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1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18화(219/412)
#218. 예견된 사고
[KBO에서 건너온 루키의 충격적인 데뷔전, 1회 첫 타석 투런 홈런, 그리고 곧바로 퇴장] [주자와 포수 간 말싸움, 그리고 이어진 한수혁과 포수 간의 2차 충돌… 그 결과는 포수의 턱뼈 골절] [한수혁에게 얻어 맞은 오클랜드 포수 데스몬드 킹, 장기간 결장 불가피할 듯] [빅리그 1호 홈런, 1호 퇴장을 동시에 기록한 시애틀의 루키, 그 누구보다 강렬했던 데뷔전] [선수들 간에 벌어졌던 말싸움의 원인? 메이저리그 사무국, 철저한 조사 후 징계수위 발표] [1회 주전포수를 잃은 오클랜드, 시애틀 매리너스에 5 대 3 패배] [한수혁 퇴장 후 백투백 홈런을 날린 타이 존슨 “그 친구가 흥분했다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 한수혁은 누구보다 베이스볼에 대한 존중이 깊은 선수.”] [시애틀 팬들 “최고의 데뷔전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무조건 오클랜드 놈들이 잘못했을 것이 확실하다.”] [오클랜드 팬들 “루키 주제에 감히 배트 플립을 한 것만으로도 모든 잘못은 그에게 있는 것”] [혼란의 와중에 매리너스 에이스 라이언 티보우, 개막전 7이닝 2실점으로 첫 승] [7년 만에 개막전 승리를 기록한 시애틀, 남은 건 한수혁에 대한 징계수위]* * *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그 망할 놈의 오클랜드 자식이 한수혁 선수와 데릭 선수의 고향을 언급하면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말이군요.”
“네, 뭐 그렇죠.”
“좋습니다. 이건 뭐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는 문제군요. 어떻게든 저희 측 징계를 최소화하고, 데스몬드 그 빌어먹을 놈의 처벌은 최대한 받아내 보겠습니다. 일단 집에 들어가서 쉬고 계세요. 결정이 나는 대로 바로 연락드리죠.”
“그래요, 다니엘.”
시애틀 단장실, 담담한 표정의 한수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제 투런 홈런, 그리고 상대 포수의 턱뼈를 골절시키는 멋진 펀치를 동시에 날린 한수혁은 그 자리에서 바로 퇴장을 당했다.
샤워를 마친 한수혁은 곧바로 단장실로 와 다니엘과 담당 직원에게 사건의 경위를 털어놓았다.
그 말을 들은 다니엘은 이번 일의 명분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확신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는 쓰레기 같은 단어들이 그 오클랜드 포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주심이 현장에서 그 말을 못 들은 건 아무 상관없다.
그가 차고 있던 블랙박스에 당시의 모든 사건 정황이 담겨 있을 것이니까.
“그럼 전 이만.”
“잠시만요, 한수혁 선수.”
단장실을 나서려는 한수혁을 다니엘이 잡아 세웠다.
꼭 하나 묻고 싶은 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네?”
“방금 전까지 대화는 공식적인 거고… 혹시 진짜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방금 전 한수혁이 펀치를 날리는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본 다니엘은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데스몬드에게 주먹을 날리는 한수혁의 표정에서 그 어떤 흥분의 기색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KBO에서 한수혁이 3시즌 동안 뛴 모든 경기를 보아온 다니엘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를 영입하며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
일반적으로 얌전하고, 심지어 낯을 가리기 일쑤인 다른 아시아권 선수들과 달리 한수혁이 얼마나 거칠 것 없는 선수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 불 같은 성격의 한수혁이 빅리그의 꼰대들과 만난다면?
이번 벤클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오늘 이 상황은 조금 이상했다.
‘화가 난 게 아닌 거 같은데?’
한참 동안 영상을 돌려 본 다니엘은 확신했다.
오늘 이 일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란 걸 말이다.
분명 한수혁은 화가 나 있지 않았다.
그런 다니엘의 표정을 읽은 한수혁이 별 것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오클랜드 저 자식들은 한번 제대로 밟아줘야 할 필요가 있어서요.”
“네?”
“우리 팀 애송이들이 그놈들 눈치를 보는 거 같더군요. 음, 나 때는 안 그랬는데… 약해 빠져 가지고.”
“네에?”
“아, 그냥 못 들은 걸로 하시고요. 오늘 일은 그냥 백인 선수의 인종차별적 발언에 소수 민족 선수가 분노를 참지 못한, 뭐, 그런 일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아, 네, 네, 물론 그렇지요. 알겠습니다. 금방 처리하고 연락드리죠.”
“고마워요, 다니엘.”
“별 말씀을.”
대화를 마친 한수혁이 단장실을 빠져나갔다.
그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가만히 구석에서 눈치를 보던 다니엘의 보좌관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저기, 단장님. 아무리 그래도 선수한테 너무 비굴하게 구는 것 아닙니까?”
“뭐? 아무튼 머리 좋은 놈들은 이게 문제야. 하버드를 나오면 뭐 해? 인간 관계의 본질을 이해 못 하는데.”
“네?”
“저 친구가 다른 루키들처럼 고작 연봉 60만 달러나 받자고 야구를 하는 것 같아?”
“그렇기는 하지만 결국은 슈퍼스타가 돼서 수천만 달러를 벌려고 저 고생을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멍청한 소리……. 지난번에 말을 해줬는데 여전히 이해를 못 하는군. 됐고, 사무국에 바로 전화 연결해. 과한 징계가 내려올 경우 그 멍청한 자식의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 삼겠다고 말이야.”
* * *
저벅저벅
단장실을 나온 한수혁이 자신의 차가 세워진 주차장 쪽으로 향했다.
그가 퇴장당했지만 경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끊이지 않는 걸 보니 뭔가 또 일이 벌어진 것 같지만 그건 나중에 확인해도 될 일이다.
방금 전 다니엘에게 말한 것처럼 그가 오클랜드 포수를 박살 낸 건 그 버르장머리 없는 말 버릇 때문이기도 했지만 일종의 기선제압의 의미도 섞여 있었다.
아직 시애틀 구단에 대한 소속감 같은 건 거의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속한 팀이 다른 놈들에게 호구 취급을 받는 건 절대 사양이었다.
몸값이 그리 비싸지 않으면서도 자기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베테랑들, 거기에 자체 팜에서 길러낸 20대 중반의 젊고 유능한 선수들.
그런 신구의 조화 속에 몇 년째 지구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오클랜드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라이언 티보우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빅네임이 없는, 젊은 것 하나 외에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시애틀은 그들에게 만만함을 넘어 호구에 가까운 존재였다.
욕설을 들어도, 대놓고 시비를 걸어도, 아무 반항도 못 하는 호구.
두 팀 간에 수년간 쌓여온 상하 관계를 역전시키려면 역시 벤클만 한 게 없다.
그렇기에 한 번쯤 손을 봐줄까 했는데 예상보다 그 시기가 좀 빠르긴 했다.
거기서 그놈이 대뜸 인종차별적 발언을 내뱉으리라고는 한수혁조차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흐으음…….”
어쨌든 그건 모두 지난 일이고…….
지금 한수혁의 기분은 상쾌함 그 자체였다.
이상한 일이다.
개막전에서 퇴장을 당했는데 불쾌함 대신 상쾌함을 느끼다니.
그동안 워리어스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삐빅
차에 올라타 집으로 가는 경로를 입력했다.
위이잉
목적지 입력이 끝나자 자율주행차가 스르르 미끄러지며 한수혁의 집을 향해 출발했다.
주행거리 부족과 비싼 차량 가격, 거기에 원인미상의 화재까지 겹치며 주춤하던 전기차 시장은 지난 해 스위스의 한 연구소에서 상용화에 성공한 전고체 배터리의 등장으로 다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한수혁은 그 연구소의 3대 주주였다.
드르륵
시애틀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급 주택가, 그곳 한가운데 자리 잡은 한수혁의 집에 도착한 차가 스스로 충전모드에 들어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했던 기술을 눈으로 직접 보며 한수혁은 시간이 점점 흘러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가 회귀한 지도 벌써 3년이 훌쩍 넘었다.
예전 삶에서는 갖지 못했던 동료들, 친구들, 팬들, 그리고 여자 친구라 불러도 좋은 사람을 갖게 되었다.
갑자기 가슴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낀다.
예전 빅리그에서 한수혁이 일궈냈던 찬란한 기록들은 이제 모두 시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렇기에 지금 시애틀 팬들의 눈에 한수혁은 그저 동양에서 건너온 풋내기일 뿐이다.
한수혁을 향해 경외감을 보내던 선수들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기도 할 것이다.
처음부터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흠.”
하지만 그 사실이 귀찮고 짜증 나기보다는 오히려 반갑기만 하다.
그랬다.
워리어스의 우승으로 마음의 짐을 덜어낸 그에게는 이런 모든 것들이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오빠!”
한수혁이 집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은 민예린이 어느새 이곳까지 쫓아왔다.
뭐가 그리 분한지, 아니면 오늘 일 때문에 놀란 것인지 그녀의 눈에는 옅은 눈물 자국이 메말라 있었다.
“오빠, 괜찮아요? 그 무식한 놈하고 싸우느라 다친 건 아니죠? 아우, 이게 무슨 일이래……. 씨이, 내가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그 망할 놈들.”
“예린아.”
“여기가 미국이고 뭐건 간에 내가… 네? 저 부르셨어요, 오빠?”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갈까?”
“밥! 그거 좋죠. 네, 안 그래도 제가 이 동네 맛집을 쫙 리스트업 해놨거든요! 혹시 바닷가재 요리 좋아하세요?”
“아니, 햄버거 먹고 싶은데. 내가 아는 집 있어. 거기로 가자.”
“햄버거! 좋긴 한데, 그건 오빠가 별로 안 좋아하는…….”
“아니, 좋아해. 가자. 진짜 배고프다.”
아직도 빵과 빵 사이에 무언가를 끼워 먹는다는 게 그리 탐탁치 않은 한수혁이였지만 햄버거를 유난히 좋아하는 민예린을 위해 기꺼운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알아내고 배려해야 한다는,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삶의 지혜를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다.
“예린아.”
“네?”
“다 좋은데 홍염은 안 돼. 진짜 야구장 출입 금지 당한다.”
“히잉…….”
한수혁은 그렇게 야구선수로, 그리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점점 더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 * *
[메이저리그 사무국, 시애틀과 오클랜드 간 개막전 벤치클리어링 징계 결과 발표] [시애틀 한수혁 2경기 출장정지, 오클랜드 데스몬드 킹 15경기 출장정지, 특별교육 50시간] [때린 선수는 2경기, 얻어맞은 선수는 15경기? 사무국 관계자 “충돌이 있기 전 데스몬드 킹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말이 나온 걸 확인했다.”] [어떤 발언이었냐는 질문에는 노코멘트 “공개하기 힘든 부끄러운 욕설, 사무국은 앞으로 빅리그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인성교육에 더욱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양 구단, 항소 없이 징계 결과 받아들여… 한수혁, 오클랜드와의 2, 3차전 결장]주심이 차고 있던 블랙박스에서 그날 있었던 선수들 간의 대화가 공개된 순간, 오클랜드 구단은 입을 다물었고, 시애틀의 다니엘 단장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개막전부터 벌어진 폭력사태에 강력한 징계를 내릴 예정이었던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그 즉시 스탠스를 변경하고 두 선수에 대한 처벌 수위를 조정했다.
야구의 세계화를 시도 중인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금기시되고 있는 인종차별 발언, 그것을 함부로 입에 담은 데스몬드 킹에게는 15경기 출장정지와 함께 특별교육 50시간 이수라는 중징계가 떨어졌다.
그리고 시애틀과 오클랜드와의 시리즈 2차전.
따아아아악!
한수혁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 된 데릭 플레밍이 선두 타자 홈런을 날렸다.
그 홈런을 시작으로 분노한 시애틀 선수들이 오클랜드의 마운드를 초토화시켰다.
이날 데릭 플레밍은 1개의 홈런과 2개의 안타, 2개의 도루를 기록했고, 타이 존슨은 7회말 승부를 결정짓는 만루 홈런을 터뜨렸다.
9 대 3, 시애틀의 2연승.
개막전 때만 해도 프런트와 선수단을 욕하기 바빴던 팬들의 입에서 찬양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비록 다음 날 이어진 3차전에서 선발투수의 난조로 3연승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시애틀 선수단의 분위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지난 몇 년간 처절하게 짓눌려온 오클랜드를 밟아주었다는 것만으로 사기가 충만해진 것이다.
그렇게 시애틀의 2030 시즌 첫 3연전이 끝을 맺었다.
다음 상대는 류한결과 이찬호가 속해 있는 LA에인절스였다.