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14)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13화(214/412)
#213. 입단식
“오빠!”
“왜, 예린아. 아침부터 왜 그렇게 흥분한 거야? 무슨 일 있어?”
한수혁을 만난 지 벌써 3년, 민예린이 처음으로 그를 향해 화를 냈다.
아니, 내려 했다.
세상에, 갑자기 미국이라니, 미국이라니!
물론 언젠가는 빅리그로 갈 수도 있겠구나 짐작은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신에게 귀띔 한 마디 없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결정해 버리다니.
민예린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익… 저는 대체 오빠에게 무슨 존재인가요?”
“응?”
“저는… 저는…….”
민예린의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느낀 한수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무슨 존재긴, 여자 친구잖아. 음, 내가 조금 오버한 건가? 일주일에 몇 번씩 밥도 같이 먹고, TV도 보고, 해외 여행도 다녀왔고… 무엇보다 2년 전에는 포옹도 하고 요즘도 가끔 손도 잡고 그러잖아. 그럼 여자 친구 아닌가?”
“헤에…….”
여자 친구라는 말을 들은 민예린의 표정이 멍하게 변해버렸다.
첫 포옹 이후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진도도 못 나가고 있는 두 사람, 그 와중에 갑자기 알게 된 한수혁의 미국 진출 소식.
오늘에야말로 제대로 따져야겠다 생각했던 민예린이었건만 그 여자 친구라는 말 한마디에 완전히 무장해제가 되고 만 것이다.
“예린아, 혹시 내가 제멋대로 생각한 거였을까? 혹시 그런 거면 사과하고. 난 우리가 사귄다고 생각했거든.”
“아뇨!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그보다 미국 가신다고요? 좋죠, 역시 야구는 미국이죠! 알았어요. 어차피 저도 이제 또 휴식기 들어갈 타이밍인데 1년 또 쉬면서 미국에서 야구나 볼래요. 아빠도 좋아하시겠다. 히힛.”
또 한 번 팬들의 가슴을 애태우게 만들 민예린의 휴식이 그렇게 즉석에서 결정되었다.
* * *
규정에 묶여 턱없이 초라해질 계약금과 연봉을 대신하기 위해 수많은 빅리그 구단과 기업들이 머리를 맞대고 한수혁에게 내밀 당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한수혁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변수가 따로 있다는 걸 말이다.
“그러니까 다니엘, 당신 말은 한수혁 그 친구가 날 원한다는 겁니까?”
“네, 정확히는 자신의 뒤를 지켜줄 리그 최고의 타자를 원하고 있죠. 걸어서 1루로 나가는 게 너무 지겹다는군요.”
“으음… 좋아요.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왜 매리너스로 가야 할까요? 카디널스로 그를 데려오는 게 더 빠를 거 같은데?”
“그 이유는 방금 말씀드렸습니다. 한수혁 선수가 원하는 리그 최고의 타자에는 당신을 포함해 양키스의 루카스 앤더슨이나 다저스의 애런 데커, 보스턴의 제리 와그너가 포함되어 있지요.”
“그 녀석들이 나와 동급이라… 뭐, 인정할 수는 없지만 일단 그렇다 치고, 그런데요?”
“타이, 그런 이유로 당신이 카디널스에 남은 상태로 한수혁 선수의 선택을 기다릴 경우 성공 확률은 4분의 1입니다. 그 선수들을 보유한 양키스나 레드삭스, 다저스가 조건 면에서 카디널스에 뒤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흠.”
“하지만 저희 구단으로 오면? 그 성공 확률은 100%로 올라갑니다. 한수혁 선수가 원하는 조건 중에 우리가 갖지 못한 유일한 조각이 바로 당신이니까요.”
“확실합니까? 만약 내가 매리너스로 이적했는데… 한수혁을 데려오는 데 실패하면?”
“두말할 것 없이 확실합니다. 지난 1년간 저희 매리너스는 한수혁 선수의 마음을 사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고, 이제 마지막 단계만이 남았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하시다면… 네, 계약서에 1시즌 종료 후 옵트아웃 조건을 넣어드리죠. 그럼 되겠습니까?”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다니엘이 선수 측에서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요청할 수 있는 옵트아웃 조항이 삽입된 5년짜리 계약서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타이 존슨이 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거라는 걸, 그리고 한수혁과 한 팀이 된 그가 절대 옵트아웃을 발동시키지 않을 거란 걸.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에이전트와 함께 꼼꼼히 계약서를 검토한 타이 존슨이 입을 열었다.
“좋아요, 한번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죠. 얼마 남지 않은 내 선수 생활이 이제 좀 재미있어질 거 같군요.”
“환영합니다, 타이.”
* * *
사람을 대하는 말투와 행동, 표정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다.
아직까지도 리그 최고의 선수로 군림하고 있는 타이 존슨, 그런 대선수 앞에서도 당당했던 다니엘이 한껏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문서 하나를 앞으로 내밀었다.
“하하, 한수혁 선수,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늦었죠? 망할 놈의 사장이 결제를 늦게 해주는 바람에… 걱정 마십쇼. 일단 저희 팀에 입단하고 나면 어떤 일에서든 절대 기다리시는 일이 없도록 제가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시애틀 단장 다니엘 미첼이 타이 존슨을 설득하는 사이, 다른 28개 구단은 자신들이 제안할 수 있는 최대치의 금액, 그리고 지원책을 마련해 한수혁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다.
각 구단의 단장, 심지어 레드삭스와 다저스에서는 사장을 직접 보내 한수혁을 설득했다.
파격적인, 어쩌면 향후 메이저리그에서도 다시는 찾아보기 힘든 그런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그렇게 많은 구단들로부터 제안을 받았지만 한수혁은 여전히 시큰둥하기만 했다.
마음에 드는 제안이 없었다.
그나마 제안 자체만 놓고 보면 양키스의 것이 가장 끌렸지만 그 팀은 한수혁에게 명문팀에서 뛰기 위한 이런저런 제약을 걸려 했다.
실력이든 재력이든 무엇 하나 아쉬울 게 없는 한수혁이다.
그가 빅리그에 가려는 건 말 그대로 야구를 재미있게 즐기고 싶은, 그리고 야구 선수로서 자신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고작 돈 몇 푼에 이런저런 참견을 받게 되는 건 절대 사양이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지난 1년간 꾸준한 성의를 보인, 거기에 단 한 번도 그를 재촉하지 않고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온 시애틀이야말로 현재 한수혁 영입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구단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시애틀이 한수혁의 마음을 움직일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자, 한수혁 선수. 약속드린 대로 타이 존슨을 데려왔습니다. 방금 저희 측과 계약을 체결했고 이제 곧 공식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카디널스 녀석들은 깜짝 놀라겠군요. 하하.”
“음, 정말 해내셨네요.”
“물론이죠! 아,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이건 사실 지난번에도 이미 한 번 말씀드렸지만…….”
“신임 감독 문제인가요?”
“맞습니다. 저희는 한수혁 선수 영입과는 상관없이 현 워리어스 수석코치인 벤자민 레이놀즈에게 감독직을 제안할 생각입니다.”
“음.”
3년 내내 자신을 향해 일편단심을 보이고 있는 구단 수뇌부.
뒤를 지켜줄 최고의 타자 타이 존슨.
거기에 한수혁에 대한 관리와 기용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인 벤자민 레이놀즈의 감독 선임.
한수혁의 머릿속에서 이러저리 움직이던 조각들이 마침내 하나로 뭉쳐졌다.
그가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좋습니다.”
“네?”
“좋다고요. 계약하시죠.”
“커헉! 이렇게 쉽게… 그럼 연봉은 어떻게든 저희가…….”
“됐어요. 그거 한두 푼 더 받겠다고 괜히 기존 연봉 체계 무너뜨릴 이유도 없고, 그냥 다른 포스팅 선수들처럼 대해주시면 됩니다.”
“어어어억! 네! 네! 감사합니다!”
“나머지는 저기 민태현 씨랑 논의해주세요. 제가 아직 에이전트가 없어서.”
* * *
[속보! 서울 워리어스 한수혁, 포스팅 통해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 [이적료 2,500만 달러, 계약금 395만 달러, 한수혁의 대리인 “파트너십 같은 잡다한 계약은 모두 거절했다. 의뢰인이 원하는 건 돈이 아닌 자유.”] [살아 있는 전설 타이 존슨에 이어 한수혁까지 영입하는 데 성공한 시애틀 매리너스,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 청신호?] [매리너스 에이스 라이언 티보우 “두 사람의 입단을 환영한다. 우리는 이제 우승에 도전하는 팀이다.”] [눈앞에서 한수혁 놓친 빅리그 구단들 허탈… 그 와중에 타이 존슨까지 뺏긴 카디널스는 초상집 분위기] [얌전하기로 유명한 카디널스 팬들 이례적인 불만 폭주, 무능한 사장과 단장 사퇴하라며 시위] [미국으로 한수혁을 떠나보내게 된 서울 워리어스 “그가 뛰기에 국내 무대가 좁다고 생각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최고의 무대에서 뛰는 모습을 기대해달라. 언젠가 그는 돌아올 것이다. 한수혁은 영원한 워리어스 선수다.”] [잠실 야구장 앞에 모인 워리어스 팬들, 한수혁의 이름을 연호하며 미국 진출 응원 “그곳에서도 최고의 선수가 되길”, 응원에 합류한 타팀 팬들 “신인왕도 먹고 MVP도 먹고 영원히 그곳에서 뛰다 행복하게 은퇴하길.”] [한수혁이 뛰게 된 시애틀 매리너스는 어떤 팀? 1977년 창단 이후 아직까지 월드시리즈 진출 경험 없는 만년 중하위팀] [전문가들 “지난 7년 가까이 탱킹을 하며 모은 유망주들이 동시에 폭발하고 있는 팀, 하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해 우승 도전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팀”] [KBC 고동식 해설위원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에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 타이 존슨과 한수혁의 영입이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것, 시애틀은 내년 시즌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우승 1순위 후보”] [지난 2년간 꾸준한 활동 이어온 탑스타 민예린 “재충전을 위해 휴식에 들어갑니다. 좋은 음악 들고 다시 찾아뵐게요!”]* * *
“이쪽으로 오시죠. 좀 더 좋은 곳으로 모시지 못해 송구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진작에 미리 알았다면 제대로 모실 수 있는 곳을 준비했을 텐데…….”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구장인 T-모바일파크, 그중에서도 구단주 그룹이 전용으로 이용하는 스카이 박스에서 남자 하나가 땀을 뻘뻘 흘리며 누군가를 접대하고 있었다.
“정말 괜찮아요. 그냥 우리 애가 이걸 꼭 보고 싶다고 해서 갑자기 결정된 거니까 크게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해요. 그렇죠, 여보?”
“음.”
언뜻 보면 30대,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보다 조금 더 연륜이 느껴지는 강인한 인상의 동양계 남자, 그 남자의 팔짱을 낀 금발의 미녀.
그리고 벌써부터 스카이박스 창문에 찰싹 달라붙어 그라운드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검은 머리 소년.
조금 이상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들은 바로 이 미국을 지배하는 힘, 로펠스 가문의 가주와 그 가족들이었다.
“오히려 저희가 방을 뺏은 기분이라 미안하네요. 제가 오늘 일은 잊지 않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중계권 계약을 맺은 게 저희 가문 계열의 방송사라고요?”
“네, 네, 맞습니다, 안젤라 가주님. 지금 중계권 재계약 논의가 한창입니다.”
“좋아요. 제가 그쪽에 좀 더 신경 쓰라고 말해놓을 테니, 혹시 뭔가 부탁할 일 있으면 이 기회에 하세요. 오늘 일에 대한 보답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구단주 그룹, 그 무리를 대표하는 장년의 남자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스카이박스를 빠져나갔다.
WBC 결승전에서 처음 한수혁을 본 후 단숨에 그의 팬이 되어버린 한 소년,
12월 둘째 주 어느 날, 머지않은 장래 미국을 지배하는 가문의 주인이 될 소년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수혁의 시애틀 매리너스 입단식이 거행되었다.
* * *
“자! 여러분, 소개합니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 세계 최고의 타자와 투수를 동시에 영입했습니다. 두 명이냐고요? 아닙니다. 한 명입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선수, 시애틀 매리너스의 새로운 등번호 1번, 한수혁 선수입니다!”
“우아아아아!”
“그래! 퍼킹! 이거지! 바로 이거지!”
“모처럼 만에 마음에 드는 짓을 했군! 좋아! 내 돈을 다 가져가라고, 이 망할 놈의 매리너스!”
“유니폼! 저 친구 유니폼은 언제부터 파는 건데!”
구단 측에서 준비한 사전행사가 모두 끝나고 단장 다니엘 미첼의 입에서 한수혁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T-모바일파크에 앉아 있던 시애틀 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러댔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처음 입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매리너스 유니폼이 잘 어울리는 남자.
KBO에서 3년 연속 4할, 그리고 2년 연속 70홈런 이상을 쏘아 올린 리그 파괴자.
2년 연속 20승, 거기에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투수.
그리고 WBC와 올림픽에서 빅리거들이 대거 포함된 국가들을 모두 박살 내며 자신의 기량을 입증한 최고의 선수.
메이저리그 29개 팀이 모두 달라붙어 영입전을 펼친 한수혁.
그가 걸어 나오자 몇 사람이 다가가 그에게 꽃다발을 건네주며 악수를 청했다.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스윙이었어, 친구. 매리너스를 잘 부탁해.”
“어렸을 때 당신의 팬이었습니다.”
“그래? 정말이지? 이거 빈말인 걸 알면서도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는데?”
시애틀 매리너스의 영구결번이자 명예의 전당 입성자, 그리고 약쟁이들이 판치던 90년대 후반, 약물에 전혀 손을 안 대고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최고의 타자 켄 그리피 주니어.
“이제 내 차례군. 좋아, 한. 나는 자네가 우리 팀에서 오래 뛰면서 내 통산 안타 기록을 깨줬으면 좋겠군.”
“음… 안타는 조금 오래 걸릴 테니 일단 홈런 기록부터 깨볼까요?”
“뭐? 하하, 이런 한 방 맞았군.”
켄 그리피 주니어와 마찬가지로 매리너스의 영구결번인 동시에 명예의 전당 입성자인, 한 팀에서만 18년을 뛰며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에드가 마르티네즈.
그 두 명의 레전드와 악수를 나눈 한수혁이 어딘가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어정쩡한 얼굴로 꽃다발을 들고 있는 매리너스의 에이스 라이언 티보우, 그리고 한수혁에 앞서 이미 입단식을 가진 타이 존슨이 함께 서 있었다.
“흐흐, 드디어 같이 뛰게 되었군. 잘 왔어. 친구.”
“타이, 정말 시애틀로 올 줄은 몰랐네요.”
“젠장, 나도 내가 카디널스를 떠날 줄은 몰랐지. 아무튼 그런 건 됐고, 이봐, 라이언. 뭐 하고 있어? 이리 와.”
타이 존슨의 말에 라이언이 여전히 뻣뻣한 자세를 유지한 채 그쪽으로 다가왔다.
사실 한수혁에 대한 그의 감정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 수, 아니, 두 수 아래로 깔봤던 한국팀을 이끌고 자신이 포함된 미국을 완전히 박살 내버린 선수.
그런 한수혁이 같은 팀 유니폼을 입게 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경쟁심이었다.
지고 싶지 않다는, 다른 건 몰라도 에이스 자리만큼은 뺏기고 싶지 않다는 라이벌 의식.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건 안도감이었다.
만에 하나 그가 다른 팀 유니폼을 입게 되고 리그에서 만나게 된다면?
‘Holy shit……!’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어쨌든 한수혁은 결국 다른 팀의 오퍼를 모두 뿌리치고 시애틀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두 사람은 이제 적이 아닌 동료가 되었다.
“시애틀에 온 걸 환영해.”
“요즘도 커브를 던질 때 껌 씹던 속도가 빨라지나?”
“뭐?”
“고쳐, 그거 안 좋은 버릇이야.”
“그게 대체 무슨…….”
멍한 표정이 된 라이언을 보며 슬쩍 웃음을 지어 보인 한수혁이 단상에 올랐다.
그 앞에 마이크가 놓아졌다.
한수혁이 담담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표정만큼이나 담담한 목소리로 시애틀 팬들을 향해 말했다.
“예전에는 우승 도전에 실패했습니다. 정말 아쉬웠죠. 하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겠습니다.”
예전에는 실패했다는 말, 그 누구도 그 말의 진짜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수혁의 영어가 미숙해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금도 그의 머릿속에는 어깨 부상으로 인해 부상과 재활을 반복해야만 했던 과거의 기억, 그리고 사상 처음으로 진출한 월드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에게 무릎을 꿇었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가 다시 한 번 말을 이었다.
“월드시리즈 우승, 그래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