민이 자기도 모르게 손톱을 씹으며 고민에 빠져들던 그때,
툭
누군가의 손이 그의 어깨 위에 올라왔다.
“도와줄까?”
최재민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한수혁이었다.
그의 은인이자 우상, 그리고 워리어스 모든 선수들의 존경을 받는 선수.
“선생님, 잠깐 수화 좀 부탁드립니다.”
“네, 물론이죠, 한수혁 선수.”
아직 말을 꺼내지도 않았건만, 한수혁은 이미 최재민이 뭐를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었다.
수화 통역사를 불러들인 한수혁이 터벅터벅 배팅 게이지를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는 이제 막 훈련을 마친 안토니오 가르시아가 서 있었다.
“헤이,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으음? 나?”
직접 말을 섞어 본 적은 없지만 안토니오는 한수혁에 대해 깊은 경외감을 품고 있는 상태였다.
언젠가 빅리그에 진출한다면 MVP급 활약을 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 선수의 부름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혹시 잠깐 시간이 괜찮으면 우리 막내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을까 해서 말이야.”
“막내라… 저기 저 친구인가 보군. 그래, 들었어. 청각장애가 있는 선수가 하나 있다고 말이야. 음, 내 동생도 다리가 불편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지. 좋아, 시간은 얼마든지 가능해. 뭐가 궁금한 거지?”
“재민아, 이쪽으로 와봐.”
‘네? 아, 네!’
한수혁의 손짓에 최재민이 마음 속으로 크게 대답하며 그쪽으로 달려왔다.
그렇게 수화 통역사와 한수혁을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빅리그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는 50홈런 타자, 그리고 KBO에서도 2군에 불과한 어린 신인.
둘 사이의 간격은 말할 수 없이 컸지만, 안토니오는 정말 친동생을 대하듯 정성스럽게 그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가르시아 씨, 이런 질문이 무례할 수도 있지만 당신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보니 왜 이런 성적이 나온 건지 대충 짐작은 가요. 본인이 정한 존 안에 들어오는 공 외에는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겠고요. 혹시 이런 타격 스타일은 스스로 선택한 건가요?”
“그냥 토니라고 불러.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거냐고? 아니, 내가 처음 데뷔했을 때 모두가 나에 대해 그렇게 평가했지. 컨택과 파워, 그리고 선구안을 골고루 갖춘 선수. 하지만 한 시즌을 뛴 후에는 그 평가가 확 바뀌더군. 모든 것이 어정쩡한 타자. 빅리그에서 경쟁력을 찾을 수 없는 타자.”
“저런…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생각을 전환했지. 스스로 판단하기에 내가 가진 가장 좋은 능력은 선구안이었어. 쉽게 말해서 존 안으로 공이 들어오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능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는 거지. 문제는 그 존을 벗어나는 공에 대한 대처 능력, 그리고 파워가 부족하더군. 그래서 결심했지.”
“뭘요?”
“내가 설정한 존 안으로 들어오는 공만 제대로 때리자. 그것만 해도 먹고살 수 있지 않겠냐 하고 말이야.”
“아…….”
“그 결과가 바로 이거야. 난 아직도 내가 때리고 싶은 공 외에는 손도 대지 않아. 그 덕에 스탠딩 삼진을 엄청나게 당하고 있지. 타율도 뚝뚝 떨어지고 말이야. 대신 출루율은 어느 정도 보장되고, 그리고 무엇보다…….”
안토니오 가르시아가 자신의 우람한 팔뚝을 가리키며 말했다.
“존 안에 들어온 공은 무조건 홈런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지. 흐흐, 솔직히 말하자면 전부는 아니고 셋 중 하나, 혹은 둘 중 하나? 어쨌든 난 그렇게 빅리그에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어.”
“이해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가르시아, 아니, 토니.”
“좋아, 자네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있길 바라.”
대화를 끝낸 최재민이 뭔가 깊은 생각에 빠져 들었다.
그 모습을 본 한수혁이 수화 통역사를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쟤는 지금 저기서 뭐를… 야! 최재…….”
“쉿, 건드리지 말고. 그래, 잘됐다. 동석아, 너 저기 재민이 옆에 가서 조금만 대기해라. 다른 사람들이 말 못 시키게.”
“네?”
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오랫동안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불현듯 떠오르는 순간.
한수혁 역시 최재민에게 여러 조언을 해주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참아왔다.
다른 사람이 말해주는 것보다는 스스로 얻은 깨달음이 훨씬 크고 오래 간다는 걸 알기에.
역시 기다리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은 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최재민의 얼굴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자신감을, 또 누군가에게는 경험을,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묘한 아쉬움을 남긴 채 사상 최초로 진행된 빅리그 구단과 KBO 구단의 합동 스프링 트레이닝이 종료되었다.
그리고 2029 시즌이 개막되었다.
한수혁이 회귀한 후 세 번째로 맞는 시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