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17)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16화(217/412)
#216. 돌아온 빅리그
“제기랄! 작년 내 연봉 절반이 야구 티켓값으로 나갔다고! 잘 좀 해봐!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타이 존슨까지 데려와 놓고 또 4위 할 거면 그냥 지금 팀을 해체해 버리라고!”
“티켓값 좀 내려! 이 망할 놈들아! 야구는 더럽게 못하는 것들이 왜 이렇게 돈만 밝히는 건데!”
고작해야 좌석에 따라, 그리고 정규 시즌과 포스트 시즌이냐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KBO와 달리 메이저리그의 티켓 가격은 팀에 따라, 상대 팀에 따라, 요일에 따라, 날짜에 따라, 그리고 경기 중요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한마디로 그때그때 다르다는 소리다.
지난 2년간 라이언 티보우와의 장기 계약을 포함, 준척급 선수 여럿을 영입하며 재정에 어려움을 겪게 된 매리너스는 결국 고가의 티켓 정책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야구 경기 중계 시청률과 평균 관중수에서 메이저리그 상위 10위권을 유지하면서도 비교적 얌전하다는 평을 들었던 시애틀 팬들이었지만 비싼 티켓 가격을 지불하고도 팀이 2시즌 연속 4위에 머물자 결국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돈만 밝히는 수전노들! 능력도 없으면서 왜 구단을 움켜쥐고 있는 건데?”
“매각해! 차라리 팀을 넘기라고!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우리 집 고양이한테 구단을 맡겨도 이것보다는 운영을 잘할 거다! 이 멍청한 놈들아!”
사실 시애틀 매리너스는 메이저리그 전 구단 중 아시아권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팀이다. 위치적으로 아시아와 제일 가깝다, 뭐 그런 얘기가 아니다.
일단 1991년부터 2016년까지 매리너스를 소유했던 구단주가 다름 아닌 일본 게임회사 닌텐도의 미국 법인인 닌텐도 아메리카다.
시애틀 매리너스가 매물로 나오고 결국 연고지를 이전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상원위원 등이 나서 지역 내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 아메리카 등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뜬금없이 야구에 아무 관심도 없던 닌텐도가 매리너스를 1억 불에 매입한 것이다.
매리너스 팬들 입장에서는 고마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매리너스의 구단주가 된 닌텐도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는 “미국의 도움으로 닌텐도가 이만큼 성장했으므로 그 보답을 위해 야구단을 인수했다”며, 구단을 소유한 25년간 팀 운영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은 채 지분만 소유하는, 그야말로 바람직한 구단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딱 그것 때문이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스즈키 이치로 등 일본 선수 여럿이 매리너스에서 빅리그 생활을 시작했으며, 한국 선수들 역시 여럿 이 팀에서 활약했다.
시간이 흐르며 닌텐도가 지분 대부분을 매각하고, 여러 기업과 개인으로 구성된 새로운 구단주 그룹이 들어선 후 기조가 조금 바뀌기는 했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시애틀 팬들은 아시아 선수들에게 우호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싼 돈 주고 데려온 놈들은 왜 꽁꽁 싸매고 안 내보내는 건데?”
“젠장, 쓰지도 못할 선수 데려온 거 아니야? 또 헛돈 쓴 거 아니냐고!”
“니들이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뒈져! 뒈져버리라고!”
지난 3월 한 달간 애리조나에서 펼쳐진 20번가량의 시범 경기 동안 한수혁과 타이 존슨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시범 경기 첫날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한 한수혁은 1이닝 동안 공 12개를 던지며 삼진 1개, 범타 2개를 기록했다.
타자로서는 단 2타석에 등장해 볼넷 한 개, 안타 한 개를 기록한 게 전부다.
타이 존슨 역시 스무 번의 경기 중 단 세 게임에만 얼굴을 내밀었을 뿐이다.
부상설, 팀 내 불화설, 계약에 대한 불만설까지 다양한 추측들이 나왔지만 매리너스 측은 그저 선수들과 이미 합의한 내용이다, 두 선수는 정규 시즌에 맞춰 컨디션을 끌어 올리고 있으며 구단과 선수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렇게 애리조나에서의 시범경기 일정이 모두 끝내고 홈으로 돌아와 다시 3번의 시범경기를 치렀지만 팬들은 한수혁과 타이 존슨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젠장, 고작해야 하위리그에서 뛴 놈을 무슨 구원자라도 되는 양 떠받들 때부터 불안했다고!”
“타이 존슨, 그놈도 이제 늙었어. 맞아, 어딘가 고장난 거야. 그러니 못 나오는 거지!”
“맙소사! 이러다가 설마 최하위로 떨어지는 거 아냐? 돈은 돈대로 쓰고?”
그 상태로 정규 시즌이 개막되었다.
적게는 수백 달러에서 많게는 수천 달러의 엄청난 가격을 지불하고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매리너스의 구단주와 운영진, 그리고 감독을 향해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그것은 불안감이었다.
오랜 시간 이어져온 탱킹을 끝내고 마침내 윈나우를 선택한 팀이 결국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바닥으로 틀어박힐지 모른다는 불안감.
지금까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그런 팀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시애틀 출신의 프랜차이즈 스타 라이언 티보우와의 장기 계약 성공, 그리고 오랜 시간 탱킹을 하며 수집해온 유망주들의 동시 개화.
본래대로라면 지난 2년 연속 쭉쭉 치고 나갔어야 할 팀 성적이 4위에 그쳤다.
5개 팀 중 4위다. 만약 휴스턴이 탱킹 중이지 않았다면 최하위도 가능했을 성적이다.
가장 열받는 건 언제나 시애틀 팬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라이벌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그들의 절반도 안 되는 페이롤을 갖고도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는 거다.
“다 지더라도 저놈들한테만은 안 돼! 돈 쓴 보람을 느끼게 해 달라고!”
“밟아! 오클랜드 저 망할 놈들을 밟아버리라고!”
“빌어먹을! 왜 돈은 돈대로 쓰고 매번 저놈들한테 당하는 건데!”
규모가 고만고만한 팀들로 이뤄진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에서 그나마 시애틀은 제법 많은 예산을 사용하는 팀에 속했다.
반면 지난 시즌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한 오클랜드는 예전부터 적은 예산으로 선수단을 운영해 최고의 효율을 뽑아내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머니볼의 원조 같은 팀이다.
선수들의 이름값, 구단의 예산, 홈구장, 평균 관중, 모든 면에서 자신들보다 턱없이 부족한 오클랜드가 매년 지구 순위 최상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에 시애틀 팬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이번 개막전 상대가 바로 그 오클랜드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링센트럴 콜리세움 시대를 끝내기 위해 신구장을 짓기 시작한 오클랜드는 재정 문제로 인해 완공을 늦추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오클랜드는 1만 명 규모의 라스베이거스 볼파크를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중이었고, 결국 올 시즌 개막전 장소를 시애틀에 양보하게 되었다.
매리너스 팬들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경기에 이겼을 때의 이야기다.
만약 여기서 저 지긋지긋한 거지 놈들에게 지게 된다면? 스윕이라도 당하게 된다면?
“아아악! 그냥 다 필요 없고 팀 해체해버려!”
“차라리 연고지를 옮기지 그랬어! 이 좆 같은 야구를 안 볼 수 있게!”
“차라리 축구를 볼 걸 그랬어! 그 자식들은 작년에 우승을 했다고!”
개막전 사전 행사가 모두 끝나고, 백발의 테너가 등장해 미국 국가를 부르고,
드디어 경기 개시가 임박하자 팬들의 아우성 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쟤들 대체 왜 저래? 여기 분위기가 원래 이랬나?”
“몰라, 야. 오늘 몸 사려야겠다. 폭동이라도 일어날 분위기인데?”
“그렇다고 설렁설렁 하지는 말고, 일단 승수는 확실히 챙겨서 가자고.”
“흐흐, 그건 당연한 거고.”
덕아웃에 앉은 오클랜드 선수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관중들의 눈치를 보았다.
이 구장을 방문해 시애틀 멍청이들을 밟아준 게 한두 번이 아니건만, 오늘은 분위기가 너무나도 살벌했기 때문이다.
사실 시애틀이 항상 이렇게 약팀이었던 건 아니었다.
창단 이후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 팀이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지만 그래도 나름 전성기라는 걸 가져본 팀이다.
랜디 존슨, 켄 그리피 주니어, 에드가 마르티네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제이 뷰너, 스즈키 이치로.
메이저리그 팬이라면 그 이름을 모를 수 없는,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대 선수들이 이 팀에서 함께 뛰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짧지만 화려했던 시애틀의 전성기였다.
랜디 존슨이 주축이 된 마운드, 거기에 켄 그리피 주니어, 에드가 마르티네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제이 뷰너로 이어지는 강력한 타선.
그렇게 시작된 시애틀의 전성기는 2001년 절정에 달했다.
연봉 문제로 감정이 상한 랜디 존슨이 휴스턴으로 떠나고, 투수 친화적인 구장에 불만을 느낀 켄 그리피 주니어가 신시내티로 이적하고, 당시만 해도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격수였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텍사스로 이적하며 팀이 그대로 와해되는가 싶었건만…….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스즈키 이치로가 타율 1위, 최다안타 1위, 도루 1위를 기록하며 신인왕과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 MVP를 석권해 버렸다.
그리고 함께 성장했던 동료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홀로 팀에 남은 프랜차이즈 스타 에드가 마르티네스가 타선의 중심을 잡았다.
마운드에서는 제이미 모이어와 애런 셀레 등의 선발진, 그리고 제프 넬슨과 사사키 가즈히로의 중간계투진이 대활약을 하며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그 결과 시애틀은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승 타이 기록은 116승을 기록하며 당당히 챔피언십까지 진출했다. 물론 양키스에게 박살이 나며 그 기적은 끝나고 말았지만.
혹자는 말한다.
그때가 어쩌면 시애틀의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의 기회였을지도 모른다고.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시애틀은 여전히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에 진출해보지 못한 유일한 팀’이라는 불명예를 달고 있었다.
뭘 해도 안 된다는 절망감, 선수들과 운영진에 대한 불신.
팬들의 가슴 속에 깊이 자리 잡은 감정들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복잡한 분위기 속에서 드디어 시애틀과 오클랜드 간의 2030년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시작되었다.
* * *
“출전 준비는 됐지?”
“물론이죠, 코치, 아니, 감독님.”
“좋아. 밸런스를 잡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렸지만 난 자네를 믿어. 아니, 믿는다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불신의 표현이겠지? 하하, 챔피언. 나가서 실력을 보여줘. 저 관중들의 야유를 환호성으로 바꿔 놓으라고.”
“그게 바로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죠.”
한수혁이 팬들에게 처음으로 선을 보이는, 거기에 자신의 감독 데뷔전을 치르게 된 벤자민 레이놀즈가 흐뭇한 표정으로 한수혁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몰라보게 커진 승모근이 너무나도 믿음직스럽다.
“자, 그럼 가보자고.”
“준비됐습니다.”
“좋아.”
지난 겨울 한수혁은 빅리그에 적응하기 위해 체중을 불리고, 타격 자세를 변경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그가 시범경기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굳이 정규 시즌도 아닌 경기를 뛸 이유를 찾지 못한 것도 있지만, 미세한 영점이 잘 맞지 않아 이를 조정하는 데 시간이 걸린 탓도 있었다.
어쨌든 제이콥과 함께 시즌 준비에 전력을 쏟았던 한수혁은 결국 자신이 목표했던 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키 193에 체중 113㎏.
한국에서 뛸 때와 비교해 무려 17㎏이 늘어났다.
하지만 전혀 비대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체중을 생각하면 오히려 날렵해 보일 정도다.
그렇게 몸 만들기를 끝낸 한수혁은 코칭스태프와 함께 자신의 롤을 새롭게 정립했다.
일단 타격에 집중하기 위해 유격수 수비는 포기하기로 했다.
한수혁이 한국에서 어느 정도 파워를 포기하고 체중을 95㎏ 선으로 유지했던 건 워리어스 팀 사정상 유격수로 뛸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애틀에는 빅리그 4년 차를 맞은 조쉬 올리버라는 좋은 유격수가 있었다.
또한 워리어스는 한수혁 자신의 팀이었기에 여러 가지 불편함과 희생을 감수한 것이지만 굳이 이곳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타자로서, 그리고 투수로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서는 증량이 필요했고, 그 결과 한수혁은 유격수가 아닌 다른 포지션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2번 타자 3루수 한수혁.
이번 시즌 한수혁은 주로 수비 부담이 적은 3루수와 좌익수, 혹은 지명타자로 뛰게 될 것이다.
하나라도 더 많은 홈런을 치기 위해, 그리고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던 시애틀을 정상에 올려놓기 위해.
“빅 리그 데뷔전을 치르게 된 기분이 어때?”
“글쎄요, 어디서 하든 야구는 그냥 야구죠.”
“흐흐, 하긴 그렇지. 그나저나 시애틀 팬들도 엄청나군. 우릴 욕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다니.”
“경기가 시작되면 달라지겠죠.”
“그렇겠지. 그렇게 만들어야지. 좋아, 그럼 나가 보자고.”
그와 마찬가지로 시범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했던 타이 존슨이 글러브 낀 손으로 한수혁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변화가 있었던 건 포지션뿐만이 아니었다.
투수 로테이션 역시 워리어스 때와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올 시즌 초반, 시애틀은 6선발 로테이션을 사용할 예정이다. 한수혁의 적응을 위해서였다.
선발로 등판한 다음 날에는 라인업에서 빠져 휴식을 취하고, 그 다음 날에는 지명타자, 그리고 다음 날에는 필드 플레이어, 한수혁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벤자민 레이놀즈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빅리그에서 뛰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우우우!”
“똑바로 해! 똑바로 하라고! 이 개자식들아!”
한수혁을 비롯, 오늘 선발로 출전한 선수들이 덕아웃을 나와 각자의 수비 위치로 뛰어갔다.
여전히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 관중들을 보며 한수혁이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차피 저 야유가 금세 환호로 바뀔 거라는 걸 확신하는 그런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