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1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12화(213/412)
#212. 영입 전쟁
세상을 살다 보면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진리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건 인간이고, 그렇기에 그런 인간의 마음을 파악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 말이다.
타고난 유전과 성격, 거기에 환경적인 요소가 더해지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매분 매초 기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게 인간의 마음이다.
애초에 그걸 이해하려 드는 것 자체가 제정신이 아닌 거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간 진행된 매지션스와의 한국시리즈를 보며 박성훈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 녀석, 표정이 왜 저래?’
어릴 때부터 친형제처럼 자라온, 거기에 성인이 된 후에도 줄곧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지켜봐 온, 심지어 워리어스라는 구단이 한수혁의 것이라는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
그가 보기에 최근 한수혁은 어딘가 이상했다.
특히 지난 한 주 동안 진행된 한국시리즈 중계 카메라에 잡힌 한수혁의 모습은 확실히 예전과 많이 달랐다.
팀을 우승시키고, 선수로서 말도 안 되는 성적을 기록한 상황에서도 도무지 만족하지 못하던, 언제나 뭔가를 갈구하던 한수혁의 표정에서 절박함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좋은 현상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워리어스의 우승에 집착하던 한수혁에게 여유가 생긴 것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신을 대신해 선발로 나간 투수들이 승리를 거두고, 그를 바라보며 야구의 꿈을 이어온 신인 선수가 대타 홈런을 치고,
그런 상황에서 한수혁의 얼굴에 떠오른 건 만족감이 아닌 아쉬움이었다.
‘으으음…….’
박성훈은 그런 한수혁의 표정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고 느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건 장성한 자식을 독립시키는 부모의 표정과 비슷했다.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본, 장성한 자식을 독립시키며 아쉬워하던 부모님과 비슷한 얼굴이었다.
웃긴 소리였다.
이제 스물 초반에 불과한 어린 놈이 그런 마음으로 다른 동료들을 바라본다는 게 말이다.
하지만 이유가 뭐든 간에 정말로 한수혁의 표정에는 그런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걸 눈치챈 박성훈은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 녀석이 그간 갇혀 있던 뭔가를 깨고 나왔구나. 그리고 대신 다른 어떤 면에서 결핍을 느끼고 있구나.
과연 그게 뭘까?
기억을 3년 전으로 되감아보았다.
그저 또래의 평범한 소년들처럼 메이저리거를 꿈꾸던 녀석이 어느 순간 확 돌변했다.
도장만 찍으면 끝날 계약을 엎어 버리고, 갑자기 워리어스가 자신의 것이 되었다고, 그러니 같이 힘을 모아서 명문 구단으로 만들어보자 말하던 한수혁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정말 녀석의 말처럼 모든 것이 풀려 나갔다.
첫 해, 상상조차 하지 못한 활약으로 팀을 우승시키고, 난생 처음 들어보는 회사에 여유자금을 몰빵해 엄청난 돈을 벌어오고,
그리고 결국 이렇게 세 시즌 연속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아……!’
한수혁의 어릴 적 성격, 그리고 지난 3년간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던 박성훈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알겠다.
뭐가 문제인지, 대체 왜 녀석이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말이다.
그것이 오늘 박성훈이 한수혁의 집을 찾은 이유였다.
“무슨 일이야, 형. 왜 맨날 우리 집에 올 때는 이렇게 일찍 오는 거야?”
“그야 오후에는 나도 구단 일이 바빠… 음,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꼭 할 말이 있어서.”
“뭔데? 일단 커피라도 한 잔 줄까?”
“아니, 커피는 됐고, 잠깐 앉아봐. 금방 끝날 거야.”
“왜, 뭐 때문에 그러는데 대체.”
거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그리고 박성훈이 입을 열었다.
“너… 메이저리그 한번 가볼래? 거기 가면 좀 더 재미있게 야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 * *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생각했건만, 역시 성훈이 형까지 속이는 건 무리였나 보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워리어스의 세 번째 우승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빠진 자리를 다른 동료들이 메우고, 그 선수들이 힘을 합쳐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걸 보며 뭔가를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워리어스는 내가 억지로 끌고 가야 할 짐이 아니구나.
내가 부상으로, 혹은 다른 문제로 빠져도 충분히 우승을 다툴 수 있는 팀이 되었구나.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만족감, 그리고 기쁨이었다.
최하위권에 처박혀 있던 팀을 여기까지 끌어 올렸다는 만족감,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처럼 불안하게만 느껴졌던 동료들이 이만큼이나 강해졌다는 데서 오는 기쁨.
그리고 그 뒤를 따른 건 약간의 허탈감이었다.
나는 항상 뭔가에 쫓기듯 인생을 살아왔다.
회귀 전에는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그리고 회귀 후에는 내 사람들과 함께 워리어스 우승이라는 꿈을 이뤄내기 위해.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달렸고, 결국 그 목표를 이뤄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아직 스무 살 초반에 불과한 혈기왕성한 육체가 또 뭔가를 갈구했다.
다음 목표, 또 다른 자극, 재미, 인생의 즐거움.
그것을 찾으라고, 너만의 것을 찾아내라고.
한국시리즈 내내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지금 내가 목표로 삼을 만한 일이 뭘까?
솔직히 말하자면 없다.
빅리그 도전?
나는 이미 그곳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선수다. 도전이라는 단어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돈?
이미 돈은 쓰고 넘칠 만큼 있다. 아니, 이 순간에도 계속 불어나고 있다.
명예? 글쎄, 적어도 이 나라 운동선수 중 나보다 더 큰 명예를 가진 선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그렇게 헤매이던 내 마음이 방금 전 성훈이 형의 그 말 한마디에 반응했다.
빅리그에 가보겠냐는, 거기 가면 좀 더 야구를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겠냐는 그 말 한마디.
그 말에 내 몸이, 마음이 저도 모르게 반응했다.
맞다. 아직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지난 생에 이루지 못한 빅리그 정복.
사이 영 위너가 되고, MVP 타이틀을 획득하고, 딱 한 번뿐이지만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도 들어 올리고,
모두 이뤄냈다 생각했건만 아니었다.
아무 잡념 없이 야구에만 몰두하던 시절,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건 세계 최고의 야구선수였다.
과연 지금 나는 세계 최고라 불릴 자격이 있을까?
또 내가 그렇게 자신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해줄까?
WBC와 올림픽에서 만났던 빅리거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곳보다 한 단계 높은, 아주 약간의 방심도 허용치 않는 그 무대에 다시 한번 도전해볼까?
예전에는 갖지 못했던 경험, 그리고 젊고 단단한 육체를 가지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꽤나 흥미로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형, 내가 잠깐 빠져 있어도 우리 팀은 괜찮을까?”
“괜찮아. 이번 시리즈에서 입증했잖아. 당연히 네가 빠지면 타격은 있겠지.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래. 네가 없어도 우리 선수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만한 실력, 그리고 단단한 마인드를 갖고 있으니까.”
“음…….”
“아직 외부에 공개할 수는 없지만 인천 김용재도 데려올 거야. 임준영 선수가 그 친구 얼마나 아끼는지 FA되면 무조건 우리 팀으로 오라고 영업도 다 해놨더라.”
“으음…….”
“수혁아.”
“어.”
“네가 언젠가 나한테 그렇게 말했지. 해야 하는 거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그랬지.”
“나도 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 우리 걱정은 그만하고 하고 싶은 걸 해. 너한테는 그럴 자격이 있어.”
“…….”
“가서 신나게 놀다 와. 그동안 내가 어떻게든 이 팀을 지키고 있을 테니까.”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
“수혁아.”
“어.”
“그 대답은 다른 데서 들어야 할 거 같다. 잠깐만 나랑 구장으로 나가자.”
“구장에?”
성훈이 형의 차를 타고 구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지난 3년간 나와 함께 싸워온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들 안 쉬고 여기서 뭐 하세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수혁아.”
“네, 성오 형.”
“다녀와.”
“어딜요?”
“대표님한테 말 들었어. 너 미국으로 보내고 싶으시다고. 그 말 듣고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 어? 수혁이가 빠지면 우리는 어떻게 하지?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지. 수혁아.”
“네.”
“우리는 동료이지 네 짐이 아니야. 워리어스를 우승시키고 싶은, 영원한 강팀으로 만들고 싶은 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야, 근데 왜 나만 말하냐? 만식아, 너도 한마디 해봐.”
“네, 형님. 수혁아, 긴 말이 필요하겠냐? 여기 준영이도 그렇고, 상진이도, 덕수도, 창모도, 저기 구석에 눈치 보고 있는 네 동기 두 놈도 그렇고… 우리들한테 네가 항상 해주던 말 있잖아? 해야 하는 일 말고 하는 싶은 걸 하라고.”
“…….”
“이번에는 우리가 네게 그 말을 돌려주고 싶다. 가. 워리어스는 우리가 지키고 있을 테니, 가서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다 돌아와. 그동안 어떻게든 은퇴 안 하고 버티고 있을 테니까.”
“어허, 그건 장담 못 하지. 넌 몰라도 나는 이제 서른 후반이야. 언제 은퇴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대타로라도 뛰면서 덕아웃 벽에 똥칠할 때까지 버텨야죠. 흐흐.”
순간 깨달았다.
지난 삶의 후회를 씻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생각했건만, 나는 또 한 번의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의 말처럼 그들은 짐이 아닌 동료였다.
같은 목표를 향해 서로 도우며 전력으로 달려가는 동료들.
그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대답하고 말았다.
“고마워요, 형들. 저 그럼 다녀올게요.”
* * *
[속보! 서울 워리어스 한수혁, 메이저리그 진출 위한 포스팅 신청한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당황한 빅리그 구단들, 긴급회의 소집하고 대책 마련에 들어가] [지난 시즌부터 한수혁 영입전에 뛰어 들었던 양키스와 다저스, 레드삭스, “그는 우리 팀의 유니폼을 입게 될 것” 자신] [500만 불도 안 되는 계약금, 그리고 서비스 타임 동안 제한될 낮은 연봉, 그럼에도 빅리그 진출을 시도하게 된 이유에 대해 묻자 한수혁 “재미있을 거 같다”] [V9 달성한 워리어스 팬들 “당황스럽고 너무 아쉽지만 빅리그에서 뛰는 한수혁을 보고 싶다.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영원히 응원할 것.”] [워리어스 제외한 9개 구단 팬들, 크라우드 펀딩 통해 신문 1면에 광고 게재 “빅리그에서도 성공하고 우리 다시는 보지 맙시다.”]“이런 빌어먹을, FA 전까지는 안 움직일 거라며! 지난 주에도 체크했다며!”
“네, 그게 분명 그랬는데…….”
“그 입 닥치고 지금 우리가 제안할 수 있는 최대치 다 끌어 모아! 그리고 그놈이 뭘 원하는지 빨리 파악하고!”
지난 시즌이 끝난 후 이미 한 차례 물을 먹은 양키스와 레드삭스, 다저스 같은 빅마켓 팀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그들에게 고작 2,500만 달러밖에 안 되는 포스팅비는 껌값에 불과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규정에 따라 묶인 계약금과 낮은 연봉을 상쇄할 수 있는, 한수혁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카드가 필요했다.
한편, 그런 빅마켓 팀들의 움직임을 보며 남 몰래 웃음 짓고 있는 팀이 있었다.
타이 존슨을 앞세워 한수혁의 마음을 아주 살짝 흔들어 놓았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였다.
“좋아, 그 친구가 우리 제안에 조금은 솔깃했다며? 때가 됐군. 이번에야말로 타이를 이용해 보자고. 어차피 이번 싸움은 돈이 중요한 게 아니야. 어떻게 하면 한수혁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그게 중요하다고.”
“저기… 사장님.”
“왜? 무슨 일인지 몰라도 나중에 얘기하고 일단 타이에게 협조부터 요청해.”
“그게, 타이 존슨 에이전트 쪽에서 갑자기 연장 계약에 대해 조금 더 신중하게 검토를 해보자는 연락이…….”
“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자신하던 세인트루이스에 비상이 걸렸다.
한편 한수혁 영입에 나선 건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재정 상황이 파탄 나기 직전이라 알려진 마이애미 마린스를 제외한, 메이저리그 29개 전 구단이 한수혁 영입전에 뛰어 들었다.
2,500만 달러라는 포스팅비에 손을 절레절레 흔들던 템파베이나 오클랜드 같은 스몰 마켓 팀들마저 부채를 끌어 들여서라도 어떻게든 그를 데려오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29개 빅리그 구단과 팬들, 그리고 한수혁 영입으로 아시아권 공략에 나설 계획인 메이저리그 사무국 등이 관심있게 지켜보는 가운데 드디어 한수혁의 포스팅 입찰 결과가 발표되었다.
“발표하겠습니다. 지난 11월 30일 진행된 포스팅 입찰 결과… 총 29개 팀이 입찰했으며, 모든 팀이 2,500만 달러 최고액을 써냄에 따라 한수혁 선수는 향후 30일간 해당되는 29개 팀과 자율 협상에 들어가게 됨을 알려드립니다. 이상입니다.”
“국장님! 질문 하나만! 하나만요!”
“네, 말씀하세요, 기자님.”
“빠진 구단이 어디입니까?”
“다들 아시잖아요? 재정난에 빠진 그 팀이 맞습니다.”
“세상에… 그럼 정말 나머지 29개 팀이 전부 2,500만 달러를 써냈다는 말입니까?”
“네, 맞습니다.”
그렇게 마이애미 말린스를 제외한 빅리그 29개 팀이 한수혁 영입을 위한 전쟁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